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6화 (6/133)

006.

“이 임무가 저희 팀에만 내려진 겁니까?”

진중한 눈길로 지도 옆으로 떠오른 정보들을 훑어 내려가던 임태한이 무거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상부에서 하프 좀비들의 레이더망에 걸리면 안 되기 때문에 소수 정예 멤버로 임무를 수행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어. 공식적인 임무가 아니야. 우리 팀에만 은밀하게 내려진 비밀 임무지.”

“이 정도면 자살 임무지!”

진표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좀비들의 본거지에 있는 좀비의 수는 수천 마리를 가뿐하게 넘어간다.

A급 좀비 몬스터나 하프 좀비들의 수가 팀원 수의 몇 배를 넘어가면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S급 좀비 몬스터와 마주하면 말할 것도 없었고.

“위장한 채로 들어갈 거야. 최근에 좀비 면피로 만든 보호복이 완성됐어.”

“몇 달 전에 시험 삼아 입어 봤던 그거?”

진표성을 비롯한 알파 1팀 팀원들의 안색이 아연한 빛으로 물들어 갔다. 인류는 날이 갈수록 영역을 넓혀 가는 좀비를 상대하기 위해 좀비 치료제를 개발하는 중이었다. 이현이 하는 것도 치료제 관련 연구였다.

더불어 좀비의 이목을 피하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무기 개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구도 마찬가지였다.

한수호가 말하는 건 좀비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도록 고안된 보호복이었다.

“좀비 새끼들 가죽 뜯어내서 만든 걸 입어야 한다는 말이지, 지금.”

“보호복의 도움이 없으면 네 말대로 자살 임무밖에 되지 않겠지.”

“후우…….”

진표성이 앞머리가 휘날리도록 한숨을 내쉬며 의자 위로 몸을 늘어뜨렸다. 은색의 실타래가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잔뜩 구겨진 이마 위로 한 가닥씩 떨어져 내렸다.

“저희가 착용해 봤는데 생각보다 착용감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현이 슬그머니 자신의 경험을 전했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나리가 퀭한 눈으로 쳐다보자 흠칫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외양은 그대로잖아요. 맞죠?”

“네…….”

좀비들은 시력이 거의 퇴화됐다. 문제는 하프 좀비였다. 이성을 되찾은 좀비들은 생전의 기억과 더불어 이상이 생겼던 감각도 돌아왔다.

사람의 살색도, 몬스터의 검은색 표피도 좀비가 되면 회색빛으로 변한다. 당연히 보호복도 좀비의 겉가죽을 그대로 살릴 수밖에 없었다. 살에 닿는 부분은 보완을 했지만 겉부분은 좀비의 피부 그대로였다.

“좀비 피로 만든 좀비 기피제도 한 시간 간격으로 온몸에 뿌려야 하는 것도 바뀌지 않았고요. 그렇죠?”

“세 시간으로 늘어나기는 했습니다만…….”

일반 좀비들은 시력이 퇴화한 대신에 청각과 후각이 일반 사람보다 발달했다. 좀비 기피제는 일반 좀비뿐만 아니라 하프 좀비를 속이기 위한 거였다.

그들의 후각을 속이려면 좀비 기피제를 효과가 다 떨어지기 전에 온몸에 문질러 줘야 했다.

“인생…….”

해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는 이나리에게 이현은 해 줄 말이 없었다. 사실 이현도 생각보다 괜찮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보호복을 입은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고는 기겁했다.

“임무 시작일은 2주일 뒤야. 그때까지 팀 가이드로 파견된 김이현 가이드와 다들 안면 트고, 한 번 이상씩은 가이딩받아.”

한수호가 주의를 환기할 겸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 한수호의 지시에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고 있던 진표성이 한쪽 팔을 번쩍 들었다.

“그러면 내가 첫 번째로! 우리도 드디어 가이딩실을 활용할 때가 되었네.”

알파 1팀의 사무실 안에는 유일하게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이 있었다. 안쪽에 킹사이즈의 침대와 샤워 부스가 갖춰져 있는 자그마한 방 같은 공간이었다.

“포옹 이상의 접촉 가이딩은 제한이야.”

“뭐―?”

이현에게 접촉 가이딩을 받으며 한수호를 살살 자극할 계획을 세우던 진표성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아니, B급 가이드한테 포옹으로 가이딩받으면 그게 가이딩받는 거냐고.”

“매칭률이 높아서 폭주 위험 수치가 코드 오렌지로 가지 않는 이상 가능해.”

한수호가 폭주 위험 수치가 떠오른 진표성의 팔찌를 눈짓했다. 회색빛 투박한 고리 형태의 팔찌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색은 초록색. 가운데에 떠오른 폭주 위험 수치는 15에 불과했다.

협회에서 관리하는 에스퍼의 폭주 위험 수치 단계는 총 다섯 단계였다. 20을 단위로 가장 낮은 단계는 코드 그린이었다. 단계별로 높아질수록 팔찌의 색은 파란색, 노란색, 주황색을 거쳐 빨간색까지 올라간다.

“오렌지까지 올라가면 내가 친히 가이드 센터로 옮겨다 줄 예정이니까 걱정하지 마.”

입술을 달싹이던 진표성의 말을 원천 차단하는 말이었다. 진표성이 이현과 한수호를 수상스럽게 바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딱딱한 팀장이 샌님을 싸고도는 게 심상치 않았다.

“가이드, 너 팀장이랑 원래부터 알았어?”

진표성이 이현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덥수룩한 머리와 커다란 안경에 감춰져 있는 이현의 표정이 곤란함으로 물들었다.

“아니요. 지나가다 인사한 게 다인걸요.”

이현이 진표성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한수호를 흘낏 쳐다봤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듯 곧바로 마주치는 시선에 대외용 미소를 짓고 있던 입매가 움찔 떨렸다.

한수호가 워낙 유명했던 터라 그에 관한 소문은 이현도 몇 가지 들은 게 있었다. 분명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무표정의 극치라고 했는데, 자신을 보는 눈빛은 꽤나 부드러웠다.

정말 진표성의 말대로 그와 자신이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이는 아닌가 의심이 들 만큼.

“진표성, 그만.”

대답이 없는 이현에게 다가설 듯 몸을 일으키는 진표성을 막은 건 임태한이었다. 진표성은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빛은 엄중하게 굳은 그를 보며 차오르는 다음 말을 애써 목 뒤로 넘겼다.

진표성이 진정된 듯 보이자 한수호가 차분한 음색으로 마지막 말을 꺼냈다.

“대신 임무에 나가기 전까지는 다른 임무가 없어. 일정표에는 휴식이라고 되어 있지만, 다들 훈련 게을리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게. 김이현 가이드는 제가 직접 훈련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훈련을 받나요?”

“당연하죠. 김이현 가이드, 현장 경험 거의 없는 걸로 아는데요.”

한수호는 이현이 내뱉는 어떤 반론도 용납하지 않을 듯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내보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훈련……받아야죠.”

이현도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처럼 되거나 뼛조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땀 흘리는 게 싫어도 순순히 한수호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 * *

“허억, 헉……. 내가 미쳤지…….”

이현이 팔짱을 끼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한수호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알파 1팀으로 가라는 황당한 지시가 내려왔을 때 연구소장한테 달려갈 걸 그랬다.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후회가 머릿속 가득 차올랐다.

하지만 이제 무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미 승인이 떨어졌고, 이현은 하프 좀비들의 본거지를 알아내기 위한 알파 1팀의 임무가 성공적으로 완수될 때까지 그들의 가이드로서 지내야만 했다.

“아직 세 바퀴 더 남았습니다.”

“도대체 제가, 헉, 왜…… 이렇게 체력 단련을…… 해야 하는, 겁니까…….”

이현은 현재 능력자 전용 제1 훈련장에 있었다. 이현처럼 팔다리에 무언가를 매단 이들이 가슴을 들썩거리면서 넓은 공터를 하염없이 도는 중이었다.

다들 알게 모르게 이현과 한수호를 번갈아 보면서 의문 섞인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알파 1팀 팀장이 손수 훈련하는 이들이 에스퍼들 사이에서는 낯선 얼굴인 탓이었다.

“저와 저희 팀원들이 최우선적으로 김이현 가이드를 보호하겠지만, 전투에서는 언제 어디서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그때 필요한 건 다른 어떤 것보다 체력이고요.”

맞는 말만 한다.

이현이 결국 쓰고 있던 안경을 빼내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땀에 푹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도 뒤로 넘겼다.

어차피 안경은 가이딩할 때가 아니면 필요가 없었다. 평소에도 쓰고 다녔던 건 이현의 외모가 본래 나이보다 훨씬 앳돼 보이는 까닭이었다.

일반 연구원이어도 주목받을 외모였다. 수석 연구원이라는 타이틀까지 달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성숙해 보이기 위해 꼭 필요한 액세서리였다.

“단기간에 체력이 늘지는 않습니다. 다만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내딛는 경험과 감각은 분명 김이현 가이드를 도와줄 겁니다.”

단순히 이현을 괴롭히기 위해 시키는 훈련이면 이현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을 거다. 그러나 한수호가 하는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얼굴을 푹 적신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려 상체까지 흠뻑 적셨다. 원체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인데도 팔다리를 묵직하게 만드는 중량감 때문에 한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체력 소모가 컸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이현은 마지막 바퀴를 돌면서 점점 시야가 어그러지는 걸 느꼈다. 한수호가 서 있는 곳이 반환점이었다.

그와의 거리가 불과 다섯 발자국도 남지 않았을 때 결국 이현의 다리에서 힘이 완전히 풀리고 말았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바닥에 눈을 질끈 감았던 이현은 곧 단단한 몸체에 날아들듯이 안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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