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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급 가이드는 이만 퇴사합니다-7화 (7/65)
  • 07화

    태운은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가라는 그의 말에도 나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던 태운이었기에 이대로 그와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못한 채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태운 씨, 저희 매칭률이 높아서 제가 등급이 낮아도 가이딩할 때 지장이 없대요.”

    “…….”

    애써 말을 건넸지만 태운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나는 마음이 더욱더 불안해져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저 잘할 수 있어요.”

    “어떻게 C급이랑 매칭률이 83%지?”

    태운은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내가 S급일 것이라 확신했는데 C급을 받으니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센터장님께서 제가 C급이라도 태운 씨에게는 S급만큼의 가이딩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번에 태운 씨 전속 가이드 계약도 했고요.”

    “입 다물어.”

    나는 태운의 말에도 여전히 말을 멈추지 않은 채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이대로 말을 멈추면 그와 더는 대화하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저 말고 태운 씨랑 매칭률 높은 가이드 없었잖아요.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그래, 네 말대로 맞는 새끼가 단 한 명도 없었어.”

    “저번에 말씀했던 대로 지금 서약하러 갈래요? 서약하면 가이딩이 더 잘되잖아요.”

    나는 태운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태운은 더러운 것이 닿은 것처럼 내 손을 강하게 쳐 냈다.

    “…태운 씨, 왜 그래요?”

    “나가라고.”

    “왜요…?”

    나가라는 태운의 말도, 냉담한 모습도 믿고 싶지 않았다.

    “더는 너랑 이렇게 마주할 필요가 있어?”

    “태운 씨…. 왜 그러는 거예요?”

    C급이라곤 하지만 매칭률이 83%였고 가이딩도 잘되는데 태운이 왜 이렇게 차가운지 모르겠다. 그의 차디찬 모습에 결국 목울대가 울컥하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꺼져, 네 얼굴 보기 싫으니까.”

    나를 향해 욕설을 뱉는 태운의 모습에 믿을 수 없는 눈으로 그를 봤지만, 여전히 그의 눈은 싸늘할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태운은 지금까지 내가 S급이라고 여겼기에 그로서는 충분히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러니 진정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 것이다.

    나는 떨리는 입술을 느끼며 메는 목을 가다듬고 작게 말했다.

    “그럼 태운 씨 괜찮아지실 때까지 방 안에 있을게요.”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그런 나를 태운이 잡았다.

    “나가라고 했잖아.”

    “어딜 가라는 거예요.”

    공장 숙소도 모두 협회에서 정리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젠 태운의 집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내 말에 태운이 핸드폰을 들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이신의, 가이드 기숙사로 보내.”

    ‘가이드 기숙사?’

    “내가 얘 편의까지 봐줘야 해? 당장 데리고 나가.”

    태운은 전화를 끊고 다시 내게 나가라고 말했지만, 나는 나가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그런 내 모습에 결국 태운이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온 태운에게서 내가 좋아하던 살 내음이 아니라 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오늘따라 커다란 그의 모습이 처음으로 겁이 났다.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그런 내 상의를 태운이 우악스럽게 잡더니 그대로 현관 쪽으로 끌고 갔다.

    “태운 씨, 아파요! 놔주세요!”

    나는 태운의 손을 떼어 내고 대화하려고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왜 그러시는 거예요. 정말 제가 C급이라서 그런 거예요?”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일그러지는 얼굴을 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의 차가운 표정에 결국 무너져 내렸다.

    “제발 이유를 말해 주세요.”

    “네 말대로야. S급이 아니잖아.”

    “다, 다시 등급 테스트할게요.”

    어느새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에도 태운은 변함없이 매정한 얼굴이었다.

    “필요 없어.”

    “아니에요. 저 잘할 수 있어요.”

    “너 이제 필요 없다고.”

    태운은 결국 날 현관 밖으로 밀쳤다.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손목이 잘못됐는지 시큰거렸지만, 다시 일어나 태운에게로 뛰어갔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태운은 바로 문을 닫아 버렸다. 나는 곧장 지문을 인식하고 문고리를 돌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쪽에서 이중 잠금 설정을 한 것 같았다.

    “태운 씨! 문 열어 주세요! 할 말 있어요!”

    문을 두들기며 태운을 불렀지만, 그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가 쉬도록 필사적으로 태운을 불렀다. 이대로 그와 끝나고 싶지 않았다.

    손이 벌게지도록 도어 록을 주먹으로 치고 문을 두드렸지만, 내 소리는 태운에게 닿지 않는 것인지 닫힌 문은 굳건하기만 했다.

    그렇게 20분 정도 지났을까. 뒤에서 담당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그는 내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문을 치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더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담당자님의 손에 잡힌 채 문에서 멀어졌다.

    “이러다 손 망가져요.”

    “담당자님… 이 문 좀 열어 주세요.”

    내 목소리는 어느새 잔뜩 쉬어 듣기 싫은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

    “C급 판정 나왔다고 듣긴 했는데, 이건 너무하네요.”

    “…태운 씨한테 저 다시 검사한다고 말해야 해요.”

    “다시 검사해도 똑같을 거예요. 그리고 태운이 원래 저래요. 성격 나빠서 다른 가이드들도 다 피하고 있고요.”

    태운이 원래 저런 성격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아 주던 그였다.

    “아니에요. 지금까지 다정했어요.”

    “그거 다 내숭이에요. 이신의 가이드님이 도망갈까 봐.”

    그러고 보니 윤 박사님도 지금의 담당자님과 같은 말을 했었다.

    “아마 예전 모습은 더는 못 볼 거예요.”

    “아니에요.”

    나는 내가 보고 들은 것만 믿었다. 하지만 조금 전의 태운의 모습을 보면 담당자님의 말이 진실인 것 같아 무서웠다.

    “신의 가이드님, 이게 현태운의 본모습이에요.”

    그 말에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나는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꾹 앙다물었지만, 결국 입 밖으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런 나를 담당자님은 말없이 위로해 주며 지하 주차장으로 이끌었다.

    C급인 것도 서러운데 태운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는 비참함과 괴로움만이 내게 남겨졌다.

    ***

    담당자님의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낡은 아파트였다. 시공된 지 오래되었는지 금이 간 벽은 검은 물때로 얼룩져 있었다. 외관은 폐가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C급 가이드 기숙사예요. 외관은 많이 낡아 보이지만, 내부는 개축해서 쓸 만해요.”

    “C급 가이드 기숙사….”

    “몸은 좀 진정되셨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담당자님은 안타까운 얼굴로 날 바라봤다.

    “태운이랑 같이 지낸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됐잖아요. 빨리 정 떼는 게 좋아요.”

    정을 뗀다는 게 말이야 쉽지. 지금도 태운과 맞닿았던 체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를 보던 다정한 미소와 손길 또한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내게 따뜻한 마음을 준 사람은 태운밖에 없었다. 지금도 돌아가면 내가 알고 있던 태운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늘 내게만큼은 상냥했으니 말이다.

    “담당자님, 태운 씨랑 통화 연결해 주시면 안 돼요?”

    내 말에 담당자님은 결국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태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요한 차 안에 통화 연결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통화가 끊기는 소리도.

    “전화 거부하네요. 오늘은 이만 늦었으니까 기숙사에서 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해요.”

    “…알겠어요.”

    내일이면 태운도 진정될 것이고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거다.

    “공실이 202호라고 했으니까 거기로 들어가세요. ID 카드 대면 문 열릴 거예요. 아, 그리고 오늘부터 이신의 가이드님의 담당이 된 김진호라고 합니다. 인사를 제대로 못 한 거 같아서요.”

    그는 서둘러 재킷 안에서 명함을 꺼내 내게 주었다. 에스퍼·가이드 협회라는 문구와 함께 김진호 매니저라고 쓰여 있었다.

    “감사해요…. 그리고 핸드폰을 센터에서 지급해 준다고 했는데 받을 수 있을까요?”

    “내일 아침에 받아 올게요.”

    “네.”

    핸드폰을 받으면 바로 태운에게 연락할 생각이다. 이대로 그와 끝날 순 없었다.

    담당자님이 돌아가고 혼자가 된 나는 천천히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에서부터 곰팡냄새가 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맡아 온 익숙한 냄새에 태운과 펜트하우스에서 지냈던 기억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층계를 올라가 202호 앞에 섰다. 그리고 담당자님 말씀대로 ID 카드를 문에 태깅하려고 했지만, 그만 ID 카드를 놓쳐 바닥에 떨어졌다.

    태운만큼이나 나 또한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 떨리는 손으로 ID 카드를 집어 들었다. 이번엔 제대로 잠금을 풀고 안으로 들어갔다.

    센서 등이 켜지며 어두운 내부가 어렴풋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며 거실 전등을 켜자, 담당자님 말씀대로 리모델링을 했는지 내부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기숙사는 방 두 개와 거실 부엌이 합쳐진 구조였다. 공장 숙소와 비슷했다.

    침실로 보이는 방으로 들어가자, 싱글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휘청거리며 침대로 다가가 앉았다.

    침대에 앉기 무섭게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알던 태운을 더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두려웠다.

    어두운 방 안에서 혹시나 태운이 나를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놓지 않았지만, 결국 그는 오지 않고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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