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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30화 (30/133)

030.

“다들 움직여.”

서동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손끝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강한 압박감에 이를 악물었다. 악다문 잇새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김민지가 어깨를 떨었다.

그가 숨죽이고 있던 좀비들의 본성을 깨웠다. 상위 포식자의 명령에 좀비들이 음울하게 울부짖었다.

“크르르!”

“캬하아―!”

힘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느끼면서도 좀비들이 한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회색빛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눈앞에 있는 존재를 먹어 치우는 것.

좀비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끔찍한 배고픔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가시지 않는 허기는 오로지 살아 있는 인간의 육신을 집어삼키는 순간에만 일시적으로 채워졌다.

한수호의 기에 눌린 것도 잠시뿐이었다. 서동연이 그들을 자극하자 불붙은 본능은 제 몸을 한수호에게 던지게 만들었다.

“끄륵…….”

그러나 한수호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거인의 힘은 압도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김민지는 살면서 좀비들이 이토록 무력해 보이는 순간이 올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에스퍼들이 좀비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야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힘과 한수호의 힘은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거인이 주먹을 한번 휘두르고, 발을 들어 올렸다 내릴 때마다 좀비들은 육편이 되어 갔다. 목을 잘라 내거나 머리통을 부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가볍게 검회색 육신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좀비들은 힘을 전혀 쓰지 못했다. 넓은 공간 안에 썩어 가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전투에 숨을 죽이고 있던 생존자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위액을 토해 낼 것만 같아서였다.

“언제까지 그 힘을 유지할 수 있나 지켜보는 것도 좋겠네.”

서동연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날카로운 눈매가 서서히 창백하게 질려 가는 한수호의 안색을 눈에 담았다.

어마어마한 능력을 사용하고는 있다고 하나 한계가 있는 힘이었다. 한수호의 팔찌에 떠오른 색을 확인한 후로는 입가에 미소마저 걸렸다.

“커윽…….”

하지만 미소는 떠오른 순간보다 더욱 빠르게 사라져 갔다. 좀비들을 다 곤죽으로 만든 그림자 거인이 서동연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한수호도 서동연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서동연이 양팔을 교차해 거인의 주먹을 막아 냈다. 속에서 치솟은 핏물이 입가를 따라 흘러내렸다. 딱딱한 바닥이 밀려 나는 발밑에서 논두렁처럼 파였다.

강한 마찰에 서동연이 신고 있는 워커의 바닥이 금세 닳았다. 서동연이 거인의 주먹을 막아 내면서 동시에 다리 한쪽을 들어 올려 다가오는 한수호를 걷어찼다.

“이렇게 밀리는 거 처음인데.”

다리 두 개를 땅에 박아 넣다시피 해서 막아 낼 때도 몸이 뒤로 주욱 밀렸다. 한수호를 공격하기 위해 다리 하나를 떼어 낸 대가는 컸다.

한수호는 밀어 냈지만 서동연은 커다란 굉음과 함께 몸이 벽에 처박혔다. 양쪽 팔이 뼈가 드러날 정도로 길게 찢어졌다. 등 쪽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보아 척추뼈가 골절된 것 같았다. 갈비뼈도 서너 개는 나간 듯했다.

지독한 통증이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시간이 흐르면 아물 상처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고통에 헛웃음이 났다.

이마도 찢어진 탓에 시야가 붉게 물들어 갔다. 웃음을 흘릴 때마다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따라붙었다.

“쉴 시간도, 안 주고 너무하네.”

그러나 몸을 추스를 시간도 없었다. 한수호가 양손에 단검을 들고 달려들어서였다. 그를 걷어찰 때 다리에 꽤 힘을 줬던 터라 내상을 입은 게 분명한데도 한수호는 고통을 전혀 티 내지 않았다.

서동연의 뼈와 살을 가르지 못한 단검의 날이 부서져 내리는 벽에 콱콱 소리를 내며 틀어박혔다. 벽이 비스킷이라도 된 것처럼 뚫고 들어갔던 단검이 뽑힐 때마다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무리 나라도, 목이 꿰뚫리면 죽는다고.”

폐부를 찌르는 갈비뼈에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났다. 계속해서 핏물이 역류했지만 서동연은 피를 뱉어 내는 대신 속으로 삼켰다.

양팔은 움직이기도 힘들 만큼 너덜너덜해진 상태고, 한수호뿐만 아니라 그림자 거인도 서동연을 육편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는 중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둘의 공격을 피하는 서동연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수호는 서동연의 표정이 지나치게 여유롭다는 걸 알아차렸다. 원래 두려움이라는 걸 모르는 놈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누구든 동요하는 게 정상이었다.

“지켜보니까 팀원들을 다 데리고, 오지도 못한 것 같네. 맞지?”

“…….”

한수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긍정이라는 걸 알아차린 듯 서동연이 여유로운 미소를 되찾았다.

“저기 달려오는 한 명이, 유일한 아군인 것 같고.”

“팀장!”

진표성이 피바다가 된 장내로 뛰어 들어왔다. 윤기가 자르르 흘렀을 털이 지금은 피와 먼지가 엉겨 붙어 행색이 엉망이었다.

“가이드는 왜 이래?”

등 뒤에서 진표성이 이현과 김솔을 챙겼다. 작은 그림자 병사를 만들어 내 두 사람을 지키고 있었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다.

진표성이 둘을 보호해 준다면 한수호로서는 걱정할 게 없었다. 두 사람에 대한 걱정을 던 것과는 반대로 그는 사방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눈빛을 굳혔다.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여기는 내 구역이잖아.”

한수호가 흘러나오려는 침음을 삼켰다. 허연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심각했던 서동연의 팔이 어느새 움직일 정도로 회복되어 있었다.

하프 좀비의 회복력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기이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주먹을 쥐었다 펴면서 감각을 확인한 서동연이 다가오는 거인의 주먹을 손날로 쳐 냈다.

우드득,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서동연의 표정은 즐거워 보였다.

“본부랑도 연락 안 되지?”

아직 본부 쪽으로 향한 임태한에게서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현을 먼저 구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잠시 그쪽에 대한 생각은 미뤄 두기도 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그것도 다친 사람을 데리고.”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한수호와 진표성, 둘만으로는 서동연과 그가 이끄는 세력을 막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쪽은 지켜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현과 김솔뿐만이 아니었다. 생존자들을 발견한 이상 그들에게도 살길을 열어 줘야만 했다.

“생각보다도 말이 많은 편이네.”

그렇다고 해서 한수호는 서동연에게 얌전히 제 목을 내줄 생각은 없었다. 앞길이 막막하다고 하더라도 한수호는 이현을 지키고, 서동연을 죽일 터이니.

거대한 그림자 거인이 서서히 몸집을 줄여 나갔다. 줄어든 그림자는 한수호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한수호의 눈동자가 안개가 짙게 낀 것처럼 흐릿해진 순간이었다.

“대장님!”

하프 좀비 무리가 안쪽으로 쏟아지듯 들어왔다. 이현과 김솔, 김민지를 비롯한 생존자 세 명을 벽에 기대 놓고 살피던 진표성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산 넘어 산이냐고.”

부풀어 오른 흉곽이 거세게 들썩였다. 허벅지 근육이 한계까지 조여들었다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컥…….”

가장자리에 있던 하프 좀비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길어진 손톱에 맺힌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도 전이었다. 진표성이 잔상이 남을 정도로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하프 좀비들이 이현이 있는 쪽으로 가지 못하게 그 전에 다 죽일 생각이었다. 동료 하나를 잃고 나서야 진표성의 존재를 인식한 하프 좀비들이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췄다.

각양각색의 무기를 든 이들이 진표성을 향해 달려들었다. 개중 일부는 서동연과 대치하고 있는 한수호 쪽으로 움직였다.

“으윽…….”

“아저씨, 정신이 들어요?”

이현이 정신을 차린 건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질 즈음이었다. 진표성이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치고 빠지는 식으로 하프 좀비들을 하나씩 해치우자 하프 좀비들도 속도를 높였다.

보통 사람의 시력으로는 움직임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수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뿐만 아니라 죽어 가면서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까지.

아수라장이었다.

이현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입 안쪽의 여린 살을 짓씹었다.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부옇던 시야가 이내 선명해졌다. 턱에서도 강한 고통이 일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에스퍼들, 아저씨 동료 맞죠?”

“……응.”

서동연에게 당해 바닥에 처박혔을 때 이현은 정말 죽는 줄 알았다. 현재도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고통은 이현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김민지가 가리키는 손끝을 좇자 한수호와 진표성이 보였다. 두 사람 다 평소의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행색이 엉망이었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밤낮없이 움직였을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관계가 원만해 보여도 이현이 제 곁을 내준 사람은 없었다.

알파 1팀이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고 기대했지만, 속마음 깊은 곳에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남아 있었다.

이현이 손등 뼈가 도드라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구하러 온 이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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