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나는 정부 직원의 차를 타고 협회에서 마련해 준 집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뒤에서 협회 차량이 쫓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 모습을 봤을 때 계속 쫓아올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그런 내 뒤로 정부 직원이 쫓아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랐지만, 진석이 금세 쫓아왔다.
“가이드님! 저희 대화해요!”
다행히 정부 직원이 진석을 막았지만, 그런데도 진석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말했다.
“오해가 있습니다! 협회에서 모두 가이드님 말을 따르겠다고 했어요.”
나는 답하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바라봤다. 곧장 집에서 계약서를 가지고 1층으로 내려오자, 정부 직원이 협회 에스퍼들에게 억압당한 모습이 보였다. 여기는 협회 구역이나 다름없었기에 이 상황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이 상태로 1층에서는 나갈 수 없었기에 지하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를 예상했는지 지하에도 협회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정장 차림의 안경 낀 남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예전에 공장에서 나를 잡았던 에스퍼였다.
“협회 소속 경호 1팀 팀장 김주호입니다. 지금 어디 가시는 거죠?”
“제가 어디 가는지 하나하나 이야기해야 하나요?”
날카로운 내 어조에 경호 팀장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말 안 하시면 못 가십니다.”
“말하면 보내 주긴 하시고요?”
“어디냐에 따라 다르겠죠.”
경호 팀장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위협적인 모습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정부에 가려고 합니다.”
“정부 출입은 금지되어 있을 텐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건 협회 쪽이에요.”
“이신의 가이드님은 아직 협회 사람입니다. 그리고 협회장님께서 가이드님과 대화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 와서요? 늦었습니다.”
나는 그대로 경호 팀장 옆을 지나치려고 했지만, 그런 나를 그가 붙잡았다.
“따라오지 않으시면 무력으로 데려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경호 팀장 사이에 냉기가 오갔다. 그리고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진석이 내렸다.
“가이드님!”
서둘러 내 쪽으로 다가오던 그는 경호 팀장을 보고 크게 놀랐다. 하지만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경호 팀장에게 말했다.
“가이드님께서 지금 오해하신 부분이 있으셔서 잠깐 대화하고 오겠습니다.”
진석의 말에 경호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석이 내 담당자라는 걸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진석은 그대로 내 손목을 잡고 경호 팀장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현재 상황이 좋지 않아요. 지금은 협회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진석의 말대로 협회가 나를 보내 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다른 협회도 아니고 정부로 가는 거였으니 말이다.
“정부로 가시려던 거죠?”
“네.”
“지금 협회가 어제 일로 비상이에요. 정부로 가는 건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당분간은 집에서 지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얼마 동안요?”
“일주일 안에는 가이드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일주일은 너무 늦었다. 이미 협회에 불신이 생긴 상태였기에 더는 그들과 합의점을 찾고 싶지 않았다.
“너무 늦습니다.”
“가이드님, 절 믿어 주세요.”
진석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말은 여전히 믿기 어려웠지만,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어차피 이대로라면 바로 정부에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진석의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일주일. 딱 일주일만 참으면 된다.
“알겠습니다. 약속 지켜 주세요.”
내 말에 그제야 진석은 안심한 얼굴로 경호 팀장에게 다가갔다.
“안 가신다고 합니다. 협회에는 가이드님께서 진정되시면 그때 가는 것으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협회장님께 보고하겠습니다.”
“네.”
경호 팀장은 내게 인사를 하고 수하들과 차로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감시하는지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집에 올라갑시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진석과 함께 다시 집으로 올라갔다. 진석은 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협회장과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해 본 뒤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정부에 데려다주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다음 날 협회장과 만났다. 전과 같이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 주기로 했지만, 여전히 협회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 역시 정부의 도움으로 협회에서 나오는 게 좋을 거 같았다.
협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3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나를 주시하는 눈들이 많았다. 협회 직원들은 내가 정부와 접촉한 것을 알고 있는 거 같았다.
센터에서 지낸 지 3년. 센터의 지리는 여전히 기억할 만큼 잘 알고 있었다. 협회와 센터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갈 방법은 많았다.
진석은 당분간은 돌아다니지 않는 게 좋다며 신신당부했지만, 나는 나갈 준비를 했다. 훈련받는 척하다 슬쩍 빠져나와, 관리인들이 사용하는 지하 주차장의 전기차를 이용해 혼자 정부로 갈 생각이었다.
집에서 훈련동까지 이동하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S급 가이드 전용 훈련실에 도착한 뒤로는 우선 평소와 동일하게 훈련을 시작했다.
이윽고 점심시간이 되자, 진석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 이동했다. 나는 S급 전용 식당으로 가려는 진석을 붙잡고 물었다.
“오늘은 밖에서 먹으면 안 되나요?”
“왜요? 따로 드시고 싶으신 거라도 있으세요?”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여서요. 점심은 한식이 좋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협회도 더는 주시하지 않을 거예요.”
“네.”
그렇게 나와 진석은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나는 진석이 앞서 걷도록 점점 발걸음을 늦추며 전기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있었다.
지하 1층이었으니까, 곧장 차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 정부로 가면 되었다.
진석이 차로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전기차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내가 차에 오른 순간, 진석이 내가 없음을 눈치챘다.
“가이드님!”
진석의 외침에 나는 곧장 가이드 ID 카드를 인식하고 차를 움직였다. 그리고 빠른 속력으로 진석을 지나쳐 지상으로 올라갔다. 훈련동과 센터 지리에 익숙했기에 가능한 탈주였다.
정부로 이동하는 동안에 다행히 뒤쫓아오는 차는 없었다. 정부 청사까지는 1시간 거리였지만, 속력을 낸다면 더 빨리 도착할 것이다.
중간에 협회 에스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청사에 도착할 때까지 조용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협회 차가 정부 쪽으로 오자, 경비원이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대로 정문에 차를 정차하고 내렸다. 머지않아 며칠 전에 봤던 각성자 인권 보호부 부장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연락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빨리 안으로 들어가죠.”
“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가 나를 온전히 도와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저희가 도와주는 조건으로 이신의 가이드님께서 정부 소속으로 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소속 가이드가 될 생각이 없어요.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갈 겁니다.”
“S급으로 각성한 이상은 어려울 거예요. 협회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럼 제가 정부 소속이 되지 않겠다고 한다면 도와주지 않으신다는 건가요?”
내 말에 인권 보호부 부장은 웃을 뿐이었다. 대답은 들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네요.”
“나쁜 조건은 아닐 텐데요. 현태운 에스퍼가 절대로 접근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역시 정부도 내가 현태운을 꺼리는 걸 아는 거 같았다. 어떻게 이런 정보까지 입수했는지 놀라울 뿐이다.
“괜찮습니다.”
현태운이 과거로 돌아온 내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건 싫었다. 그런 그를 피해서 도망치는 나 자신도 이제 싫었고 말이다.
나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나 혼자서 협회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내가 정부와도 협상할 수 있다는 것을 협회에 알렸으니 협회도 내 눈치를 볼 것이 분명했고,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정부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밖으로 나오자, 성요한이 정문에 서 있었다. 그는 내가 나오자 손을 흔들었다.
“어떻게 여기 있는 거 알았어요?”
“센터에서 나온 순간부터요.”
센터에서 내가 나온 것을 봤다면 충분히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붙잡지 않은 성요한의 행동에 의문이 들었다.
“제가 정부로 가는 걸 알면서도 왜 그냥 내버려 둔 거예요?”
“재미있을 거 같아서요.”
그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을 거 같다니? 그의 생각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제 센터로 가죠.”
성요한은 내가 타고 온 전기차 조수석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나는 그런 성요한을 노려보다 조수석에 앉았다. 성요한은 개의치 않다는 얼굴로 문을 닫아 주고 운전석에 앉아 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성요한이 입을 열었다.
“신의 씨는 협회에서 못 빠져나가요.”
“왜요?”
“내가 막을 거니까요.”
나는 곁눈질로 성요한을 봤다. 그는 입꼬리를 올린 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막는 이유는 뭔데요?”
“이신의 씨만큼 재미있는 사람도 처음이고, 마음에 들어서요.”
“…….”
“그리고 우리 페어잖아요.”
나는 더는 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는 내가 도망친 것을 모르는지 조용했다.
“신의 씨가 도망친 거 아무도 몰라요.”
“…….”
“가이딩해 줄래요? 여기까지 이동하느라 가이딩 수치가 조금 떨어졌거든요.”
“싫습니다.”
“가이딩해 주면 소원 한 가지 들어줄 수도 있는데.”
“그럼 해 줄 테니까 여기서 내보내 줄래요?”
“네. 그런데 내보내도 또 잡아 올 거예요.”
성요한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 모습을 본 성요한 또한 웃었다. 절대로 도망갈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 내포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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