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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28화 (28/133)

028.

서동연이 헛숨을 내뱉었다. 어이없게도 한수호는 서동연이 말릴 새도 없이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 삼켰다. 빼앗으려던 목표물이 한수호의 배 속으로 사라졌다. 공들여 쫓던 먹잇감을 허망하게 놓친 기분이었다.

“아니, 저걸 나중에 어떻게 빼려고…….”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서동연은 자신이 한수호가 죽는다는 가정은 내리지도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한수호의 능력은 예상보다도 뛰어났다. 그를 오랜 기간 지켜봐 왔지만 일대일로 붙으면 자신이 한참 우위에 있을 거라 판단한 게 오산이었다.

가능하면 부하들의 도움 없이 그를 제 손으로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서동연은 인정해야 했다. 일대일로는 한수호를 죽이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서동연이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신호를 보내려고 할 때였다. 잘생긴 귀가 짐승처럼 쫑긋 섰다.

“아, 이러다 내 신부 죽겠네.”

이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침입자들의 존재를 느낀 후 곧바로 이현을 도망가지 못할 장소에 둔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다만 지금 이현을 가둬 둔 장소에서 일어나는 소란이 심상치 않다는 게 문제였을 뿐.

자신이 이현에게서 몸을 지킬 수 있는 무기조차 다 빼앗은 상황이니 이현은 맨몸뚱이로 재앙을 마주한 거나 다름없었다.

이현과 함께 가둬 둔 이들 중 능력이 있는 자는 전무했다. 다들 좀비 떼에게 둘러싸인 순간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죽을 놈들이었다.

휘이익, 서동연이 휘파람을 불었다. 서동연이 말한 신부가 이현이라는 걸 알게 된 한수호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과 동시였다.

“그르르…….”

“그륵, 크르르…….”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좀비 몬스터들은 모두 A급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건지 놈들의 수는 기십을 넘어갔다. 서동연에게 집중하느라 근처에 대기하고 있는 기척을 알아채지 못한 거였다.

“마무리 짓고 싶은데 안 되겠어. 내 부하들이랑 놀아.”

서동연이 어깨를 장난스럽게 으쓱거렸다. 한수호가 까득 이를 악물었다. 서동연이 걸음을 뒤로 물릴수록 좀비 몬스터들이 여백을 메꿔 갔다.

“잘 부탁해, 얘들아.”

서동연은 제 곁에 와 몸을 비비는 대장 격 좀비 몬스터의 정수리를 스치듯이 쓰다듬은 후 모습을 감췄다.

한수호는 서동연이 사라진 순간, 입에 머금고 있던 마력 링을 뱉어 냈다. 바닷빛으로 빛나고 있던 폭주 위험 수치가 가장자리부터 노란빛으로 물들어 갔다.

바닷물 위에 햇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아름다운 장면이었지만 한수호의 눈가는 고통으로 발갛게 달아오를 뿐이었다.

“깨갱, 깽…….”

한수호를 향해 달려들던 좀비 몬스터 한 마리의 미간에 단검이 박혔다. 압도적인 무력 앞에 겁을 집어먹을 만도 한데 남아 있는 회색빛 눈동자들은 위험스레 빛나기만 했다.

한수호는 가장 마지막으로 나타난 좀비 몬스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서동연이 머리를 쓰다듬었던 놈이다.

좀비 몬스터들 중 유일하게 S급 몬스터이기도 했다.

앞발이 성인 남성의 머리통만 한 거대한 크기의 호랑이였다. 얼굴 위쪽은 썩어 문드러졌으나 하관에서 눈에 띄는 이빨은 오히려 더 날카로워졌다. 나타나기 전에 무언가를 씹고 있었던 건지 이빨이 온통 핏빛이었다.

“크하앙―!”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복도 천장에서 잔해들이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같은 편인 좀비 몬스터들 중 일부가 살기 어린 포효에 비틀거렸다.

S급 좀비 몬스터의 포효는 한수호도 완전히 흘려 낼 수 없었다. 내장이 헤집어지는 통증이 일었다. 그러나 한수호는 익숙하게 고통을 감내하고 S급 좀비 몬스터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다른 놈들은 지친 상태일지언정 특별히 위협이 되지 않았다. 사기를 꺾기 위해서라도 대장 격인 놈을 먼저 처리해야만 했다.

한수호가 쥔 단검이 놈의 발톱을 잘라 냈다. 한계까지 마력을 응집시킨 단검은 서동연도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할 만큼 엄청난 힘을 담고 있었다.

아무리 S급 좀비 몬스터라고는 하나 날카로운 발톱도 소용없었다. 다만 능력을 유지할수록 폭주 위험 수치가 빠르게 치솟았다.

대장 좀비 몬스터가 사라진 발톱에도 굴하지 않고 이빨을 들이밀었다. 코앞에서 훅 끼쳐 오는 썩은 내에 한수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본능을 거스르는 존재 같았다. 몬스터도 본능적으로 느꼈을 게 분명했다. 제 능력은 한수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그런데도 발톱이 다 사라질 때까지 놈은 한수호를 향해 앞발을 휘두르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은 한수호도 눈앞이 핑 돌아 앞발에 가슴 부근을 스치듯 맞았다.

다행히 발톱이 다 사라져 있어 긁히지는 않았지만 묵직한 통증이 상체를 울렸다.

설상가상 체내를 순환하는 마력의 흐름이 위험할 정도로 빨라지고 있었다. 한수호가 역류한 핏물을 도로 삼켰다. 입가를 따라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서동연의 행동으로 짐작건대 이현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치솟는 폭주 위험 수치는 한수호에게 이현보다 차순위였다.

이를 악문 한수호가 절박하게 단검을 휘둘렀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휘두르는 팔의 속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빨라져만 갔다.

“허억, 헉…….”

능력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 탓에 폭주 위험 수치가 완벽하게 3단계로 진입했다. 한수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훑었다. 미친 사람처럼 폭주해 움직인 결과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키이잉…….”

아직 완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아 헐떡이는 머리통 위로 워커가 내려앉았다. 마지막 좀비 몬스터의 숨통을 끊어 낸 한수호가 서동연이 사라진 방향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 * *

온몸으로 번져 가는 고통에 이현이 까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어디가 잘못된 건지 턱에서도 심상치 않은 통증이 느껴졌다.

“솔아…….”

품 안에서 축 늘어진 작은 몸에 이현이 떨리는 시선을 움직였다. 아이의 얼굴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이현이 최대한 김솔을 품에 안아 보호했으나 사방에서 짓쳐들어오는 모든 잔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안 돼, 제발…….”

손끝이 작은 코 아래 닿았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숨결에 이현은 그제야 막혔던 숨을 토해 냈다. 먼지로 엉망인 얼굴 위로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캬하악!”

“크르르…….”

그러나 숨을 돌릴 새도 없었다. 이현은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좀비들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여린 숨결을 지켜야 하는데…….

이제는 알파 1팀이 구하러 올 거라는 희망도 사라졌다. 김솔과 제 몸에서 나는 피 냄새에 썩은 내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현이 김솔을 안은 상태로 눈을 질끈 감았다. 죽고 싶지 않았지만 무기를 들어 휘두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제물 삼아 아이라도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랄 뿐.

먼지투성이인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반짝 빛난 건 그때였다. 가이드용 반지는 서동연이 유일하게 이현에게서 빼앗아 가지 않은 소지품이었다. 가느다란 손가락 위의 반지가 찬란한 금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현은 몸속의 가이딩 마력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의도해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거짓말처럼 마력을 움직였다.

좀비들이 내는 괴성으로 가득하던 주변에 일순 침묵이 감돌았다. 이후 바닥으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렸다.

“아저씨…….”

김민지가 두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지 않으면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였다.

그만큼 방금 제 두 눈으로 목도한 광경은 현실감이 없었다. 먹잇감을 향해 아가리를 한껏 벌리고 있던 것들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픽픽 쓰러졌다.

한껏 커진 회색빛 동공이 탁한 빛으로 물들었다. 박제된 것처럼 바닥에 널브러진 좀비들은 움직임이 완전히 멎은 상태였다.

“가이딩…….”

이현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발끝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는 일반 좀비의 손끝이 버석하게 메말라 갔다.

방금 느낀 감각은 익숙했다. 에스퍼들을 가이딩할 때 느꼈던 감각이니까. 다른 점은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이딩 마력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갔다는 거였다.

그런데 에스퍼가 아닌 좀비들한테도 제 가이딩 능력이 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현이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매만졌다. 눈을 가려 주던 안경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이현은 아무도 모를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멍한 시선이 금빛으로 어렴풋이 빛나는 반지를 내려다봤다.

눈 색이 변하는 것과 혹시 방금 일어난 현상이 관련 있는 건가…….

세상이 위험할수록 남들과 다른 능력은 개인의 안위에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다. 이현의 직업은 연구원이었다. 사람의 호기심이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얼마나 잔인한 결과로 이어지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깨닫게 됐다.

이현은 하프 좀비를 대상으로는 실험하지 않았으나 연구원들 중 일부는 그들도 실험체로 두었다.

좀비 바이러스의 치료제에 가까이 있는 그들인 만큼 실험을 해야 했다. 다만 그건 인간의 관점에서였을 뿐이다.

양쪽의 눈 색이 다를 뿐 자신과 같은 외양에 이성도 있고, 사고도 하는 이들을 실험체로 삼는 게 이현은 꺼려졌었다.

그건 어쩌면…… 기억나지 않는 제 인생의 공백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고, 가이딩을 할 때마다 색이 변하는 제 눈동자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신도 그들처럼 언제든 실험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은 이현이 쉽사리 떨쳐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현의 눈동자는 가이딩을 할 때면 반지처럼 황금빛으로 물들어 갔다. 시력이 나쁘지도 않으면서 그동안 특수 제작한 안경을 끼고 다닌 이유였다.

“너, 지금 뭐 한 거야?”

이현이 방금 일어난 일에 대한 충격을 추스르기도 전이었다. 방금까지 좀비들로 우글거리던 공간에 이질적인 소리가 끼어들었다.

“가이딩한 거 맞지?”

하프 좀비였다. 쥐를 닮은 인상의 남자가 이현의 앞에 몸을 쭈그리고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는 손끝이 사체가 되어 버린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툭툭 건드렸다.

분명 이 안에는 하프 좀비가 없었는데…….

하프 좀비의 손끝에 마르지 않은 핏방울이 고였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신선한 피는 생존자들의 몸에서 나온 게 분명했다. 언제 들어온 건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은밀하게 움직인 거였다.

이현은 코앞에 닥친 위협에 반응하느라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그렇기에 다가오는 하프 좀비의 기척을 가이드인 그가 알아차리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얼굴이 낯선 걸 보니까, 대장이 최근에 데려온 인간 같은데…….”

이현이 숨조차 쉬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하프 좀비의 손은 언뜻 일반인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저 손이 휘둘러지는 순간 제 머리통은 순식간에 목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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