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매주 금요일은 팀 게이트 시뮬레이션을 실행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팀장인 성요한이 자리를 비워, 팀장을 제외한 팀원들끼리만 하게 되었다.
성요한이 자리를 비운 적이 많아서 그런지 모두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팀원들은 특수 전투복을 입고 팀 게이트 시뮬레이션실로 이동했다. 나도 에너지 건을 들고 팀원들과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 에스퍼인 팀원들이 게이트 쪽 보스 마물을 처리했고 나와 같은 가이드인 팀원은 게이트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마물들을 처리했다.
에너지가 응축된 탄알은 상위 B급 마물까지는 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 강했다. 그래서 에스퍼와 달리 능력이 없는 가이드들은 게이트에서 필수적으로 에너지 무기류를 소지해야 했다.
내가 조준한 탄알에 맞은 마물은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소멸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팀원이 감탄하며 말했다.
“신의 가이드님, 너무 잘하시네요?”
“그런가요?”
“네. 나중에 개인 훈련 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좋아요.”
다른 가이드들이 마물을 한 마리 퇴치할 때 나는 세 마리를 퇴치하니 평균보다 잘하는 거 같긴 했다. 시뮬레이션이다 보니 마물들은 실제와 똑같아도 그들의 공격은 우리에게 대미지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가하다 보니 결과가 좋았다.
생각해 보니 3년간 박 팀장님과 훈련을 한 덕도 있었다. 오늘따라 박 팀장님과의 훈련이 그리웠다.
1시간 가까이 고된 훈련을 마치자, 특수 전투복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빨리 샤워하고 싶었다.
팀원들과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고 곧장 내 전용실에서 샤워했다. 물기를 꼼꼼히 닦아 내고 제복을 입고 있는데 밖에서부터 현태운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기운이 느껴지자, 며칠 전 그가 나를 찾아왔던 일이 떠올랐다. 현태운이 더는 내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했지만, 그날 왜 울었는지는 궁금했다.
전용실에서 나오자 역시나 현태운이 복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하지만 내 기척을 느끼자마자 곧장 몸을 세웠다.
“신의 씨.”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이야기하러 왔어요. 저랑 한 번만 대화 나눠 주시면 안 될까요?”
평소와 묘하게 다른 절실함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절대로 시간 많이 뺏지 않을게요.”
그의 말과는 달리 지금처럼 현태운이 와서 대화를 시도한 것이 두 손으로 세지도 못할 정도로 많았다. 그때마다 그는 늘 내 시간을 빼앗았고 말이다.
“싫어요.”
“딱 한 번만요.”
“싫다고 말했잖아요.”
나는 그를 무시한 채 복도를 걸어갔다. 그런 내 뒤를 현태운이 쫓아왔다.
“신의 씨와 대화하고 싶어요.”
끈질긴 그의 모습에 결국 걸음을 멈추고 날카롭게 말했다. 회귀 전에 그가 내게 했던 그대로.
“너랑 같이 있고 싶지 않다고!”
내 반말에 태운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회귀 전의 나도 지금의 현태운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왜? 어차피 동갑인데 반말하면 안 돼?”
“…….”
내 말에 현태운은 여전히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비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못마땅하면 너도 반말하든가.”
“신의 씨 말대로 동갑인데 반말할 수도 있죠. 편안하게 반말하세요.”
이제 슬슬 성격을 드러낼 법도 한데, 여전히 참고 있는 현태운의 모습이 회귀 전과 대비되어 더욱더 환멸을 느꼈다.
“왜 착한 척이야. 원래 이런 성격 아니잖아.”
“네?”
“센터에서 네 소문 많이 들었어.”
내 말에 태운의 얼굴이 당황으로 바뀌었다. 그는 금세 난처한 얼굴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하등급 가이드들 모욕하고, 평판도 나빠서 가이딩해 줄 가이드가 없다며.”
“…네, 신의 씨 말대로예요.”
생각해 보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주변 각성자들이 태운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태운의 다정한 모습에 속아서 듣지 않았다. 3년간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예전처럼 또 속았을 것이다.
“응.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네가 싫어.”
“…….”
내 말에 현태운이 이맛살을 살짝 구겼다. 지금까지 자기가 한 짓들을 후회하는 듯한 얼굴이라 화가 났다.
“왜 인상을 써?”
“아니에요.”
현태운은 고개를 저으며 표정을 풀고 나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이 기회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S급이라고 잘해 주는 거 같은데, 나는 너랑 가이딩할 생각 없어.”
“알아요. 저는 이제 신의 씨랑 전담할 생각 없어요. 신의 씨가 싫어하는데 억지로 하고 싶지도 않고요.”
“모를 줄 알았는데. 잘 알고 있네.”
“하지만 저는 신의 씨랑 잘 지내고 싶어요.”
“나는 싫어.”
“왜요?”
“내가 너랑 잘 지낼 생각이 없으니까.”
현태운은 어느 정도 내 말을 예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던 현태운이 맞나 싶었다.
원래는 그에게 저번에 왜 울었냐고 묻고 싶었는데, 이유를 알아도 그와의 관계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더는 무의미한 대화는 그만하고 싶었기에 무시하고 지나쳤다.
태운은 내가 쫓아오면 싫어할 것을 아는지 그 자리에 선 채로 큰 소리로 말했다.
“신의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도록 계속 노력할게요.”
그 말에 나는 코웃음 치며 복도를 꺾어 현태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
연말 파티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신년이 되었다.
원재는 드디어 성인이 되어서 기쁜지 종일 들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술을 알려 달라고 졸랐다.
나는 술은 아직 이르다고 타일렀지만, 성인이 된 원재를 축하해 주기 위해 같이 백화점에 갔다.
원재와 이렇게 나오는 것도 손에 꼽기에 나 또한 그처럼 조금은 마음이 들떴다.
“사고 싶은 거 골라. 형이 다 사 줄게.”
“정말요?”
“응.”
내 말에 원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백화점을 둘러봤다. 그 모습에 나 또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와 원재는 함께 살 것을 고르려 돌아다녔다.
하지만 둘 다 쇼핑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보니 뭘 골라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직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새 옷을 장만하고 싶다는 원재의 의견에 따라 우리는 의류 매장 쪽으로 이동했다. 거기서 원재는 고심 끝에 겨울 코트 두 벌과 지갑을 골랐다. 기뻐하는 모습이 꼭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 같았다. 나는 더 골라도 된다고 말했지만, 원재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사양했다.
“매일 입고, 가지고 다닐 거예요.”
“마음에 들어?”
“당연하죠. 저도 월급 들어오면 형 선물부터 먼저 사 줄 거예요.”
“기대하고 있을게.”
그 후로도 원재는 내 팔목을 잡고 백화점을 돌아다녔다. 쇼핑을 마친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두었던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원재는 피곤했는지 곧장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샤워하면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이제 슬슬 원재도 자립할 때였다. 하지만 아직 어렸기에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협회에서 집과 가사 도우미 등을 지원해 주니까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공장 숙소에서 혼자 지냈었다.
지금까지 퇴사 계획을 멈췄던 건 원재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원재도 성인이 되었으니 슬슬 퇴사 준비를 해야 할 때였다.
씻고 나오자 어느새 원재가 거실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입을 뗐다.
“원재야, 너도 성인이니까 이제 슬슬 독립하는 건 어때?”
내 말을 듣자마자 조금 전까지 나를 반기던 원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왜요?”
“이제 스무 살이니까 미성년자 기숙사 대신 협회에서 집을 마련해 줄 거야.”
“싫어요.”
원재는 곧장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싫어하는 모습이라 예상외였다.
“왜?”
싫은 이유가 궁금해서 그에게 되물었더니 원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형, 저 내보내려고 오늘 선물 사 주신 거예요?”
“그럴 리가 없잖아.”
원재가 오해하고 있다는 걸 느낀 나는 빨리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원재가 말을 가로챘다.
“그러면 왜 내보내려고 하는 건데요? 제가 형한테 짐이에요?”
원재는 울 거 같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니 아차 싶었다. 생각해 보면 원재는 아직 어렸다.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말을 너무 일찍 꺼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독립하라는 거 아니야. 그냥 네 생각을 물어본 거야. 네가 나랑 같이 사는 게 불편할 수도 있잖아.”
“하나도 안 불편해요. 저는 형이랑 사는 게 좋아요.”
원재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아 왔다. 손이 가엽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저 형이랑 계속 같이 살 거예요. 그렇게 하게 해 주세요.”
“…알겠어.”
불안정해 보이는 원재의 모습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을 잃은 지 반년도 안 되었다. 현재 원재 상태를 헤아리지 못한 내 불찰이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다시 혼자가 된다면 당연히 두려울 것이다. 우선 진석에게 멀지 않은 곳에 원재가 살 곳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다음, 조금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독립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표정 풀어. 네가 그러면 나 속상해.”
나는 원재의 구겨진 이마를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했다. 내 말에 원재는 인상을 풀었지만, 여전히 울상이었다.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
나는 불안해하는 원재를 한동안 다독이며 퇴사는 조금만 미뤄 두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