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일대에 울려 퍼져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이현이 다급하게 아이를 어르면서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렸다.
“울면 안 돼. 응? 아저씨 무서운 사람 아니야. 우리 아까 차에서 만났지? 기억나?”
“우으…….”
울 준비를 하던 아이가 완벽한 팔자처럼 늘어진 이현의 눈썹에 입술만 삐죽거렸다.
“우리 숫자 백까지 같이 셀까? 조금만 참으면 금방 집 안에 들어가서 몸도 깨끗하게 씻고, 맛있는 음식도 잔뜩 먹을 수 있어.”
아이를 달래 본 경험은 없었다. 그러나 이현은 필사적으로 웃긴 표정을 지으면서도 목소리는 다정하게 들리도록 최선을 다했다.
“캬하악―!”
“흐, 흐아아아앙―!”
간신히 멈춘 듯했던 울음은 이현과 아이의 앞으로 목이 반쯤 잘린 일반 좀비가 툭 떨어지면서 우렁차게 터져 나오고 말았다.
아이는 그간 울지 못했던 설움을 토해 내듯이 작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도록 울었다. 본능적으로 이제는 자신을 지켜 줄 존재가 있다는 걸 아는 듯했다.
“아, 이런.”
김종현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눈매를 일그러뜨렸다.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손끝에 미약한 짜증이 묻어났다.
와중에도 일반 좀비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물어뜯기 위해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이현과 김솔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다웠다. 회색빛 눈동자는 식욕으로만 불타올랐다.
살점이 반쯤 문드러져 허연 뼈가 드러난 손가락이 이현의 팔 끝에 닿기 직전 좀비의 그림자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덜렁거리던 좀비의 머리통이 몸통에서 완전히 분리됐다.
“아이 입 좀 막아 봐요. 시끄러워 죽겠네.”
김종현의 말에 이현이 아이의 얼굴을 제 품에 묻었다. 아이는 너무 놀란 나머지 이제는 울음소리를 크게 내지도 못하고 끄윽, 끅, 숨넘어가는 소리만 냈다.
“괜찮습니까?”
“……네.”
이현이 곁으로 다가와 안부를 묻는 한수호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현의 시선이 한수호를 지나쳐 갔다. 경직된 시선은 어느새 남아 있는 좀비들을 해치우는 김종현의 등 뒤에 닿았다.
문득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알파 1팀은 대체적으로 이현에게 친절했다. 그러나 개중에서도 이현의 존재를 반기지 않는 사람은 있었다. 김종현이 그랬다.
하지만 이현은 어차피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일찌감치 깨달은 상태였다.
김종현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를 가이딩할 때에만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는 했다.
이상한 감정이 드는 건 방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한겨울 바람처럼 시리도록 차가웠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시절에는 약자를 먼저 보호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몬스터가 등장하고,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인류는 매체로만 접하던 생존 상황을 직접 겪어야만 했다.
약자를 무조건적으로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 갈 수밖에 없는 지옥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막상 눈앞에 보호해야 할 존재가 있는데 냉혈한 감정을 내보이는 건 그 사람의 본질적인 성향 탓일 터.
“이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요.”
한수호는 충격을 받았다 생각한 건지 유리문 사이로 틈을 만들어 이현을 안쪽으로 보냈다.
근처로 다가온 일반 좀비 하나를 그림자 단검으로 벽에 박아 고정시켰다. 좀비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이현의 곁에 섰다.
전투를 하면서 이현의 곁에 만들어 놓은 병사도 움직여야 하기에 정신이 분산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현이 재차 위험에 처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감사합니다.”
“조금만 버텨요.”
한수호가 감사인사를 건네는 이현의 정수리를 스치듯이 쓰다듬고 좀비들이 가장 우글거리는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누군지도 모를 이의 피로 불투명하게 변한 유리문 앞에서 이현은 덜덜 떨리는 아이의 등을 쉬지 않고 부드럽게 다독였다.
품에 안긴 아이와 김종현을 번갈아 응시하는 눈동자가 그답지 않게 어두워졌다.
* * *
“솔아, 아저씨 이름은 김이현이야.”
“…….”
아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이현을 조심스럽게 담았다. 돌이 던져진 호수의 표면처럼 눈동자 위로 동심원이 퍼져 나갔다.
이현은 진표성이 정리한 집 안에 들어선 이후 다른 이들의 배려로 아이와 함께 몸을 먼저 씻을 수 있었다. 아이가 들고 있던 토끼 인형도 목욕재계를 했다.
목걸이에 묻은 핏방울이 지워지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얼굴이 아이답지 않게 슬퍼보였다. 아이는 양쪽 눈두덩이에 혹을 달고 얌전히 이현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수(水) 속성 능력자인 황두학이 욕조 안에 가득 받아 준 물을 화(火) 속성 능력자 이낙균이 따뜻한 온도로 데워 줬다.
커다란 욕조 안에 있던 물을 다 사용하고 나서야 아이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꼬질꼬질한 모습으로도 커다란 눈동자가 인상적인 아이였다.
하얀 피부와 대비되는 새까만 눈망울이 언뜻 보면 이현과 혈연관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의 외모는 썩 닮았다.
다행히 집 안에는 아이가 입을 만한 옷이 있었다. 아이는 자신과 함께 깨끗해진 토끼 인형을 품 안에 꼭 끌어안고 손가락만 꼼질거렸다.
“안녕? 삼촌은 진표성이야. 나는 아저씨라고 불릴 만한 나이는 아니니까 삼촌이라고 불러줘.”
현재 이현을 비롯한 이들은 커다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상태였다. 진표성이 찾아낸 집은 좀비 사태가 일어났을 때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약간의 먼지가 내려앉아 있다는 걸 제외하면 멀쩡했다.
심지어 저장된 마력으로 움직이는 인덕션과 냉장고 같은 기기도 여전히 사용이 가능했다.
“야, 이 새끼야. 소금을 넣어야지 간장을 넣으면 어떡해!”
“헉, 간장 넣으면 안 돼요?”
“그러면 맛이 밍밍해진다고! 너 요리 할 수 있다며?”
“라면은 잘 끓이는데…….”
“라면이 요리냐?”
부엌에서는 이나리와 김진수가 시끌벅적한 소음을 내며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들 몸을 답답하게 죄고 있던 보호복을 벗고 샤워도 개운하게 한 상태라 표정이 편안했다.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이현의 얼굴만 심각했다. 아이는 울음소리를 냈던 이후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분명 차 안에서 이현을 만났을 때 살려 달라고 목소리를 냈던 아이다. 말을 할 수 있는데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모습이 잔뜩 겁에 질린 새끼 고양이를 연상케 했다.
“이름이 어려우면 진 삼촌이라고 불러. 그것도 힘들면…… 그냥 진이라고 불러도 돼!”
진표성은 의외로 아이를 좋아했다. 이현을 제외한 이들 중 가장 적극적으로 아이의 곁에 앉아 아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만 봐도 그랬다.
“……싫어요.”
“솔아, 방금 말한 거야?”
이현이 다정하게 말을 걸었을 때는 손가락만 매만지던 아이가 진표성이 귀찮게 하자 슬그머니 이현에게 달라붙었다.
손을 뻗어 오는 아이에게 몸을 굽히며 이현이 아이를 안아 들었다. 싫다는 아이의 말에 충격에 빠진 진표성이 입을 반쯤 벌린 채 눈만 끔벅거렸다.
아이는 진표성의 애절한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이현만 올려다봤다.
“배고파요…….”
아이는 한번 말문이 열리자 곧잘 말을 했다. 배고프다는 아이의 말에 이현이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여섯 살 아이를 품에 안았는데도 무게감이 가벼워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다.
“아니, 왜 김이현 가이드만 좋아하는……. 나 애들한테 인기 많은 스타일인데?”
뒤쪽에서 종알대는 진표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까운 마음은 들었지만 그의 기분을 풀어 주는 것보다 아이의 배를 채우는 게 더욱 중요했다. 이현의 걸음이 소란스러운 부엌으로 이어졌다.
“혹시 지금 솔이가 먹을 만한 것 좀 있을까요?”
“아이고, 우리 솔이. 많이 배고프구나.”
황두학을 쥐 잡듯이 잡던 이나리가 순식간에 표정을 바꿨다. 이현에게 안겨 있는 김솔에게 다가와 오른손을 작게 흔드는 얼굴 위로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
살가운 목소리에 김솔이 이현의 품에 묻고 있던 고개를 떼어 내고 이나리를 울먹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네에……. 많이 배고파요…….”
아이는 이나리의 말에도 곧잘 대답을 했다.
“그러면 이거라도 먹고 있을래?”
하지만 이어 황두학이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소시지를 건네자 아이는 다시 이현의 품으로 홱 고개를 묻어 버렸다.
“……저는 무섭나 봐요.”
황두학의 입꼬리가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이현은 아이가 성인 여성은 괜찮아해도 남성은 무서워한다는 걸 파악했다.
안겨 있는 작은 몸이 의식하지 않으면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 또한 성인 남성인데 무서워하지 않는 게 의아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그냥 주면 안 돼. 뜨거운 물에 한번 삶아 줘야겠다.”
이나리가 황두학이 들고 있는 비엔나소시지를 가져가 끓는 물에 데쳤다. 아이가 먹기 좋게 젓가락 하나에 꼬치처럼 끼워서 작은 등을 가볍게 두들겼다.
“솔아, 누나가 소시지로 꼬치 만들었어. 이거 먹고 있자. 맛있는 밥도 금방 차려 줄게.”
이나리의 목소리에 김솔이 고개만 돌려 손에 들린 소시지를 힐끔거렸다. 단풍잎 같은 손을 뻗어 젓가락을 쥐는 손길이 야무졌다.
“따로 챙겨 주셔서 감사해요.”
“뭘요. 이 난리 통에도 살아남은 솔이가 대견해서 그래요.”
이현이 소시지에 시선이 팔린 김솔 대신 고맙다고 말하자 이나리가 오른손을 휘적거리며 웃어 보였다. 이현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하고는 거실 소파로 향했다.
“아저씨가 호호 불어 줄까?”
혹시나 뜨거울까 봐 이현이 소시지에 입바람을 불어 식혀 주려고 했다. 그러나 동그란 눈은 이미 소시지에 달라붙어 있었다. 벌어진 아이의 입가를 따라 타액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이현이 슬쩍 손가락을 뻗어 소시지의 온도를 가늠해봤다. 다행히 아이가 먹어도 될 정도로 식어 있었다.
“탈 날 수도 있으니까 하나씩 꼭꼭 씹어 먹자. 할 수 있지?”
자그마한 머리통이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이현은 소시지를 하나씩 햄스터처럼 먹어 치우는 김솔의 머리카락을 다정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다들 오셔서 식사하세요!”
소시지가 다섯 개에서 하나로 줄었을 무렵 부엌에서 이나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파 1팀은 본부에 오늘 벌어진 일을 보고하는 한수호와 요리를 하는 두 명을 제외하고 각자 떨어져 앉아 쉬는 중이었다. 개성 강한 발걸음 소리가 부엌으로 모여들었다.
부엌 안에는 열 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직사각형의 식탁이 놓여 있었다. 이현도 소파에서 일어나 식탁의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거는 솔이 거야. 간을 좀 약하게 했어요. 고춧가루 같은 건 다 뺐고요.”
“감사합니다.”
이나리가 김솔의 앞에 자그마한 주먹밥과 달걀말이가 올려져 있는 접시를 놓았다. 다 먹은 소시지에 입맛만 다시고 있던 김솔이 손을 뻗었다.
“아저씨가 포크에 하나씩 찍어서 줄게.”
“네에.”
다행히 김솔은 이현의 말을 잘 따라 줬다. 이현은 제 음식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김솔의 식사만 바쁘게 챙겼다.
“김이현 가이드도 식사 들어요. 오늘 하루 심력 소모가 컸을 텐데.”
옆자리에 앉아 있는 임태한이 손도 대지 않은 이현의 밥그릇 위로 매콤한 향이 올라오는 제육볶음을 올렸다.
“감사해요.”
그제야 허기진 감각이 배 속을 강하게 두들겼다. 이현이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식사를 하며 어느새 두 자리 건너에 앉아 있는 한수호를 힐끗 쳐다봤다.
그에게 물어볼 말이 있었지만 식사 중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기회를 노려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