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이상한 기분이었다. 단순히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감각이 아니었다. 이현이 두꺼운 안경알 뒤로 감춰진 눈동자를 바닥을 향해 굴러 떨어뜨렸다. 흔들리는 시선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다, 다 됐습니다.”
이현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분명 손을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것처럼 경직됐던 어깨에서 힘이 풀렸다.
그것도 잠시. 심장이 손으로 옮겨 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묘한 불안감이 맞닿은 손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고맙습니다. 김이현 가이드.”
푹 숙인 정수리를 바라보는 한수호의 시선도 멈칫 굳었다. 보들보들한 감촉이 남아 있는 손끝을 매만지다 손안으로 움켜쥐는 동작이 느리게 이어졌다.
“둘만 놔두면 희한하게 분위기가 이상해지네.”
잘 준비를 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진표성은 언제든지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풀착장을 한 상태였다.
이현은 여전히 좀비처럼 보이는 진표성의 모습을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진표성과 이나리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좀비 면피로 만든 보호복을 벗었다.
“그어어…….”
이현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진표성의 장난기에 발동이 걸렸다. 좀비 소리를 흉내 내는 진표성 때문에 이현의 목덜미가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붉게 달아올랐다.
“진표성, 사흘에서 일주일로 기간 늘어나고 싶어?”
진표성의 행동을 제재한 건 한수호였다. 엄한 목소리에 진표성이 혀를 쯧 차고는 불침번을 설 위치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내일도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잠이 오지 않더라도 누워서 눈 감고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휴식은 되니까요.”
“……네.”
한수호는 마지막으로 이현이 깔아 놓은 침낭을 살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현의 자리는 교실의 한가운데였다. 양옆으로는 알파 1팀의 막내인 황두학과 부팀장인 임태한이 자리를 잡았다.
“혹시 잠자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저를 깨우세요.”
황두학이 이현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동글동글한 눈에는 이현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다.
“말만으로도 감사해요.”
아직 이현은 알파 1팀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생사를 여러 번 넘나든 팀원들 간에는 보이지 않는 끈끈함이 있었다.
가장 시끄럽게 티격태격하는 진표성과 이나리 사이에도 서로의 등을 믿고 맡길 만한 신뢰가 존재했다.
이현이 가이드라고는 하지만 아직 이들과는 통성명을 하고, 몇 번 인사를 한 게 다였다.
알파 1팀에서 가장 많이 대화를 한 사람이 과묵한 한수호일 정도로 이현은 아직 다른 팀원들과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한 적이 없었다.
사교성이 좋은 편도 아니라 먼저 말을 거는 것조차 이상하게 어려웠다. 게다가 오늘은 꼴사나운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주기까지 했다.
티를 내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어도 이현의 마음은 내내 불편했다. 이현의 상태를 아는 것처럼 살갑게 말을 붙여 오는 황두학이 고마웠다. 일자로 굳어있던 이현의 입매가 한결 편안하게 풀렸다.
“잘 자요. 김이현 가이드.”
“……임태한 에스퍼도요.”
이현이 침낭에 제대로 누운 걸 확인한 임태한도 이현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넸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마주 인사한 이현이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일은 오늘보다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오늘 봤던 장면들을 떠올리려 애썼다. 안 그래도 하얗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려 갔다.
한차례 게워 냈던 속도 울렁거렸지만 이현은 기억을 되새기는 걸 멈추지 않았다. 다른 팀원들도, 심지어 한수호 팀장도 겪었던 일이라고 했다.
그들이 지금은 꿋꿋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이현도 익숙해지면 될 일이었다.
* * *
“우욱―.”
익숙해지는 데 하룻밤은 지나치게 짧았던 걸까. 이현이 치밀어 오르는 토기를 억누르기 위해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캬아악―!”
이현을 향해 달려들던 일반 좀비의 목 위로 검붉은 실선이 그어졌다. 동시에 얼굴 위로 훅 끼쳐 오는 썩은 내에 이현이 이를 악물었다.
“이 안에 들어가 있어.”
평소보다 상체가 위협적일 정도로 부풀어 오른 진표성이 이현의 팔을 잡고 근처에 있는 차 안쪽으로 이끌었다.
진표성은 좀비 면피로 된 보호복을 입은 상태라 완전히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신체 일부만 변화한 상태였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는 불편함에 신경질적으로 좀비들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다가 패닉에 빠진 이현을 발견했다.
그림자처럼 이현의 곁에 붙어 있던 팀장이 어디 갔나 했더니. A급 좀비 몬스터 다섯 마리가 떼거리로 나타났다.
A급 좀비 몬스터 한 마리면 모를까, 다섯 마리는 S급 능력자가 아닌 이상 둘러싸이면 신체 어딘가를 물릴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현이 짐짝 같은 제 처지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를 했다. 가이드 전용 무기가 있기는 하지만 권총 형태였다.
기본적으로 소리가 큰 아티팩트였다. 일반 권총은 소음기를 장착하면 퓩, 퓩 소리가 나는 것에 비해 가이드용 권총은 탕 소리가 났다.
아직까지 마력탄의 소음을 효과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현이 이 무기를 구매했던 것도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전투에 투입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말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던 거였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나는 소리는 일대의 좀비들을 끌어모을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계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소음이 나지 않는 검 같은 무기를 사용하기에는 이현은 여전히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심력을 거의 다 소모해 버려서였다. 검으로 좀비의 목을 가를 용기는 현재 이현에게 잡히지 않는 허상이었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건,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별의별 꼴을 다 보며 단련된 정신과 한수호 밑에서 혹독하게 구른 단기간의 훈련 덕분이었다.
기절하기 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뎠던 그때의 독기가 이현이 정신을 붙드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그마저도 지금은 한계에 다다랐다.
“내 눈 봐 봐.”
말을 걸어도 초점이 잡히지 않는 검은색 눈동자에 진표성이 혀를 찼다. 그동안 놀리고 싶은 마음에 이현에게 짓궂은 소리도 하고, 장난도 걸었다. 하지만 이현으로서는 지금 이렇게 버텨 주는 것만으로도 제 몫을 다하고 있는 거였다.
애초에 가이드를 이런 현장에 데리고 나오는 것부터가 미친 짓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서울과 경기도, 전라남도와 경상북도의 일부, 제주도를 제외하면 좀비들에게 영토를 빼앗긴 상태였다.
38선 이북의 상황은 더 최악이었다. 1년 전부터는 북한 쪽 지도부와 아예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38선을 따라 결계를 쳤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좀비들을 막는 결정으로 북한의 영토를 버렸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나간 후 세계의 질서는 극한의 혼란스러운 상태에 돌입했다.
그나마 대한민국은 좀비 사태에 꽤 대처를 잘하고 있는 편이었다. 영토의 반 이상이 좀비에게 빼앗겼어도 결계 안쪽에서는 사람들이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상태였으니까.
대한민국처럼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를 연구하면서 장기전을 버티고 있는 국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채 스무 곳이 되지 않는다.
“잘못했다고 사과하지 마. 우리는 에스퍼고 너는 가이드야. 에스퍼는 가이드를 지킬 의무가 있어.”
가이드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에스퍼는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폭주해 다 죽고 말았을 거다.
각성하면 뚜렷하게 증상이 나타나는 에스퍼와 달리 가이드는 협회에서 가이딩 마력을 측정받거나, 아니면 우연히 에스퍼의 회복을 돕다가 자각하고는 했다.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신체 능력에 각성하는 수도 에스퍼에 비해 적었다. 에스퍼가 가이드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생존 본능과도 직결된 문제였다.
진표성이 머뭇거리다 이현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부스스하게 보이던 머리카락은 생각보다 감촉이 부드러웠다.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이현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여전히 주변에서는 좀비들의 괴성과 그들이 죽어 가면서 뿜어 대는 지독한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얼굴 가까이 다가온 손목에서는 진표성만의 체취가 느껴졌다. 자유로운 바람이 떠오르는 상쾌한 향이었다.
“……감사해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을게요.”
이현이 숨을 고르며 진표성과 시선을 마주했다. 보호복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그 순간 진표성의 가슴이 전력질주한 사람처럼 빠르게 뛰었다.
“진표성, 너 지금 뭐 해?”
“캬아아―!”
몰려드는 좀비 떼들에게 채찍을 사정없이 휘두르던 이나리가 진표성을 불렀다.
진표성이 멍하게 풀어져 있던 표정을 바로잡았다. 이현이 탄 차 문을 닫고 좀비들이 밀집된 방향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기름칠 덜 된 기계처럼 삐걱거렸다.
“나도 차라리 에스퍼였다면…….”
이현이 피가 흩뿌려진 상태로 박제된 차창 너머 보이는 광경에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성격상 보호만 받고 있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현재 이현과 알파 1팀이 있는 곳은 난지 캠핑장이었다. 은평구에서 마포구까지 이동할 때는 별문제가 없었다.
바이크를 타고 다들 전속력으로 달렸다. 하프 좀비 무리와도 마주치지 않아 시간도 크게 단축했다.
문제는 바이크의 소음을 줄여주던 아티팩트의 효력 시간이 다하고부터였다. 안전하게 가려면 바이크를 버리고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대신 이동 시간이 훨씬 더 늘어났다.
한수호는 몰려드는 좀비들을 감안하고 이동 시간을 줄이는 길을 택했다. 그래도 최대한 소리를 죽여 좀비들을 해치웠는데 난지 캠핑장에 생각보다도 많은 좀비들이 모여 있는 게 문제였다.
텐트 사이에 가려져 있던 좀비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더니 삽시간에 알파 1팀의 주변을 둘러쌌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나갔을 당시의 긴박함을 보여 주듯이 캠핑장은 피 칠갑이 된 캠핑 도구들이 난잡하게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좀비들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도구에 걸려 넘어지면서도 먹잇감을 향해 기어서라도 갔다.
이현은 초조하게 알파 1팀이 좀비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A급 좀비 몬스터의 날카로운 발톱이 한수호의 머리를 스쳤을 때에는 손바닥에 붉은 자국이 생기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바깥의 상황에 정신이 팔린 이현은 정작 자신을 향해 슬그머니 다가오는 피 묻은 그림자는 알아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