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화
오늘은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나는 꽃집에 들러 작은 꽃다발을 사고 공원 묘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것임에도 반가움보다는 우울감이 컸다. 더는 어머니를 뵐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나를 홀로 키우시던 중,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혼자가 된 나는 그 이후로 마음속 공허함을 방치한 채 무기력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수많은 묘지 중에서 어머니의 묘지를 바로 찾아내어 그쪽으로 걸어갔다. 묘지 앞에 앉아 꽃을 놓고 답이 돌아오지 않는 안부를 건넸다.
여전히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것 같지만, 이렇게 묘지를 마주하고 있으면 그녀가 없는 현실이 더욱 뼈저리게 느껴지곤 했다.
한동안 묘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보니 점차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어머니와 작별할 시간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어머니께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근처 정류장에 일터로 향하는 버스가 있었다.
하늘에 이름 모를 새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오래지 않아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한동안 막힘없이 도로를 질주하던 버스가 도심에 들어서자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사방이 차로 꽉꽉 채워졌다. 아무래도 퇴근 시간과 겹쳐 교통 체증이 더욱 심해진 것 같았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릴 거 같고, 늦저녁에 출근하는 날이라 체력 소모도 컸다. 조금이라도 쉴 참으로 미리 눈을 붙여 두려던 그때, 버스가 급정차하더니 몸이 앞으로 쏠리며 앞 의자에 부딪혔다. 내 신음과 동시에 주변에서도 날이 선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서둘러 팔걸이를 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버스 안은 물론이고, 조금 전까지 노을이 지던 하늘에 붉은 구름과 먹구름이 몰려들어 가득 메워진 채로 어둑해지고 있었다.
붉은 구름은 A급 게이트 전조 현상이었다. 나는 창문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대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윽고 버스 안은 핸드폰에서 울리는 게이트 출현 긴급 알람과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게이트가 열렸단 걸 눈치챈 승객 몇 명이 출입문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밖의 상황도 버스 안과 마찬가지로 급박하고 무질서했다. 모두 차에서 내려 차도를 달리고 있었다.
“기사님, 문 열어 주세요!”
기사님도 갑작스러운 A급 게이트에 놀랐는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문 열어요!”
“빨리 문 열어! 귓구멍이 처막혔냐?”
보통은 이 정도로 사람들이 이성을 잃지 않는데, A급 게이트이기도 했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검붉은 하늘에 모두 혼란에 빠진 것 같았다.
나 또한 불길한 눈으로 좌석에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다. 게이트 안전 수칙대로 차 안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근처에 있는 대피소로 이동하는 게 안전해 보였다.
주변의 성화와 욕설에 결국 버스 문이 열렸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버스에서 빠져나갔다. 나 또한 그들의 뒤에 붙어 무사히 버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바깥의 풍경은 기괴했다. 버스 뒤쪽 천공에 30m는 되는 검은 문이 떠 있었다. 저렇게 큰 게이트는 처음이었다.
게이트 문이 열리기 시작했는지, 쿵 하는 굉음과 함께 문 틈새로 사람의 절규와도 비슷한 비명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나는 곧장 두 손으로 양 귀를 막았다.
이내 게이트에서 진득한 붉은 액체가 지상으로 떨어지며 징그러운 외형의 마물들이 게이트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물들의 외형은 가지각색이었다. 동물처럼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기도 하고, 곤충처럼 단단한 표피나 박쥐처럼 긴 날개를 가진 마물들도 있었다.
여러 동물을 억지로 섞어 놓은 듯한 징그러운 마물들의 모습에 사람들의 비명은 더욱더 커지며 끊이질 않았다.
다행히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에스퍼들이 곧장 마물들과 대치했다. 하지만 작은 마물들은 에스퍼들의 눈을 피해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공격했다.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피소를 향해 뛸 수밖에 없었다.
대피소 알림판을 보자, 300m 남아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뛰었지만, 발에 무언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손에 잡히는 면과 온기에 사람이란 걸 눈치채며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옆에 뛰어가던 사람이 박쥐형 마물에게 잡혀갔다.
긴장감으로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래도 최대한 정신을 붙잡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뒤에서 뛰어오는 사람에게 밟혀 일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밟힌 부분에서 느껴지는 고통과 혼란 속에서 간신히 차 틈 사이로 들어가 숨을 골랐다. 도로 위는 전쟁터와 비슷했다. 각성자와 마물,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섞여 혼돈 그 자체였다. 사방이 금세 시체와 피로 뒤덮였다.
몸을 잔뜩 구긴 채 주변을 둘러보다 게이트를 올려다봤다. 보스 마물로 보이는 괴물이 게이트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보스 마물의 얼굴은 사람의 앙상한 얼굴 뼈와 비슷했는데 눈알만 온전했다. 마물의 흰 동공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에스퍼들이 각자의 능력으로 타격을 주고 있었지만, 보스 마물은 에스퍼들의 능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뼈만 남은 팔로 지상을 헤집었다.
그 모습에 다시 대피소로 이동하려고 할 때였다. 보스 마물의 시선이 내 쪽으로 꽂혔다. 순식간에 얇고 길쭉한 뼈가 내 쪽으로 뻗어 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멀리 뛰었지만, 곧장 다리가 꼬여 넘어졌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몸을 일으키고자 했지만, 다리가 잘못되었는지 다시 넘어졌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이대로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누군가 내 허리를 낚아챘다.
에스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안은 채 순식간에 하늘 높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놀라 몸을 버둥거리자, 남자는 괜찮다며 나를 다독였다. 그때였다. 심장이 쿵 하고 묵직하게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내가 쉴 새 없이 떨자, 남자는 계속해서 내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정말 이상하게도 떨림이 멈췄다. 눈을 돌려 남자의 얼굴을 본 나는 놀라고 말았다. 남자는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S급 에스퍼 현태운이었다. 그는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신기한 가이드네요.”
그는 나를 가볍게 안아 들더니 게이트에서 멀리 떨어진 대피소 건물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당부하듯 말했다.
“위험하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요.”
태운의 모습에 놀란 나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고개만 끄덕였다. 내 모습에 그는 안심한 듯 다시 게이트로 돌아갔다. 빠르게 멀어지는 태운의 등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건물 안쪽 창문에서 태운과 다른 에스퍼들이 게이트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마물들과 대치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게이트 주변이 배리어로 둘러싸여 더는 마물들이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걸 알지만, 여전히 몸은 긴장감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게이트는 그렇게 30분 동안 현현하다 보스 마물이 소멸하자 사라졌다. 게이트 주변은 붉은 불길과 함께 사람과 마물의 사체들로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이내 마물의 사체는 재처럼 변해 사라지고 사람들의 시신만 남았다.
멀리서 태운이 날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건물 밖에서 두리번거리다, 창문에 서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곧장 안으로 들어와 내게 물었다.
“사라진 줄 알고 놀랐어요. 어느 팀 소속 가이드예요?”
“네? …저 가이드 아니에요.”
“가이드가 아니라고요?”
태운은 곧장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을 잡자 조금 전보다는 약한 찌릿함과 함께 태운의 손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내 쪽으로 이동하는 걸 느꼈다. 마치 서로 몸이 연결된 느낌이었다. 이런 감각은 처음이라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이래도요? 이렇게 가이딩 잘되는 건 처음이에요.”
태운의 말처럼 그에게 느껴지던 탁하고 무거웠던 기가 조금씩 가벼워지며 부드러워지는 걸 느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시민이에요.”
“그러고 보니 제복이 아니네요. 각성 테스트 언제가 마지막이에요?”
각성 테스트는 3년 전 공장에 취직하기 전에 했었다. 검사 결과는 비각성자였다.
“3년 전이요.”
“늦게 각성하는 경우도 많아요. 지금 각성한 거 같은데. 이렇게 가이딩이 수월한 걸 보면 분명 S급일 거예요.”
태운은 확신하듯 말했다. 그는 기분 좋은지 내 손을 꽉 잡고 더욱더 나에게 몸을 밀착했다.
“기분 좋아요. 이런 느낌 처음이에요.”
근처에서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태운이 지그시 눈을 맞추며 내게 다시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이신의예요.”
“이름도 예쁘네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태운의 시선을 피했다. 남자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저 이제 일 가야 하는데….”
“나중에 가면 안 돼요?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같이 있어 주세요.”
오늘은 밤 10시 출근이었기에 슬슬 출발해야 했다. 하지만 도로가 엉망이니 한동안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긴 했다.
“…언제까지요?”
“가이딩 수치가 70%가 될 때까지요.”
태운은 내게 손목에 찬 기계를 보여 주며 말했다. 화면에 53%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100%도 아닌 70%니 괜찮을 거 같았다. 고작 17%를 올리는 것이니 말이다.
내가 정말 가이드로 각성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를 구해 준 태운에게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다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긍정에 태운은 손을 풀더니 귀에 꽂고 있던 이어셋을 누르며 복귀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해받기 싫다는 듯 이어셋을 빼내며 주머니에 넣었다.
“신의 씨는 다친 곳 없어요?”
“아…. 네.”
사실 사람들에게 밟힌 곳에 통증이 있었지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내 말에도 태운은 사람 발자국이 찍힌 내 옷을 보더니 근처에서 있던 치유계 에스퍼를 통해서 내 몸을 회복시켜 주었다.
정말 신기했다. 아팠던 곳이 순식간에 치료되며 고통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몸도 회복되었고, 이제 제 집으로 갈까요?”
“태운 씨 집이요?”
“네. 가이딩은 집에서 해야 잘돼요.”
내 말에 태운은 웃으며 말했다. 집에 가자는 말에 당황했지만, 도와주겠다고 내 입으로 말했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