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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20화 (20/65)
  • 20화

    몸의 이상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원인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기계에서 만들어진 파장을 이용해 가이딩 훈련을 받았는데, 그 파장이 몸 곳곳에 남아 신경을 건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가이딩할 때 유독 기계 파장들이 날뛰어 이상 증상이 더욱더 크게 나타나는 것 같다고 했다.

    기계 파장들을 완전히 빼내야 몸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해서 당분간 기계 가이딩 훈련과 가이딩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 이대로 기계 파장들이 제거되지 않아 태운의 가이딩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걱정이 깊어졌다.

    3년간 기계 가이딩을 했기에 제거가 될 때까지 얼마큼 시간이 걸릴지도 알 수 없어 막막하기도 했다.

    센터 의사의 말과는 달리 윤 박사님께서는 일시적 증상이며 기계 파장은 금방 제거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셔서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한번 쓰러졌기에 불안했다.

    가이딩 훈련은 못 하지만 다른 훈련들은 할 수 있었기에 훈련실에서 체력 단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훈련실 문이 열리며 지훤이 들어왔다. 뛰어왔는지 얼굴이 붉고 숨이 거칠었다.

    “신의 형! 지금 S급 가이드 각성자 나왔대!”

    S급 가이드 각성자는 13년 만이었다. 지훤의 말에 훈련실이 술렁였다.

    “정말?”

    “응. 지금 현태운 에스퍼님이랑 그 가이드랑 매칭 테스트 들어간다고 하던데, 형도 알아야 할 거 같아서.”

    지훤의 말에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S급 가이드 각성자가 나타나면 S급 에스퍼와 매칭 테스트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태운은 S급 가이드가 나타나면 곧장 나와 전속을 끊겠다고 말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는 이 순간만 기다리고 있었을 터였다.

    이번 매칭 테스트로 태운과 S급 가이드가 매칭률이 높게 나오면 나는 바로 버림받을 것이다.

    매칭 테스트를 하기 전 태운을 설득한다면 테스트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빨리 그를 만나야 했다.

    “어디서 매칭 테스트 하는 거야?”

    “센터 본관에서.”

    나는 서둘러 지훤을 따라 센터 매칭 테스트실로 뛰어갔다. 이미 복도는 연구원들과 에스퍼, 가이드들로 꽉 차 있었다.

    S급 에스퍼와 S급 가이드의 매칭이었다. 누구나 기대하고 있는 매칭일 것이다.

    “매칭 테스트 시작된 거예요?”

    지훤이 연구원에게 묻자,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같은 등급끼리의 매칭은 매칭률이 높게 나올 확률이 컸다.

    몇 명 사람들이 나를 알아봤는지, 안쓰럽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초조하게 매칭 테스트실을 보고 있자, 민성 선배가 나를 알아보고 곁으로 다가왔다.

    “신의 씨, 왔어요?”

    “네….”

    그는 내 불안을 눈치챘는지 나만큼 높게 나오지 않을 거라고 위로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모두 높은 매칭률이 나올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마주 잡은 채 부디 매칭률이 낮게 나오길 바랐다.

    ‘제발.’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문이 열리며 낯익은 윤 박사님의 모습이 보였다.

    “17%.”

    그의 말에 주변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17%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벽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안도와 함께 태운을 향한 원망이 이어졌다.

    내가 가이딩을 못 하는 상태가 되자 곧장 매칭 테스트를 진행한 태운의 무정한 행동이 야속했다. 적어도 며칠 뒤에 하지, 이렇게 빠르게 매칭 테스트를 받다니. 매정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태운에게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픈 나를 위해 병간호하던 그였다. 그 모습에 조금이라도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말대로 나는 그저 단순히 가이딩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주변에서 재테스트를 하자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숨이 턱 막혀 왔다.

    윤 박사님도 재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자리에서 벗어났다. 뒤에서 민성 선배와 지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태운을 향한 배신감으로 울분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고개를 내린 채 걸어가고 있는데, 목에 걸려 있는 ID 카드가 보였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B급이었다. 이대로 S급 가이드에게 태운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프로젝트 훈련실로 발길을 돌렸다. 머릿속에는 빨리 승급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

    의사의 말대로 가이딩할 때마다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이 맞았다. 가이딩 훈련이 끝나고 1시간이 넘도록 코피가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집에 도착할 때는 피가 멈춰서 다행이었다. 나는 소파에 널브러져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 냈다.

    태운이 S급 가이드에게 간다면, B급인 나는 그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와 내 매칭률이 높다는 것이 그를 붙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명분이었다.

    태운이 돌아왔는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그가 들어온 것을 반겼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불도 안 켜고 뭐 해.”

    내 마음도 모른 채 태운은 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오늘 매칭 테스트 받았어…?”

    “벌써 퍼졌냐? 어.”

    “왜? 왜 받았어?”

    쉴 새 없이 떨리는 내 목소리에는 태운을 향한 비난이 가득했다.

    “S급 가이드인데 당연히 받아야지.”

    “내가 있잖아.”

    “네가 있어도 매칭은 할 수 있어. 그리고 의무고.”

    평소에는 의무 같은 거 따지지 않으면서….

    “지금 상태 안 좋아 보이는데 빨리 자라.”

    “…….”

    태운은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 모습에 참아 왔던 울분이 기어코 터져 태운을 힐난했다.

    “어차피 너랑 매칭률 높게 나오는 가이드는 나뿐이야.”

    “뭐?”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태운이 멈춰 서더니 나를 바라봤다.

    “그 S급 가이드랑 수십 번, 수백 번 매칭 테스트 해 봐. 높게 나오나.”

    나는 처음으로 태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내 모습에 태운이 인상을 쓰며 가까이 다가왔다.

    “너 미쳤어? 술 마셨냐?”

    “그만 포기하고 받아들이라고!”

    “내가 왜 포기해.”

    “매칭률이 17%면 가이딩 제대로 안 되는 거 알잖아. 내가 수십 배는 너한테 도움이 돼!”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태운의 넥타이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 내 마지막 발악이었다.

    점막 가이딩은 애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지금까지 수백 번 그와 손을 잡고 안고 잤지만, 애정은 나 혼자 생긴 것 같았다. 지금의 행위로 태운에게도 나를 향한 작은 애정이 생기길 바랐다.

    태운은 나를 밀치려고 했지만, 나는 꽉 잡은 채 혀를 그의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2년 만의 입맞춤이었다. 그리고 내 첫 키스이기도 했다.

    내 행동에 놀란 태운이 결국 나를 떼어 냈다.

    “너 미쳤어?”

    “너한테 제대로 가이딩해 준 적 없어. 나도 S급처럼 가이딩할 수 있다고!”

    “지금 가이딩하면 안 된다고 의사가 그랬잖아!”

    “상관없어!”

    나는 그대로 태운을 소파에 밀쳤다. 그리고 그의 위에 올라탄 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랑 지낸 게 3년이야.”

    태운과 함께한 지 3년이었고, 그를 위해 쉬는 날 없이 종일 가이딩 훈련을 하며 승급만 생각했다.

    “이신의, 비켜.”

    “싫어.”

    나는 얼굴을 내려 태운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은 거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부드러웠다. 혀도 마찬가지였다.

    태운의 혀와 내 혀가 엉기고 서로의 숨과 타액이 뒤섞였다. 키스는 처음이었고 서툴렀지만 내 파장이 태운의 파장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몽롱하고 기분 좋았다.

    하지만 이내 찌릿하고 관자놀이에 두통이 일었다. 태운도 느꼈는지 내게서 얼굴을 떼어 냈다.

    “괜찮아?”

    정신이 차려지자 태운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평소와 달리 그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이건 가이딩이 아니라 성추행이었다.

    “미안.”

    나는 서둘러 태운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의 말대로 내가 미친 거 같았다. 화가 난다고 동의 없이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되었는데.

    그대로 현관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태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이신의, 어디 가.”

    나는 답하지 않은 채 현관 밖으로 나왔다. 그런 내 뒤로 태운이 따라왔지만, 그를 무시한 채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이신의, 어디 가냐고!”

    “아까 일은 미안해. 다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됐고, 안으로 들어와.”

    “싫어. 오늘은 혼자 있고 싶어.”

    “혼자 있고 싶으면 네 방에서 혼자 있어. 나가지 말고.”

    “나갈 거야.”

    나는 태운을 보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그런 나를 태운이 기어코 돌려세웠다. 나는 그런 그의 손을 쳐 내며 소리쳤다.

    “혼자 있고 싶다고!”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태운은 놀란 얼굴이 되어 아무 말도 못 한 채 나를 바라봤다.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엘리베이터 오르자마자 닫힘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곧장 문이 닫히며 태운의 모습도 사라졌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물을 멈춰 보려고 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꼴사납고 비참했다.

    엘리베이터 내려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갈 곳이 없었다.

    그저 다리가 향하는 곳으로 걷다, 센터가 떠올랐다. 나는 결국 센터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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