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와 B의 사이-179화 (18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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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많이 귀찮죠?”

정우진이 훌쩍거리며 물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럼 많이는 아니고 조금 귀찮아요?”

“조금도 아니고 하나도 안 귀찮아. 넌 도대체 왜 그런 걸 걱정하는 거야?”

사실 조금 놀란 건 맞지만 귀찮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만나지 못해서 아쉬운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뭔가 내 생각보다 정우진이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당황한 상태였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게 정상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혹시나 싶어서 다른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진짜 엄청 소름 끼친대요.”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정우진이 말했다. 나는 그 손을 치우고 직접 눈가와 뺨을 닦아 주며 물었다.

“누구한테 뭘 어떻게 물어봤는데, 소름 끼친다는 말을 해?”

“인터넷에요. 만약 애인 뒷조사하고 몰래 따라다니고 그러면 어떨 거 같냐고 물어봤는데 소름이 확 끼친대요. 그리고 욕도 엄청 했어요.”

“…….”

무서운 꿈을 꾸고 울면서 자다 깬 아이 같은 얼굴로 정우진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순간 잘못 들은 줄 알고 멍하게 있는데 정우진이 다시 말했다.

“평생 둘이서만 같이 있고 싶어서, 애인이 아무런 일도 안 하고 그냥 집에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그것도 무지 욕먹었어요. 정신 병원 가래요.”

“……음.”

“선배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불쌍한 표정으로 묻는 정우진을 보며 거짓말을 해 줄까 하다가 나는 그냥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정신병자 같다고요?”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잖아. 그냥 좀……. 특이하긴 해.”

최대한 말을 돌려서 하자 정우진이 또 훌쩍거렸다.

“저는 왜 이럴까요? 선배님이 절 소름 돋는다고 생각할까 봐 너무 무서워요. 그래서 계속 말 안 하려고 했던 거예요. 이런 거 말해 봤자 나만 손해고…….”

저번에도 손해 어쩌고 하더니…….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정우진이 덧붙였다.

“제가 이런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서 만약 선배님이 저를 귀찮다고 생각하거나, 정떨어지거나 그러면 저만 손해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저한테 말하라고 하지 마세요……. 그냥 혼자 알아서 잘 추스를게요. 티 안 나게…….”

“왜 또 말이 그렇게 돼?”

“아까도 그렇게 다정하게 말 안 했으면, 저도 이런 거 말 안 했을 거란 말이에요. 왜 그렇게 다정하게 말해서 자꾸……. 자꾸, 제가 말하기 싫었던 것만 말하게 만들고…….”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정우진이 내 탓을 하며 또 울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상한 건 이상한 거라,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아무리 곱씹어 봐도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긴 했지만 그런 걸로 소름이 끼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더니, 정우진이 또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물어보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정작 입을 다무니까 그건 그거대로 또 걱정이 됐나 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상하긴 한 거 같은데 소름이 돋진 않아. 귀찮지도 않고. 그러니까 혼자 상상 좀 그만하고 나한테 물어봐. 만약 진짜 소름 끼치거나 귀찮으면 그때 말할게.”

내 말에 정우진이 또 상상을 했는지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러면 상처 받아서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

그럼 뭐 어쩌라고…….

황당한 표정으로 정우진을 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열두 시가 넘지 않았지만, 말을 돌리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주머니에서 정우진에게 주려고 했던 걸 꺼냈다.

“이거 받아.”

내가 무언가를 건네자 정우진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내 주민 등록증을 본 정우진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걸 앞뒤로 확인하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걸 왜 주느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막상 주긴 했는데 말을 꺼내려니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는 타이밍이기도 했고……. 아, 선물을 먼저 줄 걸 그랬나? 나는 잠깐 눈알을 굴리다가 말했다

“그거 사본이라도 떠 놔.”

“네? 사본이요? 이걸 왜…….”

이걸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지? 분명 나오기 전에 어떻게 말할지 생각을 다 정리해 놨는데, 기억 상실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것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절주절 아주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우리가 어릴 때 서로 주민 등록 번호만 알았어도 이렇게까지 서로를 못 찾았을 거 같지는 않은 거야. 그때 너는 내 이름도 제대로 몰랐다며. 아무튼 그래서……. 아니, 지금은 뭐 갑자기 사라지거나 그래도 당연히 서로 연예인이니까 금방 찾을 수 있겠지만……. 기사 검색만 해도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다 나올 거고……. 그래도, 뭔가……. 비상용처럼, 뭐……. 그런? 그런 게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

“이것만 있으면 없어져도 금방 찾을 수 있지 않아? 어디 사는지도 주소 나오고……. 아, 이건 가족 아니면 못 알아보나? 아무튼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만약 어떤 이유로 갑자기 없어지거나 사라지거나 그러면 이걸로 찾으라고……. 아니,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 그냥 비상용이야, 비상용. 알았지?”

생일 선물로 이런 걸 주는 건 역시 너무 이상한 걸까? 그렇겠지……. 정우진이 말했던 것처럼 때에 따라서는 소름이 끼치기도 할 것 같고, 진짜 정신병자처럼 보이기도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듯한 생일 선물이 떠오르질 않아서 고민하다 선택한 건데, 줘 놓고 보니까 너무 괴상했다.

나는 얼른 주머니에서 진짜 생일 선물을 꺼내며 말을 돌리려고 했는데, 멀뚱멀뚱 날 보던 정우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빠…….”

“…….”

울먹거리는 소리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경악한 얼굴로 정우진을 보다가 번쩍 정신이 들어 소리쳤다.

“야! 미친, 진짜! 소름 끼치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

“진짜 너무 좋아요.”

“아, 소름 끼쳐! 악!”

“어떡해…….”

내가 지랄 발광을 하든 말든 정우진은 금괴라도 선물 받은 거지처럼 황홀경에 젖어 양손으로 내 주민 등록증을 들고 벌벌 떨어 댔다. 그 모습을 보니 다시 소름이 끼쳐서 부르르 몸을 떨자 정우진이 눈물 젖은 눈으로 나를 보며 웃었다.

“진짜 돋았네.”

정우진이 소리를 내 웃으며 내 손목을 자기 손가락 끝으로 문질렀다. 닭살이 올라와 우둘투둘해진 걸 계속 만지며 웃던 정우진이 입을 열었다.

“어릴 땐 오빠라고 불러 주면 좋아했잖아요.”

“걔는 작고 귀여운 여자애였고!”

“걔가 저예요.”

“아무튼 진짜 그렇게 부르지 마. 내가 부탁할게.”

진저리를 치며 말하자 정우진이 입술을 한 번 삐죽거렸다가 커다란 덩치를 구겨서 내 품에 안겼다. 억지로 욱여 들어오는 걸 안아 주자 온몸에 돋았던 닭살이 그제야 조금씩 진정이 됐다.

나는 훌쩍훌쩍 울고 있는 정우진을 또 달래 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얘는 몇 번이나 더 울 셈인 건지…….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 눈이 부어서 없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에휴, 진짜. 어릴 땐 넘어져도 안 울더니, 이제는 툭하면 우네.”

“선배님이 자꾸 저를 울리잖아요. 저 그리고 사실 이미 다 알고 있어요.”

“뭘?”

내가 묻자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정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뭘 보고 읽는 것처럼 내 주민 등록 번호 13자리를 빠르게 말했다. 나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잔뜩 띄우고 물었다.

“그사이에 그걸 외웠어?”

“원래 알고 있었어요.”

“……어떻게?”

“당연히 알고 있죠……. 그걸 왜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거지?”

정우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눈 끝에 물방울을 달고 활짝 웃었다.

“그래도 선배님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걸 줬는지 알 것 같아서 너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는 결국 손바닥으로 정우진의 눈을 덮고 등짝을 팍팍 때렸다.

“그만, 그만 좀 울어. 그만 좀!”

“진짜 어떡하지? 저 이거 꿈이면 그냥 죽을래요. 나는 오늘 만나고 나서부터 계속 징징거리기만 했는데, 선배님은……. 저 진짜 너무 쓰레기 같아요. 완전 바보 멍청이 등신 팔푼이 나가 죽어야 돼…….”

아니, 또 말을 뭐 저렇게 하고 지랄인지. 갑자기 시작된 자기 비하에 질색을 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자기 눈가를 가리고 있는 내 손을 잡고 내리더니 말했다.

“저 원래 진짜 안 그랬어요. 처음에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것만 봐도 좋았는데, 계속 보다 보니까 텔레비전에서 말고 직접 보고 싶고, 보니까 또 말도 걸고 싶고, 대화하다 보니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자꾸 생기고……. 처음에는 분명 알고 지내기만 해도 너무 좋을 것 같았는데, 계속 바라는 것만 많아지고…….”

“당연히 더 친해지니까 바라는 게 많아지는 거지. 그 사람이랑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전 진짜 그냥 옆에만 있을 수 있으면 더 바랄 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 원래 잘 안 울어요. 근데 자꾸 선배님이 절 울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우는 게 내 탓이라는 건가? 웃기지 말라고 하려다가 그냥 내 탓인 걸로 하기로 했다.

“그래, 아무튼 그만 울어. 그리고 너 생일 선물…….”

“흑…….”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건지, 정우진이 내 주민 등록증을 갑자기 제 품에 소중히 안더니 또 우는 소리를 냈다. 저걸 들고 있으면 계속 울 것 같아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가 가져가려고 하자 정우진이 재빠른 동작으로 내 손을 피했다.

“왜요?”

“그거 도로 줘. 너 계속 울어서 안 되겠다. 어차피 번호는 다 외우고 있다며.”

“준 걸 왜 다시 가져가요? 이거 저 줬으니까, 선배님은 새로 발급받으세요. 이건 앞으로 저희 집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로 간직할 거예요. 강서주 주민 등록증 전시관 만들어서 유리 상자 안에 넣고 매일매일 구경하러 갈 거예요.”

“…….”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그냥 웃고 넘겼을 테지만, 정우진은 진짜 그럴 것 같아서 그게 문제였다. 으, 하고 표정을 일그러뜨리자 정우진이 제 품에 있는 걸 보호하듯 상체를 돌리며 나를 경계했다.

그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한숨을 쉬고 있는 사이, 정우진은 재빠른 동작으로 주민 등록증을 자기 주머니 안에 넣고 혹시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그 위를 몇 번이나 꾹꾹 눌렀다. 그러더니 자기 가슴을 더듬더듬 만지다가 내게 물었다.

“저 이거, 모양 그대로 가슴에 문신해도 될까요? 심장 위에…….”

“그럴 거면 나랑 헤어지고 해.”

“네?”

수줍은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해서 고민도 하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장난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진짜 그 정도로 끔찍하니까 말도 꺼내지 마. 상상도 하지 마. 정 해야겠으면 날 죽이고 해.”

“……아니, 그 정도예요?”

내 극단적인 말에 정우진이 당황하며 물었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

“아무튼 이건 그냥……. 그냥 덤 같은 거고, 선물은 따로 있어. 아니, 이걸 원래 먼저 줬어야 했는데…….”

요상해진 분위기에 진짜 생일 선물을 꺼내기도 뭐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어느새 열두 시가 넘어서, 12월 12일이 되었다. 머쓱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선물을 꺼내자 정우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내가 생각을 해 봤거든. 무슨 선물이 좋을까……. 뭘 사 줘야 네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진짜 이것저것 생각도 많이 해 보고 고민을 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는 거야. 왜냐면 넌 이미 갖고 싶은 것도 다 가지고 있을 거고, 당장 필요한 것도 알아서 잘 샀을 거고……. 나는 너한테 좀 실용성 있는 걸 주고 싶었거든? 꽃 같은 건 당장 받을 땐 기분 좋아도 나중에 시들고 나면 처치 곤란이잖아. 케이크도 너는 안 먹…….”

양손으로 입을 가린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들바들 떨면서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정우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는 말끝을 흐리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

“…….”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동에 젖어 별처럼 빛나고 있던 눈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혹시나 싶어 입을 열었다.

“……너 설마 꽃 사 왔어?”

“…….”

“…….”

핼쑥해진 정우진을 보며 괜히 쓸데없는 말을 지껄인 내 입을 때리고 싶어졌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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