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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7화 (7/133)
  • 007.

    이현이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이는 한수호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숨이 잦아들었다.

    “아…….”

    한수호는 머리카락과 눈동자 모두 검은색인데도 머리카락에는 바다가, 눈동자 속에는 녹음이 담겨 있었다.

    투박한 외모는 아니지만 힘이 들어간 턱선이나 반듯한 콧대가 선이 굵은 미남이라는 인상을 줬다.

    짙은 눈썹 아래 위치한,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처럼 깊은 눈동자가 놀란 이현의 얼굴을 다정하게 품었다.

    땀에 젖은 자신과 다르게 멀끔한 그의 은은한 체향이 코끝에 감돌았다. 이현의 목덜미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불에 그을린 듯한 나무 향이 떠올랐다. 묵직한 향 곳곳에는 세련되고 우아한 꽃내음이 어려 있어 지금 있는 장소가 훈련장이 아니라 어둡고 으슥한 파티장의 한구석처럼 느껴졌다.

    “김이현 가이드, 괜찮습니까? 숨 쉬는 거 잊으면 안 됩니다.”

    이현이 정신을 차린 건 자신의 얼굴이 담긴 눈동자에 웃음기가 어리면서였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매를 따라 무의식중에 입꼬리를 끌어 올리던 이현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이현이 이번에는 다리에 힘을 줘서 땅에 제대로 섰다. 한수호가 느릿한 속도로 이현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제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가지고…….”

    “압니다. 근육이 놀란 것 같은데 걷기 힘들면 제게 기대셔도 됩니다.”

    “괘, 괜찮습니다…….”

    이현이 달아오른 몸을 식힐 겸 상체에 달라붙어 있는 티셔츠를 펄럭거렸다. 체온보다 서늘한 공기가 옷 속에 들어왔다. 방금 전에 느꼈던 이상한 감각도 증발되는 땀방울과 함께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아닙니다.”

    이번에는 한수호가 묘하게 굴었다. 초점이 풀린 듯한 눈동자로 이현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이현의 착각이 아니라면 한수호의 목덜미가 방금 전보다 더 미세하게 붉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제1 훈련실을 나와서 알파 1팀의 숙소로 향하는 길에는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현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연애를 한 게 언제였는지 떠올렸다.

    그러다 살면서 연애라고 부를 만한 행위를 한 적이 없다는 걸 되새기고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어야만 했다. 공부와 연구에 미쳐 살았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이게 다 뛰어난 한수호의 외모 때문이었다. 에스퍼들 모두가 입는 검은색 정복을 입었을 뿐인데도 그는 100미터 밖에서 봐도 눈에 띌 정도로 잘생겼다.

    연구소 동료들이 ‘협회 내에서 서울 지부 알파 1팀만큼 외모가 뛰어난 이들이 다수 포진된 팀이 없다’고 떠들던 얘기가 떠올랐다. 가장 첫 번째로 거론되는 게 이현과 발맞추어 걷고 있는 팀장 한수호였고…….

    “두 사람 지금 뭐 함?”

    미간을 팍 찡그린 채로 이현과 한수호의 앞을 막아선 진표성이 임태한과 함께 한수호 다음으로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언제 봐도 신기한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었다. 짐승 같은 샛노란 색은 은을 녹여 만든 듯한 머리카락 아래에서 금빛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진표성 에스퍼.”

    “왜 둘 다 얼굴이 붉어?”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이현이 생긋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이어진 진표성의 말에 미소가 깨질 뻔했다. 애써 당황한 감정을 감추고 습관처럼 안경을 밀어 올렸다.

    언제나처럼 손가락 끝에 걸려야 하는 안경이 없었다. 그제야 거칠어지는 숨결에 안경알이 자꾸만 뿌예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는 게 생각났다.

    “안경까지 벗고 있고.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동그랗게 커진 이현의 눈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살피던 진표성이 가느다란 목덜미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늑대 수인 아니랄까 봐 짐승처럼 행동하는 진표성의 모습에 이현이 놀라 몸을 바짝 굳힐 때였다.

    “진표성, 김이현 가이드한테 예의를 갖춰.”

    진표성의 그림자가 쑤욱 하고 위로 올라왔다. 그림자가 순식간에 진표성의 상체를 옭아매 이현에게서 세 발자국 넘게 떨어뜨려 놨다.

    “둘이 설마 사귀어?”

    “아닙니다……!”

    이현이 제자리에서 펄쩍 뛸 정도로 강하게 부정했다. 협회의 이목이 집중된 한수호와 연인이라니. 인생을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이현에게 한수호는 피하고 싶은 연애 대상이었다.

    “뭐야? 우리 팀장이 어때서 그렇게 펄쩍 뛰는 거야?”

    이현은 진표성을 보며 정말 종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현의 행동이 그의 팀장이 매력 없다고 얘기한 것처럼 느껴진 모양이다. 안 그래도 좁아져 있던 미간이 살벌하게 구겨졌다.

    “……진표성, 그만해. 김이현 가이드도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시간에 훈련실 입구에서 뵙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후 한수호가 이현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이현은 안 그래도 땀에 젖은 터라 빨리 샤워도 하고 싶고, 붉어진 얼굴도 감추고 싶었다. 한수호와 진표성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재빨리 숙소로 향했다.

    등 뒤로 달라붙어 오는 시선 두 개가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했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더했다.

    알파 1팀은 A동 기숙사 건물의 3층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이현 또한 임시로 그들과 같은 층의 숙소를 배정받았다.

    이현이 에스퍼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까지 올라갔다. 306호라고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서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연애를 한 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자신답지 않았다. 고작 넘어질 뻔한 걸 허리를 감싸 잡아 줬다고 얼굴이 빨개질 줄이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이던 맑고 깊은 눈동자가 쉬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으, 갑자기 그 미친놈도 떠오르네.”

    옷을 하나씩 허물처럼 바닥에 벗으며 욕실로 향하던 마른 몸이 오한이라도 든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입술에 닿던 말캉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했다.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놈의 이목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양쪽의 색이 다르던 눈동자가 기묘한 빛깔로 번들거리던 것까지 떠오르자 온몸의 열기가 빠른 속도로 식어 갔다.

    “임무에 나가서 미친놈만 마주치지 말아라, 제발.”

    이현이 시원스레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샤워기 아래에 서서 두 손을 맞잡고 간절하게 염원했다.

    그러나 인생은 때때로 원하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었다. 이현의 소망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 * *

    “다들 이 선을 넘어간 순간, 좀비처럼 행동해야 해. 그동안 숙지한 거 잊지 않았겠지?”

    이현이 입 안이 자꾸만 바짝 마르는 듯해 침이 조금이라도 고였다 싶으면 목 뒤로 넘겼다.

    하얀색 가운도, 가이드 정복도 아닌 좀비의 겉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친 가느다란 몸이 찬 바람이라도 맞은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좀비 기피제를 온몸에 뿌린 순간 이현은 구토를 했다. 이현처럼 알파 1팀의 이나리도 비위가 많이 약한 탓에 헛구역질을 했다.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를 연민했다.

    한수호가 움직인 건 그때였다. 이현의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해지자 그가 상쾌한 향이 나는 연고를 코밑에 발라 줬다.

    ‘팀장님, 저번에 저한테는 그냥 참으라고 하셨으면서……!’

    배신감으로 떨리는 커다란 눈망울이 제게 닿자 한수호는 이나리의 코밑에도 연고를 발라 줬다.

    두 사람은 그제야 얼굴까지 좀비 기피제를 덕지덕지 바른 채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냄새는 한결 버틸 만해도 좀비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긴장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졌다. 이현의 머릿속은 현재 백지장과 비슷했다.

    “으억……!”

    “왜 이렇게 얼었어? 비명 소리 한번 엄청 웃기네.”

    진표성은 긴장한 이현이 웃기는지 어깨를 툭 치고는 장난스럽게 코를 찡긋거리며 웃고 있었다.

    “진표성.”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나.”

    무리의 선두에서 결계를 일시적으로 해제할 준비를 하던 한수호가 진표성을 불렀다. 진표성은 구시렁거리면서도 이후로 이현을 놀리는 행동은 그만뒀다.

    “다들 준비. 1분 안에 통과해야 해. 이후에는 다시 결계가 작동될 테니까.”

    현재 일행은 종로구에서 은평구로 넘어가는 지점에 서 있었다. 은평구는 일찌감치 좀비들에게 넘어간 지역이었다.

    은평구와 접해 있는 종로구 일부 지역도 좀비들의 영역이 되었지만, 정부와 협회는 은평구만 좀비들에게 넘어간 걸로 상황을 축소, 진실을 은폐했다.

    종로구는 아직 그들에게 넘어가지 않았다는 선전을 하기 위해서였다.

    반투명한 막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현이 한수호에게 체력 훈련을 받는 틈틈이 공부했던 좀비의 걸음을 떠올렸다. 한쪽 다리를 부자연스럽게 뒤틀었다.

    이현이 뒤집어쓴 좀비의 가죽은 다리 한쪽에 뜯어 먹힌 흔적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좀비라면 신체 어느 한구석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있어야 했다. 이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이 입은 좀비의 가죽도 최소 한 군데씩은 살점이 헤집어져 있었다.

    퀭하게 보이도록 눈을 흐리멍덩하게 뜬 이현이 영상으로 수없이 본 좀비의 걸음걸이를 떠올리며 한쪽 다리를 질질 끌었다.

    “그어어어…….”

    그런데 좀비 흉내에 너무 몰입한 모양이었다. 이현이 저도 모르게 앓는 듯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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