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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46화 (46/65)
  • 46화

    가이딩 훈련을 마치고 휴식실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윤 박사님과 그의 조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랐지만, 인사 먼저 건넸다.

    “안녕하세요, 윤 박사님.”

    “신의 가이드님, 여기서 쉬고 계시는군요.”

    “네. 박사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세요?”

    “신의 가이드님께서 연구소에 방문한다고 하셨는데, 도통 소식이 없어서요.”

    “요즘 바빠서요. 죄송해요.”

    내 말에 윤 박사님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에 시간 괜찮으시면 제 연구실에서 이야기 나눠 보는 건 어떠신가요?”

    “네. 괜찮습니다.”

    이대로 더 시간을 늦추는 건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윤 박사님과 약속을 잡고, 오후에 그의 연구실로 향했다. 다행히 훈련이 끝난 상태라 오후에 시간이 있었다.

    윤 박사님의 연구실은 오랜만이었다. 노크하고 들어가자, 윤 박사님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신의 가이드님, 어서 오세요. 센터 생활은 어떠신가요?”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다행입니다. 커피랑 차 둘 중에서 뭐 드실래요?”

    “차요.”

    윤 박사님은 미리 차를 우려 놓았는지 찻물을 잔에 담아 가지고 왔다.

    “잘 마실게요.”

    “네.”

    윤 박사님은 한동안 일상 이야기를 하다, 슬슬 할 말이 없어질 때쯤 본론을 꺼냈다.

    “연구소에서 중요한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고 있어요.”

    “무슨 프로젝트요?”

    “B, C급 가이드를 위한 승급 프로젝트입니다.”

    회귀 전 내게 추천해 줬던 프로젝트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

    “아직은 실행 단계입니다. 그래서 그러는데, 신의 가이드님께서 다른 가이드님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곧장 답이 나오지 않았다. 평소의 나라면 윤 박사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도와드리겠다고 대답했겠지만, 가능한 한 빨리 협회를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컸기에 쉽게 승낙을 할 수 없었다.

    “죄송하지만 안 될 거 같아요.”

    “왜죠?”

    윤 박사님께서도 내가 승낙할 줄 알았는지 의외란 얼굴이었다.

    “제가 이제 바빠질 거 같아서요.”

    “그렇군요…. 아쉽네요.”

    그는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나를 보며 말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시면 말씀 주세요.”

    “네.”

    짧은 내 대답을 마지막으로 윤 박사님과의 대화는 끝났다. 나는 인사를 건네고 연구실에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가이드들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퇴사하기 위해서는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게이트 시뮬레이션을 끝내고 나오는데 익숙한 얼굴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민혁이었다.

    “신의야!”

    나를 반갑게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나 또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한달음에 그에게 다가갔다.

    생각해 보니 회귀 후에 민혁과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회귀 전이나 후나 민혁과 만나는 건 기뻤다.

    “파병 갔다가 왔는데, S급 가이드 이름이 너랑 똑같더라고! 역시 너였구나.”

    민혁은 나를 와락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포옹에도 놀라지 않고 나 또한 민혁을 껴안았다. 나라도 친구가 S급으로 각성했다면 지금의 민혁처럼 반가움을 표현했을 것이다.

    “정말 오랜만이다. 보고 싶었어.”

    “나도.”

    “어떻게 지냈어?”

    “매일 가이딩 훈련하면서 지내고 있지. 너는?”

    “나는 파병 다녀와서 한동안은 휴식이야.”

    나와 민혁은 복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길어질 거 같아 자리를 옮기려고 하는데. 가이딩 워치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확인해 보니 성요한의 호출이었다.

    “아…. 나 이만 가 봐야 할 거 같아.”

    “왜?”

    “성요한 에스퍼님 호출 들어와서.”

    “맞다, 너 성요한 에스퍼님이랑 페어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민혁은 아쉬운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마음이 좋지 않아 내가 먼저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에 또 보면 되지.”

    내 말에 민혁의 표정이 그제야 풀렸다.

    “그래, 곧 보자.”

    그렇게 민혁과 헤어진 뒤 나는 바로 가이딩실로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민혁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며칠 뒤 원재와 함께 근처 상점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내려왔을 때였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의야!”

    민혁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민혁은 여기에 살지 않았다.

    “민혁아, 여긴 무슨 일이야?”

    “나 이번에 여기로 이사 왔어.”

    언제 봐도 반가운 친구이지만, 가까운 곳으로 이사 왔다는 말을 들으니 더욱더 반가운 마음이 커졌다.

    “이사 왔으면 알려 주지.”

    “네 핸드폰 번호를 몰라서….”

    그러고 보니 민혁과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잠시만.”

    핸드폰 번호를 외우지 않아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집에 놓고 온 듯했다.

    “핸드폰 집에 놓고 온 거 같아.”

    잠깐 다시 올라갔다 올까 고민하고 있는데, 원재가 내 옷을 잡아끌었다.

    “형, 언제 갈 거예요?”

    원재와 가던 곳이 먼저였기에 민혁에게 미안하단 얼굴로 다음에 알려 주겠단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민혁아, 다음에 센터에서 보면 알려 줄게. 지금 가던 곳이 있어서.”

    “알겠어. 그리고 시간 있을 때 우리 집 놀러 와. 언제라도 괜찮으니까!”

    “알겠어.”

    민혁과 인사를 나누고 원재와 밖으로 나왔다. 민혁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 그에게 미안했다.

    “형, 저 사람 누구예요?”

    “동창이야. 이번에 센터에서 다시 만났어.”

    “친해요?”

    “음, 친했지?”

    고등학교 때는 정말 가까웠다. 이제는 그때만큼의 친밀감은 없을지라도, 여전히 친한 사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친하게 지내지 마요.”

    “왜?”

    예상치 못한 원재의 말에 살짝 놀라 그를 보자, 원재는 기분 나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형 보는 눈빛이 기분 나빠서요.”

    “아니야, 착한 애야.”

    “그래도요.”

    원재가 민혁을 안 좋게 보는 건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사람마다 자기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볼 때가 있었기에 넘어갔다.

    이 이후로 민혁을 잠깐잠깐 센터에서 마주쳤지만, 잠깐 인사를 하는 게 끝이었다.

    민혁은 나와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내가 더는 한가하지 않게 되었다.

    ***

    새해가 되어도 작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이딩을 훈련을 하고 게이트 시뮬레이션과 성요한의 가이딩을 하면서 지냈다. 성요한이 없을 때는 개인 시간을 보냈다.

    성요한은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았다. 어디에 가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사실 성요한이 없을 때가 더 편했기에 자주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오늘도 오후에 원재의 가이딩 훈련을 돕고 있을 때였다. 밖이 소란스러운 것을 느꼈다.

    왜 그런가 싶어 방에서 나와 사람들이 모여 있는 휴게실 쪽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 있어요?”

    “어? 신의 가이드님.”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에스퍼가 놀란 거 같았지만, 이내 내 질문에 답해 줬다.

    “현태운 에스퍼님께서 에스퍼 훈련을 도와주고 계세요.”

    “현태운 에스퍼가요?”

    “네. 몇 년 전부터 협회 쪽에서 부탁해 왔는데, 그동안 쭉 거절하시다 이번부터 도와주시기로 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다들 놀라고 있어요.”

    “그렇군요….”

    S급이 아닌 각성자들을 하등 생물처럼 보는 태운이었기에 그의 행동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태운이 있다는 B, C급 훈련실 쪽으로 이동했다.

    정말 현태운이 B, C급 에스퍼의 훈련을 돕고 있었다. 능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법이나, 훈련 방법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거 같았다.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진지한 모습이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종종 현태운이 내가 알던 그와 다르게 행동할 때가 있었다. 과거로 돌아왔지만, 이곳은 내가 알던 과거가 아닌 걸까? 그렇지 않고서는 태운이 저렇게 행동할 리가 없었다.

    “S급이 대단하긴 한가 봐. 공격력 수치 봐요.”

    모여 있는 에스퍼들을 따라 벽에 달린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자, 현태운의 공격력 수치가 떠 있었다. ‘측정 불가’였다.

    S급 에스퍼 중에서 현태운의 능력 수치가 가장 높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막무가내의 행동에도 협회가 가만히 있는 것이다.

    한동안 현태운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그의 파장이 내 파장에 달라붙었다. 매칭률이 높다 보니 이렇게 서로 가까이 있으면 파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곤 했다.

    현태운도 내가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내 모습을 한참 보다, 자신을 부르는 에스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음이 심란했다. 현태운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술렁였지만, 한편으로는 왜 내가 죽기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지 원망스럽고 씁쓸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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