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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을이야 원래 평소에도 핸드폰을 매일 옆에 끼고 살았다지만, 이진혁은 본인이 연락할 때 말고는 어디에 뒀는지도 까먹고 살 정도로 핸드폰에 관심이 없었다.
“이러다가 우리 1위하면 어떡해?”
“그러면…….”
“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김칫국부터 마시면 안 돼. 이러면 꼭 상황이 안 좋아지더라고. 절대 이렇게 자만해서는 안 돼. 아니야, 이제 신경 끌래. 신경 끄고 안 볼래. 나 이제 핸드폰 전원도 끈다.”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가서 주절주절 떠드는 이진혁을 보고 있자니, 웃기기도 하고 그 심정이 조금 이해되기도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4SEASON의 순위가 3위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형, 나는……. 나는 그냥, 이 모든 걸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했어.”
유노을이 부처님처럼 수인을 맺으며 눈을 감았다. 머리 뒤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유노을의 표정은 속세의 모든 미련을 끊어 내고 해탈한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들뜨긴 마찬가지였지만, 옆에서 저렇게들 난리를 부리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건 김강도 마찬가지인지, 별말 없이 아까부터 과자만 먹고 있었다. 나는 김강 옆으로 가서 앉아 봉지 과자를 뺏어 먹으며 물었다.
“이거 맛있어?”
“…….”
“처음 먹어 보는…….”
처음 보는 과자라 자세히 보는데, 선라이즈의 로고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힐끗 유노을을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우걱우걱 과자를 먹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맛있냐?”
“…….”
김강은 마치 프로그램이 입력된 기계처럼 봉지 안으로 손을 넣어서 과자를 꺼내 자기 입으로 넣고, 다시 봉지 안으로 손이 들어가길 반복했다. 얼마나 맛있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얘도 맛이 갔다는 걸…….
“야, 천천히 먹어.”
“…….”
“정신 차리라고!”
“…….”
가만히 보니까 눈에 초점이 없었다. 허공을 보며 로봇처럼 과자를 먹던 김강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어? 왜? 혹시 무슨 말 했어?”
“…….”
가지각색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이진혁의 핸드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전원을 끈다고 하더니 안 끈 모양이었다. 그걸 보며 고개를 젓고 있는데, 벨 소리에 정신을 차린 건지 유노을이 아, 하고 물었다.
“형, 우리 라이브 방송으로 먹방 해볼래? 나 라방할 때 우리 먹방 보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 엄청 많던데.”
“난 상관없어.”
김강이 제일 먼저 대답했다. 나도 딱히 상관없다고 하려는데, 전화를 받고 있던 이진혁의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네? 지금이요?”
먹방 이야기를 하고 있던 우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진혁에게 돌아갔다. 표정이 심상치 않아 고개를 갸웃하자 유노을이 불안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누구야?”
“몰라.”
“뭔 일인데 표정이 저래, 불안하게…….”
유노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에서 핸드폰을 뗀 이진혁이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슬금슬금 다가가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며 물었다.
“왜? 전화 누구한테…….”
누구한테 온 거냐고 물으려다가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액정 위에 뜬 기사 제목 때문이었다.
‘유명 아이돌 그룹 A씨, 학교 폭력 논란!’
“…….”
주어가 누구인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등골이 쎄한 게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며칠 전에 정우진이 학교 폭력 관련해서 해 줬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히 이야기가 잘 끝났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잘못 알았던 걸까?
“이게 뭐야?”
내 옆에 있던 유노을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학교 폭력? 이게 왜? 설마 이거 우리 얘기야?”
다급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 유노을을 가만히 보다가 나는 이진혁에게 물었다.
“전화 온 거 누구야?”
“매니저 형……. 일단 오고 있대.”
내 눈치를 보며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진혁은 매니저 형에게 뭔가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럼 매니저 형도 저게 내 얘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인데, 도대체 누가 말을 한 거지?
아니면 설마 어디에 폭로 글이라도 올라온 걸까?
일단 매니저 형이 오기 전에 애들한테는 내가 먼저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아서 입을 열려고 하는데, 자기 핸드폰으로 한참 뭘 보던 김강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유노을이 쏜살같이 김강의 옆으로 다가갔다.
나도 옆으로 가서 슬쩍 보니 ‘어나더 원은 학교 폭력 가해자다.’라는 제목의 글이 어느 사이트에 올라와 있었다. 이미 댓글도 수백 개나 달려 있었다.
대충 내용을 보니 이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라는 둥, 자기가 피해자의 지인이고, 내가 평소 학창 시절에 동네에서 유명한 양아치였다는 둥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졸업 앨범 사진에 포스트잇을 붙여 주작이 아니라는 증거까지 내걸어서 그런지, 믿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댓글
>ㅁㅊ.. 와..
>나 강서주랑 같은 학교였고 옆반이었는데 양아치인건 모르겠고 맨날 학교에서 자긴 했었음.. 공부는 별로 안했던듯
>어나더ㅃㅃ~~
>어나더 컴백하자마자 터뜨리네;
re: 기다렸다가 터뜨린듯
>존나 민폐다ㅠㅠ 어나더 이제 좀 떡상하기 시작하려는 이 중요한 시기에ㅠㅠ
re: 내말이ㅠㅠ 같은 멤버들 불쌍해..
>학폭은 이유불문하고 쳐맞아야됨
>일단 반대쪽 말도 들어봐야지 이런거 워낙 주작도 많아서..
re: 22 이때싶인거 같긴함
re: 333
>졸업 앨범은 그냥 아무나 구할 수 있는 거 아님? 그리고 피해자 본인도 아니고 지인이 나서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데..
re: 텔레비전에 강서주 나오는거 보고 ptsd 와서 앓아 누웠다잖아 본문 좀 읽어
rere: 본문 다 읽었고 그래도 지인이 나서는거 이해 안됨
rerere: 니가 이해 안하면 어쩔건데..?
re: ㅇㄱㄹㅇ 졸업 앨범은 진심 아무나 다 구할수 있는건데ㅋㅋ 일단 강서주 입장 들어봐야 알듯
>근데 본문 보면 담배도 피우고 존나 양아치 그 자체인데 하필 지금 터진게 좀 웃기긴 하네 저정도면 저 사람 말고도 벼르던 사람들 존많이었을텐데
re: 그 전까지는 듣보라 그런듯..
rere: 오남자 찍기 전에는 그랬는데 초창기에 데뷔할땐 듣보까진 아니었어 백오식 사건 터지고나서부터 꼬이기 시작한거지
rerere: ㄹㅇ그때도 음방 자주 나오고 예능도 많이 나왔었는데 터뜨릴거면 그때 터뜨렸어야지 존나 이상함
rererere: 언제 터뜨리든 피해자 마음이지..
>나 아는 동생이 강서주랑 같은 학교였다고 해서 물어봤는데 딱히 양아치 같은거 아니었다는데? 학폭도 모르겠고 점심시간에 밥 엄청 많이 먹었다함 축구도 잘했대
re: 나 아는 사람도 같은 학교였다고 하는데 양아치도 아니었고 노는 애도 아니고 일진 이런것도 아니었다는데.. 흠..
>요새 학폭 논란 엄청 나네 에휴
>근데 강서주랑 같은 학교였다는 증언들 보면 다들 양아치였다는 거 몰랐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유명했다는 거임?
re: ㄱㄴㄲ.. 잠만 자고 밥만 많이 먹었다고 하는데;;
rere: 일단 학교 가서 잠만 자고 밥만 많이 먹은 것도 문제긴 한데..
rerere: ㅋㅋㅋㅋㅋㅋ
>일단 강서주 입장문 나올때까지 난 중립
re: 22
re: 3333
“…….”
아주 잠깐만 봐도 댓글은 엉망진창이었다. 눈을 꾹 감고 한숨을 내쉬자 유노을이 충격 받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형, 학교 다닐 때 애들 왕따시켰어?”
그 말에 발끈했지만 일단 일정 부분은 사실인 것도 있어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아니야. 때린 적은 있는데, 그것도 그냥 싸우다가 그런 거고.”
“그치? 그럴 줄 알았어. 왕따는 무슨 왕따야, 형은 열 받으면 그냥 때리……. 뭐? 때린 적이 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하던 유노을이 발작하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일단 정우진에게 연락을 해 보려고 핸드폰을 찾고 있는데, 이진혁이 내게 말했다.
“아, 맞다. 매니저 형이 전화했는데 형 핸드폰 꺼져 있었대.”
“아, 배터리 없나 보다. 충전시키는 걸 깜빡해서.”
새벽에 정우진이랑 통화하다가 잠들었는데, 충전을 못 시켰더니 꺼졌나 보다.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핸드폰을 찾아 충전기를 꽂고 전원을 켰다.
“형, 괜찮아?”
다시 거실로 나오자 이진혁이 불안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창백해진 얼굴을 보니 또 멘탈이 박살 나기 일보 직전인 것 같았다. 이진혁의 상태를 눈치챈 건지, 고함을 지르던 유노을도 눈치껏 조용해졌다.
“괜찮아.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사실 너희한테 말은 안 했는데, 얼마 전에 회사로 누가 전화해서 협박을 했었대. 이거 학폭 문제로 터뜨린다고. 근데 학폭도 아니고, 왕따도 아니고 그냥 싸운 거야. 회사에서 해결했다고 해서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뭐가 잘못됐나 봐.”
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이진혁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혀, 협박을 받았다고?”
“나한테 직접 한 건 아니고……. 아무튼 나 통화 좀 하고 올 테니까…….”
나는 말끝을 흐리며 유노을과 김강에게 눈짓했다.
“잘 챙기고 있어.”
“알았어.”
“형, 기죽지 마.”
그동안 말이 없던 김강이 뜬금없이 말했다. 기가 죽은 적도 없지만 어쩐지 힘이 나는 것 같아서 피식 웃은 다음에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이나 좀 줘 봐. 내 건 배터리가 다 돼서.”
김강의 핸드폰을 받아 방으로 들어온 나는 정우진의 번호를 눌렀다. 그리고 신호가 가는 중에 액정 위로 이미 저장되어 있는 이름이 보였다.
‘부자형님’
“…….”
착잡한 표정으로 그걸 보고 있는데, 정우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난데. 지금 전화 괜찮아?”
-선배님? 안 그래도 계속 전화 드렸는데, 핸드폰이 꺼졌다고 해서 지금 가는 중이었어요.
나라고 하자마자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목소리에 놀라기도 잠시, 오고 있다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딜 와? 우리 숙소에?”
-네, 지금 거의 다 왔어요.
“우리 좀 있다가 스케줄 있어서 나가야 돼. 매니저 형도 오고 있는데.”
-스케줄 취소하세요. 기사 때문에 전화하셨죠? 그거 곧 내려갈 거고…….
다급하게 말하는 정우진의 말을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스케줄 취소를 왜 해? 싫어. 아무튼 강수민 출국했다고 하지 않았어? 걔가 그런 건 아니지?”
-네,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일단 만나서 얘기해요. 저 지금 올라갈게요.
“내가 내려갈 테니까 올라오지 마.”
정우진이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는 게 애들이 보기에는 이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차라리 내가 내려가는 게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