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와 B의 사이-164화 (16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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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자 유노을과 김강이 온 힘을 다해 이진혁을 진정시키고 있는 게 보였다. 침착하게 숨을 마셨다가 내뱉는 이진혁을 잠시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잠깐 나갔다가 금방 올게.”

“매니저 형 거의 다 도착했대.”

“금방 올 거야.”

내 말에도 김강은 영 불안했는지 자기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배터리 없어서 핸드폰 안 가지고 가지? 내 거 들고 가. 전화 꼭 받고.”

그리고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는 게 꼭 위로를 해 주려는 것 같아서 잠깐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애들을 두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익숙한 차 한 대가 보였다. 성큼성큼 걸어가 차 문을 열고 타자 정우진이 인사도 없이 다급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글 쓴 게 강수민은 확실히 아니에요. 선배님한테 맞아서 임플란트했다던 그 사람도 아닌 거 같고……. 강수민이 선배님 학교 폭력 터뜨리려고 할 때, 그 사람 만났었거든요. 이름이 뭐라더라. 박씨였는데, 아무튼. 그 박씨도 저희 쪽에서 잘 타일러서 어쨌든 아닌데, 저희가 모르는 제3자가 있었나 봐요.”

잘 타일렀다는 말이 좀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걸 걸고넘어질 때가 아니었다.

“나랑 싸웠던 여섯 명 중 한 명인가? 그 임플란트 빼고도 다섯 명 있잖아.”

“그 사람들도 아니에요.”

“……어떻게 알아?”

그러고 보니까 그때도 자세한 건 듣지 못했던 기억이 났다. 정우진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고, 나도 그땐 너무 정신이 없어서 이 부분에 대해 진득하게 들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주도면밀하게 움직였을 줄은 몰랐다. 그 임플란트야 직접적으로 회사에 연락해서 협박을 했다지만, 나머지는 그런 것도 아니었을 텐데.

“아, 만나서 어떻게 한 건 아니고……. 아무튼 그 사람들은 아닐 거예요.”

“안 그런다고 약속하고 거짓말했을 확률은 없어?”

“없어요.”

단호하게 말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했다. 도대체 입막음을 뭐 어떻게 했으면 저렇게 자신만만한 걸까? 내 눈빛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건지 정우진이 변명하듯 말했다.

“직접 약속을 받아 낸 건 아니고, 사실 사람을 좀 붙여 놨어요.”

“…….”

“아무튼 그 사람들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박씨 말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평범하게 잘 살고 있더라고요. 회사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

표정이 얼마나 순진무구한지,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하는 말에 하마터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뻔했다. 지금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너무 기분이 이상해서 어쩔 수 없이 물었다.

“너 도대체 정체가 뭐니?”

“선배님 애인이요.”

“내 애인이기 이전에는 뭐였는데?”

“그때 전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어요. 그냥 죽지 못해서 살았고…….”

서글픈 표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정우진을 가만히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색을 하고 다시 물어보면 대답해 줄 것 같기는 한데, 저렇게 필사적으로 딴청을 부리는데 억지로 캐묻자니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착한 애도 아닌 거 같으니까 걱정인 거지.”

“그냥 중간 어디쯤에 걸쳐져 있기는 한 거 같아요.”

이제 아니라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정우진을 보다가 이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본론으로 돌아갔다.

“아무튼 그 글 쓴 사람은 누군지 모른다는 거지? 회사에 따로 연락 온 것도 없었어? 기자들은?”

“네, 따로 연락 온 건 없고 기자들도 딱히 인터넷에 올라온 거 말고, 다른 건 모르는 것 같아요. 돈이 목적이라면 곧 회사로 연락이 올 거 같기는 한데. 아니면 저희 쪽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요. 일단 내용 중에 허위 사실도 있어서 그건 강경 대응할게요.”

뭐가 허위 사실이고, 뭐가 진실인지 알고 있기는 한 건가? 6 대 1로 싸웠다는 얘기를 아주 잠깐 해 주긴 했지만, 자세히 말한 건 아니었는데. 나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너 혹시 나한테도 사람 붙여 놨어?”

“아니요? 절 어떻게 보시는 거예요? 선배님한테 사람 붙여 놨으면 제가 이렇게 급하게 여기까지 왔겠어요?”

억울하다는 듯 말하는 정우진을 가만히 보니, 그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띄었다. 정말 급하게 왔는지 잠옷 차림 그대로에 신발도 슬리퍼였다. 머리도 뒤통수 쪽이 삐죽 뻗쳐 있는 걸 보니 씻지도 못하고 자다가 급하게 온 것 같았다.

“저 못 믿으세요?”

“아니, 믿어. 그냥 물어본 거야. 혹시나 하고…….”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하자 입술이 댓 발 나온 정우진이 불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돌렸다.

“그 다섯 명은 그냥 평범하고 살고 있다며. 그럼 박씨는 안 평범하게 살고 있었어?”

“평범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 빚도 있고……. 그래서 강수민이 연락했을 때 덥석 손잡은 것 같기도 하고.”

“빚? 많아?”

“네, 좀 되던데요? 도박도 해서 아마 적은 금액은 아닐 거예요. 더 늘었을 수도 있고. 자세히 알아볼까요?”

그 정도로 궁금한 건 아니라서 그냥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정우진이 자꾸 저렇게 의미심장하게 말을 하니까 찝찝한 마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저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아이돌이 본업인 건지, 부업인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기사는 금방 내려갈 거예요.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해요. 하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정우진이 속상한지 한숨을 내쉬며 말끝을 흐렸다.

“네가 왜 죄송해? 네가 그런 글을 쓴 것도 아닌데.”

“제가 뒤처리를 잘 못 했잖아요.”

“아니, 부탁인데 제발 단어 선택 좀…….”

인상을 찌푸리고 말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물었다.

“너 진짜 정체가 뭐야? 뭔데 사람 붙인다는 얘기를 그렇게 쉽게 해?”

“별로 어려운 건 아니니까요. 제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건 그냥 돈만 주면 누구든 다 이용할 수 있어요. 부모가 누구든, 직업이 뭐든 비용만 지불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전부 다요.”

정우진은 별거 아니라는 듯 구구절절 말했지만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그거 불법이잖아.”

“그럼 다음부터는 안 할게요.”

“…….”

사람을 붙였다는 건 미행을 했다는 뜻 같은데, 그걸 무슨 동네 마트에서 돈 내고 배달 서비스 받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었다. 단박에 저렇게 다음부터는 안 한다고 하니까 더 할 말은 없었지만, 기분이 묘했다.

어쨌든 나 때문에 저런 미행 서비스를 굳이 돈 내고 이용한 거니까…….

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자 정우진이 눈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진짜 안 할게요.”

“알았어. 그리고 너 혹시 또 뭐 다른 불법적인 일 하고 있는 거 있어?”

“없어요. 세금도 잘 내고 있고, 기부도 꼬박꼬박 하고 있어요. 불법적으로 돈을 번 적도 없고요. 어제 집에 가다가 쓰레기도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장하다, 그래.”

이 상황에서 쓰레기를 주워서 버렸다는 말이나 하고 있는 게 황당했다.

자신의 무해함을 필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정우진을 보고 있자니 찝찝했던 마음도 어느 정도 풀리고 있었다.

그래, 뭐……. 미행 같은 거야……. 엄청나게 나쁜 것도 아니고……. 물론 불법이기는 했지만, 딱히 상해를 입힌 것도 아닌데……. 아니, 그래도 나쁘긴 한데 다음부터는 안 한다고 했으니까……. 게다가 이번에는 좀 특수한 상황이라 정상 참작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네, 안 할게요. 약속했으니까 절대 안 해요. 만약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허락받고 할게요.”

꼭 미행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게 뭘까 싶었지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게 어디로 튈지 몰라서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어쨌든 회사 입장문은 바로 발표할 거고, 거기서 연락 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려고요. 어차피 강수민이나 박씨랑 관련된 사람이라면 돈이 목적일 게 뻔해서.”

그 말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게시 글 내려 주는 조건으로 돈 달라고?”

“네, 저번에도 회사로 연락 왔을 때 그랬거든요.”

“그래서 돈을 주겠다고?”

돈은 많은데 쓸데가 없는 갑부 정우진은 귀찮은 일을 전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호구 같은 경향이 강했다. 강수민 때처럼 이번에도 그럴까 봐 애써 화를 삭이며 물었는데, 다행히 정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친인척 같은 것도 아니고…….”

“친인척이라도 그러지 마.”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 다 허락받고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돈을 주든, 법적으로 해결을 하든, 불법을 저지르든.”

화를 참고 있다는 걸 안 건지, 정우진이 나를 타이르듯 말했다. 안심이 되다가도 뒷말 때문에 도로 불안해졌지만, 어쨌든 뭘 하든 허락을 받는다고 했으니 다행이긴 했다.

“아무튼 나는 잘못한 거 없으니까……. 아니, 그때 좀 다툼이 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애들 싸움 같은 거였고, 그거 말고는 난 남들한테 말 못 할 부끄러운 행동 같은 거 한 적도 없어. 그러니까 스케줄도 굳이 취소할 이유가 없고, 필요하면 내가 그때 상황에 대해서 자필 입장문 같은 것도 쓸 수 있고…….”

“그런 건 회사에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스케줄도 원하시면 계속하시고, 혹시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그러면 저한테 말만 제대로 해 주세요.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주 조금 힘들 것 같다는 낌새가 느껴지기만 해도 말하세요. 피곤해도 말하고, 배고파도 말하고, 그냥 심경에 티끌만 한 변화라도 생기면 무조건 말해 주세요.”

신신당부하는 걸 보며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하라는 건가? 걱정해 주는 건데, 일일이 따지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하려는데 정우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만약 말 안 해 주고 혼자 참는 것 같다고 느껴지면, 저도 일정 부분은 제 마음대로 행동할 거예요.”

“협박하냐?”

“네, 그러니까 꼭 말해 주세요. 알겠죠?”

당당하게 협박하는 정우진을 보고 있자니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약 나는 진짜 안 힘든데, 정우진이 그렇게 느끼면 그땐 어쩌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때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말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정우진에게 그때의 상황에 대해 최대한 상세히 설명을 했다.

“우리 반에 어떤 애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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