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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60화 (60/65)

60화

오전 가이딩 훈련을 마치고 B급 훈련실로 이동했다. S급 훈련실이 더 쾌적하고 시설도 최신식이었지만, 역시 3년간 훈련받았던 B급 훈련실이 더 정감이 가고 동료들이 있어서 계속 그쪽으로 가게 되는 거 같다.

오늘은 자율 체력 단련 시간인지 각자 단련하고 있었다.

나는 곧장 지훤을 찾았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지훤이 구부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훤아.”

내 부름에도 지훤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반응이 없었다. 결국 그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그제야 지훤이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봤다.

“형, 왔어요?”

말하는 지훤의 입술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눈 아래도 입술과 같이 검었다.

“너 어디 아파?”

“…피곤하긴 해요.”

“의무실에 가 보는 건 어때?”

“그 정도는 아니에요.”

목소리도 평소보다 갈라져 나오는 모습을 보니, 상태가 안 좋은 건 확실했다.

“정말이야?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런 우리의 곁으로 몇 번 대화를 나눴던 가이드가 다가왔다.

“요즘 계속 가이딩 훈련만 하더니 저렇게 됐어요.”

“언제부터요?”

“일주일 전부터요.”

나는 다시 지훤을 바라봤다. 평소의 지훤과 달리 낯빛이 어두운 모습에 걱정이 되었다.

“지훤아, 훈련에 너무 집중하지 마. 건강이 우선이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형.”

“오늘은 일찍 퇴근하자. 형이 맛있는 거 사 줄게.”

“정말요?”

힘겹게 웃는 모습에 더욱더 걱정되었다. 낮은 등급으로 판정받으면 계속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지훤은 충분히 잘하고 있었다. 이미 예전보다 빠르게 B급으로 승급했고 말이다. 그러니 몸을 버리면서까지 승급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했다.

“응. 내가 트레이너님한테 말하고 올 테니까, 의무실 들렀다가 나가자.”

“형…. 그런데 오늘은 안 될 거 같아요.”

“왜?”

“훈련은 하루도 빠지면 안 되거든요.”

“괜찮아, 하루 정도는 빠져도. 우선 네 몸부터 생각해야 해.”

“저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형이 있어서 든든하고요.”

지훤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몇 걸음 가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곧장 지훤에게 달려가 그를 안아 들었지만, 지훤은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지훤은 곧장 센터 병원으로 이동되었다. 검사 결과, 과거의 나와 같이 가이딩 기계의 파장이 몸 구석구석 들어와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고 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신경이 손상되었을 거란 의사의 말에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죽기 전 증상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나뿐만 아니라 지훤에게까지 같은 부작용이 따른 것을 보면 지훤 또한 기밀 S급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정말 윤 박사님은 부작용에 대해 몰랐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프로젝트에 누가 참여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와 같은 부작용이 계속 발생한다면 멈춰야 했다.

***

결국 지훤이 일어나는 모습도 못 보고 센터로 돌아갔다. 센터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을 확인하니 원재에게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아직 지훤의 소식을 못 들은 건지 지훤에 대한 말은 없고, 오늘 센터에서 검사할 것이 몇 개 있어서 집에 먼저 가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센터에 가던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집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성요한은 없었다.

간단하게 샤워하고 거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지훤도 걱정이 되고, 성요한도 계속 신경 쓰였다.

미국 협회와 관련된 추측들이 조금씩 잦아들고 나면 평범한 날들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협회장은 나와의 만남을 피하고, 성요한 또한 계속 우리와 살고 있었다. 협회가 이대로 대화를 거부한다면 나도 더는 그들과 합의점을 찾을 생각이 없었다.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저녁을 만들어 놓으시고 퇴근할 때까지도 원재는 집에 오지 않았다. 걱정되어 연락했지만, 긴 통화 연결음만 이어졌다. 무슨 검사길래 이렇게까지 늦어지는 것인지, 집에 오면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원재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곧장 전화를 받았다.

“응, 원재야.”

- 형, 저 오늘은 센터에서 지내야 할 거 같아요.

“왜?”

예상치 못한 말에 되물었다. 아무리 검사라도 센터에서 하루를 지내야 한다니….

- 검사받을 게 아직 많이 있어서요.

“그래도 그렇지, 너무 늦는 거 아니야?”

- 죄송해요.

“아니야. 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 끝나자마자 집에 갈게요.

“알겠어. 끝나면 연락해.”

통화를 하고 나니 원재가 더욱 걱정되었지만, 당장 지금의 나도 안심이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오늘 원재가 집에 오지 않으면 성요한과 단둘이 집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아직 성요한이 들어오지 않았으니, 원재가 있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원재가 없다는 걸 안다면 성요한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나는 곧장 신발장으로 가서 원재의 신발을 내놓고 식사를 빠르게 마쳤다. 그리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잠갔다.

성요한은 한 번도 외박한 적이 없었기에 분명 오늘도 집에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성요한이 집에 왔는지 인기척과 함께 파장이 느껴졌다.

“신의 씨, 저 왔어요.”

성요한은 늘 방에 들어가기 전에 내게 인사를 했다.

“왔어요?”

나는 방에서 나가지 않고 방문 앞에서 말했다. 그러자 노크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돌아갔지만, 문을 미리 잠가 뒀기에 열리지 않았다.

“신의 씨, 문은 왜 잠갔어요?”

“오늘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요.”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그런데 주원재는 어디 갔어요? 오늘 조용하네요.”

단번에 원재의 부재를 눈치챈 그의 말에 놀랐다. 하지만 놀란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평소처럼 말했다.

“방에서 쉬고 있어요. 오늘은 방해하지 말라고 하던데요?”

내 말에 성요한은 그러냐며 자기도 이만 쉬러 간다고 했다. 그 모습에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이대로 부디 다음 날이 되길 바랐다.

몇십 분 뒤, 다시 노크 소리와 함께 성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의 씨, 문 좀 열어 주세요.”

“이제 잘 거예요.”

“알겠습니다….”

다행히 성요한은 원재가 없는 걸 모르는 거 같았다. 안도하며 원재에게 문자를 보냈다.

[원재야, 잘하고 있는 거지?]

하지만 원재에게서는 30분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 대체 무슨 검사를 이렇게나 오래 하는지. 아침에 하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자정에 가까워지니 조금씩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몸을 강하게 옥죄는 압박이 느껴졌다.

곧장 눈을 뜨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불을 켜고 잤는데 이상했다. 하지만 누군가 내 위에 있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몸을 버둥거렸지만,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주원재가 없네요.”

성요한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에 목덜미를 시작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성요한 씨, 뭐 하는 거예요! 당장 비켜요!”

“왜 계속 방에만 있나 했더니. 나랑 둘이 있는 게 무서웠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성요한의 말대로 그와 둘이 있는 게 무서웠다. 같은 남자이지만, 성요한은 S급 에스퍼였다. 내가 그를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비키라고요!”

“싫은데요.”

나보다 덩치가 큰 성요한은 바위처럼 내 상체를 무겁게 누르고 있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압박감에 숨을 거칠게 내쉬며 버둥거렸다.

“한 번도 가이드와 각인해 본 적이 없어서 궁금했거든요.”

“당장 비키라고!”

내 말에도 성요한은 내 목을 빨았다. 그 혀의 감촉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져 저절로 진저리가 쳐졌다.

“신의 씨도 해 본 적 없어서 궁금하잖아요. 이번에 같이 경험해 보는 게 어때요?”

“닥쳐요!”

수치심에 얼굴에 열이 쏠렸다. 당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부끄러워하지 마요. 제가 기분 좋게 해 줄게요.”

성요한은 그렇게 말하더니 내 바지 쪽으로 손을 내렸다.

절대로 이대로 각인당하면 안 되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다리와 팔을 사용해 성요한을 공격했지만, 대미지는 없어 보였다. 확연한 힘 차이는 나를 더욱더 위축되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둠에 익숙해지자 조금은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요한의 손이 내 상의로 파고들어 와 가슴과 배를 배회했다. 그가 얼굴을 내려 내 배를 핥는 순간, 이대로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덜덜 떨리는 입을 꾹 다문 채 간신히 몸을 뒤집었다. 침대 아래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런 내 허리를 성요한이 꽉 잡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앞으로 계속 도망치려다, 사이드 테이블에 놓아둔 민성의 마비 칩을 발견했다.

성요한이 내 몸에 한눈이 팔린 사이, 나는 손을 길게 뻗어 마비 칩을 쥐었다. 그리고 케이스를 빼내고 망설임 없이 성요한의 팔뚝에 붙였다.

성요한의 몸이 한순간에 굳더니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성요한을 밀치며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성요한이 쫓아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간신히 1층으로 내려가 어디로 가야 할지 계속해서 생각했지만,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현태운의 얼굴만 떠올랐다. 그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바로 옆이 그의 집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태운에게는 절대로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아파트에서 나왔다.

한동안 걷고 있는데 불현듯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던 세현의 말이 생각났다. 그의 집이 우리 집 근처였단 걸 떠올리며 발걸음을 돌렸다. 지금이 세현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인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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