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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12화 (12/133)

012.

이현이 이상함을 눈치챈 건 옷자락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이 들고서부터였다. 차 안에 있어 한 겹의 막에 감싸인 듯이 들려오던 소음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동시에 이현은 제 주변을 무서울 정도로 잠식해 오는 감각을 느꼈다. 차 안의 온도가 내려간 듯한 오한이 등골을 타고 스쳐 지나갔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손끝이 발목에 채운 무기로 향했다. 이제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한기가 이현의 허리춤을 기어가는 뱀처럼 배회했다. 왜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차체 안에서 지독한 피비린내와 형언하기 힘든 악취가 났다.

땀방울이 창백하게 질린 뺨을 타고 내려가 턱 아래 고였을 때다. 이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흐, 으…….”

들려오는 소리가 이상했다. 만약 좀비라면 조금 더 원초적인 소리가 들려올 텐데.

이현이 고개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사, 살려 주세요…….”

떨리는 시야에 이현이 앉아 있는 뒷좌석의 시트 중간 사이를 비집고 나온 손이 보였다. 말라붙은 피와 알 수 없는 오물로 덮여 있는 손은 성인 남성의 손의 반은 될까 싶을 정도로 자그마했다.

“……아이?”

차 안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망가진 건지 트렁크와 뒷좌석 사이에 틈이 있었다. 자그마한 틈새로 마주한 눈동자에 이현이 이를 악물었다.

시트 윗부분으로 넘어가려고 해도 차체의 윗부분이 찌그러진 상태였다. 이현도 몸을 잔뜩 옹송그린 채 앉아 있었다. 차의 천장과 원래는 시트의 목 받침대가 있었을 부분이 틈 없이 맞붙어 있어서였다.

“잠깐만 기다려!”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지나온 자리마다 시체들과 되살아난 시신들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언뜻 보이는 아이의 눈동자에는 생기가 희미했다. 그도 그럴 게 한정된 공간에서 며칠인지 모를 시간 동안 버틴 상태일 테니까.

성인도 버티기 힘든 시간을 초등학교에는 갓 입학했을까 싶은 아이가 버틴 거였다.

“으윽…….”

이현이 틈새로 손을 집어넣어서 양쪽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차오르는 긴장감 때문에 턱 끝에 맺혔던 땀방울이 이번에는 발개진 얼굴을 따라 얼굴 전체로 번져 갔다.

“조금만…… 참아…….”

그러나 이현의 악력으로는 틈을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벌리는 게 한계였다. 어둠 아래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확인하는 건 가능했지만 아이를 틈으로 빼내는 건 무리였다.

팔이 바들바들 떨릴 만큼 힘을 줘 봐도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현이 팔에서 힘을 풀고 차창에 다가갔다.

“그으어…….”

“팀장! 그냥 돌파하는 게 낫겠어!”

바깥 상황은 이현이 차 안에 타기 전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좀비들이 죽어 가며 내지른 비명 소리를 듣고 일대의 좀비들이 꾸역꾸역 몰려온 결과였다.

진표성이 날카로운 손톱으로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좀비 몬스터와 일반 좀비의 머리통을 한 번에 양단한 후 한수호를 불렀다.

한수호가 주변을 한차례 훑어본 후 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팀원들이 몰려들었다.

가양대교로 향하는 방향이었다. 한수호는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다음에야 이현이 숨어 있는 차로 다가왔다.

찰칵, 문이 열리기 무섭게 이현이 한수호의 팔을 붙들었다.

“뒤쪽에 아이가 있어요!”

“……생존자가 있다는 말입니까?”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흩날리도록 고개를 끄덕인 이현이 곧장 트렁크로 향했다.

검은색 차의 뒷면은 거대한 둔기로 후려쳐진 듯 군데군데가 움푹 파여 있었다.

한수호도 주변에 다가오는 좀비들을 그림자를 움직여 해치우며 이현의 곁에 따라붙었다.

“이것, 좀…… 도와주세요……!”

손을 아래로 뻗어 트렁크 열림 버튼을 눌러 봤지만 차는 요지부동이었다. 이현이 끙끙거리며 들어 올릴 때는 꼼짝도 안 하던 차였다. 한수호가 가볍게 쥐고 위로 들어 올린 순간 문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드러난 상황에 이현이 침음을 흘렸다. 두꺼운 침낭 아래로 드러난 팔다리가 지나치게 가늘었다.

차 바닥에는 아이가 그동안 치열하게 버틴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농도가 다른 오물들과 열량 높은 과자들이 껍데기만 남은 채 뒹굴었다. 가장자리에 굴러다니는 빈 음료수병도 몇 개 보였다.

“어떻게…….”

성인도 무서웠을 것이다. 이현이 떨리는 손을 뻗어 아이의 모습을 가리고 있던 침낭을 치워 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이의 눈은 어느새 감겨 있었다. 꼬질꼬질한 땟국물이 묻은 아이의 나이는 많아 봐야 예닐곱 살로 보였다.

아이 대신 두 사람을 맞이한 건 아이가 품에 꽉 끌어안고 있는 통통한 토끼 인형이었다. 반질반질한 새까만 눈동자가 두 사람을 멀거니 응시했다.

“일단은 여기를 벗어나는 게 우선입니다.”

한수호가 아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아이에게서 코를 찌를 듯한 악취가 나는데도 그는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웬 아이?”

“설마 생존자가 있었던 거야?”

한수호의 품에 안긴 아이를 보는 알파 1팀 팀원들의 얼굴에도 경악이 서렸다. 좀비들의 하울링과 괴성이 넘쳐나는 곳에서 허리께도 오지 않는 자그마한 아이의 등장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김이현 가이드는 저랑 같이 이동하시죠.”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현에게 다가온 사람은 임태한이었다. 이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임태한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가는 허리를 팔로 단단하게 감싸 안은 임태한이 속력을 높였다. 이미 팀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한수호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선두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눈 감고 있어요. 속도 높일 거니까.”

온기를 품은 손바닥이 이현의 얼굴 위로 그늘을 드리웠다. 이현은 순순히 눈을 감고 임태한의 목을 조금 더 강한 힘으로 껴안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아까 전에 보았던 광경이 하나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현은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비록 양친을 잃었지만 방금 전에 구한 아이처럼 홀로 고립되어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적은 없다.

게다가 머리가 좋아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를 다녔고, 대학원까지 나왔다.

특히 바이러스 연구에 큰 재능을 보였다. 덕분에 연구원치고는 어린 나이지만 수석 연구원 자리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몬스터와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투쟁을 이어 간다. 이현은 편안하게 에스퍼들에게 보호나 받고 있는 처지였다.

감긴 이현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자신도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이딩뿐이었다.

가이드이니 가이딩만 잘하면 할 도리를 다 한 거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도 이현은 알파 1팀에게 짙은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황두학! 조심해야지!”

“죄송해요…….”

“죄송해할 게 아니라 정신을 차려!”

채찍이 무언가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이나리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황두학의 목소리가 시무룩하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이나리는 더욱 차가운 태도로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팀장님, 아무래도 한번 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생존자도 발견했고요.”

체감상으로는 30분은 족히 지난 것 같았다. 봄바람도 S급 에스퍼의 품에 안겨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 보면 하얗던 뺨이 발갛게 얼어붙을 정도로 시리게 느껴졌다.

“전방에 보이는 아파트에서 하룻밤 지내고 움직이도록 하지.”

“네, 팀장님.”

임태한의 제안을 받아들인 한수호가 회색빛의 아파트를 눈짓했다.

아파트 정문을 지난 순간 단지 내를 배회하던 좀비들이 몰려왔다. 좀비 몬스터의 수보다는 일반 좀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음울한 울음소리가 일대에 퍼졌다. 알파 1팀은 묵묵히 다가오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분리하고, 좀비 몬스터의 이마에 박힌 마석을 깨트렸다.

“이왕 아파트에서 자는 거 제일 좋은 데로 갑시다.”

진표성은 아파트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어진 아파트 건물 중 한 개 동을 가리켰다.

“호수 하나 비워.”

“옛썰!”

진표성이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갔다. 진표성의 뒤를 이나리와 이낙균, 김진수가 따라붙었다.

나머지는 좀비들이 내는 소리에 다른 좀비들이 몰려들지 않도록 단지 내에 우글거리는 좀비들의 수를 빠르게 줄여 나갔다.

“여기에 잠시만 있어요.”

“네.”

임태한이 이현을 동 입구에 내려 줬다. 이미 진표성 무리가 들어가면서 주변의 좀비들을 다 해치운 상태였다. 좀비들에게서 흘러나온 피와 시체가 가득했다.

“아이도 잠시만 맡아 줄래요?”

한수호도 이현에게 다가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를 건넸다.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주변의 좀비를 정리하기 위해서인 듯했다.

이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를 건네받았다. 아이의 이목구비를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됐다.

처음에는 살아 있는 아이를, 좀비들이 득시글대는 장소 한복판에서 만났다는 충격에 아이의 외양만 스치듯이 훑어봤다.

“이름이…… 김솔이구나. 나이는 여섯 살이고.”

아까는 보지 못했던 목걸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은빛의 목걸이 위로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핏방울이 점점이 박혀 말라붙어 있었다.

“으으…….”

“아, 안녕?”

굳게 닫혀 있던 아이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안에 감춰져 있던 눈동자가 드러났다. 초점이 희미한 눈으로 이현을 멀뚱히 올려다보던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진 건 순식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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