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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16화 (16/65)

16화

<32구역에서 A급 게이트 출몰, A급 게이트 출몰.>

B급으로 승급되고 처음 출몰한 게이트였다. 게이트 출몰이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오직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C급일 때는 현장 가이딩이 불가능했기에 늘 가이딩실에서 기약 없이 태운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01S팀 전용 특수 전투복을 입고 민성 선배와 센터 정문으로 향했다.

“긴장되진 않아요?”

“네, 괜찮아요.”

긴장되긴 했지만, 팀원들과 게이트 시뮬레이션도 많이 해 봤고 훈련도 꾸준히 받았기에 자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다른 가이드들이 가이딩 셸터 안에 있었다.

예전에 본 적 있는 A급 가이드들이었다. 그들 또한 내 사정을 건너 들었는지, 모두 친절하게 인사해 줬다. 그리고 함께 현장 가이딩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말도 해 주었다.

종종 셸터 안에서 공공연하게 높은 등급의 가이드가 낮은 등급의 가이드에게 텃세를 부린다고 들었는데 나는 겪어 보지 못했다. 모두 친절했고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민성 선배와 팀 전용실로 이동했다.

팀에 소속된 가이드들은 셸터 안에 따로 팀 전용실이 있었다.

머지않아 가이딩 셸터가 게이트 근처로 이동했다. 셸터는 보호 배리어로 둘러싸여 있어 마물들과 에스퍼들의 능력에서 보호되었다.

나는 전용실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게이트의 실시간 상황을 살폈다. 태운은 불 속성 계열 에스퍼였지만, 자연 계열 능력 또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가 쉴 새 없이 번개를 내려치는 걸 보며 가이딩 워치를 확인했다. 가이딩 수치가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매번 태운이 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수치가 줄어드니 늘 초조하고 불안했다. 25% 아래로 수치가 떨어지면 폭주를 방지하기 위해 가이딩 워치에 장착된 수면 칩이 체내에 들어가 강제 수면 상태가 되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대치 도중 마물에게 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25%가 되기 전에 돌발 폭주가 시작되면 수면 칩도 통하지 않았다.

태운이 폭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언제 폭주할지 모르기에 늘 가이딩 수치를 주시했다.

다행히 가이딩 수치가 40% 아래로 떨어지기 전, 보스 마물이 소멸했다.

게이트 문이 닫히는 모습을 바라보다 며칠 전 배운 게이트 지식이 떠올랐다. 보스 마물이 죽고 나서도 게이트 문이 닫히지 않으면 게이트 안쪽의 또 다른 보스 마물을 죽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안쪽까지 들어가는 일은 드물었기에 다행이었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80%는 못 나온다고 했다.

게이트가 닫히자, 에스퍼들이 주변 상황을 정리하고 셸터로 돌아왔다. 하지만 태운은 그대로 사라졌다. 원래 에스퍼들은 전투가 끝나면 셸터로 돌아와야 하는데 오로지 태운만 그러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셸터에 있다는 걸 알고 피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홀로 자리에 앉아 민성 선배가 팀원 에스퍼를 가이딩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가이딩을 할 때 에스퍼와 가이드는 마치 연인 같이 서로를 안았고, 가이딩 수치가 많이 떨어졌을 때는 거리낌 없이 키스했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부끄러웠지만,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익숙한 것 같았다.

셸터 안의 가이드와 에스퍼들이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고 걱정한다는 것을 눈으로 봐도 느낄 수 있었다.

텔레포트가 가능한 에스퍼들은 어느 정도 가이딩 수치를 채우고 나면 가이드와 접촉한 상태 그대로 함께 전용 가이딩실 또는 동거하는 집으로 이동했다.

가이딩하면 할수록 애정이 생겨난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 말을 믿지 않았는데 이 모습들을 보니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 태운만 예외인 듯했다.

나 혼자 셸터에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와도 섞이지 못한 채 동떨어진 상황이 울적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센터로 이동한 가이딩 셸터에서 나오니, 담당자님이 정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태운이 이미 집으로 돌아간 걸 알고 있었다.

“현태운 집에 있어요. 집으로 갑시다.”

담당자님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팀원들에게 퇴근을 알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태운의 날카로운 파장이 집 안에서 쉴 새 없이 날뛰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태운의 침실을 열고 안을 보자, 태운이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능력 사용에 의한 부작용으로 혈관들이 다 튀어나와 있고 온몸이 붉고, 보랏빛이었다. 마치 혈관들이 다 터진 모습이었다.

태운은 가이딩 약물을 복용했는지 협탁과 바닥에 약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있는데 왜 약에 의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왜 나를 다시 집에 데리고 왔을까. 한편으로는 ‘내가 그렇게 싫나?’라는 생각에 더욱더 우울해졌다.

나는 B급 가이드 중에서도 파장 컨트롤 능력이 높다고 나왔다. 가이딩 컨트롤 능력만큼은 A급이라는 뜻이었다. 태운이 나를 믿고 가이딩을 맡겼으면 했다.

게이트에 다녀온 태운은 어느 때보다도 예민한 상태였기에 평소라면 나도 내 방으로 가서 몸을 사렸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B급이 되고 첫 게이트 가이딩이기도 했기에 오늘만큼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태운의 곁으로 다가가자 바늘처럼 날카롭고 매섭게 날뛰는 파장들이 느껴졌다. 기계 가이딩 훈련을 했을 때 비슷한 파장을 겪어 본 적이 있어 망설임 없이 태운의 손끝부터 천천히 내 손으로 덮었다.

태운의 고통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평소라면 조금이라도 파장이 잠잠해져야 하는데 여전히 날뛰기만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릴 듯했다.

“…뭐야, 너.”

약에 취해 잠들었다고 생각했던 태운이 힘겹게 눈을 뜬 채 나를 노려보았다.

“가이딩 중이야.”

“필요 없어.”

“너 지금 가이딩 수치 위험권이잖아.”

“필요 없다고 했잖아!”

지금 가장 가이딩이 필요하면서 억지를 부리는 그가 바보 같았다. 미련한 자존심을 세우는 태운의 모습에 나는 그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그런 내 손을 태운이 뿌리치려고 했지만, 약에 취해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뿌리치지 못했다.

내 욕심일지라도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태운에게 가이딩하고 싶었다.

“위기권만 넘기만 그만할게. 제발 가만히 있어.”

나도 다른 가이드들처럼 에스퍼인 태운에게 도움과 안정을 주고 싶었다.

태운은 약에 취해서인지 아니면 내 말을 이해했는지 다행히 가만히 있었다. 나는 팔목을 잡았던 손을 풀어 그대로 태운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이런 내 행동에도 태운은 지친 얼굴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게이트에 다녀오면 대체로 이랬기에 능력을 조금씩 조절하라고 말해도 태운은 늘 능력을 남발했다.

나는 가이딩 워치를 보면서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수치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확실히 C급 때와는 달리 B급이 되니 가이딩이 훨씬 능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사실 그래야만 했다. 종일 가이딩 기계에 온몸이 감긴 채 훈련받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침대맡에 앉아 태운의 몸을 훑어봤다. 이내 그의 아랫도리가 튀어나온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고개를 홱 돌렸다. 왜 내가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에스퍼가 폭주 상태에 가까워지면 피가 끓어올라 흥분 상태가 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마음이 술렁였다. 그리고 나 또한 얼굴에 피가 쏠리며 아랫배에 위화감을 느꼈다.

에스퍼와 가이드가 서로 각인한 상태면 관계를 통해서 가이딩할 수 있었지만, 나와 태운은 각인하지 않았으니 그의 것을 풀어 주고 싶어도 이렇게 접촉 가이딩만 할 수 있었다.

한때는 태운과 각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일은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다시 가이딩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태운의 중심을 흘끗 바라봤다.

태운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아니면 자세가 불편했는지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 모습에 아쉬워하는 나 자신에게 넌더리가 났다. 아무래도 욕구 불만인 것 같다.

생각해 보니, 혼자 한 지 오래되었단 걸 눈치챘다. 늘 훈련에 찌들어서 집에 오면 곧장 곯아떨어지곤 했다. 쉬는 날도 거의 없었고 승급 훈련에만 집중해야 했기에 욕구를 잊고 살았다.

자기 위로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2시간 가까이 말없이 태운의 가이딩을 했다. 그리고 안정권에 진입했을 때 손을 떼어 냈다.

“오기 부려서 미안해. 잘 자.”

태운은 말이 없었지만, 다행히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에 안심하며 나 또한 더는 말하지 않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가이딩을 잘하게 되면 태운도 조금은 내게 의지할 거라 생각했다. 그도 오늘 내 가이딩이 달라졌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태도는 여전히 싸늘하기만 했다. 내가 아무리 능숙해진다 한들 내 도움은 받지 않겠다는 것처럼.

다시 서러움이 밀려왔다. 울고 싶지 않은데 조금 전 셸터에서 사랑받던 가이드들의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이 너무나도 대비되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울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지만,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눈물이 나왔다.

잊으려고 해도 상냥했던 태운의 모습이 잊히지 않은 채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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