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 됐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눈을 마주친 이는 사람도, 좀비도 아니었다.
몬스터와 좀비에 이어 등장한 제3의 존재였다.
애초에 급작스럽게 퍼져 나간 좀비 바이러스가 몬스터만 전염시키고 사람은 피해 갔을 리 없다.
사실 게이트가 전 세계에 열렸던 ‘멸망의 날’ 이후로 인류의 목숨을 앗아 가는 데 앞장선 건 몬스터가 아니라 좀비 바이러스였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좀비 떼들이 사람과 몬스터를 닥치는 대로 전염시켰다. 간신히 몬스터가 공존하는 세상에 적응해 가던 인류는 다시 한번 고비를 맞았다.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는 에스퍼와 가이드가 등장해 멸망을 막았다.
신은 이번에도 인류를 버리지 않았다. 다만 그가 인류에게 내려 준 동아줄은 언제 끊어질지 모를 정도로 군데군데 썩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좀비가 된 인간들 중에서 이성이 돌아온 자들이 등장했다.
좀비에게 물린 후에 썩어 문드러졌던 살점 위로 새살이 돋아났다. 그들은 겉보기에 보통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좀비의 특징인 막이 씐 듯 탁한 회색빛 눈동자가 한쪽에만 남았다는 걸 제외하면. 지금 이현과 눈이 마주친 남자처럼.
“안녕?”
“…….”
고작 눈꺼풀을 한 번 깜박였을 뿐이다.
앞머리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눈을 감았다 뜬 순간 수십 미터 이상 떨어져 있던 남자가 코앞에 나타났다.
“에스퍼는 아닌 것 같은데. 간덩이가 부은 스타일이구나. 맞지?”
남자는 턱을 손으로 괸 채 이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었다. 남자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자리를 따라 소름이 살갗을 타고 오스스 돋았다.
입 안에 침은 고이는데 침은 삼킬 수가 없어 목울대만 움찔 떨렸다. 그에게 반응한 순간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무서워? 바들바들 떨고 있네. 비 맞은 개 새끼처럼 불쌍하게.”
커다란 손이 이현의 정수리 위에 툭 얹어졌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색이 다른 눈동자에 이현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이 입술 새로 튀어나온 건 정말로 이현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너무 자, 잘생겨서…… 떨리는 거예요…….”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을 들은 남자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협회 내에서도 남자처럼 잘생긴 이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거친 느낌이 나는 회색빛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흘러내려 눈가에 자연스럽게 음영을 드리웠다.
거칠면서도 흉포한 분위기가 반달로 휘어진 눈매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서도 더없이 잘 어울렸다.
“거짓말. 나한테 반해서 뛰는 심장 소리가 이럴 리가 없는데.”
모양 좋은 손이 불시에 이현의 가슴팍을 짚었다. 남자의 손바닥 아래에서 거세게 뛰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살갗을 뚫고 나올 듯이 요란했다.
“지, 진짜예요! 제 심장 소리가 남들이랑 조금 달라서 그렇게 느끼시는 거예요…….”
‘하프 좀비’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인간의 이성이 남아 있지만 몬스터 못지않게 흉포하다. 모든 이들이 그런 건 아니어도 좀비일 때의 습성이 남아 있어 살아 있는 인간을 먹이로 삼는 이들도 존재했다.
이현은 살아 있는 채로 남자에게 뜯어 먹히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일도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죽기에는 앞날이 창창했다.
“진짜로?”
“으윽…….”
커다란 손이 이현의 멱살을 잡았다. 바이크에 앉아 있던 몸이 인형처럼 가볍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프 좀비의 특성은 인간보다 수 배에서 수십 배는 뛰어난 동체시력과 힘, 스피드, 재생력이었다. 이현이 혹시 몰라 챙긴 무기가 들어 있는 발목 쪽으로 애타게 손을 뻗었다.
이현의 대외적인 직업은 희망 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었지만, 그도 가이드였다. B급이라는 애매한 등급 때문에 가이드보다는 연구원으로서의 생활에 더욱 집중했을 뿐이다.
가이드의 신체 능력은 에스퍼와 다르게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마력을 사용할 수 있기에 그 점을 이용해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존재했다.
한 손에 잡히는 무기가 있는 방향을 향해 뻗어 나가던 손은 남자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눈도 안 나쁜 것 같은데 이런 안경은 왜 쓰고 있어?”
손쉽게 이현의 손을 쳐 낸 남자가 이어서 이현이 쓰고 있던 안경을 벗겨 냈다.
“오?”
남자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꺼벙한 샌님처럼 보이던 이현의 외모가 꽤 마음에 든 까닭이었다.
“일부러 외모 가리고 다닌 거야? 나 같은 미친놈이 달라붙을까 봐?”
자신이 미친놈이라는 자각이 있는 미친놈이었다.
하프 좀비들 중 유명한 놈들의 얼굴은 협회에 공유된다. 하프 좀비들 중에서도 무리를 이끄는 리더 격인 놈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현의 기억 속에 자신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이 남자의 얼굴은 없었다. 외모 때문에라도 유명했을 놈이다.
정보가 없다는 건 협회에서도 일부만이 정보를 공유하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놈이라는 뜻이다. 좀비에서 하프 좀비로 변화한 지 얼마 안 됐다면 지금처럼 유창하게 말을 하지는 못할 테니까.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지…….
전 재산 지키러 왔다가 목숨부터 잃게 생겼다. 이름 모를 놈은 현재 이현을 날개 뜯은 꿀벌처럼 다루고 있었다.
놈의 눈동자에 어린 호기심이 잔인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이대로 있다가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이현이 눈을 감고 앞으로 돌진했다. 꾹 다물린 입술 위로 물컹하면서도 보드라운 감각이 느껴졌다. 멱살을 잡고 있던 놈의 손에서 힘이 풀린 순간 발목에 고정해 놨던 권총 형태의 아티팩트를 꺼내 손에 쥘 수 있었다.
“무, 물러나요……! 셋 셀 동안 안 물러나면 바로 쏠 겁니다……!”
남자가 제 머리에 겨눠진 총구가 무섭다는 듯 과장스럽게 어깨를 들썩이며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 남자의 발아래에서 짓밟힌 쓰레기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거리는 사람들이 도망갈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보여 주는 듯 온갖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삐이이이익―!
하늘색 돌고래 모양의 인형이 검은색 워커 바닥에 짓밟히며 괴로운 신음을 토해 냈다. 소리가 신호탄이 되어 골목길에서 배회하던 것들을 이끌어 냈다.
“그으으어…….”
“그르르…….”
좀비 떼들이었다. 언뜻 봐도 수십을 넘는 듯한 좀비 무리가 이현을 발견했다. 회색빛 동공 일체가 빛을 쫓아가는 부나방처럼 이현에게 모여들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땀을 닦을 수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어슬렁거리는 좀비 놈들이 달려들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이현의 근처에 있던 놈들은 진액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입을 한껏 벌린 채 달려드는 중이었다.
“캬하악―!”
사람이 좀비로 변한 일반 좀비 셋과 C급 좀비 몬스터 슬라임 하나였다. 놈들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썩어 가는 살점이 흔적처럼 남았다.
타앙, 탕, 탕, 탕.
이현이 한 마리씩 이마의 정중앙을 노렸다. 일반 좀비 셋은 끈 떨어진 인형처럼 바닥 위로 널브러졌지만, 슬라임은 여전히 이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슬라임의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거였다. 목이 잘리거나 두개골이 깨지면 죽는 일반 좀비와 다르게 몬스터는 품고 있는 마석을 깨트려야 했다.
문제는 슬라임 몸속의 마석이 한곳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거였다.
“그으어……!”
총소리에 다른 좀비 놈들도 이현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시각이 퇴화한 대신 청각이 비상식적으로 발달한 놈들이었다.
아직 아티팩트에 충전된 마석의 마력 양은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좀비들을 상대했다가는 금세 포위되고 말 터. 가장 좋은 방법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거였다.
이현이 꺼져 버린 바이크의 시동을 걸 때였다. 바람 소리와 함께 날아온 하프 좀비가 이현의 손을 붙잡아 멈췄다. 이현과 입을 맞춘 이후로 상황을 지켜보던 놈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 아직 볼일 안 끝났는데, 어디 가려고?”
“으윽…….”
붙들린 손을 빼내려고 해 봐도 아티팩트를 쥔 손뿐만 아니라 시동을 걸던 손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거 알아?”
“뭐, 뭐를요……!”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는 하프 좀비를 공격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프 좀비의 존재를 인식하면 피해 갔다.
그들에게도 하프 좀비는 상위 포식자였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프 좀비들 중에서는 일반 좀비와 좀비 몬스터를 거느리는 놈들도 존재했다.
놈은 여유가 넘쳤지만 이현은 실시간으로 살점이 다수의 좀비에게 물어뜯길 위험에 입 안이 바짝바짝 탔다.
“네가 방금 나한테 입 맞췄잖아. 그거 내 첫 키스야.”
크게 뜨인 이현의 눈이 부표를 잃은 배처럼 흔들렸다. 남자는 20대 초반, 혹은 중반으로 보였다. 하프 좀비가 된 순간부터는 노화가 멈추다시피 했다. 20대 같은 외양과 다르게 나이가 더 많을 수도 있었다.
혀가 섞이는 키스도 아니고 입술을 부딪친 것뿐이었다. 사고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발그레 달아오른 볼 때문에 남자의 말은 진실처럼 느껴졌다.
“내가 첫 키스 하는 사람이랑 결혼하려고 그동안 고이고이 아껴 둔 거거든.”
“결혼이라니 무슨…….”
말도 채 끝내지 못할 정도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연애를 한 적이 언제인지 생각나지도 않는 이현에게는 너무나 뜬금없는 단어였다. 게다가 상대가 하프 좀비라면 더더욱.
개소리하지 말라고 말하려던 입술이 본드라도 발라진 것처럼 딱 붙었다. 남자의 손이 지척에 다가온 사람 좀비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손끝에 걸린 살점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가 이현의 코끝을 찌르듯이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