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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서로 한참을 웃다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한바탕 웃고 나니 좀 민망하기도 해서 쭈뼛거리다가 정우진에게 손짓했다.
“다시 하자.”
“됐어요.”
“왜?”
“또 웃을 거잖아요.”
“안 웃을게.”
“거짓말.”
삐쳤는지 불퉁하게 하는 말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
자기가 됐다고 해 놓고 막상 그러자고 하니, 그건 또 싫은 건지 정우진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불만이 가득한 눈을 보고 있자니, 저러다가 또 울 것 같았지만 왠지 하자는 대로 해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입을 맞추는 게 싫은 건 아닌데……. 이게 무슨 마음일까?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괜히 이불을 정리하고, 베개도 툭툭 치고, 딴청을 부리고 있는데 정우진의 숨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힐끗 보니 얼굴이 새빨개져서 씩씩거리고 있는 게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모습이었다.
순간 터질 뻔해서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이미 내가 웃으려고 한 걸 다 알았는지 정우진이 울상을 짓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망설임도 없이 방문을 열고 나가 버리기에 나는 후다닥 정우진의 뒤를 따라갔다.
“야, 어디 가?”
“일어났으니까 전 집에 가 볼게요.”
“이렇게 갑자기?”
“내일 일 있어서 일찍 자야 돼요.”
“무슨 일?”
실실 웃으며 묻고 있는데, 정우진이 현관문까지 가서 신발을 신는 걸 보며 정말 가려고 하는 것 같아서 팔뚝을 잡아 돌려세웠다.
“알았어, 일단 들어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면 뭐라고 더 할 줄 알았는데, 정우진이 입술을 달싹거리며 내게 힘없이 끌려왔다. 잡힌 걸 뿌리치지도 않고 못이기는 척 발을 질질 끌고 들어오는 게 너무 웃겼지만, 또 웃을 수는 없어서 입술을 깨물고 거실까지 왔다.
“배고픈데 뭐라도 좀 먹자, 일단.”
그보다 지금 몇 시지? 밖이 어두운 걸 보니 밤인 듯한데, 정확히 몇 시인지 감도 오질 않았다. 아직 집에 시계가 없어서 핸드폰을 찾으려고 잡고 있던 정우진의 팔뚝을 놓고 걸음을 돌렸다.
그때 정우진이 날 붙잡고 다급히 말했다.
“먼저 하고 먹어요.”
순간 뭘 하냐고 물으려다가 멈칫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는 잘 몰랐는데, 환한 거실에 서 있으니 정우진의 표정이 훨씬 더 잘 보였다. 새빨갛게 익은 귀와 조금 피곤해 보이는 얼굴, 젖어 있는 눈과 희미하게 떨리고 있는 입술…….
분명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 왠지 불안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날 잡고 있는 정우진을 끌고 문이라는 문은 다 열어 보고 마지막으로 욕실까지 다시 확인한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불이 꺼진 상태라 어두웠기에 그나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왜 방에서 해요?”
“거실은 좀 그래.”
“왜요? 밝아서요?”
“그것도 그런데……. 왠지 좀, 그냥……. 거긴 공용 공간이고…….”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거실은 너무 밝기도 했고 탁 트인 공간이기도 하고, 거기서 애들이랑 밥도 먹고 텔레비전도 보면서 수다도 떨어서, 꼭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 방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니 해도 여기서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아무튼 좀 그래.”
설명을 하자니 애매해서 대충 얼버무리고 있는데, 정우진이 살짝 고개를 숙여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말랑말랑한 입술이 닿자 저절로 숨이 멈춰졌다. 살짝 입을 벌리자 안으로 혀가 들어왔다.
강아지처럼 입 안을 할짝거리는 게 웃겨서 또 터질 뻔했지만, 그랬다가는 진짜 정우진도 삐칠 것 같아 애써 참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건지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입을 벌리고 정우진이 하는 대로 그냥 가만히 내버려 뒀다. 혀끝으로 입 안을 건드리며 볼 안쪽이나 치열을 따라 훑는 모든 동작들이 지나치게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키스라기보다는 뭔가 탐색 같기도 하고, 흥분이 된다기보다는 자꾸만 손가락 끝이 간지러워서 웃음을 참는 것에만 급급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살짝 입술을 뗐다. 감고 있던 눈을 뜨자 바로 앞에서 열락에 젖어 있는 검은 눈이 보였다.
정우진이 숨을 쉴 때마다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질 정도로 무척 가까운 거리였다. 잠시 가만히 나를 보던 정우진이 입술을 꾹 눌러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 별로 큰 소리는 아니었고, 젖은 소리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접촉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우진이 하는 모든 행동들이 그저 강아지가 핥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고작 시선이 좀 마주쳤다고 마치 감화되듯 순식간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어깨를 잡고 손과 뒷목을 가볍게 누르고 있는 압박감, 닿아 있는 살갗의 모든 면적에서 열감이 피어올랐다.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내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가만히 나를 보고 있던 정우진이 다시 입을 맞췄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이나 계속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내 안의 뭔가가 무너지듯 쿵쿵거렸다. 이게 내 상상 속의 소리인지, 심장이 뛰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까는 혀 넣고 해도 되냐며 입까지 벌리고 오더니, 막상 하라고 하니까 또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조금 전에 입 안을 핥을 때보다 더 기분이 이상해서 내가 뒤늦게 주춤하고 슬쩍 뒤로 물러서려 하자 정우진이 내 허리에 가볍게 팔을 두르며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틈도 없이 붙어 깊게 키스를 해 오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웃음을 참느라 집중하지 못했던 아까와는 달리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신경 쓰였다. 거리가 이렇게 가까우니 혹시 숨을 쉬면 숨결이 닿을까 싶은 것부터 시작해서, 손의 위치, 자세, 움직임 등등…….
지나치게 신경이 쓰여서 내가 자꾸 꿈지럭거릴 때마다 내 허리를 잡고 있는 정우진의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자꾸 밀어붙이니 자연스럽게 하반신을 비롯한 몸이 닿고 비벼지고 눌려서 결국 참지 못하고 양손으로 있는 힘껏 정우진의 어깨를 밀어냈다.
하지만 내가 힘을 주기도 전에 정우진이 먼저 손에서 힘을 뺐다. 밀어낸 반동으로 휘청거리면서 뒤로 넘어지려고 할 때 정우진이 다시 나를 잡았고, 반사적으로 나도 정우진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불과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세가 바뀌어 벽에 기대선 채 놀란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보려는데, 정우진이 내 뒷목을 당겨 다시 입을 맞췄다. 이가 닿을 정도로 다급한 행동에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벽에 최대한 등을 붙인 자세로 고개를 쳐들고 눈을 크게 뜨자 정우진이 양손으로 내 머리통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양쪽 귀가 막혀서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질 때마다, 혀가 입 안을 핥을 때마다, 숨을 헐떡거리는 소리와 젖어서 마찰하는 소리들이 필요 이상으로 크게 들렸다.
마치 누가 고막을 핥고 있는 느낌이 들어 진저리를 쳤지만, 아무리 밀고 치며 발버둥을 쳐도 정우진은 꼼짝도 하질 않았다. 오히려 다리 사이에 허벅지를 넣고 벽까지 밀어붙여서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서 이대로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르작거리다가 손을 뒤로 돌려 죽기 살기로 정우진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뒤로 확 젖혔다.
“헉, 허억…….”
입이 떨어지자마자 크게 숨을 들이켜자 한껏 쪼그라들어 있던 폐가 팽창했다. 헐떡거리며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손을 놓자 정우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
“너 죽…….”
욕을 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숨이 달려서 말할 수도 없었다. 나는 정우진을 밀어내고 헐떡거리며 거의 짐승처럼 네발로 기다시피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다가 미끄러져서 삐끗하자 정우진이 내 팔뚝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몸을 똑바로 세우며 바라본 정우진의 표정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가득했다. 너무 급해서 나도 모르게 정우진의 머리끄덩이를 잡았다는 게 뒤늦게 생각나자 발밑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도망치듯 네발로 빠져나오기까지…….
“…….”
“…….”
누가 보면 내가 억지로 당하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뒤늦게 멋쩍은 표정으로 뭐라고 하려 했지만 딱히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쪽팔려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지만, 아직도 자기 머리에 손을 대고 있는 정우진을 보니 뒤늦게 걱정이 들었다.
너무 당황해서 손대중도 없이 있는 힘껏 머리끄덩이를 당겼기 때문이다. 팔을 뻗어 정우진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러자 손가락 사이에 새카만 머리카락 몇 가닥이 얽혀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보자마자 나는 얼른 손을 털어 증거를 인멸한 뒤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내가……. 폐, 폐활량이 좀…….”
하지만 몇 마디 하니 말이 나오질 않았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었지만 여기엔 쥐구멍도 없었다. 나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입을 벙긋거리며 과장되게 손짓을 하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멀뚱멀뚱 정우진을 보다가 등을 돌려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선배님?”
내 미친 짓거리를 지척에서 관람하던 정우진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욕실 문고리를 잡고 나를 불렀다. 나는 뚜껑을 내린 변기 위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씨발, 이런 개좆같은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