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와 B의 사이-173화 (17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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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뚱멀뚱 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내 침묵이 이상했던 건지 정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천천히 내게 기대고 있던 상체를 일으켜 허리를 세운 정우진이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

“…….”

예고도 없이 시작된 정적에 시선만 맞추고 있는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열었다.

“내가 불편한 거 다 말하라고 해서 갑자기 생각난 건데, 앞으로는 돈 그렇게 쓰지 마. 돈 많아도 그러지 마.”

“……그 얘기를 갑자기 왜 하세요?”

“뭐?”

내 말에 정우진이 울상을 짓더니 투덜거렸다.

“지금 우리, 키스 타이밍 아니었어요?”

“뭔 소리야?”

“아니, 타이밍이 딱 그랬는데…….”

“아무튼 넌 돈지랄 좀 그만해.”

정우진이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내 어깨에 몸을 기댔다.

“선배님.”

그러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선배님은 배달 음식을 왜 시켜 드세요? 배달 비 아깝게.”

“뭔 소리야, 갑자기.”

“그냥 가서 포장해 오면 되잖아요. 왜 돈지랄을 하세요?”

“뭐? 지랄? 너 죽을래?”

내가 갑자기 일어나자 정우진이 소파 위로 발라당 넘어갔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징징거렸다.

“포장해 오면 되는데 왜 배달을 시키세요?”

“귀찮잖아! 그리고 배달 비는 천 원밖에 안 하고!”

물론 천 원보다 훨씬 더 비쌀 때도 있지만, 가장 싼 가격으로 말했다. 그러자 정우진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저도 귀찮아서 그런 거예요! 돈만 주면 귀찮은 게 해결되는데, 왜 못 하게 하세요!”

아까는 선배님이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더니, 지금은 눈깔을 귀신처럼 치켜뜨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천 원이랑 1억이 같으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너 혹시 수학 못 해?”

“저 공부 잘했어요. 그리고 돈은 원래 상대적인 거예요! 저한테는 그냥 배달 비 같은 거라고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리는 걸 보니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내 허락받고 돈 쓴다며? 하지 말라면 하지 마!”

“그럼 그건 빼고요!”

“뭐? 아니, 그럴 거면 그냥 때려치워! 네 마음대로 써. 회사 옥상에서 돈도 뿌려!”

내 말에 정우진이 뭐라고 하려는 듯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이내 숨을 내쉬며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알았어요. 그럼 안 할게요.”

이렇게 말은 해도 만약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면 또 정우진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자기가 번 돈을 어떻게 쓰든 본인 마음기이기는 했다.

나도 정우진이 차라리 그 돈으로 사치를 부렸다든가, 자기를 위해 썼다면 얼마를 쓰든 신경도 안 썼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런 인간쓰레기 같은 놈들한테 자꾸 돈을 쓰니까 속에 열불이 나는 것이었다.

정우진의 말을 들어 보면 뭔가 생각도 많이 한 것 같고, 자기 나름대로 계획도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꼭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어차피 이미 다 줘 버린 돈이라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 찾을 방법도 없기는 했다. 어쩔 수 없는 걸로 말다툼하는 것도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그냥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그냥 네 마음대로 써.”

내가 갑자기 말을 바꾸자 정우진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안 좋아졌다.

“왜 그렇게 말하세요?”

“뭘?”

“아니, 또 그렇게 말하니까 우리가 너무 남 같잖아요.”

마음대로 쓰라고 해도 난리고, 쓰지 말라고 해도 난리고……. 도대체 뭐 어쩌라는 건지.

“차라리 아까처럼 욕을 하세요.”

“욕은 네가 했지. 지랄이라고.”

“선배님이 돈지랄이라고 해서 저도 따라 한 거예요.”

삐죽거리면서 투덜대는 정우진을 보고 있자니 아까 현관 타일이 어쩌고 했던 게 거짓말 같았다. 평소에는 대부분 저렇게 어린애처럼 구는 편인데, 아주 가끔씩 자기가 소름 끼치지 않느냐 했던 것처럼 낯선 모습을 보여 줄 때가 있었다.

가끔 이상한 소리도 하고, 요상한 행동도 하고……. 물론 오죽했으면 저랬겠나 싶기도 하고, 나쁜 뜻이나 의도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나도 그냥 넘어가는 편이긴 했지만 확실히 정우진은 좀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내가 갑자기 말이 없자 정우진이 슬금슬금 다가오며 물었다. 어깨가 닿았는데도 자꾸만 붙으려고 해서 옆으로 밀리는 지경이었다. 나는 몇 발자국 휘청거리다가 다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네가 특이하다는 생각.”

“제가요? 왜요? 선배님은 특이한 사람이 좋으세요?”

“아, 왜 자꾸 밀어?”

다리에 힘을 줘도 버틸 수가 없어서 계속 밀리다가 결국 창문까지 가 버렸다. 지문 자국 하나 없는 유리창에 바짝 붙어서 인상을 찌푸리자 정우진이 말했다.

“타이밍…….”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황당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밤이고 높은 층이라 밖에서 안을 볼 수는 없다 해도 밖이 너무 훤히 보였다.

나도 모르게 뒤로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자 정우진이 자기도 슬금슬금 나를 따라왔다. 그렇게 결국 긴 창문 끄트머리에 있는 커튼까지 간 나는 밖이 보이지 않게 가장 구석에 박혔다.

내 의도를 알아챈 정우진이 커튼으로 자기와 나를 덮어 버리더니 그대로 입을 맞춰 왔다. 거실이 너무 밝아서 그것도 약간 신경이 쓰였는데, 커튼에라도 감겨 있으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입술에 쪽쪽 몇 번 입을 맞춘 정우진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내게 물었다.

“이제 기분은 좀 괜찮아졌어요?”

“기분이 안 좋아 보였어?”

“안 좋다기보다는……. 음, 네. 사실 안 좋아 보였어요.”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숙모가 학교에 오다가 사고가 난 게 사실이 아니었다는 건 충격적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그 순간에만 그랬던 거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이고, 그냥 잠시 놀라서 그런 거지 괜찮아.”

“정말요?”

“정말요. 그런 것보다 돈이 아까워서 그거 때문에 마음이 더 쓰려.”

내가 한숨을 내쉬자 정우진이 웃었다. 오늘 라면 먹고 가라고 한 것도 그렇고, 평소랑 다르게 진지한 이야기를 한 것도 그렇고, 내 마음이 상했을까 봐 일부러 신경을 쓴 게 틀림없었다.

“진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이렇게 괜찮아지기까지는 많이 힘들었을 거 아니에요. 우리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더 일찍 만났으면 물론 좋았겠지만, 나는 지금이라도 이렇게 다시 만났다는 게 다행인 것 같았다. 하지만 교복을 입은 중학생, 고등학생 정우진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너 졸업 앨범 있어? 교복 입은 거 보고 싶다.”

내 말에 눈가와 관자놀이에 계속 입술을 문지르고 있던 정우진이 퍼뜩 고개를 들더니 눈을 빛내며 말했다.

“교복 새로 맞출까요?”

“아니, 그냥 앨범만 봐도 돼.”

“저 그때 입었던 건 작아서 안 맞을 것 같고, 새로 한 번 맞춰 볼게요.”

“앨범만 봐도 된다고.”

“선배님도 교복 입으실래요? 같이 교복 입고 커튼 뒤에서 키스하면 너무 좋겠다.”

내 말이 안 들리나? 혼자 상상의 나래에 빠져서 꿈 많은 소년처럼 좋아하는 정우진을 보다가 그냥 웃어 버렸다.

***

돈을 1억이나 가지고 간 김도웅은 한동안 잠잠했다. 정우진 말처럼 돈이 있어야 도박도 하고 약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러나 보다. 도대체 여기에서 뭘 더 어쩌려고 이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이지도 않고 알아서 잘 해결해 본다고 했으니 믿어 보기로 했다.

사실은 스케줄이 바빠서 김도웅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음악 방송에서 데뷔한 이래 처음으로 1위를 하고, 동시에 음원 순위도 1위로 올라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12월 첫째 주 1위는……. 어나더 4SEASON! 축하드립니다!”

솔직히 말하면 음원 순위도 너무 좋았고, 반응도 좋아서 기대를 한 건 사실이었지만 막상 정말 1위가 되니 얼떨떨하기만 했다. 이진혁은 발표가 나자마자 입을 가린 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김강은 그런 이진혁에게 숨을 좀 쉬어 보라며 후, 하, 후, 하 호흡법을 가르쳤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너무 당황해서 일단 주변에서 축하해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만 몇 번이나 했다.

“어, 일단……. 1위 너무 감사드리고……. 진짜 어떡하지? 진짜 너무, 진짜 감사합니다. 저희가 1위를……. 어떻게, 진짜……. 아. 너무 감사하고, 클래스 사랑하고……. 진짜 대표님, 그리고……. 우리 멤버들도 너무 고생했고, 얘들아……. 클래스 너무 고맙고 사랑해.”

결국 그나마 정신 줄을 붙잡고 있는 유노을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면서 주절주절 1위 소감을 말했다. 앙코르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이진혁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

댓글

>미친 어나더 1위ㅠㅠ

>나 지금 찐으로 울고 있음..

re: 클래스야? 같이 울자ㅠㅠ

re: ㅇㅇㅠㅠ 진짜 1위 발표나자마자 오열했더니 엄마가 놀라서 내 방 들어옴ㅠㅠㅋㅋㅋㅋ

>포시즌 노래 좋던데ㅊㅋㅊㅋ

>어나더 축하해

>나 진짜 미치겠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근데 이진혁? 엄청 울던데ㅠㅠ 완전 오열해서ㅋㅋㅋㅋ큐ㅠㅠㅠ

re: 강이가 옆에서 라마즈 호흡법 하면서 진정시키는거 개웃겼음ㅋㅋㅋ

rere: 라마즈ㅅㅂㅋㅋㅋㅋ 임산부냐고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진짜 혼파망이던데ㅋㅋㅋㅋㅋ 이진혁 대성통곡하고 김강은 라마즈 호흡법 하고 있고 강서주는 인사봇 됐고 유노을은 방방이 타고 있고ㅋㅋㅋㅋ

re: 방방이ㅅㅂㅋㅋㅋㅋㅋ ㄹㅇ맨바닥에서 엄청 뛰더랔ㅋㅋㅋ 트램펄린 뛰는줄ㅋㅋㅋㅋ

re: 노을이랑 강이 개좋음 진짜ㅠㅠㅋㅋㅋ 저번에 뮤비 비하인드에서도 강이가 진혁이 엄청 챙기던데 기엽ㅠㅠ

re: 서주 인사봇ㄹㅇㅋㅋㅋ 엄청 당황한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는데 울컥했음ㅠㅠ

rere: ㅁㅈㅠㅠ 나도 울컥함ㅠㅠ

>이진혁? 엄청 울다가 노래하는거 듣고 개놀랬음.. 노래 진짜 잘하더라

re: 안 울땐 더 잘함

rere: ㄹㅇ 울어서 살짝 호흡 떨렸는데 실제로는 더 잘해

re: 걍 멤버들이 라이브를 다 잘하던데

rere: ㅁㅈㅁㅈ

>어나더 1위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ㅠㅠ

re: 존나 너무 행복해서 죽어버릴거 같음ㅠㅠ

>어나더 이제 꽃길만 걷자ㅠㅠ

>학폭 논란 터져서 진짜 가슴 졸였는데 너무 행복함ㅠㅠ

re: ㄹㅇ서주는 저번부터 느낀건데 억까 존나 잘당하는듯ㅠㅠ 암튼 1위 축하해 어나더ㅠㅠ

>노을이 넘 기엽지 않아? 계속 방방 뛰는거 강아지인줄ㅠㅠ

re: 짱기욥ㅠㅠ

>타팬인데 어나더 맨날 억까당하고 있어서 속으로 혼자 응원하고 그랬는데 너무 축하함 진짜 이진혁 우는거 보고 괜히 울컥했네

re: 22 나도 타팬인데 혼자 응원하고 그랬음ㅋㅋㅋ ㅊㅋㅊㅋ

re: ㄴㄷㄴㄷㅋㅋㅋ 어나더 추카해

>서주 맘고생 심했을 텐데 1위해서 넘 감격ㅠㅠ 서주야 사랑해!!!

re: ㄱㄴㄲ 서주 진짜 욕봤음ㅠㅠ 서주야 사랑해ㅠㅠ 이제는 나만의 쟈근 서주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사랑해ㅠㅠ

rere: ㅠㅠㅋㅋㅋㅋㅋㅋ 나만의 쟈근 서주는 아니겠지만22 사랑해 서주야 사랑해 진혁아 사랑해 노을아 사랑해 강아 사랑해 어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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