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분명 뇌를 감싸고 있는 두개골은 단단할 텐데. 남자의 손은 물렁한 두부를 가르듯 손쉽게 좀비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발발 떨리던 좀비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남자가 검붉은 피와 뇌수로 더럽혀진 손끝을 보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으, 더러워…….”
남자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손에 붙어 있던 잔여물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좀비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멀리 날아가 바닥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우욱…….”
이현이 입을 막고 헛구역질을 내리눌렀다.
무의식 깊은 곳에 감춰 뒀던 기억이 산발적으로 떠올랐다. 시야를 새빨갛게 물들일 정도로 머리에 쏟아지던 피에 이현은 눈꺼풀조차 깜박이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제 앞에서 쓰러지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피로 범벅이 된 이는 이목구비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뭐야? 너 왜 그래?”
동공이 풀린 이현의 몸이 들썩였다. 손에 남은 피를 바지에 문대 지워 내던 남자가 이현의 얼굴 가까이 고개를 들이민 순간이었다.
땅 위에 드리워져 있던 남자의 그림자가 살아 있는 사람처럼 몸을 일으켰다. 그림자가 그대로 남자의 목을 두 손으로 옥죄었다.
“으윽…… 한, 수호…….”
능력을 쓴 이가 누군지 안다는 듯이 날 선 시선이 근처에 있는 건물 옥상을 향했다. 이어 지척에서 가볍게 착지하는 소리가 났다.
날렵한 동작으로 땅에 발을 붙인 한수호가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서동연. 계속 찾아 헤맸는데 여기에 있었군.”
검녹색 눈동자가 숨이 막혀 바르작거리는 서동연을 무심하게 훑었다.
천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서동연의 목을 조르고 있던 그림자가 스르륵 녹아 다시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서동연이 손자국이 남은 목을 매만지다가 한수호를 보며 입꼬리를 끌어 올려 보였다.
“내가 많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네. 그러면 그에 맞게 환영 인사를 해 줘야지.”
서동연이 입술 새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냈다. 한수호가 막을 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그으어…….”
“그르르르…….”
“크윽, 캬하악-!”
남자의 기에 눌려 다가오지 못하던 좀비 떼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뜻 봐도 백을 넘어가는 숫자였다. 좀비들의 하울링이 탑처럼 차곡차곡 쌓여 일대를 음울하게 물들였다.
“대장.”
설상가상으로 이성이 있는 하프 좀비들까지 서동연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한수호를 응시하는 놈들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S급 에스퍼라고 하더라도 동시에 좀비 떼 수백 마리를 상대하는 건 무리이지 않아?”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좀비들이 우글우글 모여들었다. 위험한 상황인데도 한수호의 얼굴은 무표정하기만 했다. 그의 시선은 서동연을 견제하면서도 이현에게 닿아 있었다.
“흐으…….”
땅으로 쓰러져 내리는 마른 몸을 한수호의 그림자가 움직여 안전하게 품 안으로 받아 냈다.
서동연은 한수호가 이현을 데려가는 걸 순순히 놔뒀다. 흥미로움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아는 사람이야? 나는 왜 처음 보지. 가이드인 것 같은데.”
“신경 꺼.”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네. 내가 걔한테 볼일이 많거든.”
서동연이 생긋 웃으며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림자가 건네주는 이현을 품에 안은 한수호가 서동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일대의 그림자들을 일으켰다.
소리 없이 그림자를 빼앗긴 좀비 떼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온 좀비들이 자신의 그림자에게 머리를 꿰뚫렸다.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지는 살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에 서동연의 얼굴에 지어진 미소가 짙어졌다.
그가 손을 들어 지시한 순간이었다. 한쪽 눈동자만 회색빛으로 물든 이들이 땅을 박차고 한수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무더기처럼 얽혀 있는 좀비들의 머리통을 밟고 순식간에 하프 좀비 다섯이 한수호의 근처로 다가왔다.
한수호의 주변에 있던 그림자들이 일어나 그들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서동연이 데리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전투력이 가장 뛰어난 놈들이었다.
놈들 중 한 명의 손에 들린 칼날이 한수호의 정수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잘린 몇 가닥의 검푸른 머리카락이 나풀나풀 허공에서 흩날렸다. 사방을 에워싸고 다가오는 놈들을 피하는 한수호의 움직임이 날렵했다.
한수호가 그림자가 내미는 손을 발판 삼아 허공으로 몸을 띄워 원래 있던 건물 옥상에 발을 디뎠다.
몰려든 좀비 무리들이 건물 외벽에 몸을 부딪치며 서로의 몸을 탑처럼 쌓아 옥상까지 길을 만들었다.
“잘 피하네. 보는 맛이 있어.”
A급 몬스터 엘펀트 머리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서동연이 한수호가 좀비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프 좀비들이 작은 언덕처럼 쌓인 좀비들을 밟고 한수호가 있는 옥상으로 몸을 욱여넣고 있었다.
“크아악―!”
“이런.”
가장 먼저 옥상에 도달한 하프 좀비 하나의 머리통이 그림자의 손에 꿰뚫렸다. 데리고 온 부하가 죽었는데도 서동연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드 아이는 한수호의 품에서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눈을 감은 이현을 흥미롭게 살필 뿐이었다.
“입술이 말캉했어. 다시 입 맞추고 싶다.”
제 입술을 매만지며 덩치에 맞지 않게 부끄럽다는 듯이 볼을 붉히는 얼굴이 지나치게 해맑았다.
“오늘 데리고 온 놈들이 강하기는 하지.”
하프 좀비 하나를 해치우고, 나머지 하프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한수호의 이마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들었다.
다른 좀비들도 동료의 몸을 제물 삼아 옥상으로 꾸역꾸역 제 몸을 밀어 넣는 중이었다. 본능만이 남은 그들은 한수호와 이현을 향해 무서울 정도의 집착을 보였다.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발버둥을 치며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응? 다구리 까는 거 눈치챘나 본데.”
서동연의 귀가 강아지처럼 쫑긋 섰다. 좀비들의 괴성과 살점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난무하는 곳으로 수십의 기척이 빠른 속도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거친 마력이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에스퍼 놈들이었다.
이미 한수호의 손에 하프 좀비 둘이 추가로 당했다. 오른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있는 하프 좀비가 광분해 한수호에게 달려들었다.
“김태훈. 이만 돌아와.”
다른 놈들은 몰라도 서동연이 이름을 부른 하프 좀비는 특별히 아끼는 놈이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김태훈은 놓치지 않고 서동연의 곁으로 몸을 물렸다.
“대장, 조금만 더 하면 끝낼 수 있었습니다.”
“무리지. 명색이 서울 지부 알파 1팀 팀장인데.”
S급 에스퍼들 중에서도 경험이 가장 많은 놈이었다. 한수호의 몸에는 현재 생채기 하나 없었다. 보호해야 할 사람을 품에 안고도 그가 입은 피해라고는 머리카락 몇 가닥을 잃은 것뿐이었다.
“지친 틈을 타 공격하면 가능합니다.”
“태훈아, 쟤 지금 본신의 힘 반도 안 끌어낸 거야.”
“그게 무슨…….”
“육탄전이 특기거든.”
지금은 이현을 안고 있느라 피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를 응집한 단검 두 개를 들고 근접전에서 좀비들의 멱을 따는 게 놈의 특기였다.
“네가 하프 좀비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모르는 거야. 다음부터는 웬만하면 한수호 근처로 접근하지 마. 눈 깜박할 새에 미간이 뚫릴 테니까.”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무는 김태훈의 어깨를 두들긴 서동연이 엘펀트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기다란 코가 서동연의 손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자. 새로운 작전을 짜야겠어.”
“……알겠습니다.”
엘펀트가 거대한 몸을 움직였다. 한수호가 좀비들과 싸우는 장소와 정반대 방향이었다.
* * *
“팀장!”
“좀비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아!”
한수호가 숨을 고르며 팀원들이 오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현재 옥상은 좀비들의 사체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이성이 없는 놈들은 이미 죽은 동료들의 살점을 짓밟으면서 계속해서 한수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죽을 줄 알면서도 본능에 취해 불로 뛰어드는 부나방 같았다.
마른하늘에 시꺼먼 구름이 몰려들었다. 번쩍하는 빛이 터질 때마다 우글우글 모여 있는 좀비들 사이로 번개가 내리쳤다.
“그으어―!”
살점이 타오르는 매캐한 냄새가 공간에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흡입하면 에스퍼가 아닌 사람에게는 해로운 가스였다.
한수호가 재킷을 벗어 기절하듯이 잠든 이현의 얼굴 위로 덮었다.
“나는 먼저 본부로 돌아갈 테니까 마무리하고 돌아와.”
“지금 우리한테 뒤처리 맡기고 팀장은 먼저 간다는 거야?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군데?”
“희망 연구소 수석 연구원.”
“뱅글이 안경 쓴 샌님?”
서울 지부 알파 1팀 소속 S급 에스퍼 진표성의 물음에 한수호가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고 순식간에 어지러운 현장을 벗어났다.
“부팀장, 이거 월권행위 아니야?”
“좀비들부터 해치우고 얘기해. 조금 있으면 해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