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세계 각지의 연구소에서 좀비가 됐던 이들을 원래대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치료 약 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쉽지 않았다.
인류가 망한 줄 알았던 절망적인 시기에 하프 좀비가 탄생했다.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분명 그들은 좀비와 인간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 존재였다.
그렇기에 인류는 좀비 치료제를 머지않아 얻을 거라고 기대했다. 기대는 좀비들의 영역이 점점 넓어질수록 절망감에 잡아먹혀 들어갔다.
좀비가 됐어도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는 희망감에 젖어 그들을 얕봤다가는 그들과 같은 좀비가 되고 말았다.
좀비들과 수시로 전투를 벌여야 하는 이에게 어설픈 연민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다시 똑바로 봐. 죽이지 않았으면 우리들 중 누군가는 좀비가 됐을 거야. 우리가 죽인 건 교복 입은 학생이 아니라, 그냥 좀비야.”
진표성이 이현의 팔을 잡은 채 죽어 있는 좀비 가까이로 이끌었다. 다소 거친 손길이었지만 한수호는 진표성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이현도 언젠가 한 번쯤은 겪어야 하는 일이었다. 알파 1팀 또한 모두 다 한 번씩 경험하고, 이겨 낸 일이기도 했다.
“우으윽…….”
이현이 가까이에서 맡아지는 역한 냄새와 참상에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전에 배 속에 든 걸 다 토해 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재차 속이 울렁이며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입가에 남아 있는 핏자국이랑 살점 보여? 얘도 결국 좀비가 돼서 다른 누군가를 물어뜯었다는 증거야.”
진표성의 말대로 좀비의 입가에는 뚜렷한 흔적들이 가득했다.
연구소에서 매일같이 하던 일이 좀비 몬스터를 데리고 실험하는 거였다. 가끔은 일반 좀비나 하프 좀비의 사체를 가지고 실험할 때도 있었다.
좀비가 된 존재는 이전에 몬스터였든, 아니면 사람이었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살점을 씹어 먹은 건 매한가지였다.
“물어뜯은 게 방금 전까지 하하호호 웃으며 떠들던 친구였는지, 선생님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지나가던 어린아이였는지 알 수 없어. 분명한 건 살아 있는 인간의 살점을 죄책감 없이 먹었다는 거지.”
이현이 힘없이 눈을 감았다. 알파 1팀에 파견됐을 때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다.
다만 수없이 한 상상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을 뿐.
“이해, 했어요…….”
힘겹게 말문을 연 이현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좀비의 사체를 눈에 담았다.
“물 좀 마셔요.”
한수호가 건넨 물병을 든 이현이 텁텁한 입 안을 헹궜다. 식은땀으로 흥건한 얼굴도 쓸어내리려고 했지만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각이 이질적이었다.
보호복의 감촉이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손끝의 떨림이 심장까지 번져 가슴 한구석을 선득한 감각으로 물들였다.
“추태를 보여서 죄송합니다.”
이후 이현이 한수호와 남아 있는 팀원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보였다. 정중한 그의 사과에 진표성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저희들도 처음에는 다들 적응하지 못해서 힘들어했어요.”
“……팀장님도요?”
“네.”
이현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수호를 힐끔거렸다. 목석같은 그의 얼굴만 본다면 자신처럼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사람이었던 존재를 죽이는 게 그라고 쉬웠을 리 없다.
“진짜 샌님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네요. 안쪽 상황이 정리되면 한 명씩 가이딩부터 하겠습니다. 저도 일은 제대로 해야죠.”
“그래요.”
흐트러진 이현의 머리카락으로 향하려는 손끝을 주먹 안으로 감춘 한수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수호가 이현에게서 몸을 돌린 순간 진표성과 이나리가 바로 섰다. 따로 시키지 않아도 열중쉬어 자세를 한 그들의 얼굴은 미미한 긴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아까 벌어진 상황에 대한 변명은?”
“……할 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알파 1팀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두 사람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하프 좀비 하나만 와서 다행이었어. 하프 좀비 무리가 왔으면 잠입이고 뭐고 바로 위치를 들켰을 거야.”
완벽한 잠입이 힘들다는 건 알았다. 그래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좀비의 면피로 만든 보호구까지 착용했다.
이현도 아니고 베테랑인 둘이 하프 좀비의 이목을 끌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사흘 동안 불침번은 둘이 서도록 해. 이의 있어?”
“없습니다.”
“네, 팀장님.”
알파 1팀에서 가장 건들거리던 진표성이 순한 양처럼 구는 모습에 이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보기 힘든 위계질서와 유대감이었다.
“김이현 가이드, 들어가요.”
“네. 저 혹시…….”
이현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좀비 사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이었다.
익숙하다는 듯이 한수호와 진표성, 이나리가 각자 능력을 사용해 좀비들의 사체를 한데 옮기기 시작했다.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지금처럼 여유가 좀 있을 때는 사체를 모아 태워요. 작은 묘비도 세우고요.”
교문을 지나 들어선 운동장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교내를 돌아다니는 좀비를 처리한 알파 1팀의 팀원들이 좀비 사체들을 한곳에 모아 뒀다.
“팀장님, 정리 다 끝났습니다.”
임태한이 한수호에게 다가와 정리된 상황을 보고했다.
“수고했어요.”
“네.”
운동장 한쪽에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알파 1팀 소속 토(土) 속성 능력자인 김진수가 앞장서서 흙을 한 덩어리씩 퍼내면 다른 이들이 구덩이를 넓히는 식이었다.
“이낙균, 네 차례야.”
김진수가 땀방울이 배어난 이마를 훔치며 이낙균에게 고갯짓을 했다. 이낙균은 화(火) 속성 능력자였다.
그의 손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가지런히 놓인 좀비들의 사체에 닿았다. 화르르륵, 피어오른 불꽃에 집어삼켜진 사체들이 빠른 속도로 형체를 잃어 갔다.
매캐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임태한이 바람을 움직여 벗어나지 못하도록 지상에 묶어 뒀다.
지면을 따라 흘러간 검은 연기가 흐려질 때까지 임태한이 바람을 세밀하게 움직였다.
남은 재들은 모아 구덩이에 담았다. 좀비들의 수가 꽤 되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재가 수북하게 쌓여 갔다.
그들이 이번에야말로 편안한 안식에 들기를 이현은 진심으로 바랐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한 공간이었다. 이현이 눈을 감고 한 줌의 재가 된 이들을 향해 묵념했다.
이현뿐만 아니라 알파 1팀의 다른 이들도 가라앉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다만 한 사람만은 얼굴 위로 차디찬 감정을 순간이나마 내비쳤다.
* * *
“침낭은 불편하지 않아요?”
“네.”
이현이 어색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교실 하나에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침낭을 깔고 있었다.
학창 시절이 떠오르는 장면이었다. 이현이 교복을 입고 다니던 시절에는 세상에 몬스터도, 좀비도 없었다.
당시에는 지루할 정도로 평범하게 흘러가던 일상이 이토록 그리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의 침낭은 펼치지도 않고 이현의 침낭을 먼저 살피는 남자의 모습도 낯설었다.
“김이현 가이드는 불침번 서지 않아도 돼요. 오늘 팀원들 가이딩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얼른 눈 붙여요.”
이현은 저녁을 먹고 나서 알파 1팀의 팀원들을 돌아 가며 가이딩했다. 이현의 가이딩 등급이 높은 편이 아니라 손을 잡고 가이딩한 것만으로 폭주 위험 수치가 급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알파 1팀은 한결 개운해진 몸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현에게 낯을 가리던 이들도 가이딩이 거듭될수록 이현에게 마음을 여는 게 보였다.
“팀장님만…… 가이딩 안 받으셨어요.”
이현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한수호의 소맷귀를 잡았다. 다른 이들은 모두 한 번씩 이현에게 가이딩을 받았는데 한수호만이 가이딩을 받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에 받으려나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행동을 보아 그는 이현에게 가이딩을 받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직 가이딩 마력 남아 있어요. 조절하면서 했거든요.”
이현이 소맷귀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한수호의 팔목에 채워진 팔찌에 떠오른 색은 가장 낮은 단계였다. 하지만 폭주 위험 수치는 낮을수록 좋았다.
“그러면…… 부탁드립니다.”
이현의 거듭된 권유에 한수호가 반쯤 일으켰던 몸을 굽혀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다.
이현이 조심스럽게 한수호의 손을 두 손으로 쥐었다. 손 하나와 두 개가 겹쳐져 있는데도 손 크기가 많이 차이 났다.
“가이딩 시작할게요.”
맞닿은 피부를 통해 따스한 가이딩 마력이 퍼져 나갔다. 한수호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찔 떨렸다.
고작 손만 잡았을 뿐인데도 심장이 두근두근 여느 때보다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인 자신과 달리 보들보들한 손은 티 하나 없이 새하얗기만 했다.
한수호가 이현의 가이딩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이현 또한 한수호의 손을 잡고 느껴지는 감촉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안겼을 때도 그랬지만 단단하면서도 커다란 손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가이딩 시 에스퍼마다 이현이 느끼는 감각은 달랐다. 매칭률이 낮을수록 반발력이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이현은 진표성을 가이딩할 때 기분 좋은 찌릿한 감각을 느꼈고, 임태한을 가이딩할 때는 어깨 위로 한 겹의 담요가 덮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수호를 가이딩할 때는…… 나비가 가슴속에 날아들어 팔랑팔랑 날갯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