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으읍, 으으읍……!”
김종현이 몸을 옥죄고 있는 끈을 풀기 위해 몸부림쳤다.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끈이었다.
S급 에스퍼가 아닌 이상 자력으로 끊는 건 불가능했다. 김종현은 정말로 한수호가 이 자리에서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 있다는 걸 절감하고 말았다.
자신이 한수호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기에 분명 살려 둘 거라고 생각했다. 이토록 지독한 고문을 할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알파 1팀은 협회 내에서의 자자한 명성과 달리 사람들이 물렀다. 출세를 욕심내는 대신 묵묵히 할 일만 하는 놈들이었다. 팀장부터가 팀원들을 아낄 뿐, 별다른 출세욕은 없어 보였다.
황두학을 공격했지만 제 목숨은 본부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붙어 있을 거라고 예상했기에 벌인 일이었다.
자살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김종현은 지금보다 나은 미래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싶었다. 그 때문에 벌인 일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살다가는 언젠가 임무 도중에 허무하게 죽을 것만 같아서. A급 에스퍼여도 S급 에스퍼들의 밑에서 굴러야 했다. 그들의 그늘에서 언제까지고 있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살점이 얇게 저며지는 고통이 궁금했는데. 나 대신 느껴 주면 좋겠어.”
잔인한 말을 하면서도 한수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절박하게 고개를 젓는 김종현의 주변으로 검은색에 가까운 회색빛 표창들이 떠올랐다. 실핏줄이 터진 눈가에 핏방울이 맺혔다.
“으으! 으으으……!”
이낙균이 더는 보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평소에 알던 팀장이 아닌 것 같았다.
이낙균뿐만이 아니었다. 임태한도, 김진수도 안색이 창백했다. 퍼져 나가는 신선한 피 냄새를 맡고 주변에 있던 좀비 무리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막아.”
“네, 팀장님.”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황두학을 보호하고 있는 이나리와 일부러 살려 둔 하프 좀비 하나를 데리고 사라진 진표성을 제외한 알파 1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김종현을 두둔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수호가 차가운 얼굴로 그를 고문하는 장면을 자세하게 보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다.
* * *
“팀장…… 미안. 결국 입 못 열게 했다. 숨통도 끊어졌고.”
진표성이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한수호에게 다가왔다. 그의 뒤편으로 미동도 없이 축 늘어진 몸뚱이 하나가 보였다.
“상관없어. 본거지로 추측되는 곳에 대한 정보는 얻었으니까.”
“이거 김종현이야? 불쌍한 마음이 들 줄은 몰랐는데.”
김종현은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형체로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 눌어붙어 있는 살덩이는 사람이 아니라 차라리 좀비들에게 물어뜯긴 후 남은 잔해에 가까웠다.
“정비하고 바로 움직일 거니까 준비해.”
“그래. 팀장도 숨 좀 돌려. 지금 지나치게 흥분했어.”
한수호는 진표성의 말을 듣고 나서야 흉곽이 크게 부풀도록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머릿속에서 적신호가 울리고 있었다.
이현의 안위를 확인할 수 없게 되자 조급해졌다. 한수호가 통신 아티팩트를 꺼내 본부에 연락을 넣었다.
그러나 통신은 먹통이었다. 어렴풋이 들었던 의심이 확신이 되어 가는 순간이었다.
“팀장님, 아무래도 협회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임태한도 한수호가 김종현을 고문할 동안 계속해서 본부에 연락을 넣었다. 한수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프 좀비 세력이 협회에 침투한 모양이야.”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졌네요.”
사실 한수호와 임태한은 최근 들어 협회 내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챘다. 이번 임무만 해도 여러모로 잡음이 많았다.
……팀 내에서 변절자가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상한 건 김이현 가이드입니다. 가이드보다도 연구원으로서의 가치가 높은 사람인데 저희와 함께 임무를 보낸 게 아무래도 수상해요.”
“……서동연 짓일 거야.”
서동연이 이현에게 보이는 집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간파해야 했다. 이현 한 명만을 얻기 위해 서동연이 이런 짓을 벌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끼워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현을 구하러 가기보다는 협회 쪽으로 되돌아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한수호에게 이현은 반드시 구해야 할 대상이었다.
“나랑 진표성은 김이현 가이드 쪽으로 움직일게. 부팀장이 나머지 팀원들 데리고 협회로 복귀해.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내가 알려 줬던 곳들 중 하나로 피신하고.”
“네. 김종현은 어떻게 할까요?”
김종현은 현재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이 숨이 연약했다.
“……목숨은 살려 둬.”
“알겠습니다.”
동고동락했던 사이다. 임태한이 한수호의 명령에 옅게나마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죽이라고 해도 따를 테지만 목숨은 붙여 놓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행히 황두학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만약 황두학의 숨이 끊어졌다면 임태한은 제가 먼저 나서서 김종현의 목줄을 끊어 놨을 거다.
“팀장님…… 몸조심하십시오.”
임태한이 한수호의 안부를 기원했다. 한수호가 임태한의 어깨를 꽉 쥐었다. 협회에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프 좀비의 본거지로 향하는 한수호도, 협회로 복귀하는 임태한도 위험한 건 매한가지였다.
“팀원들 잘 부탁해.”
“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임태한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었다. 한수호가 진표성에게 다가가자 진표성이 보란 듯이 팔을 긁어 댔다.
“두 사람, 청춘 영화 찍어? 나 방금 소름 돋았어.”
“시끄럽고 출발할 준비나 해.”
“김종현, 다녀와서 보자. 그때까지 죽지 말고 잘 버티고 있어라.”
진표성이 마지막으로 김종현의 볼을 툭툭 쳤다. 정신이 있는 상태였다면 눈을 흘겼겠지만 김종현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깨어 있는 상태라고 해도 다를 건 없었다. 눈꺼풀이 녹아내려 눌어붙은 상태였으니까.
“팀장님, 가이드 구해 와요, 꼭.”
“저희 쪽은 걱정하지 마세요.”
“맞아요. 부팀장님도 함께 계시니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황두학을 제외한 알파 1팀의 팀원들이 한수호에게 한마디씩 건넸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한동안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다들 단체로 나 닭살 돋게 만들려고 작정했어?”
애틋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진표성만이 미간을 사납게 찌푸렸다.
“나대다가 다치지 말고 몸조심해.”
“너까지 왜 이래.”
이나리가 한숨을 쉬면서 어깨로 진표성의 팔을 툭 쳤다. 황두학을 업은 상태라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황두학이나 잘 챙겨. 정신 차리면 연락하고.”
진표성도 황두학의 정수리를 스치듯이 쓰다듬었다. 다른 이들과 떨어지는 건 아쉽지 않았다. 다만 황두학이 정신을 차리는 걸 보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이라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수호와 진표성이 먼저 길을 떠났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이현을 납치하기 위해 서동연은 아끼는 부하까지 버리고 갔다.
이현을 바로 해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원체 예측되지 않을 정도로 미친놈이었다.
더더군다나 이현뿐만 아니라 김솔까지 납치했다. 서동연의 성정상 어린아이에게 연민을 느낄 가능성은 극도로 낮았다.
“아무리 우리가 S급이라지만 둘이서 서동연을 포함한 하프 좀비 무리를 상대하는 건 무리 아닐까 싶은데.”
두 사람은 현재 최대한의 속력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머리 위에서 나는 소리에 거리를 배회하던 좀비들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두 사람의 존재를 인식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괴성을 지르며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움직여도 그들의 손끝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가는 길에 무기고 하나 있어.”
“그런 거는 또 언제 준비해 놓은 거야? 이쪽은 좀비들한테 먹힌 지 오래잖아.”
“내가 준비한 게 아니라 누군가 준비해 놓은 걸 찾아낸 것뿐이야.”
“그런 곳이 한두 개가 아닌 걸로 아는데.”
한수호는 겉으로만 보면 상부에서 시키는 일만 묵묵히 하는 충견 같았다. 그러나 진표성은 한수호가 수틀리면 언제든 주인의 목을 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한수호를 믿고 따르는 거였다. 지나치게 우직하기만 한 자는 이런 시대에서 오래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종현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내지 않은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폭탄 위주로 챙겨.”
“안 그래도 그러고 있어. 생각보다 괜찮은 게 많은데?”
한수호가 미리 알아 둔 무기고에 들러 무기들을 정신없이 챙겼다. 가득 차 있는 물품들의 종류는 다양했다. 무기뿐만 아니라 전투식량도 상당량 구비되어 있었다.
협회의 로고가 그려진 폭탄부터 중국과 일본, 미국 제품까지 있었다.
“여기 원래 소유주 누구였어? 이 정도면 거의 지부 수준 보유량이잖아.”
“……전(前) 팀장님.”
“아…….”
서울 지부 알파 1팀의 전(前) 팀장은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각성한 S급 에스퍼이자 진표성이 알기로는 한수호의 대부다.
현재는 모종의 사건 이후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부팀장이었던 한수호는 그가 사라진 후 알파 1팀의 팀장이 되었다.
진표성도 그를 몇 번 본 적이 있기에 한수호와 그가 얼마나 각별한 사이였는지 알았다.
“그러면 설명이 되지.”
항상 최악의 미래를 가정하던 사람이었다.
‘언제 세상은 다시 혼란에 빠질지 몰라. 그러니 너도 정신 차리고 긴장을 늦추지 마.’
한량처럼 사는 진표성을 볼 때마다 걱정 어린 잔소리를 늘어놓던 사람이기도 했다. 수더분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진표성이 착잡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최우선으로 해야 할 건?”
“김이현 가이드의 안전.”
“꼬맹이도 같이 구해야지. 이번에 구해 주면 형이라고 불러 주려나.”
어쩌면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면서도 두 사람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목표한 바를 이루어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만이 흔들림 없는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