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와 B의 사이-165화 (170/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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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유난히 더웠다. 여름에는 더운 게 당연하다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더운 날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데, 하필이면 그날은 체육 시간까지 있었다. 그늘도 없는 초열지옥에서 미친 듯이 뛰다가 그나마 서늘한 교실로 돌아왔지만, 더운 건 마찬가지였다.

살갗에 들러붙는 체육복도, 젖어서 축 늘어진 머리카락도, 닿지도 않았는데 옆으로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져 사람도 싫어질 정도로 더웠던 탓일까?

평소에도 유별나게 지랄 맞았던 몇몇의 무리들이 끓어오르는 짜증 지수를 이기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여느 양아치들이 그렇듯, 우르르 개떼처럼 몰려가서 한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이었다.

괜히 시비를 걸고, 툭툭 건드리고, 근본도 없는 욕지거리를 연설처럼 늘어놓았지만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같이 싸우기 싫었던 것도 있겠지만, 말했다시피 그날은 지나치게 더워서 그냥 모든 것이 다 귀찮아지는 그런 날이라 더 참견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한숨도 자지 못한 채 등교했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학교나 같은 반 친구들이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던 나는 내 한 몸 챙기기도 벅차서 빨리 잠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또 일하러 가야 해서 그동안 최대한 잠을 자 둬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휴, 저 다리병신 새끼.”

“쩔뚝거리는 거 존나 역겹네.”

“야, 너 뛸 수는 있냐?”

열어 둔 창문 틈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 열을 식혀 주고 있었다.

“친구야, 내 슬리퍼 좀 주워 와 줄래?”

“미친 새낀가, 사람을 개 취급하고 있네. 너 양아치니?”

“양아치라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세요? 넌 뭘 멀뚱멀뚱 있어, 이 다리병신 새끼야. 가서 저거 안 주워 오냐?”

하지만 잠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정신만 더 또렷해졌다. 그다지 조용하지도 않은 교실에서 양아치들의 욕설과 대화 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

문득 나는 너무 궁금해졌다.

왜 인간들은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화를 낼까? 잘 걷지 못하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제대로 못 걸어서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왜 꼭 저런 양아치 새끼들은 거기에 꽂혀서 항상 시비를 걸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서 널브러진 슬리퍼를 대신 주워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

“너 뭐야, 이 새끼야?”

“내 신발!”

다리 얘기만 아니었어도 안 끼어들었을 텐데.

씨발.

***

“그러니까 슬리퍼를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다고요? 괴롭힘 당하는 친구를 위해서?”

“딱히 그랬던 건 아닌데……. 그냥 그날은 너무 더워서 기분이 안 좋았어. 아무튼 그래도 여러 명이서 한 명을 괴롭히는 건 나쁜 거긴 하잖아.”

누군가를 위한다거나 불의를 참지 못해서 그랬던 건 솔직히 아니었다. 말했던 대로 정말 갑자기, 그냥 기분이 안 좋아져서, 따지고 보면 나도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대충 할 말은 하고 뺄 말은 빼서 설명하자 정우진이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그래서요?”

“몸싸움 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종 쳐서 수업 시작했어. 그리고 학교 끝나고 남으라고 하던데, 아르바이트 때문에 그냥 갔지. 그랬더니 아침에 교문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야. 개떼처럼 모여 가지고.”

그때를 떠올리니 정말 끔찍했다. 나는 질색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 뒤로는 저번에 말했던 거랑 똑같아. 그때 싸우다가 나도 다치고 그 양아치들도 다치고, 그러면서 어영부영 넘어가고……. 마주치면 욕하거나 싸울 때도 있었는데, 처음처럼 심하게 다퉜던 적은 없었어. 그냥 그러다가 학년 올라가면서 반도 바뀌고 자연스럽게 안 보게 된 거지.”

몸싸움을 좀 심하게 하긴 했지만, 그 뒤로는 크게 부딪친 적이 없어서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근데 이걸 본인도 아니고 지인이라는 사람이 학교 폭력이라고 터뜨리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 말을 다 들은 정우진이 뭐라고 하려던 그때, 김강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유노을이 말했다.

-형, 어디야?

“나 지금 지하 주차장. 금방 올라갈게.

-알았어.

전화를 끊자 핸드폰을 빤히 보고 있던 정우진이 물었다.

“핸드폰 바꿨어요?”

“아니, 이거 강이 거. 내 건 배터리가 다 돼서. 아무튼 나 지금 올라가 봐야 하니까 나중에 문자하든가 전화해. 너도 집에 가서 좀 쉬고.”

“오전 스케줄이 너튜브 인터뷰 촬영하는 거죠? 저도 집에 가서 씻기만 하고 바로 갈게요.”

온다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온다고? 거기에? 네가? 왜?”

“그냥 관람이에요.”

“관람은 무슨 관람이야?”

“아무튼 빨리 올라가세요. 나중에 봐요. 가다가 역시 안 되겠다 싶으면 전화해 주세요. 제가 대타로 나갈게요.”

뭐라고 하려다가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다 까먹어 버렸다. 황당한 표정으로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

“아침 챙겨 먹고 와.”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정우진을 보내고, 우리는 매니저 형과 함께 촬영 장소로 가기 전 숍에 들렀다. 기사도 뜨고 인터넷에 글이 올라와서 그런지, 우리가 들어가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평소처럼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유노을이 내 옆으로 바짝 다가와서 핸드폰을 내밀었다.

“형, 또 올라왔어.”

“뭐가?”

“이거 봐.”

아니, 도대체 또 뭐가 올라왔다는 거야? 또 무슨 헛소리를 써 놨나 싶어서 한숨을 내쉬며 내용을 읽었지만, 그건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글이었다.

***

아이돌 어나더 원, 강서주의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제발 읽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어나더 원, 강서주의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최근에 강서주가 학창 시절에 양아치였다는 고발 글이 올라온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은 다 알 것입니다.

얘들아, 나 기억해? 이름이나 얼굴은 잊었을지 몰라도 2반 절름발이는 기억날 거야. 매일 삥 뜯기고 빵셔틀 하고 다리 병신이라고 욕이나 먹고 매일 쩔뚝거리면서 다니던 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과거지만 유일하게 날 도와줬던 서주가 누명을 쓴 거 같아서 고민하다가 글 올립니다. 서주는 담배 피우거나 애들 삥 뜯고 다니던 그런 애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일진들한테 맞고 있던 저를 구해줬던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솔직히 서주는 학교 다닐 때 매일 수업 시간에 잤던 거밖에 기억이 안나서 모범생이라고는 할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학교 폭력 같은 건 정말 아니에요. 오히려 저를 때렸던 일진 애들이 학교 폭력을 저지르고 평범하게 학교 다니던 학생들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서주가 텔레비전에 아이돌이라고 나올 때 혼자 응원도 많이 했고, 정말 잘 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힘들지만 몇 글자 적어봅니다. 인증 없으면 안 믿을까봐 졸업 앨범이랑 당시에 제가 일진들한테 맞았던 상처 사진, 수학여행 같을 때 찍었던 반 단체사진 올립니다.

같은 반이었던 애들은 다 알거예요. 서주 진짜 그런 애 아니었어요..

댓글

>헐 이건 또 뭐야..

>뭐가 되게 복잡하네

re: ㄱㄴㄲ..

>근데 이거 말고 그 고발글에서도 댓글에 같은 학교 다녔다는 사람들 나왔는데 다 금시초문이라는 반응 아니었음? 그렇게 양아치로 유명했다면서 왜 아무도 몰라???

re: 내말이..ㅋㅋㅋ 걍 지들끼리 싸워놓고 학폭 당했다고 주장하는거 같은데..

rere: 설마ㅋㅋㅋㅋ 근데 그렇게 피해자인척을 한다고? 고소 당하는거 무섭지도 않나ㅋㅋㅋㅋㅋ 빡대가리 아니면 그럴리가 없음ㅋㅋㅋ

>나 강서주랑 같은 학교였는데 양아치로 유명했던건 맞음ㅋㅋ

re: 나도 같은 학교였는데 안 유명했는데 뭔소리임?

re: 난 같은 반이었는데 안 유명했어 뭔소리야ㅋㅋㅋ 너 설마 박ㅇㄷ 패거리냐?ㅋㅋㅋㅋㅋ

rere: ㅋㅋㅋㅋㅋㅋㅋㅋㅂㅇㄷ무리들 중 한명 맞을듯ㅋㅋㅋㅋㅋㅋ

>나도 같은 반이었는데 진심 양아치는 뭔 양아치ㅋㅋㅋㅋ 맨날 잠만 자고 점심시간에 일어나서 밥만 먹고 종치면 제일 빨리 나가던 애였는데ㅋㅋㅋㅋㅋ

re: ㄹㅇ 그리고 체육 시간에 축구 개잘했음ㅋㅋㅋ

>강서주 학폭 논란 터뜨리고 싶어서 무리수 두는거 같은데 솔까 그 학교 학생이 몇명이었는데ㅋㅋㅋㅋㅋ 양아치 절대 아니었음

>학교는 모르겠고 오빠 고등학교 다닐때 우리 부모님 고깃집에서 알바했는데 엄청 착했댔음 그리고 나 그때 초딩이었는데 나한테 거북알도 사줌

re: 아이스크림?

rere: ㅇㅇㅋㅋㅋㅋㅋ

re: 헐 나도 롯데리아에서 같이 알바했는데 대타도 많이 뛰어주고 같이 의자 옮기다가 팔목 삐끗했을때 말도 없이 나가서 파스 사다준적 있음

rere: 헐 개발린다

rerere: 나도 그래서 주말에 같이 영화보러 가자고 했다가 차임ㅠ

rererere: ㅠㅠㅠㅠㅠㅠㅠㅠㅠ

rererere: ㅠㅠㅠㅠㅠ

rererere: ㅠㅠ왜 차였어? 걍 싫대?

rerererere: 주말에 알바 풀타임이래서 안된대..

rererererere: 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ㅅㅂ 도대체 학폭은 뭔 학폭이야ㅋㅋㅋㅋ 댓글만 봐도 미담밖에 없는데ㅋㅋㅋㅋㅋ

re: ㄹㅇ사실 처음 학폭 터뜨렸던 사람은 클래스가 아니었을까...?

rere: ㅋㅋㅋㅋㅋㅋㅋㅋㅋ

rere: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진짜 못됐다... 다리 좀 절뚝거리는게 뭐라고...ㅠㅠ

re: 그니까..ㅠㅠ 진짜 못됐어

>대충 상황 보니까 강서주는 그냥 학폭 당하고 있던 애를 도와준거 같은데 학폭 가해자가 강서주한테 맞았다고 글쓴거고.. 내가 이해한거 맞아?

re: ㅇㅇ맞는거 같음

re: ㅇㅇㅇㅇ

re: 그런듯

re: 미쳤다 진짜

>아니 씨발 양심이 뒤졌나ㅋㅋㅋㅋㅋ 아이돌 관심도 없는데 학폭 터졌다길래 들어와봤다가 웃고간다ㅋㅋㅋㅋ

re: ㄱㄴㄲ 나도 아이돌 노관심인데 덕분에 이름 알고감ㅋㅋㅋ

rere: 이번에 신곡 나왔는데 함만 들어주세요 진짜 좋아요

rere: 제목 4SEASON

>신곡 좋아?

re: 개좋음 진짜 개개개개개개개개개개개좋아

re: 들어봐 절대 후회 안한다

>뭔 대가리로 이걸 학폭이라고 터뜨렸냐.. 지능이 없나..

re: 내말이.. 어디 좀 모자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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