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폭탄부터 설치하자. 한 번에 뚫고 들어가는 게 낫겠어.”
진표성이 육안에 들어오는 건물을 보며 챙겨 온 폭탄들을 확인했다. 시야에 확보된 좀비들의 수만 백에 가까웠다.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 떼,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는 하프 좀비들까지. 적들을 섬멸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납치된 이현과 김솔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소란을 일으키되 다양한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탄을 터트려 적들의 이목을 최대한 분산시켜야 했다. 김종현도 서동연이 잡아간 인질을 어디에다 두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프 좀비의 본거지만 알 뿐이었다.
하지만 효과적으로 인질을 가둬 놓을 수 있는 장소는 한정적이었다. 한수호는 세 군데를 추렸다. 해당 건물의 도면이 협회 내의 데이터베이스에 있어 다행이었다.
“빨간 점으로 표시된 부분에 폭탄 설치하고 30분 뒤에 터트려. 그 안에 나는 인질들을 구출할 테니까.”
진표성이 한수호가 보여 주는 도면을 머릿속으로 외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들에게 들키지 않고 움직이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몸조심해라, 팀장.”
다른 팀원들과 헤어질 때 무사를 비는 인사를 하는 건 낯간지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에게 물든 모양이었다.
진표성이 소름 이는 팔을 문지르며 첫 번째 폭탄을 설치할 장소로 향했다. 한수호도 진표성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있는 구조물들을 엄폐물 삼아 움직였다.
“그르르…….”
“캬학! 캬아악!”
좀비들은 먹잇감이 보이지 않아도 끊임없이 으르렁거렸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팔을 허우적거리는 일반 좀비도 있었다.
좀비들의 하울링 소리가 음울하게 퍼지는 곳에서 들리는 것이라고는 하프 좀비들의 목소리뿐이었다.
“아, 지겨워. 쳐들어오는 놈들도 없는데 언제까지 돌아가면서 보초 서야 하는 거야?”
“그거야 웃대가리들이 알아서 정하는 거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냐?”
낄낄거리며 웃는 목소리에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커졌다.
“닥쳐. 좀비 소리만 듣고 있으려니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
“그렇게 멋대로 죽이면 안 된다고. 그나마 겉모습 멀쩡한 애들로 모아 놓은 건데.”
쿠웅, 소리와 함께 묵직한 덩어리 하나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유독 크게 괴성을 지르던 일반 좀비였다. 방금 전까지 하프 좀비가 손안에 들고 있던 돌멩이가 일반 좀비의 정수리에 박혔다.
“내장 질질 흘리면서 다니는 놈들은 보기만 해도 역겹단 말이야.”
하프 좀비 한 명이 툴툴거렸다. 어렵게 모아 놓은 좀비 컬렉션을 함부로 대하는 동료에 대한 원망이었다.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축복받은 거지.”
두 하프 좀비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그들의 지척을 지나가는 한수호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말소리가 줄어들고 그 사이를 젖은 소리가 채웠다. 무시하고 지나가도 될 터인데, 하필 가장 은밀하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두 놈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 아직 임무 중이야. 그만해.”
“다들 이러고 놀잖아.”
그리고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적이 될 놈들이었다. 지금처럼 적당한 때 해치우는 게 나으리라.
“야, 잠깐……! 뭔가 이상한데…….”
“싫으면 싫다고 말하면 될 걸, 말을 왜 돌리는…….”
짜증을 부리던 목소리 하나가 사라졌다. 그의 등 뒤에서 피어오른 그림자가 머리통을 꿰뚫은 직후였다.
“침입……!”
침입자가 있다고 말하려던 놈의 머리통도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한수호가 워커 바닥으로 머리통을 터트렸다.
“캬하악―!”
순간 이변을 감지한 일부 좀비들이 한수호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들은 다 썩어 가는 코로 방금 전까지 살아 있던 이들의 피 냄새만 맡을 수 있었다.
* * *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개.”
허벅지 근육이 부풀어 오르도록 뛰어다닌 결과 진표성은 마지막 폭탄 하나를 남겨 두고 다 설치했다. 한수호가 30분의 제한을 둔 후 맞춰 두었던 시계 위에 떠오른 시간은 1분 30초였다.
지금도 1초씩 줄어드는 시계를 보며 땅을 박찼다. 폭탄을 사용하는 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좀비들이 소리에 민감한 탓에 임무 중에도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였다.
“폭탄을 한 번에 수십 개나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단 말이지.”
한수호와 임태한이 제대로 말해 준 건 아니었지만, 협회 쪽에 이변이 생겼다. 친화력이 좋은 덕분에 진표성은 알파 1팀 말고도 친분이 있는 이들이 협회 내에 많았다.
마음 같아서는 협회 쪽으로 향하는 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현을 조금이라도 빨리 구하고 싶기도 했다.
“가이드, 울고 있는 거 아닌지 몰라. 샌님이 이런 상황을 겪어 본 건 처음일 텐데.”
처음에는 신기했다. 햇빛 하나 보지 않은 듯한 새하얀 피부에 총명한 눈동자는 평소에 거의 접하기 힘든 타입이었다.
연구원들한테 악감정까지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현장에 직접 나가지 않고 안전한 장소에서 연구만 한다. 그런데도 협회에서의 대우는 에스퍼보다 더 나은 걸 볼 때마다 배알이 꼴렸을 뿐.
한수호와 묘한 기류가 오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 자신을 대할 때와 한수호를 대할 때의 표정이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니지만 안경 속 감춰진 눈동자가 생각보다도 맑고 깊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현을 힐끔거릴 때가 많아졌다.
이현의 말간 얼굴이 떠오르자 손바닥에 식은땀이 뱄다. 진표성이 손바닥을 바지 위에 문지르고 신중하게 폭탄을 활성화하는 선들을 만질 때였다.
“이제 이것만 설치하면…….”
“캬르르……!”
마지막 폭탄을 설치하던 진표성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성인 주먹을 두 개 합친 크기의 좀비 몬스터와 눈이 마주쳤다.
거대한 들쥐를 닮은 몬스터는 코를 씰룩거리며 진표성의 손이 놓인 방향으로 빠르게 기어 왔다.
“이 몬스터…….”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 몬스터가 육편이 되어 바닥에 짓눌렸다. 진표성이 살점과 핏물이 묻은 주먹을 털어 냈다.
처음 보는 좀비 몬스터였다. 다만 스쳐 가듯이 이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봤던 기억이 나 미간이 찌푸려졌다.
“크르르!”
“캬르―!”
“크륵, 크르르…….”
방금 전에 진표성이 육편으로 만든 좀비 몬스터와 똑같이 생긴 몬스터가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메웠다. 바닥의 격자무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가 기백을 넘었다.
바글바글한 좀비 몬스터가 움직이자 오염된 강물이 흐르는 듯한 광경이 복도에 펼쳐졌다.
“미친……. 렉스터였어.”
개개의 능력은 강하지 않지만 한 번에 수백 마리가 몰려다녀서 A급으로 분류된 몬스터였다. 몬스터들은 좀비화된 이후로도 원래 지녔던 습성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렉스터는 지나간 자리마다 폐허가 되는 걸로 유명했다. 몬스터일 때도 살아 있는 생명체는 뼈조차 남기지 않고 씹어 먹었다. 식욕만이 극대화된 지금, 번들거리는 눈동자 수백 쌍이 먹잇감에 달라붙었다.
진표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오싹한 살기에 목덜미마저 서늘했다. 한 마리씩 상대해서는 끝이 없을 테니 몸을 피하는 게 가장 나으리라.
몸을 허공에 띄울 수 있다면 더욱 피하기 용이할 테지만 현재 진표성은 홀로 고립된 상황이었다.
“30분 되려면 이제 40초.”
설치를 끝내지 못한 폭탄을 품에 안고 진표성이 복도의 끝 쪽으로 향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1초씩 줄어들었다.
렉스터 수백 마리가 내는 음울한 하울링이 진표성의 그림자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마침내 3초가량 남았을 때 진표성은 세팅이 끝난 폭탄을 렉스터 좀비 무리를 향해 집어 던졌다. 동시에 다른 폭탄들과 연결된 버튼도 눌렀다.
콰콰콰콰콰쾅―!
좀비 몬스터들로 바글거리던 복도가 초토화됐다. 연쇄적으로 바닥이 무너져 내리면서 주홍빛 불꽃이 터져 나갔다.
진표성은 그대로 창문을 깨고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등 뒤로 좀비 몬스터들을 집어삼킨 화염이 아가리를 벌리며 진표성의 등을 할퀴고 지나갔다.
“크윽…….”
몸을 변화시킨 터라 상처는 크지 않았지만 화마가 등에 욱신거리는 통증을 남겼다.
“씨발, 이거 뭐야?”
“침입자다!”
“다들 이쪽으로 모여!”
그러나 몸을 추스를 여유 따위는 없었다. 원래는 마지막 폭탄을 설치한 후에 조용히 빠져나가 다른 곳에서 폭탄을 터트릴 생각이었다.
이변이 생겨 폭탄을 터트린 직후가 돼서야 몸을 피할 수 있었다. 폭탄을 렉스터 사이에 두고 몸을 피했다가는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터질 게 분명했기에.
렉스터는 이빨에 닿는 모든 것들을 물어뜯는 몬스터였다. 게다가 좀비가 되면서 그 습성이 더 강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진표성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하프 좀비들을 마주하며 눈을 빛냈다. 이 정도로 정체를 들킨 이상 전면으로 부딪치는 게 나았다.
게다가 생각보다 진표성을 향해 달려드는 하프 좀비의 수는 많지 않았다.
렉스터들을 날려 버린 폭탄을 비롯해 진표성이 30분 동안 설치한 폭탄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덕분이었다.
“커윽…….”
은빛 털이 돋아난 손이 휘둘러졌다. 뿌연 먼지 사이로 햇빛이 반사된 발톱이 드러날 때마다 진표성의 주변에 사체가 쌓여 갔다.
진표성이 정신없이 좀비들을 고깃덩어리로 만들 때였다.
건물 전체가 거세게 흔들렸다. 하프 좀비와 같이 다가오던 좀비들 일부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무너지는 바닥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썩은 피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와 불꽃이 어우러진 광경은 무너진 세상, 그 자체였다.
진표성이 코를 손으로 틀어막고 배수진을 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몸이 수인화되면 후각이 사람일 때보다 훨씬 예민해졌다.
한마디로 형언하기 힘든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자 구토감이 치밀어 올랐다. 온갖 좀비들이 동시에 타들어 가며 나는 냄새는 ‘역하다’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