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이신의 가이드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특별하고 멋진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 에스퍼·가이드 협회]
아침에 일어났을 때, 협회에서 온 생일 축하 메시지로 내 생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프신 뒤로는 생일을 챙긴 적이 없는데 오늘만큼은 태운과 함께 보냈으면 했다. 하지만 태운은 아침부터 외출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생일 축하를 받고 싶었지만, 너무 큰 바람이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생일 기분을 내기 위해 담당자님께 허락받고 밖으로 나왔다. 조각 케이크를 사 먹을 생각이었기에 근처에 있는 큰 마트로 향했다. 마트 안의 베이커리에서 케이크를 사고 다시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베이커리 내부 쇼케이스 안에는 다양한 케이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조각 케이크를 사려다가, 태운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작은 홀 케이크를 구매했다. 어머니께서 생전 좋아하시던 감도 함께 샀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가벼웠다.
집에 다시 돌아왔을 땐 태운이 아니라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셨다.
“가이드님, 오늘 생일이세요?”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케이크 케이스를 보고 단번에 눈치챘다. 그렇다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축하와 함께 점심에는 미역국을 끓이겠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감사를 전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점심이 지나고 저녁 시간이 지날 때까지 태운은 들어오지 않았다.
주말엔 가이딩 훈련 일정이 없어서인지 시간이 너무나도 느릿하게 지나갔다. 센터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생일에는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번에 구매한 ‘S급 가이드가 되는 가이딩 훈련 방법’이라는 책을 읽으며 태운이 오기를 기다렸다.
태운이 없으니 집 안이 너무나도 고요하고 허전했다.
그렇게 밤 10시가 되었을 때, 결국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냈다. 케이크만큼은 태운과 먹고 싶었는데 이대로라면 태운은 오늘 아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더 늦기 전 나 혼자라도 축하하고 케이크를 잘라야 할 것 같았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나 혼자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서글퍼서 소원만 빌고 불을 껐다.
소원은 A급 가이드가 되는 것이었다. S급은 솔직히 바라지도 않았고 A급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케이크를 조각내어 태운의 몫을 남겨 놓고 내 몫의 케이크를 먹었다. 포크로 한 입 떼어 먹자, 입 안 가득 생크림의 단맛이 느껴졌다.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케이크를 다 먹고 정리하고 있는데 현관 도어 록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태운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정리하던 손길을 멈추고 현관 복도를 바라봤다. 머지않아 태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금세 내가 있는 쪽까지 다가왔다.
“뭔 케이크야.”
그는 식탁 위에 올려진 케이크 케이스를 턱짓하며 물었다. 나는 작게 내 생일이라고 말했다.
“저 오늘 생일이에요.”
내 말에 태운은 여전히 관심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가슴이 욱신거리며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서글퍼졌다.
“케이크 드실래요…?”
“싫어.”
태운은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다시 돌아봤다.
“너 언제까지 존댓말 할 거냐?”
“네?”
예상치 못한 물음에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너 나랑 동갑이잖아.”
“반말해도 돼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럼… 반말할게요.”
내 말에 태운은 답하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지만, 그의 말이 내게는 선물같이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침울해져 있었던 기분이 다시 살아나는 걸 느꼈다. 사람의 말 한마디로 이렇게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단 걸 오늘 처음 알았다.
그리고 다음 날, 주방에서 케이크를 마저 먹으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케이크가 어제보다 반은 줄어들어 있었다. 아주머니께 여쭤봤지만, 그녀는 먹지 않았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아니라면 먹을 사람은 태운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각성자 훈련동은 센터 뒤에 있었는데 층마다 사용하는 등급이 달랐다. 지하는 A급과 S급이 사용하고, 그 외의 등급은 지상층을 사용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로비에 모여 있었다. 로비 모니터에는 S급 게이트 시뮬레이션실이 한창 중계되는 중이었다.
시뮬레이션실에는 태운과 몇 명의 A급 에스퍼가 있었다. 태운은 센터에서 만들어 낸 마물을 공격하고 있었다.
불 속성 계열인 태운은 쉴 새 없이 불꽃을 내뿜었다. 그의 손길이 뻗칠 때마다 마물의 몸이 불타오르며 결국엔 재가 되었다.
하지만 마물은 없애도 없애도 게이트 안에서 계속해서 나왔다. 끝도 없는 마물의 모습에 태운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력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그리고 가이딩 수치 또한 떨어졌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아도 가이딩 수치가 훅 떨어졌을 때가 있었는데 그게 다 훈련 때문이었단 걸 알 수 있었다.
로비에 있던 가이드들과 에스퍼들은 감탄하며 태운을 바라봤다. 나 또한 몰래 핸드폰 카메라로 태운의 사진을 찍었다.
태운이 훈련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은 나는 정신을 차리고 훈련실로 이동했다. S급인 태운도 이렇게 노력하는데 나는 몇 배로 더 노력해야 했다.
오늘은 쉬는 것도 잊고 가이딩 훈련을 받았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모든 훈련을 마치고 담당자님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여기서 뭐 하냐?”
태운의 목소리에 서둘러 뒤를 돌아보자, 검은색 제복을 입은 그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담당자님 기다리고 있어.”
처음 태운에게 반말할 때는 어색했는데 계속 사용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졌다.
“진호 형 번거롭게 하지 말고 따라와.”
태운은 짧게 말하고 그대로 나를 지나쳐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태운을 따라가자, 센터 앞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차가 보였다. 이렇게 주차해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머뭇거리다 조수석에 올랐다.
태운은 내가 안전띠를 매는 걸 확인한 뒤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몰래 태운의 가이딩 수치를 확인했다. 51%였다.
나는 조용히 태운에게 방사 가이딩을 했다. 아마 태운도 그것을 알아차렸겠지만,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함께 집으로 향했다.
태운과 함께 퇴근하는 건 내가 바라던 일상 중 하나였기에 그날은 종일 미소가 지어졌다.
***
태운의 곁에 있기 위해 열심히 승급 테스트를 준비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가이딩 훈련실에서 지냈고 내가 훈련하는 동안 태운은 국외 게이트 파견을 나갔다.
나도 함께 파견 가고 싶었지만, 여전히 내가 C급이라서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태운이 나를 데려간다고 하면 갈 수 있을 텐데…. 여전히 내게 마음을 열지 않는 그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하지만 태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C급 가이드인 나와 다니는 것만으로 체면이 깎일 수도 있었기에 그의 행동이 이해도 되었다.
태운이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나는 밤낮 가리지 않고 가이딩 훈련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꾸준히 등급 재심사 테스트를 받았다.
그동안 약간의 차이로 승급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등급 테스트를 마치고 담당 연구원이 기쁜 얼굴로 내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모든 항목에 B라고 쓰여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단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기다리던 승급 결과를 보니 마음이 너무나도 벅차올랐다. 그리고 빨리 태운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오늘은 태운이 귀국하는 날이었기에 훈련을 쉬고 프린트한 등급표를 손에 쥔 채 그를 기다렸다.
담당자님께 곧 태운이 집에 도착한다는 문자가 왔을 때는 안절부절못한 채 거실을 돌아다녔다.
머지않아 태운이 돌아온 걸 알려 주듯 도어 록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계속 기다렸기에 너무나도 반가웠다.
나는 등급표를 다시 확인했다. B급이었지만, 그래도 C급일 때보다는 태운이 자상하게 대해 줄 것이라 믿고 싶었다.
“뭐 하냐?”
어느새 거실로 들어선 태운이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그제야 자세를 똑바로 하고 태운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왔어?”
“어.”
태운은 짧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 그를 서둘러 잡았다.
“나 이번에 등급 재심사받았어.”
내 말에 다행히 태운이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서둘러 등급표를 들고 그에게 보여 주었다.
“B급이래!”
“고작 B급을 자랑이라고 말하냐?”
태운이 B급이라는 단어를 혐오스럽다는 눈길로 보더니 나를 향해 비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미소 짓고 있던 내 입가가 천천히 일자로 굳어졌다. 이런 반응을 예상 못 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차가운 반응을 마주하니 서운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 잘 거니까 방해하지 마.”
분명 떨리는 목소리가 나올 거 같아 고개만 작게 끄덕이자, 태운이 짧게 혀를 차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힘없는 걸음으로 소파에 앉아 등급표를 바라봤다. 역시 B급으로는 예전의 태운을 찾을 수 없었다. A급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과 똑같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한없이 기분이 우울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