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
해가 지면 좀비들의 능력이 강해진다. 해가 떠올라 있을 때보다 상대하는 게 배로 까다롭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서울 지부 알파 1팀 부팀장 S급 에스퍼 임태한의 능력은 날씨를 조종하는 거였다. 그가 불러들인 먹구름들이 쉬지 않고 몰려드는 좀비 떼들을 향해 번개를 내리쳤다.
“부팀장, 이거 냄새 좀 날려 주면 안 돼? 나 가뜩이나 후각이 예민한데!”
“개코가 이럴 때는 안 좋네.”
“내가 개코라고 하지 말랬지.”
같은 팀원인 이낙균의 말에 진표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그의 상체는 두 배 가까이 부풀어 올라 은빛 털로 뒤덮여 있었다.
볼가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털로 뒤덮인 그의 눈동자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샛노란 색이었다.
늑대의 앞발처럼 거대해진 손이 휘둘러질 때마다 날카로운 발톱에 걸린 좀비들의 몸이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처럼 썰려 나갔다.
“진표성, 피 좀 안 튀게 하면 안 돼?”
진표성의 곁에 붙어서 같이 좀비들을 상대하고 있던 이나리가 오른팔을 적시는 좀비 피에 질색하며 물러났다.
“네 채찍도 만만치 않거든?”
진표성의 말대로 이나리의 손에 들린 채찍이 휘둘러질 때면 좀비들의 머리통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단면에서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로 이미 옥상은 신발의 밑창이 잠길 정도로 피가 흥건한 상태였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쩌억, 쩌억 소리를 내며 피가 신발에 달라붙었다.
“다들 조용히 하고 전투에 집중해.”
잠깐만 방심해도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전투였다. 임태한의 낮은 목소리에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 얌전히 좀비들의 수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
노을이 하늘을 뒤덮을 즈음이 되어서야 몰려들었던 좀비들 중 마지막 좀비의 머리가 땅으로 떨어졌다.
“이거 알파 팀 아니었으면 전멸당했겠는데? 하여튼 좀비 새끼들 바퀴벌레 같다니까. 서대문구 뚫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수가 모인 거야.”
진표성이 손톱에 가득한 피와 살점을 떨어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서울 지부에는 알파 팀, 베타 팀, 감마 팀이 있다. 개중에서 알파 팀에 속한 에스퍼들의 등급이 평균적으로 가장 높고, 전투 경험이 많았다.
그런 알파 팀 세 팀이 달려들고 나서야 일대를 휩쓸던 좀비들을 해치울 수 있었다.
“다 해치우면 뭐 해. 한밤중이면 다시 새로운 놈들로 바글거릴 텐데.”
“너는 인생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살면 안 피곤하냐?”
“너처럼 대책 없이 긍정적으로 사는 것보단 나은 것 같은데.”
임태한이 재차 싸우려 드는 진표성과 이나리의 뒷덜미를 잡아 떼어 놨다.
“그만. 본부로 복귀한다.”
임태한은 언뜻 보면 성격이 온화해 보여도 한번 눈 돌아가면 알파 1팀에서 가장 성격이 포악해졌다.
“부팀장도 아까 팀장이 데려간 연구원 잘 알아?”
이나리와 다투는 건 일상다반사였다. 진표성의 관심은 금세 팀장과 함께 사라진 이현에게로 옮겨 갔다.
“아니. 팀장님이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 정도만.”
“뭐야, 우리 팀장 짝사랑 중이었어?”
“그런 거 아니야.”
“아까 팀장 눈빛 못 봤어? 목석같은 인간이 샌님 바라볼 때는 눈빛이 제법 다정한 빛으로 물들던데.”
“가이드라서 그렇겠지. 에스퍼는 가이드한테 약해지잖아.”
“샌님이 가이드라고?”
“응. B급.”
“진짜 가이드라서 그런 건가…….”
진표성이 손가락으로 턱을 쓸다가 손이 좀비들의 피로 범벅인 걸 알고는 질색하며 손을 털었다.
에스퍼나 가이드도 좀비에게 물리면 능력을 잃고 좀비로 변한다. 좀비는 마치 독사가 이빨을 통해 독을 주입하는 것처럼 살에 박힌 치아를 통해 좀비 바이러스를 상대방에게 침투시켰다.
하프 좀비가 되어 이성을 찾더라도 에스퍼나 가이드였을 때의 능력을 되찾지 못한다. 그렇기에 다들 좀비들과 전투를 벌이고 나면 휴대용으로 들고 다니는 물통으로 몸을 한번 씻어 내고는 했다.
아니면 물을 다루는 에스퍼에게 부탁해 몸을 씻어 내거나.
상처에 좀비의 피가 묻는다고 해서 좀비로 변한 경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연구원들은 가능성을 언제든지 열어 두고는 했다.
“으, 지긋지긋한 좀비 새끼들. 황두학, 나도 좀 부탁해.”
팀원 중 수(水) 속성 능력자에게 진표성이 두 팔을 벌려 보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쾌한 물줄기가 스쳐 지나가며 악취를 풍기던 피를 씻어 냈다.
“좀비들이랑 싸울 때마다 나는 네 능력이 제일 부럽다.”
“S급이 저를 부러워하면 어떡해요.”
“그래도 부러운 걸 어쩌냐.”
진표성이 팀원 중에서 가장 어린 황두학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흐트러뜨렸다. 다행히 심하게 다친 이들도, 죽은 이들도 없어 전투 이후에도 웃으면서 농담도 할 수 있는 거였다.
에스퍼들은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산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에서 동료를 잃어 본 경험이 없는 이는 황두학이 유일했다.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 오늘은 항복이라고 말해도 안 봐줄 거야.”
“저희 지금 비상사태라 술 마시면 안 되잖아요.”
“우리가 오늘 해치운 좀비들 수가 몇인데. 하루 정도는 쉬게 해 줘야지.”
“팀장님 FM이라 안 될 것 같은데…….”
“형만 믿어라, 막내야.”
고작해야 다섯 살 차이면서 한참 어린 동생을 대하는 듯한 행동에 황두학의 입술이 삐죽거렸다.
“방심하지 마. 결계석 설치되어 있는 지점까지는 언제든지 좀비 새끼들이 튀어나올 수 있는 거 알잖아.”
임태한이 진표성의 곁으로 다가서며 경고했다.
인간들이 좀비들로 뒤덮인 세상 속에서도 인간의 영역을 유지하는 건 몬스터에게서 얻은 마석으로 만든 결계 덕분이었다.
결계석을 직접 찾아내 부수지 않는 한, 좀비는 결계석을 넘어오지 못한다.
결계석의 위치는 협회 내에서도 최상급 라인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결계석도 업그레이드해야 되는 거 아니야? 하프 좀비들이 벌써 서대문구에 설치된 건 깨부쉈잖아.”
“그건 연구원들이 할 일이지. 우리는 다시 서대문구를 탈환하는 데 힘쓰면 되는 거고.”
“우리는 맨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는데 그놈들은 제대로 일을 안 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
진표성의 얼굴이 불만으로 일그러졌다. 최전선에 나가 싸우는 것도, 다치는 것도 모두 에스퍼들의 몫이었다. 연구원들은 에스퍼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결계 안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채 연구만 했다.
“팀장도 그깟 수석 연구원이 뭐라고 우리들을 내팽개치고 먼저 복귀하냐고. 원래라면 마지막까지 후방에서 팀원들을 지키고 있었을 양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구시렁거리나 했더니.
진표성은 팀장이 연구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치 부모님의 관심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툴툴거리는 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철이 덜 든 동생 같았다.
“말했잖아. 연구원이지만 가이드기도 하다고.”
“가이드면 뭐 해. 나는 그 사람이 에스퍼 가이딩하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부팀장은 받아 봤어?"
“아니.”
“그것 봐. 무늬만 가이드지, 하는 일은 연구하는 것뿐이잖아.”
가이드라는 말로 옹호해도 소용이 없었다. 진표성이 하는 말에 임태한은 침묵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긴장을 푼 그를 대신해 주변에 느껴지는 수상한 기척을 살피느라 신경이 예민해졌던 탓이다.
“형, 궁금하면 팀장님한테 직접 물어봐요.”
두 사람의 곁에서 함께 걸어가며 눈치를 보던 황두학이 진표성의 팔을 끌었다.
“그래. 직접 가서 물어봐야겠어.”
* * *
진표성이 궁금해하는 한수호는 현재 기절하듯이 잠든 이현을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녹색이 은근하게 섞인 검은색 눈동자가 식은땀에 젖은 말간 얼굴을 마음에 담듯이 응시했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한수호의 시선은 어딘가 묘해 보였다.
“……악몽을 꾸는 건가.”
한수호가 망설이던 손을 들어 올렸다. 땀에 젖어 이마 위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주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연구만 했기 때문일까. 이현의 살색은 단순히 하얗다는 느낌을 넘어서 창백해 보였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살이 더 빠졌네.”
커다란 손이 이현의 볼을 감싸 쥐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스하면서도 매끄러운 감촉에 손끝의 떨림이 한층 심해졌다.
한수호가 자연스럽게 숙여지려는 고개를 바로 세우며 손을 떼어 냈다. 마지막으로 이현의 팔목에 연결된 링거 줄을 살핀 그가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직후 새까만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눈꺼풀 새로 드러난 눈동자의 초점이 흐릿했다.
속쌍꺼풀이 곱게 진 눈이 닫힌 문을 향해 스르륵 움직였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흔들리던 동공이 차분해졌다.
“……뭐야, 저 사람.”
탁하게 쉰 목소리가 작은 병실 안에 공허하게 울렸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나직하면서도 그윽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한번 들으면 쉬이 잊기 힘들었다.
이현의 의문은 방금 전에 그가 했던 행동이 납득될 만한 사이는 아니라는 점에 닿아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안면만 있을 뿐이었다.
“이상한 기분 들게 왜 볼은 쓰다듬고 난리람.”
이현이 미미한 온기가 남은 볼을 매만졌다. 바쁘게 이어지는 일상 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껴 본 적도 간만이었다.
의식을 차렸는데도 악몽의 여운이 남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질끈 감긴 눈가가 애처롭게 떨렸다.
언제나처럼 이현의 악몽은 짙은 향내가 나던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