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와 B의 사이-175화 (180/190)

175

채팅창에도 다들 울고 있는 게 보여서 나는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김강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갔다. 그걸 기점으로 소파에 앉아 있던 이진혁이 밑으로 내려와 내 옆에 앉더니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형…….”

“아니…….”

“나 진짜 형 우는 거 처음 봐…….”

유노을까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다행히 진짜 우는 건 아니고 목소리로 우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그때 주방으로 갔던 김강이 갑자기 내게 빨대를 꽂은 망고 주스를 건네주더니 말했다.

“형, 이거라도 마셔.”

“뭐야, 이건 갑자기…….”

“짜파구리 끓여 줄까?”

“아니, 뭔…….”

라이브 방송 중이라는 것도 잠시 잊고 하마터면 욕을 할 뻔했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이진혁은 어디론가 가서 수건을 하나 가지고 오더니 내 손에 쥐여 줬다.

“눈물은 이걸로 닦아.”

그 말에 나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수건으로 얼굴을 벅벅 닦으며 우는 척을 했다.

“그래, 고맙다. 흑흑흑.”

“형, 내 품에 안겨서 울어.”

유노을이 양팔을 활짝 벌리는 걸 보며 어깨를 토닥거렸다.

“마음만 받을게. 아무튼 더 열심히 활동하라고 주시는 상이라 생각하고,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팬들도 너무 감사합니다. 특히 클래스……. 아니, 저 진짜 안 울었어요. 진짜. 그냥 갑자기 목이 막혀서 그런 거예요. 울지 마세요. 진짜 안 울었어요.”

채팅창에 우는 이모티콘밖에 보이질 않아서 필사적으로 해명했지만, 서글픈 표정으로 내 등을 토닥거리고 있는 세 명 때문에 별로 설득력 있어 보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못다 전했던 소감을 말한 뒤, 채팅창을 읽으며 수다를 떨고 있는데 유노을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가온이요? 지금 우리 방송 보고 있다고?”

갑자기 나온 예상치 못한 이름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정우진?”

“아, SNS에? 정말요? 헉, 너무 감사합니다.”

유노을이 박수를 치면서 고개를 꾸벅 숙이기에 나도 덩달아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채팅창을 보니 정우진이 SNS에 1위 축하 글과 함께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는 걸 인증했다는 글이 엄청 올라오고 있었다.

“우진이 형? 형, 다음에 우리 집에 놀러 와.”

그때 뒤에서 들리는 김강의 목소리에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희 집에?”

“아니, 우리 집 말고, 여기에. 우리 숙소.”

“아……. 그래, 다음에 놀러 와. 축하해 줘서 고마워. 감사합니다.”

문득 너무 갑작스럽게 정우진과 처음 했던 키스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말끝을 어정쩡하게 얼버무렸다. 내 집도 아니고 애들과 함께 쓰는 숙소에서 그 짓거리를 해서 그런지, 괜히 찔린다고 해야 하나?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불편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갑자기 왜 그렇게 웃어?”

눈치 없는 유노을이 굳이 이걸 또 지적했다. 나는 웃는 표정으로 유노을을 보며 작게 말했다.

“그냥 좋아서.”

“정우진이?”

“……우리 1위한 거. 물론 우진이도 좋긴 하지, 당연히…….”

하마터면 유노을을 때릴 뻔했다. 괜히 과민 반응하면 모양만 이상해질 것 같아서 그냥 계속 웃고 있는데, 갑자기 이진혁이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축하해 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맞아, 다음에 놀러 와. 내가 맛있는 거 해 줄게, 형.”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는데 다행히 김강이 나름대로 수습을 했다.

“진짜, 하……. 말도 안 돼. 이런 날이 오다니. 형들, 우리 빨리 서로 안아 주자.”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나는 얼른 양팔을 벌렸다.

“빨리 안아. 서로 안아. 어서 안아.”

그리고 억지로 애들을 끌어안고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보쌈족발세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뜬금없네ㅋㅋㅋㅋㅋㅋㅋ

Kei

귀여워ㅠㅠㅠㅠㅠ

우리나더

나도 저 자리에서 같이 안아주고 싶다

강생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AAAA

나 또 눈물나와..

아이디

몰라 그거 진짜 엄청 매운데...

좀 급조된 분위기이기는 했지만 이상하지 않게 잘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진혁은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는지 표정이 좀 이상했다. 이러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걱정하고 있는데, 다행히 유노을이 산통을 다 깼다.

“야, 좀. 아파, 진짜. 아니, 무슨 어깨가 돌덩어리야, 돌덩어리.”

유노을이 투덜거리자 이진혁도 사실 아팠던 건지 그 말에 동조했다.

“맞아, 나도 아팠어. 넌 왜 그렇게 세게 안아? 좀 살살 안아 주면 안 돼?”

“형들이 운동을 안 하니까 그러지.”

“그게 운동이랑 무슨 상관이야? 그치?”

그치는 무슨 개나발이 그치야……. 진짜 방송 끝나면 넌 죽었다고 생각하며 해탈한 부처처럼 웃다가 채팅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곰돌강님께서 저희 데뷔 초창기에 먹방 보신 적이 있는데, 그땐 이렇게 많이 안 먹지 않았냐고 질문을 하셨어요. 우리가 데뷔 초에 먹방 한 적이 있나?”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유노을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말을 돌린다고? 네, 알겠습니다. 데뷔 초에 먹방이면……. 강이가 한 거 아니야? 김강 씨, 먹방 할 때 별로 안 드셨어요?”

근본도 없이 시작된 질문 타임에 김강이 자세를 똑바로 하며 말했다.

“네, 요청을 받아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근데 너무 많이 먹으면 이상해 보일까 봐 내숭을 좀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 내숭을 떠셨어요? 어떻게? 얼마나 먹었는데요?”

유노을이 웃음을 참으며 묻자 김강이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도넛 두 개랑 아이스아메리카노 먹었습니다.”

“아, 세상에……. 방송 끄고 혹시 더 드셨어요?”

“네, 라면 끓여 먹었습니다.”

결국 참지 못한 이진혁이 옆에서 풉 하고 터졌다. 김강이 도넛 두 개라니? 스무 개가 아니라? 뭔가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물었다.

“혹시 도넛 두 개를 몇 입 만에 드셨죠?”

내 물음에 대답한 건 김강이 아니라 유노을이었다.

“두 입 아닐까요?”

“아, 도넛 하나에 한 입씩?”

“그렇죠.”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유노을이 말하자 김강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제가 하마예요?”

“네? 아니에요? 그럼 몇 입 만에 드셨는데요?”

“그래도 네, 다섯 입 정도는 됐어요.”

두 입이나 네, 다섯 입이나 뭐가 다르지? 그리고 네, 다섯이라고 하는 거 보니까 그냥 네 입인 게 확실했다. 잠깐 뇌 정지가 와서 눈을 깜빡이고 있는데 이진혁이 물었다.

“혹시 죄송한데, 먹방 몇 분 하셨어요?”

“아, 그건 기억이 안 나는데…….”

김강이 고개를 갸웃하는 걸 보다가 나는 혹시나 싶어 채팅창을 봤다.

스뎅국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강강술래

ㅋㅋㅋㅋㅋ아 미치겠다ㅠㅠ 내숭 떤다고 도넛 두 개 네다섯입만에ㅋㅋㅋㅋ퓨ㅠㅠㅠ

사계절

근데 왜 갑자기 다들 존댓말을 하시는거죠?

8_8a

먹방 어디서 볼수있어요? 지금도 볼수있나요?

곰돌강

도넛 먹방 1분 28초예요!!!!!!!!!!!!!

강생이

ㅋㅋㅋㅋㅋㅋㅋ왤케 웃곀ㅋㅋㅋㅋㅋㅋ

보쌈족발세트

??

mamma

?

귤껍질

?????

12ab12

1분 28초???

역시나 내 예상대로 채팅창에 정답이 나왔다. 나는 유노을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1분 28초래.”

“네? 1분 28초요? 아니, 내숭 떤다고 도넛을 두 개밖에 안 드셨으면서 그걸 그렇게 빨리 먹으면 어떡합니까?”

이진혁은 웃느라 소파 옆으로 쓰러져 아예 화면 밖으로 이탈해 버린 상태였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김강이 더듬거리면서 말하다가 핸드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조만간 다시 한번 내숭 없는 먹방을 찍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맞아, 저희 내년에는 준비하고 있는 거 정말 많으니까 기대해 주세요. 올해보다 활동도 더 열심히 할 예정이고요. 당장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 조만간 이것저것……. 네, 여기까지만.”

유노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년에는 정말 준비하고 있는 게 많았다. 자체 콘텐츠와 후속곡도 준비 중이고, 이미 잡힌 스케줄도 제법 많았다.

내일도 스케줄이 있어서 분명 짧게만 하고 끌 예정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 결국 세 시간이나 더 라이브 방송을 하게 됐지만, 피곤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

평소에 생일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도 아니었고, 유난스럽게 챙긴 적도 없어서 이번에도 바쁘니 그냥 대충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생일이라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정우진이 떠올랐다.

어릴 때 정우진은 자기 생일도 모르는 애였다. 나이가 어려서 이런 말이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살면서 생일이라는 걸 챙겨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긴 했다.

평소에 정우진이 뭘 먹고 사는지, 잠은 잘 자는지, 잘 걷고 있기는 하는지 관심도 없던 사람이 생일이라는 걸 챙겨 줬을 리가 없으니까.

물론 당시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로, 나도 생일이라는 걸 누가 챙겨 주었던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생일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생일에 선물을 받으면 얼마나 기쁜지, 행복한지, 또 내년이 얼마나 기대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우진의 생일은 그냥 내 생일과 대충 비슷한 날짜에 하기로 우리끼리 정했던 적이 있었다.

‘그럼 오늘이 내 생일이니까 네 생일은 내일인 걸로 하자.’

‘생일이면 뭐가 좋아?’

‘그냥 축하받는 거야. 태어나 줘서 고맙다고.’

생일이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제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내 생일에 나를 축하해 줄 사람이.

그래서 학교에 가지도 않고, 새벽 댓바람부터 부랴부랴 달려가 아직 잠도 덜 깬 애한테 억지로 축하를 받았던 기억이 났다.

“…….”

그때 눈도 제대로 못 뜬 유진이가 내게 태어나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 줬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직도 생생했다. 말의 뜻도 제대로 모른 채, 내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한 것에 불과했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말로 아주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자신의 생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정우진에게 그때 내가 받았던 위로의 반의반만큼이라도 돌려주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선물을 줘야 정우진이 조금이라도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비슷하게나마 느낄 수 있을까?

그렇게 일생일대의 고민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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