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29화 (29/133)

029.

“이런 건 진짜 처음 보는데.”

색이 다른 눈동자가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느끼기에 이현의 능력은 굉장히 위험했다. 하프 좀비에게 가이딩하는 걸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현이 가이딩 능력을 사용할 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력에 휩싸인 순간, 제 몸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길쭉한 손가락이 고운 얼굴선을 쓸어내렸다. 턱 아래를 건든 손가락에 이현의 얼굴이 들어 올려졌다. 찌릿한 통증이 턱에서부터 번져 나갔다. 이현은 신음 소리가 흘러나올까 봐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살피는 듯한 눈초리에 이현은 기다란 속눈썹만 떨었다. 관자놀이에 맺힌 땀을 훔칠 수도 없었다.

하프 좀비의 손끝에 맺힌 핏물이 피부에 스며들었다. 목울대를 따라 빙글 돌리는 손길에 짙은 살기가 묻어났다.

손끝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지금은 김솔이 정신을 잃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하프 좀비는 담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기절할 정도의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죽이는 게 나을 것 같은…….”

“자, 잠시만요!”

이현이 큰 소리를 외치며 제 턱을 쓰다듬고 있던 하프 좀비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말할 때마다 얼굴에서 끔찍한 통증이 일었지만 살려면 버텨야 했다.

하프 좀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현의 손을 내려다봤다. 떨쳐 내야 한다는 생각은 드는데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손을 잡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먼지로 뒤덮여 있던 손이 금세 핏빛으로 젖어 갔다. 이현은 하프 좀비가 행동을 멈춘 틈을 타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

잠시 서동연에게 했던 짓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그 방법을 머릿속에서 지워 냈다. 입맞춤 한 번으로 미친놈이 꼬였다.

자신에게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눈앞의 놈에게도 같은 행동을 하기에는 서동연에게 당한 일들이 있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이현이 대신 하프 좀비의 손을 꽉 붙들었다. 남아 있는 가이딩 마력을 모조리 긁어모아 그대로 하프 좀비의 체내로 흘려 넣었다.

“이, 씨발……!”

이변을 느낀 하프 좀비가 손을 떼어 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잠시 방심한 대가는 컸다.

“……이게 진짜 효과가 있구나.”

이현이 얼떨떨하게 제 두 손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바닥을 굴러다니며 괴로워하는 하프 좀비를 바라봤다. 양쪽의 색이 달랐던 하프 좀비의 눈동자가 서서히 같은 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한쪽 눈동자에서 회색빛이 점점 빠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리라.

“으아아악……!”

게다가 하프 좀비는 굉장히 괴로워 보였다. 얼굴뿐만 아니라 옷에 가려진 피부를 제외한 모든 곳에 굵은 핏줄이 떠올랐다.

마치 굵은 지렁이가 그의 몸속을 파고들어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기괴괴한 모습이었다.

정말로 괴로운지 하프 좀비는 두 손을 들어 제 얼굴과 목을 손톱으로 긁어 대고 있었다. 손톱 끝에 생존자들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가 묻어나는데도 자학적인 행동을 멈추지 못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이현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하프 좀비가 이현의 앞에 갑자기 나타났듯이 홀연히 등장한 서동연 때문이었다.

“으윽, 대장…….”

서동연의 시선이 뒤집어진 벌레처럼 바르작거리는 하프 좀비를 날카롭게 훑어 내렸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던 핏줄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동시에 하프 좀비의 두 눈동자 색이 같아졌다. 회색빛 흔적이 전혀 없는 눈동자가 겁을 집어먹은 사람처럼 세차게 떨렸다.

“……제 몸이 이상해요.”

하프 좀비가 일어나 앉아 제 손을 내려다봤다. 하프 좀비가 된 후로 몸 안에 가득하던 힘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오래전에나 느꼈을 법한 무거움이 사지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착각이기를 바라고 있지만 거울을 보지 않아도 제 눈동자 또한 변화가 생겼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프 좀비가 허망하게 자신의 얼굴과 몸을 만지작거릴 때였다.

“커흑…….”

떨리는 시선이 제 가슴을 뚫고 들어간 팔을 허망하게 내려다봤다. 능력이 사라지면서 느껴지는 고통에 실핏줄 터진 눈이 방금 제 가슴에 구멍을 낸 이를 향해 움직였다.

“도대체 왜…….”

“확인해 봐야 하니까. 정말로 능력을 잃은 게 맞는지.”

같은 편이었다. 자신을 지켜 줄 거라 생각했던 이가 내린 냉혹한 결정에 하프 좀비의 눈가가 눈물로 젖어 들었다.

“쿨럭, 쿨럭…….”

서동연이 가슴을 꿰뚫은 손을 빼내자 하프 좀비의 몸이 크게 들썩거렸다. 생기가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얼굴이 억울한 심정처럼 엉망으로 찌푸려졌다.

“보통 사람이 되어 버렸구나.”

죽어 가는 이를 내려다보는 눈초리가 매서웠다. 항상 이현을 볼 때면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짓던 얼굴이었다.

미소가 지워진 얼굴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 만큼 싸늘했다.

“살려, 주…… 컥…….”

간절한 바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동연이 하프 좀비였던 놈의 목을 움켜쥐었다. 뚜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하프 좀비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신부가…… 생각보다 위험한 능력을 갖고 있었네.”

이현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사체의 몸뚱이를 발끝으로 툭 건드린 서동연이 자신에게로 몸을 돌린 이후부터 밧줄에 묶인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만큼 서동연의 시선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는 서동연을 피해 이현이 굳어 버린 몸을 필사적으로 뒤로 물렸다.

손바닥에 잔해들이 닿아 따끔한 통증이 일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위험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질식할 것 같은 살기에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이현은 서동연이 정말로 그동안 자신을 봐줬다는 걸 알게 됐다.

하복부에 뻐근한 감각이 일었다. 중년 남성이 왜 오줌을 지렸는지 알 수 있었다. 서동연이 작심하고 내뿜는 살기는 상급 에스퍼가 아닌 이상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생존자뿐만 아니라 본능대로 움직이던 좀비들마저 숨을 죽였다. 서동연은 말 그대로 공간 전체를 제 손 위에 두고 주무르고 있었다.

“으윽…….”

이현의 멱살이 끌어 올려졌다. 품에 안겨 있던 김솔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김솔을 살필 여력도 없었다.

코끝이 스칠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색이 다른 눈동자에 이현은 사지가 축 늘어졌다. 손끝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잘게 떨렸다. 반항할 의지마저 앗아 가는 위압감이 온몸을 내리눌렀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동연이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식칼을 들고 도마 위에서 펄떡거리는 활어를 보는 듯한 눈길이었다. 이현은 간신히 손끝에 힘을 줘 팔을 들어 올렸다.

바들거리는 손끝이 제 목을 옥죄고 있는 서동연의 손등에 닿았다.

가이딩 마력을 서동연에게 흘려 보내기도 전이었다. 이현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아, 흐으…….”

뒤통수에서 뜨끈한 감각이 느껴졌다. 동시에 코끝을 찌르는 피 냄새가 진동했다.

머리 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가장 심한 가운데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파 왔다. 고통에 초점이 흐려진 이현을 내려다보는 서동연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이현에게서 흘러들어 오려는 무언가를 느낀 순간, 서동연은 하프 좀비가 된 이후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협회의 에스퍼들에게 단신으로 둘러싸여 있었을 때에도 느껴 보지 못한 아득함이 심장을 뒤흔들었다.

그동안 이현을 바라볼 때 그가 느낀 감정은 설렘과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는 원초적인 공포심을 느꼈다.

마치 하프 좀비가 되기 전에 좀비에게 제 살점을 물어뜯겼을 때처럼.

이현의 뒤통수에서 흘러나오는 핏줄기에 시야마저 붉게 물드는 듯했다. 천천히 깜박이던 이현의 눈꺼풀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서동연이 떨리는 손을 뻗어 이현을 품에 안아 들려고 한 순간이었다.

“손 치워.”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수호가 서동연의 앞을 가로막았다. 검녹색 눈동자가 정제되지 않은 분노로 들끓었다.

이현의 뒤통수에서 흘러나온 피로 바닥이 흥건했다. 게다가 이현은 현재 입가에 피까지 머금고 있었다. 외상뿐만 아니라 내상도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이현뿐만 아니라 김솔도 의식이 없었다.

“……미쳤다.”

김민지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부러진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둔하게 느껴질 만큼 얼이 빠졌다. 일대의 모든 그림자들이 한수호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김민지의 그림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 그림자가 빼앗기는데도 김민지는 마른침만 삼켰다. 그림자가 사라지면서 온몸이 무거워졌지만, 그보다 현재 목도하고 있는 장면에 압도되고 말았다.

하나로 뭉쳐진 그림자가 한수호의 등 뒤에서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 갔다. 거인이 되어 버린 그림자를 담기에는 넓은 공간도 부족했다.

두 팔을 길게 늘어뜨린 거인의 등이 앞으로 숙어졌다. 눈 코 입은 없지만 얼굴로 보이는 구체가 김민지의 상체보다 거대했다.

만약 입이 있다면 성인 남성쯤은 한입에 삼켜 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그르르…….”

살아남은 좀비들이 낮게 포효했다. 식욕을 제외한 감정은 거의 느끼지 못하는 개체들마저 공간을 장악해 나가는 존재감에 몸을 웅크렸다. 마치 거인이 제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라듯이.

“하아…….”

한수호의 흉곽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만큼 이성을 잃고 능력을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다.

급속도로 치솟는 폭주 위험 수치에 팔찌에서 따끔거리는 감각이 느껴졌으나 이미 늦어 버렸다.

그의 힘은 눈앞의 존재를 세상에서 말살할 때까지 제동장치가 망가진 기관차처럼 폭주할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