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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드렁한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김도웅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어차피 이러는 것도 돈이 목적인 듯한데, 뭘 저렇게 어둠에 숨겨진 배후 세력처럼 구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중학생일 때 일어난 일도 내가 뭐 대단한 비밀처럼 남들에게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전혀 아니었다. 그냥 떠들고 다닐 일이 아니다 보니까 말을 안 했을 뿐이지, 특별히 숨긴 적도 없었다.
“사촌 형님한테 듣기는 했는데 진짜 눈치가 별로 없으신가 보다.”
김도웅이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날 흘겨보는 눈빛이나 표정을 보니, 쉽게 본론으로 들어갈 것 같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중학교 다닐 때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거 보니까 어디서 뭘 들은 모양인데, 이걸로 협박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
내 말에 김도웅의 눈이 뻥 뚫린 해골바가지처럼 커졌다.
“바로 그 얘기가 나오는 거 보니까 찔리는 게 있으신가 봐요.”
“찔리는 게 아니라 그쪽이 먼저 말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이. 솔직히 저도 듣고 많이 놀랐거든요. 지금 한창 뜨고 있는 아이돌이 사람을 죽였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강수민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나왔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내가 죽인 것도 아닌데, 강수민은 늘 내게 책임을 전가하고 내 탓만 했었다. 너 때문에 죽었다, 네가 죽인 거다, 너만 아니었어도 죽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네가 한 가정을 박살 냈다 등등…….
어렸을 땐 그 말을 듣고 괴로웠던 적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학대를 당하며 수많은 시간을 보냈던 지금의 나는 아니었다.
“어디에서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모르겠는데, 말은 좀 똑바로 합시다. 제가 죽인 것도 아닌데.”
“아니, 뭐 사람을 칼로 찔러 죽여야만 살인인가? 참 위험한 생각을 하시네.”
대화가 자꾸 겉에서 빙빙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그냥 나한테 기분 나쁘라고 찾아온 건가? 의도를 알 수 없는 비아냥거림에 잠시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자 김도웅이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뭐 그렇게 엄청 착한 사람도 아니고, 결벽주의자도 아니고……. 잘잘못을 따지자고 온 것도 아니거든요. 내가 뭐 경찰도 아니고. 안 그래요?”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건지, 김도웅이 선심 쓰듯 말했다. 내 입장에서는 그냥 황당할 뿐이라 그게 표정에서도 티가 났는지, 김도웅이 다시 날 협박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바닥에 좀 있었으면서, 대중들을 그렇게 모르세요? 당신 입장에서는 삼촌이랑 숙모가 뒈진 것뿐이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너 때문에 멀쩡하던 가정이 박살 났는데, 이게 알려지면 악플러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기자들은 또 어떻고.”
“…….”
“당신도 겪어 봐서 알 거 아니에요. 찾아보니까 뭐 예전에도 한 번 거의 매장될 뻔한 적도 있더구만. 백오식인가? 그 사람 성추행 논란 안 터지고, 음주 운전 사건만 아니었으면 내가 봤을 때 당신들 지금 이렇게 쉽게 컴백 못 했어.”
“…….”
반박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이 좆같은 대화가 끝나지 않을 듯싶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
내가 꼬리를 말았다고 생각한 건지, 김도웅의 표정이 만족스럽게 펴졌다.
“이래서 있는 것들이랑은 말이 잘 통해. 잃을 게 많으니까 겁이 많거든. 근데 나는 잃을 게 없어요.”
“아, 예. 좋으시겠어요. 잃으실 게 없는 인생이라.”
아차. 빈정거리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멋대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또 험악해지려는 김도웅의 표정을 보며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고개를 한 번 숙였다.
“죄송합니다. 말이 헛나가서…….”
“상황 파악이 안 되세요?”
“아니요, 충분히 상황 파악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잃으실 게 없으신데,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이젠 얘기 좀 해 주세요. 저한테 그런 말이나 하려고 이 늦은 시간에 여기까지 찾아오신 건 아닐 거 아니에요.”
내 말에 김도웅이 한숨을 내쉬며 나를 노려봤다. 매가리 없이 퀭한 눈빛을 보니, 문득 저놈이 약도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그럼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내가 받을 돈이 있거든요? 근데 이 새끼들이 잠수를 탔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한테 받을 돈이에요?”
“따지고 보면 그런데, 모른 척하지 마세요. 내가 알 건 다 알거든?”
“아, 예…….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돈 달라고 오셨어요?”
예상에서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 말이었다.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피곤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자 김도웅이 웃고 있었다.
“나도 피곤하게 일 키우기 싫어요. 그쪽이 뭐 아이돌인데 사람을 죽였다거나 이런 건 나랑 상관도 없는 일이고……. 나도 내 인생이 있고, 바쁜 사람이니까 내 몫만 받으면 그냥 얌전히 사라져 드릴게요. 따지고 보면, 나도 피해자거든?”
“뭘 얼마나 받기로 하셨는데요?”
순전히 궁금해서 묻자 김도웅이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 30억?”
“아……. 30억이요?”
3만 원도 아니고, 30만 원도 아닌, 30억……. 기가 차는 금액이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만져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금액이기도 했다. 그걸 무슨 마약이나 하는 도박쟁이 새끼가 남의 집 개 이름처럼 부르는 것도 웃겼다.
“이자까지 치면 원래 더 많은데, 그건 특별히 인심 써서 봐줄게요. 말도 잘 통하는 거 같으니까.”
“그걸 빌려 주신 거예요? 그 박……. 박 뭐시기한테?”
이름이 생각 안 나서 대충 얼버무리자 김도웅이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자기가 팬 사람 이름도 기억 못 해요? 하긴, 원래 때린 사람들은 기억을 못 하죠. 맞은 사람만 기억하지. 박영덕이 그쪽한테 얻어 터져서 임플란트까지 했다던데.”
이런 얘기도 다 해 준 걸 보면 생각보다 둘이 친한 사이였나? 아무튼 이름을 들으니까 기억도 나지 않던 얼굴이 조금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같이 놀던 애들이 걔한테 영덕 대게라고 놀리는 걸 들었던 것도 생각났다.
진짜 유치하다. 어린애들은 왜 그렇게 이름 가지고 놀릴까?
갑자기 든 생각에 피식 웃자, 김도웅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웃어요? 때린 새끼 생각나니까 막 웃음이 나?”
그 말에 나는 다시 정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별로 말도 하기 싫어서 그런지 대화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예상했던 거랑 하는 말도 비슷하고……. 그래도 일단 물어볼 건 물어봐야 해서 입을 열었다.
“박영덕한테 30억을 빌려 주신 거예요?”
“원금은 그거보다 적긴 한데……. 근데 내가 이런 것까지 다 말을 해 줘야 하나? 그건 내 개인적인 일인데.”
“30억이 남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저도 알 건 알아야죠.”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김도웅의 표정이 다시 활짝 펴졌다.
“아, 그러면 말씀을 해 드려야지. 그 새끼가 나한테 빌려 간 돈이 있는데, 갚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어떡해? 나도 당장 돈이 필요한데 빨리 갚으라고 닦달을 했지. 그러니까 자기가 곧 돈 나올 구멍이 있다고 기다리라고 하더라고. 나는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는데, 이 새끼들이 갑자기 잠수를 타네? 박영덕이랑 강수민 말이에요. 당신 사촌 형이랑 고등학교 동창.”
정우진이 아마 그럴 것이라고 내게 해 줬던 말에서 한 치도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놀란 듯 눈을 조금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추임새를 넣었다.
“아……. 갑자기 연락이 안 됐어요?”
“갑자기, 진짜 갑자기. 나도 피해자야. 나는 뭐 돈을 땅 파서 빌려 줬어? 나도 엄연히 받을 게 있는데 연락이 안 되니까 하는 수 없이 여기까지 찾아온 거잖아요. 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냐고. 나도 바쁜 사람이에요.”
“학교 폭력 터뜨려서 돈을 받겠대요? 그게 돈 나올 구멍이었고?”
내 물음에 김도웅이 탁자를 한 번 탁 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요. 아니, 뭐……. 강수민한테 원래 돈 주고 있었다면서요? 집도 사 주고 그랬다던데.”
“…….”
“그 새끼가 진짜 나쁜 새끼야. 사촌 동생한테 기생하면서 돈도 받고 집도 받고, 어? 그렇게 떵떵거리면서 살아 놓고 고마운 줄도 모르고 뒤통수나 치려고 하고. 안 그래요? 그 새끼들이 나쁜 거지, 나는 그냥 돈만 받으면 된다니까? 따지고 보면 나는 이 일이랑은 무관한 사람이에요. 나도 피해자고, 이 일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아. 안 그래요? 내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해 봐요.”
김도웅은 돈만 받으면 끝이라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퀭한 눈빛은 욕심으로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얼굴에 티가 나는 건지 이쯤 되니 신기할 지경이었다.
“사촌 형이라는 새끼가 동생한테 도움은 못될망정……. 진짜 염치없는 놈이라니까?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다 도와줬는데 잠수나 타고 말이야. 그 새끼들한테 돈 준 건 맞죠? 그 돈 들고 튄 거지, 지금? 이 씨발 새끼들…….”
“…….”
“하여튼 머리 검은 짐승 새끼들은 믿을 게 못 돼. 어? 내 동생이었으면 진짜 잘해 줬을 텐데……. 그 씨발 놈들 잡히면 진짜 다리 한 짝씩은 박살을 내놔야지. 진짜 그쪽이 부처야, 부처. 내 사촌 형이 그런 새끼였으면 나 같으면 그냥 뒈지게 내버려 뒀지, 그렇게 돈 주고 집도 주고 안 그러지. 진짜 착하네.”
열이 뻗치는 건지, 살벌한 표정으로 욕을 하기 시작하던 김도웅이 별안간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으니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무튼 나는 진짜 돈만 받으면 끝이에요. 디 엔드. 내가 정말 급하게 돈 쓸 곳이 있어서 이렇게 불미스러운 방식으로 접촉을 시도하긴 했지만, 나도 뭐 어떻게 연락할 방도가 없어서 그랬던 거니까 이 부분은 너른 마음으로 이해를 좀 해 주세요.”
“…….”
“학폭 뭐 그것도, 여론 보니까 별로 타격도 없더구만. 평소에 되게 착하게 사셨나 봐요. 별로 피해도 없는 거 같고, 오히려 그거 때문에 이번에 신곡 나온 거 홍보도 된 거 같으니까 일석이조 아닌가……. 그쵸? 원래 연예인들 그런 걸로 마케팅도 하고 그러잖아요. 일부러 사건 사고, 논란 만들어서. 맞죠? 건너건너 들어 보니까 연예인들 다 그러던데.”
내가 계속 말이 없는 게 슬슬 불안했던 건지, 김도웅은 혼자서 주절주절 떠들었다.
“그러니까 그건 좀 봐달라고요. 내가 잘못했으니까. 진짜 평생 반성하면서 살게요. 내가 원래 인터넷 뭐 이런 걸로 악플 같은 것도 안 달아 본 사람이에요. 진짜 오죽 급했으면 그랬겠냐고. 나도 대신 돈만 받으면 이 일에 대해서는 입도 벙끗 안 할게요. 각서도 쓸 수 있어. 지금 쓸까요? 혹시 몰라서 도장도 가지고 왔는데.”
김도웅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나무로 만든 인감도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놨다.
“돈만 주면 이 비밀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지킨다니까? 고등학교 동창 때려서 임플란트 하게 만든 거라든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시절에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고아 새끼 거둬 준 착한 삼촌이랑 숙모 죽게 만든 거라든가. 뭐, 그런 거요.”
“…….”
“네? 아니, 씨발 말을 좀 해 보세요. 왜 아까부터 벙어리 새끼처럼 입을 그렇게 꾹 쳐 다물고 계세요? 나 진짜 급하다니까? 귀가 먹었어요? 돈 줄 거냐고, 말 거냐고.”
답답한 건지 김도웅이 주먹으로 탁자를 쾅쾅 내려치면서 언성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