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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42화 (42/65)
  • 42화

    오늘은 원재와 S급 에스퍼들의 매칭 테스트가 있는 날이었다. 자연스럽게 과거에 있었던 현태운과 원재의 매칭 테스트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밥도 제대로 안 넘어가고 잠도 못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날을 기점으로 현태운과 사이도 서먹해져, 혹시라도 재테스트 결과가 높게 나오면 전담이 끊길까 봐 두려워했다.

    이번에도 두려운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현태운과 원재의 매칭률이 높았으면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어린 원재에게 현태운이라는 짐을 얹어 주는 것 같아 죄책감을 느꼈다.

    나와 원재는 매칭 테스트 대기실에서 에스퍼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원재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형, 저 매칭 테스트 하고 싶지 않아요.”

    “왜?”

    생각지도 못한 원재의 말에 되물었다. 그러자 원재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만약 높게 나오면 형이랑 떨어져서 지내야 할 거 아니에요.”

    “걱정하지 마. 지금처럼 지낼 거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내 말에 원재는 안심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걱정이 남아 있었다.

    나 또한 같은 상황을 겪었기에 그의 기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편안하게 하고 오면 돼.”

    내 말에 원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퍼가 왔는지 연구원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주원재 가이드님, 매칭 테스트실로 들어오세요.”

    연구원의 말에도 원재는 여전히 가기 싫다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결국 내가 다녀오라고 말한 뒤에야 원재는 힘없이 일어나 연구원과 함께 테스트실로 이동했다.

    원재의 첫 번째 매칭 테스트 상대는 성요한이었고, 그다음은 현태운이었다. 근처에서 현태운의 파장이 느껴졌다.

    오늘 협회에서 현태운이 올 거라는 말을 미리 들었기에 오늘은 그가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과 달리 이젠 현태운의 얼굴을 봐도 아무렇지 않았다.

    매칭 테스트는 10분 정도 걸렸기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성요한과 매칭 테스트를 끝낸 원재가 테스트실에서 나와 내게 다가왔다.

    “26% 나왔대요.”

    26%. 역시 S급과 매칭률이 높게 나오기는 힘든 거 같았다.

    “다음은 현태운 에스퍼랑 한다고 하더라고요.”

    한순간 원재의 목소리가 냉랭해졌다. 표정 또한 차가웠다. 그 모습에 매칭 테스트가 싫긴 싫나 보다란 생각을 했다.

    “빨리 테스트 끝내고 집에 가서 쉬자.”

    “네.”

    원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옆에 앉더니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잠깐 가이딩한 것뿐인데 피곤해요.”

    “나도 그랬어.”

    원재의 몸을 두드려 주며 위로하고 있는데, 갑자기 대기실 문이 열리며 현태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나와 원재의 모습에 멈칫하더니 원재를 노려봤다. 나는 그런 현태운의 얼굴을 인상 쓰며 바라봤다.

    현태운이 왔으니 이제 두 번째 매칭 테스트가 시작될 것이다. 나는 원재의 귓가에 작게 말했다.

    “빨리하고 와. 기다리고 있을게.”

    “네.”

    원재는 그대로 일어나 현태운의 옆을 지나쳤다. 현태운은 그런 원재의 얼굴을 노려보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닿자마자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내 모습을 본 현태운은 결국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

    원재가 테스트실로 가고 난 뒤, 나는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했다. 10분이 넘도록 원재가 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밖으로 나와 매칭 테스트실 앞에서 서성이며 결과를 기다렸다. 머지않아 현태운이 먼저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원재는 윤 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략 들어 보니 낙담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원재는 내가 들어온 것을 눈치챘는지 윤 박사님과 대화를 끝내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윤 박사님의 어두운 얼굴과는 달리 원재의 얼굴은 밝았다.

    “17%래요.”

    17%. 과거와 같은 매칭률이었다.

    “이제 세 번만 더 테스트하면 끝이에요.”

    “그래…. 조금만 고생하자.”

    “네!”

    원재는 다시 테스트실 의자에 앉았고 나는 대기실로 돌아왔다.

    현태운과 원재의 매칭률이 17%라면 둘이 전담 될 일은 없었다. 원재가 S급이었더라면 가능했지만, 지금은 A급이니 말이다.

    이로써 현태운은 내게 더욱더 집착할 것이다.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아 내며 원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1시간 뒤에야 원재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형, 많이 기다리셨죠?”

    “아니야. 잘했어?”

    “매칭률이 다 비슷해요. 30% 이상은 없어요.”

    “언젠간 나타날 거야.”

    “안 나타나도 돼요. 저는 형이랑 있는 게 제일 좋아요.”

    원재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어리광을 부렸다. 그리고 이제 집에 가자고 말했다. 나는 곧장 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님, 원재 테스트 끝나서 집에 가려고 하는데요.”

    - 정문에서 기다리세요. 곧 갈게요.

    “네.”

    진석의 말에 나와 주원재는 정문으로 향했다. 원재는 피곤하다며 여전히 내 몸에 기대고 있었다. 매칭 테스트는 가이딩으로 이루어졌기에 아직 파장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원재에겐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음에 가이딩 훈련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내 말에 원재는 기쁜지 내일 당장 도와 달라고 했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과거에는 현태운 옆에 있던 원재가 싫었고, 사실 얼마 전까지도 원재가 현태운의 전담이 될까 봐 거리를 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친동생같이 느껴지기만 했다. 이런 변화가 놀랍고 이상했다.

    ***

    원재와 가이딩 훈련을 하는 도중 A급 게이트 출현 알림이 울렸다.

    원재는 A급 가이드지만, 신입 가이드는 3달은 훈련받아야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원재는 아쉬워하며 내게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배웅을 받으며 가이딩 셸터로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특수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팀 전용실이 아니라 중앙 대기실에서 게이트 상황을 확인하며 성요한의 모습을 찾았다. 그런데 성요한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현태운의 모습만 보였다.

    머지않아 게이트가 열리며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늘 그렇듯 현태운이 능력을 쉴 새 없이 사용했다. 그 모습에 미간이 구겨졌다. 저러면 하루는 꼬박 기계 가이딩을 받으면서 보내야 할 텐데. 멍청한 놈이라는 말이 저절로 입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A급 게이트 중에서도 하급이었기에 긴 시간을 소요하지 않고 게이트가 닫힐 거 같았다.

    내 예상대로 현태운과 팀장 에스퍼들이 보스 마물을 집중적으로 공격하자 마물이 몸부림쳤다. 이내 보스 마물의 얼굴이 반 토막이 나며 게이트 문이 닫혔다.

    마지막 일격은 성요한의 능력이었단 걸 알 수 있었다. 게이트가 닫히자 에스퍼들이 근처 마물들을 처리하고 셸터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성요한 또한 셸터 안으로 들어왔다.

    “신의 씨, 가이딩해 주세요!”

    가이딩실로 이동하면 되는데 사람들에게 보여 주듯 성요한은 내 손을 잡아 왔다.

    “센터 가이딩실로 이동해요.”

    “힘들어요. 지금 여기서 하면 안 돼요?”

    “가이딩실로 이동하자고요.”

    어느새 셸터 안으로 들어온 현태운이 나와 성요한의 싸우는 소리를 들었는지 가까이 다가왔다.

    “싫다고 하잖아.”

    태운이 내 손을 잡은 성요한의 손을 떼어 내며 말했다. 마치 영웅처럼 행세하는 모습에 확 짜증이 올랐다. 나는 결국 태도를 바꾸고 성요한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싫다고 한 적 없는데요.”

    내 말에 성요한이 씩 웃더니 내 손을 깍지 껴 잡으며 현태운에게 보여 줬다.

    현태운은 한껏 인상을 쓴 채 나를 바라보더니, 결국 셸터 관리자에게 복귀한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신의 씨 말대로 가이딩실로 가요.”

    성요한이 내 귓가에 입을 붙이며 말했다. 나는 손을 떼어 내며 그를 노려봤다.

    “오늘은 가이딩 안 할 겁니다.”

    “왜요?”

    “싫으니까요. 가이딩하고 싶으면 기계 도움이라도 받아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팀 전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내 뒤를 성요한이 따라왔다.

    “가이딩해 줘요.”

    “오늘은 싫어요. 그리고 평정권이잖아요.”

    나는 가이딩 워치를 보여 주며 말했다. 때마침 가이딩 셸터도 센터로 이동했다.

    “신의 씨는 너무 차가워요.”

    나는 더는 답하지 않은 채 센터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정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진석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내 뒤를 성요한이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성요한에게 너무 차갑게 대했나 하는 생각을 하며 결국 고개를 뒤로 돌려 말했다.

    “내일 오후 훈련 끝나면 가이딩해 줄게요.”

    “정말요?”

    “네.”

    내 말에 성요한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나쁘지 않음을 느끼며 진석의 차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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