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와 B의 사이-170화 (175/190)

170

오랫동안 뒤편으로 밀어 놨던 기억이 한번 떠오르기 시작하니,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졌다.

강수민이 욕을 하던 소리, 울음, 고함, 물길에 스러지던 모래성처럼 무너지던 모습, 불이 꺼진 거실, 서늘하던 온도, 싱크대에서 떨어지고 있던 물방울 소리까지도 다 기억이 났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냉정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고, 또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이 나를 바닥 아래에 구렁텅이까지 빠뜨렸다. 옆에서 울면서 너 때문이라는 소리에 뭐라고 반박할 수도 없이, 정말로 나 때문인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같이 슬퍼할 염치도, 면목도 없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 정도가 더 지나자 조금씩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해졌다. 이게 내 탓이 아니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고, 나 때문에 부모를 잃었으니 네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요구가 불합리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강수민에게 단 한마디도 대꾸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과 막막함과 절망, 찬 바람이 부는 세상에 나 혼자만 남겨진 외로움을. 곁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공포를. 매일 밤 죽지 않기 위해 다짐해야만 하는 마음을.

다른 사람과 나의 마음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같은 처지이니까, 나도 그랬으니 너도 분명 나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에 모질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내 탓이 아니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탓할 것마저 없을 때의 서러움을, 마찬가지로 나는 아니까.

그리고 계속 원망을 듣다 보니, 아예 내가 이 죽음에 무관할 수는 없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뭐, 나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그때 상황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오랜만에 떠오른 기억에 눈앞이 어질어질해져서 잠깐 입을 다문 채 숨을 고르고 있는데 김도웅이 말했다. 시선을 돌리자 그가 길바닥에 버려진 불쌍한 개새끼를 보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듣기로는 뭐, 그때 그쪽 때문에 학교 가다가 사고 났던 거라면서요?”

“…….”

“원래 안 가려고 했는데 전화해서 엄청 화냈다고 하던데. 맞아요? 그쪽이 그 삼촌인가? 숙모한테 되게 성질냈다면서요. 그래서 안 가려다가 가게 된 건데, 사고가 나서 그쪽도 죄책감 엄청 느꼈다고 하던데.”

그 말에 나는 뭐라고 하려다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게 내 탓이 아니라는 건 물론 알고 있었지만, 죄책감은 별개의 문제였다. 사실 내가 얼마만큼의 죄책감을 느낀 건지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느끼질 못해서 모르는 건지, 너무 심각해서 크기가 가늠이 안 되는 건지…….

나도 사실 잘 몰랐다.

“괜찮아요?”

내가 계속 말이 없자 김도웅이 걱정하는 척하며 내게 물었다. 인상을 찌푸린 채 시선을 맞추자 김도웅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아직도 죄책감을 많이 느끼나 보네. 진짜 나쁜 새끼야, 강수민 그놈은. 아니, 뭐 얼마나 가스라이팅을 했으면 아직도……. 어휴, 지독하다, 지독해.”

뭐 엄청 대단한 거라도 말해 줄 것처럼 굴었으면서 스토커 새끼도 아니고 내 과거나 계속 읊어 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자꾸 뜸을 들이면서 했던 말만 하는 걸 보면 어차피 별것도 아닌 이야기 같은데, 여기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이제 더 들을 것도 없는 것 같고, 피곤해서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도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갑자기 일어나? 내 말 아직 안 끝났는데.”

“그냥 별 얘기도 아닌 거 같으니까 하지 마세요. 요구한 금액이 너무 커서 일단 저도 생각을 좀 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 테니까, 일단은…….”

돌아가라고 하려고 하는데, 김도웅이 책상을 쾅 치며 벌떡 일어났다.

“뭐? 돈을 못 주겠다고? 아, 이 호구 새끼 진짜! 그거 구라라고! 그 돈도 씨발, 원래 내가 받을 돈인데 별 병신 같은 새끼가 호구 잡혀서!”

“구라는 무슨 구라요?”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묻자 김도웅이 답답하다는 듯 자기 가슴을 퍽퍽 쳐 댔다.

“그쪽 만나러 가다가 사고 난 게 아니라고요! 원래 가족끼리 뭐 어디 가려고 했었는데, 거기 가다가 사고 난 거래요. 강수민은 귀찮아서 안 갔던 거고.”

그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어디 가려고 했다는 건, 분명 전화할 때 들었던 꽃놀이일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부모 죽고 살길이 막막했던 강수민이 그 와중에 그쪽한테 거짓말해서 호구 하나 제대로 잡은 거라고. 내 말 이해가 돼요?”

문득, 어제 일처럼 생생했던 기억 속에서 숙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꾸 귀찮게 해서 일단 내가 가겠다고 말은 해 놨거든?’

“…….”

숙모가 자꾸 자기를 귀찮게 했던 선생님에게 했던 말이었다.

“…….”

설마 나한테도 똑같이 했던 건가? 내가 화내고 자꾸 소리 지르니까 귀찮아서 우선 가겠다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던 건가?

“…….”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정말 숙모가 나한테 가겠다고 말하기 바로 전에도 선생님한테 그런 거짓말을 했었는데……. 왜 나한테 했던 말은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한 번도 그 말이 거짓일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황당하네.”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니 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무슨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진짜 황당한 상황이라니까? 그것도 모르고 강수민한테 돈이나 퍼 주고 있는 그쪽을 보고 있는 나는 얼마나 어이없겠어요? 황당해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 그렇게까지 해 줄 사람이 전혀 아닌데.”

삼촌과 숙모가 죽고 난 다음부터 있는 일, 없는 일 다 해 가면서 강수민을 거의 봉양하는 것과 다름없는 인생을 살았을 때보다, 숙모가 내게 했던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큰 충격이었다.

“박영덕은 또 어떻고? 내가 학폭 글을 쓰기는 했지만, 이것도 사실 그런 거 아니라는 거 다 알아요. 그 새끼들도 다 알면서 터뜨리려고 했던 거라니까? 어차피 연예인들 이미지 장사니까 작은 거라도 흠집 나기 싫어서 결국 과잉 대응할 거라 그랬다고. 근데 그런 쓰레기 새끼 둘이서 그쪽 돈 들고 잠수 탄 거잖아. 내 돈도 떼먹고. 그러니 내가 열이 안 받아요?”

“…….”

“그런 새끼들한테 호구 잡히지 말고 돈 도로 받으라고 하는 얘기예요. 그리고 내가 떼먹힌 돈도 주고. 그러라고 한 소리라고. 말 안 하려다가, 진짜 인생이 불쌍해서…….”

김도웅은 마치 나를 위해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해 줬다는 것처럼 생색을 냈다. 뭐라고 해야 하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말을 들었던 탓일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입술만 달싹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자 김도웅이 내게 자기 핸드폰을 건넸다.

“일단 강수민이랑 박영덕 연락처만 좀 줘 보세요. 그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 볼 테니까. 그 새끼들한테 돈은 얼마나 줬는데요?”

연락처는 나도 모르고, 박영덕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아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일단 김도웅의 핸드폰을 받아 버렸다.

“우리끼리 이렇게 말다툼할 필요가 없어요. 따지고 보면 우린 같은 팀이라니까? 나는 받을 돈 받고, 그쪽은 그동안 호구 잡혔던 거 복수하고. 일석이조네. 그 사기꾼 새끼들은 그만한 돈을 받을 자격이 없어.”

검은 액정을 멍하게 보면서 정신을 차리려 애쓰고 있는 순간, 갑자기 벌컥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보였다.

“……?”

보이면 안 되는 사람이 보여서, 처음에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내가 환각을 보는 건가 했다. 하지만 옆에서 김도웅이 놀라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리자 이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우진은 별말도 없이 우리 쪽으로 곧장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책상 위에 제법 묵직해 보이는 지퍼 열린 가방을 툭 올렸다. 내 시선보다 낮은 높이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안이 훤히 보였다.

“…….”

“…….”

그건 김도웅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은 멍청한 표정으로 가방 안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5만 원짜리 지폐를 쳐다보기만 했다.

“금액이 커서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은데, 일단 이거라도 먼저 들고 가실래요?”

넋이 나가 있는 김도웅을 보며 정우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딱히 화가 난 것 같지도 않고, 그냥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였다.

“뭐……. 아니……. 그, 뭐냐……. 와…….”

김도웅은 문장 하나도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한 채 경악한 표정으로 더듬거렸다. 그리고 벌벌 떨리는 손으로 검은 백팩 안에서 지폐 다발을 꺼냈다.

“와……. 와…….”

나는 아직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한참이나 깜빡이지 못한 눈이 시려서 질끈 감았다가 떴다.

“당연히……. 기다릴 수 있지. 기다려야죠. 근데…….”

뒤늦게 정신을 차린 김도웅이 지폐 다발을 들고 헐떡거리다가 정우진을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삿대질을 했다.

“세가온?”

“네, 맞아요. 사인해 드릴까요?”

마치 길을 걷다가 자길 알아본 팬을 대하듯 정우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왜……. 돈을, 세가온 씨가……. 안녕하세요. 팬이에요.”

“저희 같은 소속사잖아요.”

“네? 같은 소속사라도…….”

고개를 갸웃하던 김도웅이 나와 정우진을 번갈아 보더니 뭔가 감이 왔다는 듯 입을 가렸다. 그러더니 기분 나쁘게 웃으며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아니,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강수민한테 그만한 돈을 준다는 게 이상했거든요? 지금이야 뭐 컴백도 하고 순위도 좋고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연예인이 숨만 쉬어도 돈 버는 직업이라고 해도, 급이라는 게 있는데……. 와, 이런……. 이런 이유였구나.”

가방 안에 도로 돈을 넣은 김도웅이 지퍼를 꽉 잠그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김도웅을 보다가 힐끗 시선을 돌려 정우진을 쳐다봤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눈치라도 좀 줄 생각이었는데, 안광도 없는 시커먼 구멍 같은 눈으로 김도웅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는 순간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 버렸다.

기름칠이 덜 된 로봇처럼 삐걱삐걱 고개를 돌려 회의실의 구석을 보고 있는데, 돈을 다 챙긴 김도웅이 백팩을 앞으로 매더니 말했다.

“제 연락처는 아시죠?”

“네, 알죠.”

“돈 준비 다 되면 그쪽으로 연락주세요. 아,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돈 들고 온 거 보니까 어디서 다 듣고 있었던 거 같은데, 저도 녹음 다 했거든요? 그러니까 괜히 허튼짓할 생각 마시고……. 당연히 안 그러시겠지. 두 분은 제가 봤을 때 잃을 게 참 많아 보이시거든요. 아니, 뭐. 협박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말씀드리는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김도웅이 웃으면서 주절주절 말하다가 몇 번 입맛을 다시더니 등을 돌렸다.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급하게 갈 데가 있어 가지고……. 수고하세요. 가방도 잘 쓸게요. 두 분도, 좋은 밤 보내시고.”

“네, 안녕히 가세요.”

정우진이 손을 흔들며 김도웅을 배웅하는 동안 나는 소름이 돋았던 목덜미를 벅벅 문질렀다. 아직도 등 뒤가 오싹한 게 아까 내가 본 게 뭐였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도웅이 떠나자 회의실에는 잠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눈을 마주치기가 껄끄러워서 계속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물었다.

“들어오지 말라니까…….”

작게 중얼거리듯 말했지만 정우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조금 더 기다려도 별말이 없어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불쑥 코앞으로 정우진의 얼굴이 나왔다. 화들짝 놀라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자 정우진이 허리를 살짝 숙여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세요?”

“…….”

조금 전 내가 봤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정우진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내 눈치를 보며 나를 살피고 있는 걸 보니, 별안간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울컥했다. 나는 코끝이 찡해져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지.”

다 들었겠지? 주머니 속의 녹음기를 꺼내자 정우진이 가져가 버튼을 눌렀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자니 또 울컥했다.

내가 등신처럼 강수민에게 속아서, 그러니까 김도웅 말처럼 호구 노릇을 한 걸 정우진도 다 들었을 거다.

왜 나는 항상 정우진에게 가장 숨기고 싶은 밑바닥만 들켜 버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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