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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24화 (24/65)
  • 24화

    눈을 뜨자마자 곧장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였다.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에 빠져나오면서 무언가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핸드폰이라 생각하며 개의치 않고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먼저 거실부터 확인했지만, 태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며 방문을 하나씩 열어 찾아보았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태운이 없다는 걸 인정한 순간 힘이 탁 풀렸다. 역시 내 부탁 같은 건 그의 안중에 없단 걸 다시금 깨달았다.

    서운함도 미움도 분노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소파에 주저앉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도어 록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자, 운동복을 입은 태운이 거실로 들어섰다.

    “일어났어?”

    “……어제 집에 들어오라고 했잖아.”

    “아침부터 잔소리냐. 그건 그렇고, 봤어?”

    태운에게 실망감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밤새 같이 있었던 사람이 주원재라고 생각하니, 치사스러운 질투심이 다시금 일어났다.

    “뭘 봐. 주원재 축하 파티?”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S급끼리 붙여 놓으면 보기 좋으니까 계속 행사마다 둘이 불러. 내 전속까지 주원재로 바꾸겠다고 하더라.”

    태운은 가볍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숨은 턱턱 막혔다.

    “넌 뭐라고 했는데?”

    “좋다고 했지.”

    태운의 말에 기어이 숨이 콱 막히며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컥컥거리자, 그제야 태운이 내 곁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괜찮아?”

    그는 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런 태운의 상의를 꽉 쥔 채 심호흡하고 있을 때였다. 태운의 팔에 커뮤니티에서 봤던 각성자 커플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내가 저 팔찌에 대해 말했을 때는 비웃고 지나갔으면서…. 주원재와 맞춘 것이 분명했다.

    “장난이야. 얼굴 풀어. 그리고 너 어제….”

    겨우 정상적인 호흡으로 돌아왔는데, 팔찌를 본 순간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숨이 다시 거칠어졌다.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다. 떨리는 내 손에 잡힌 태운의 상의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야, 너 왜 그래. 장난이라고 했잖아.”

    눈물이 가득 차오르며 앞이 흐려졌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서 S급이 되어도 태운은 예전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걸 말이다.

    태운의 팔에 채워진 팔찌를 본 순간, 나를 지탱해 오던 것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더는 태운을 기다리며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3년이 넘는 시간을 쉬지도 않고 태운의 마음에 들도록 훈련하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젠 더는….

    “나… 나 그만할래.”

    “뭐?”

    태운은 내 말에 이맛살을 확 구기며 물었다.

    “나 이제 네 전속 같은 거 안 할 거야.”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떨렸다. 3년간 승급을 위해서 몸이 망가지는 것을 무시하며 참아 오던 스스로가 떠올랐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승급하면 태운이 나를 조금이라도 돌아봐 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S급 가이드 주원재로 인해 이미 내게 가망이 없단 걸 깨달았다.

    불현듯 처음 태운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나를 향한 다정한 눈빛과 매칭 테스트 때 기뻐하던 얼굴. 연인처럼 늘 나를 다정히 안고 있던 단단한 몸, 따뜻한 체온과 손길. 등급 결과가 나올 때까진 나는 정말 행복했었다.

    그 잠깐의 행복이 뭐라고, 정반대로 차갑게 바뀌어 버린 태운을 보면서도 그의 다정함을 좇았다. 무려 3년을….

    “뭔 개소리야.”

    내가 전속을 그만둔다고 하면 기뻐할 줄 알았는데 태운은 정색하며 말했다.

    “그만한다고.”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에 태운의 얼굴이 금세 걱정으로 물들었다.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는 거야?”

    “너랑 있는 거 이제 지쳤어.”

    내가 노력한 만큼 태운 또한 마음을 열어 줬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다.

    “이신의, 왜 그러는지 똑바로 말해 봐. 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거든.”

    “더는 너랑 대화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태운과 할 이야기가 없었다. 그저 지금 당장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내가 나가려고 하자, 태운이 내 팔목을 단단히 잡았다.

    나는 곧장 태운의 손을 쳐 내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가이딩 워치에서 긴급 알림 소리가 울려 퍼졌다.

    <221구역 S급 게이트 발생. S급 게이트 발생.>

    예상치 못한 S급 게이트 발생에 헛웃음이 나왔다. 3년간 S급 게이트는 본 적이 없었다. 태운과는 정말 악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이 상황에 S급 게이트라고?”

    이대로 태운과 끝내고 싶었지만, 게이트가 열린 것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 태운의 욕에도 나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게이트를 끝으로 태운과의 관계도 전속도 끝낼 거다.

    “이번 게이트까지만 하고 끝내자. 이 집에서도 나갈 거고, 너도 두 번 다시 안 볼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한 뒤 현관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태운이 내 손목을 다시 잡아 왔다.

    “오늘은 집에 있어.”

    “싫어. 갈 거야.”

    “가지 마. 너 몸 상태 안 좋아 보여.”

    평소의 태운답지 않게 내 걱정을 했다. 원래라면 그의 말에 좋아했을 텐데 지금은 가증스럽기만 했다.

    “간다고! 그리고 내 몸에 손대지 마.”

    내 고함에 태운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도 내 모습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럼, 공간 이동 할 테니까 가이딩 셸터에만 있겠다고 약속해.”

    약속하지 않으며 보내 주지 않을 걸 알기에 나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내 모습에 안심한 표정을 지은 태운의 공간 이동으로 우리는 바로 셸터에 도착했다.

    이미 셸터 안에는 몇 명의 가이드가 있었고, 우리처럼 공간 이동 해서 셸터로 이동한 에스퍼와 가이드들도 보였다.

    벽면을 한가득 채운 스크린에 221구역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221구역은 회사 밀집 구역이었는데, 점심시간과 겹치면서 도로에 대피하고 있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밤처럼 어두운 하늘에는 붉은색 게이트가 떠 있었다.

    이동식 카메라가 S급 게이트를 천천히 클로즈업했다. 게이트 이론에서 배웠던 7대 악마들의 얼굴이 새겨진 S급 게이트였다. 이 게이트에 대해서는 딱히 알려진 게 없어서 더 위험하다던 설명이 떠올랐다.

    머지않아 붉은색 문이 열리면서 사람의 배를 가른 것처럼 검붉은 액체가 진득하게 떨어져 내렸다.

    S급 게이트 때문인지 셸터의 분위기도 평소와 달리 고요했다.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

    평소와 달리 내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자, 태운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내려다봤다.

    “신의야, 대답 좀 해 줘.”

    내가 끝까지 답이 없자, 태운은 빨리 끝내고 오겠다고 말하며 셸터 관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갔다.

    생각해 보니, 태운이 3년 만에 다시 성을 빼고 불러 줬다. 그동안 바랐던 일 중 하나였는데 기쁘진 않고 실망감만 느꼈다.

    먼저 셸터에 와 있었는지, 태운이 나가기 무섭게 주원재가 내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형, 오늘 생일이라고 들었는데 축하해요. 하필 생일에 S급 게이트가 열려서 속상하실 거 같아요.”

    “…….”

    나는 주원재의 말에 답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봤다.

    “형, 왜 대답이 없어요?”

    “…….”

    “오늘 기분 안 좋으시구나…. S급 게이트 닫히면 제가 생일 선물 드릴게요.”

    내가 여전히 답이 없자, 주원재는 결국 곁에 있다가 천천히 멀어졌다.

    나는 평소와 달리 게이트 실시간 모니터에도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내린 채 바닥을 바라봤다.

    빨리 게이트가 닫혀 태운과 끝내고 싶었다. 지금까지 모든 걸 견디며 인내해 왔다. 하지만 더는 무리였다.

    셸터 안은 고요했지만, 간혹 헛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곁으로 누군가 다가오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로 민성 선배란 걸 알 수 있었다.

    “신의 씨, 현태운 에스퍼 상태가 좋지 않아 보여요.”

    그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모니터를 하나씩 확인하며 태운의 모습을 찾았다. 허공에 뜬 태운의 모습은 평소와 달리 위태로워 보였다. 능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말이다.

    태운의 손에서 나온 화살같이 날카로운 불길들이 보스 마물에게 정확히 꽂혔지만, 대미지를 주진 못한 거 같았다.

    그렇게 태운의 불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더 큰 불꽃으로 자신을 휘감았다.

    하지만 불꽃이 커질수록 태운의 상태가 불안정해 보였다. 후퇴하지 못해 맞서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인 듯했다. 아마 태운도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이 상태로는 위험했다.

    결국 우려대로 가이딩 워치에서 에스퍼 폭주 주의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태운과 지내면서 처음이었다.

    <폭주 주의. 신속히 에스퍼에게 가이딩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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