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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27화 (27/133)

027.

화려하게 생긴 얼굴 위로 천장에서 내리쬐는 빛이 조명처럼 내려앉았다. 서동연은 한수호와 열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멈춰 섰다.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할 줄은 몰랐네. 잘 지냈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맞이하는 듯한 말투였다. 두 사람의 주변에 펼쳐진 핏빛 가득한 배경만 아니라면 친한 친구들의 재회 같았다.

그 정도로 서동연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해맑아 보이기까지 했다. 자신의 부하들이 사체가 되어 복도를 꽉 채울 정도로 널브러져 있는데도.

하지만 한수호는 현재 서동연의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환하게 웃는 얼굴과 달리 자신을 응시하는 눈동자는 싸늘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손끝이 움찔 떨릴 정도로 엄청난 살기가 복도를 가득 메워 갔다. 한 존재가 내는 살기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아직 본격적인 건 시작도 안 했어.”

한수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굉음이 사방팔방에서 들려왔다. 두 사람 다 예민한 청력을 지녔다. 타격을 받기에 충분한 폭음이 공간을 가득 울렸다.

그러나 폭발을 예상하고 있던 한수호는 귀 주변으로 마력을 둘러 충격을 덜어 냈다. 반면 폭발음을 고스란히 듣게 된 서동연은 귀를 감싸 쥐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희미한 핏줄기 하나가 손가락 사이로 보였다. 서동연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두 사람이 서 있는 복도는 폭발음만 들려오고 잠시 흔들렸을 뿐 건물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이현이 잡혀 있을 거라 예상되는 장소였다. 예상 장소는 폭발의 영향력에서 최대한 비켜나도록 폭탄을 설치했다.

“내가 건넨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네.”

한수호에게서도 서동연 못지않은 기세가 터져 나왔다. 그가 말한 선물이 뭘 뜻하는지 잘 알아서였다.

김종현의 손이 황두학의 가슴을 뚫고 나오던 장면이 눈앞에 잔상처럼 스쳐 갔다. 김종현이 저들에게 넘어간 이유는 단순했다.

권력 때문이었다. 사실상 에스퍼와 가이드들은 능력에 비해 대우를 받는 편은 아니었다.

지급받는 급료가 많기는 하지만 돈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임무 도중에 사망하거나 큰 부상을 당하는 비율이 높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능력자의 수가 늘어나는 것보다 좀비화되는 사람과 몬스터가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게다가 여전히 신규 던전은 대한민국 곳곳에서 생겨나는 중이었다.

협회에 침투한 하프 좀비 세력은 현재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들을 포섭했다.

김종현이 알고 있는 정보가 생각보다 적어 어디까지 마수의 손이 뻗쳐져 있는지 파악하지는 못했다.

서울 지부 알파 1팀까지 영향을 받을 정도로 검은 손길을 뻗친 이들이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협회 본부와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통신을 막을 정도로 그들의 세력이 강하다면 한수호의 윗선에서도 변절자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여러모로 암울한 상황이었다. 협회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면 한계가 있었다. 나머지 팀원들을 협회 쪽으로 보낸 건 그 때문이었다. 한수호도 이현을 구한 후에는 본부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만약 협회 내에도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다면…….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 간 한수호가 땅을 박차고 서동연을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나는 대화를 더 하고 싶은데…….”

서동연이 고개를 왼쪽으로 꺾었다.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 거무튀튀한 단검 때문에 회색빛 실이 몇 가닥 허공에 흩날렸다.

“너는 그럴 생각이 없구나.”

이를 악문 서동연이 잇새로 거친 목소리를 토해 냈다. 단단하게 단련된 흉곽이 부풀었다 가라앉는 순간 이번에는 한수호가 고개를 뒤로 물렸다.

주먹이 눈앞을 재빠르게 스쳐 가자 검푸른색 머리카락이 위로 붕 떴다. 한수호가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서동연 같은 상대를 상대할 때는 그림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본신의 능력으로 전심전력을 다하는 게 나을 터.

서동연도 몸을 뒤로 물려 장갑을 꼈다. 손등 위에 몬스터의 이빨이 군데군데 튀어나와 있는 검은색 장갑이었다.

한 호흡이 흐르기도 전에 두 사람은 여러 번 맞붙었다. 챙, 챙, 챙. 단검과 손이 닿는데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소리뿐만 아니라 불꽃까지 튀었다. 건물이 크게 흔들린 여파로 복도에는 뿌연 먼지가 피어오른 상태였다.

회색빛 공간에서 선명한 불꽃만이 유독 눈에 띄었다. 두 사람이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는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간접적으로 붙었다. 한수호가 서동연이 이끄는 무리를 상대한 게 대부분이었다.

“윽…….”

“크윽…….”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팔에서 뻐근한 통증이 일자 한수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상대해야 하는 건 서동연 하나가 아니다. 현재 있는 장소는 하프 좀비뿐만 아니라 좀비 몬스터와 일반 좀비도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이현과 김솔을 구해 무사히 빠져나가는 힘도 비축해 둬야 했다. 무엇보다 빠르게 치솟는 폭주 위험 수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몬스터의 마력을 머금은 마석이 한수호가 능력을 사용할수록 번뜩였다.

“딴생각할 여유가 있다니, 이거 놀라운데.”

그러나 서동연은 뒷일을 생각하면서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한수호가 들고 있는 단검에 마력을 한계에 가깝게 흘려 넣었다.

거무튀튀했던 단검이 이질적으로 투명하게 물들어 갔다. 마치 해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처럼 기이한 현상이었다.

한수호가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감각을 억누르며 입 안쪽의 살을 짓씹었다. 한 번에 치솟는 폭주 위험 수치 때문에 관자놀이를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통증이 이어졌다.

한순간의 방심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서동연의 능력이라면 한수호를 죽이는 것도 가능했다.

촤아아악. 한수호가 휘두른 단검에 서동연의 상체가 대각선으로 길게 베였다.

하프 좀비의 외피는 사람의 살색과 같지만 몬스터의 외피처럼 질겼다. 마력을 머금지 않은 물체는 작은 생채기도 내기 힘들 정도였다.

하프 좀비 중에서도 서동연이 지닌 능력은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그런 살갗이 현재 양쪽으로 쫘악 벌어졌다.

“하하하…….”

서동연이 오랜만에 느끼는 고통에 헛웃음을 흘렸다. 선명하게 굴곡진 복근이 갈라져 내장마저 드러났다.

장기가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피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상처 부위를 압박하자 순식간에 손이 피로 물들어 갔다.

“후우…….”

서동연이 이마 위로 길게 흘러내린 앞머리가 흩날리도록 깊은숨을 내쉬었다. 옅게나마 남아 있던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미소가 사라진 얼굴은 생각보다도 싸늘했다. 무섭게 표정이 굳은 건 한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서동연과 벌이는 전투는 시간을 끌수록 한수호에게 불리했다. 진표성이 제 몫을 잘해 주고 있겠지만, 수적으로 너무 열세였다.

폭발에 혹여라도 이현과 김솔이 다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현이 생각보다 당찬 성격이라는 건 알지만 피에 젖은 하얀 얼굴을 떠올리니 입 안이 바짝 말랐다.

“네 뱃가죽도 똑같이 찢어 놔야겠어.”

이번에는 서동연이 한수호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한수호가 손에 쥐고 있는 단검은 여전히 투명한 빛으로 물든 상태였다.

서동연의 주먹 위로 삐죽 튀어나온 이빨이 단검과 부딪칠 때마다 갈려 나갔다. 서동연의 눈가가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결국 그는 한수호의 손을 쳐 내는 게 아니라 피하는 방향으로 전투 방법을 바꿨다. 대신 발을 이용해 한수호의 허리와 허벅지를 걷어찼다.

서동연의 몸은 전체가 흉기나 마찬가지였다. 근육에 팽팽하게 힘이 들어간 발은 거대한 쇠망치나 다름없었다.

“커흑…….”

한수호가 결국 치명타를 내어 주고 말았다. 명치에 정확하게 꽂힌 발끝에 한수호가 단말마의 비명을 뱉어 내며 날아갔다.

쿠르릉, 복도의 벽 한쪽이 한수호의 몸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한수호가 배를 부여잡고 거친 기침을 연속으로 토해 냈다. 허공으로 튀어 오른 핏방울이 볼과 입술 근처에도 붉은 흔적을 남겼다.

“아, 다리 잘릴 뻔했네.”

명치에 이어 한수호의 머리통을 날리려던 발이 방향을 틀어 아직 멀쩡한 벽을 찼다.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 발자국 모양대로 박살 났다.

서동연이 한수호가 휘두른 단검의 날에 스칠 뻔했던 신발 앞코를 바닥에 툭툭 두들겼다.

다리가 잘린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사지 하나가 날아가면 회복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거 진짜 거슬린다.”

한수호가 손에 쥐고 있는 단검의 색이 변한 뒤부터 공격을 하는 게 여의찮았다. 최대한 단검의 궤적을 피해 발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수호도 멍청이가 아니니 서동연의 공격 패턴을 몸으로 부딪쳐 가며 체득하는 중이었다.

한수호가 사용하고 있는 마석을 바라보는 서동연의 눈빛이 위험스레 빛났다. 서동연이 공격 방향을 급작스럽게 틀었다.

아무리 한수호라도 마력을 끌어다 사용할 마석이 없으면 일반인보다 조금 더 몸이 튼튼한 사람일 뿐이었다.

퍼억, 퍽, 퍽. 한수호가 끼고 있는 반지에 매서운 공격이 날아들었다. 한수호가 서동연의 공격을 피해 손을 틀어 봐도 따라붙는 움직임은 집요했다.

일반적인 공격에 마석이 부서질 리는 없다. 하지만 서동연이 내지르는 발길 하나하나에는 어마어마한 힘이 담겨 있었다.

타격이 이어지자 검은색 링에서 균열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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