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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수다도 떨고 이것저것 간식도 집어 먹다 보니, 금방 점심시간이 되었다. 원래 먹기로 했던 시간보다 많이 지체돼서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은 상태였다.
“치킨 먹고 싶다.”
“나중에 끝나고 먹자.”
“자장면에 탕수육도 먹고 싶다.”
“칠리새우랑 크림새우도.”
점심으로는 스태프들과 함께, 미리 준비해 둔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워낙 많이 먹는다는 걸 미리 알고 여러 개 준비해 주셨지만, 사실 이걸로도 좀 양이 부족하긴 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음식이 다 식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 그냥 끼니를 때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근데 이거 보시는 분들이 강이 그거 궁금해하실 거 같아.”
밥을 먹고 있던 이진혁이 우리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힐끗 보며 말했다. 밥을 먹느라 별말이 없던 우리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진혁이 카메라가 있는데도 먼저 입을 열었다는 사실에 놀라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과하게 반응했다.
“뭐가?”
“강이 어떤 거?”
“나? 나에 대해서 궁금해한다고? 다 말해 줄게. 뭐가 궁금한데?”
들고 있던 젓가락까지 내려놓고 묻자, 이진혁이 잠시 멈칫하다가 웃었다.
“아니, 별거는 아닌데……. 강이 운동 엄청 하는데, 원래 운동하시는 분들은 다 식단 관리도 같이하시잖아. 근데 얘는 되게 많이 먹으니까. 막 탄수화물 이런 것도 잘 먹고.”
그 말에 김강이 하얀 쌀밥을 숟가락 가득 뜨며 말했다.
“나는 먹으려고 운동하는 건데?”
“식단 관리 같은 거 해 본 적 없어?”
“살면서 한 번도 그런 걸 해 본 적이 없어.”
나도 김강이 식단을 관리한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본 적도 없었다. 본인도 어리둥절한 표정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근데 강이는 닭 가슴살 같은 것도 좋아하잖아. 관리용으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맛있어서.”
“난 풀도 좋아해. 닭 가슴살도 고기니까 당연히 좋아하고. 원래 고기랑 풀은 같이 먹으면 무조건 맛있거든.”
“그치, 그걸 한 번 먹을 때 한 10kg씩 먹는 게 문제긴 하지만.”
“아, 형. 또 뭘 그렇게 오버를 하고 그래. 내가 무슨 코끼리야?”
“너 코끼리보다 더 먹지 않냐?”
내가 진지하게 말하자 이진혁이 받아쳤다.
“강이 정도면 코끼리랑 비벼볼 만하지.”
“우리 애가 이기지.”
유노을까지 거들자 김강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다 먹은 빈 도시락을 옆에 두고 새 도시락을 뜯었다.
“근데 보통 사람들은 도시락 이거 하나만 먹고 배가 부른 거지?”
“배 많이 고프면 두 개는 그냥 먹을걸?”
“배고프면 그래도 세 개 정도 먹지 않을까? 하나 먹나, 두 개 먹나 그게 그건데, 적어도 배고프면 세 개는 먹겠지.”
하나만 먹는 거 아닌가? 라면도 하나만 끓여 먹는다던데.
입에 음식이 있어서 말은 못 하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비하인드 촬영 때문에 카메라에 걸리지 않는 곳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던 스태프 중 한 명이 말했다.
“하나만 먹습니다.”
순간, 짧은 정적이 흐르다가 다들 동시에 터졌다. 하마터면 먹던 걸 뿜을 뻔해서 온 힘을 다해 입을 닫은 뒤 웃음을 삼켰다.
“아, 하나만 먹는군요…….”
이진혁이 멋쩍은 표정으로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걸 보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까 나도 학교 다닐 땐 점심에 빵 하나만 사 먹고 그랬어. 너희랑 지내면서 양이 엄청 많아진 거지.”
“맞아, 나도 양 엄청 많아졌어.”
이진혁이 내 말에 공감하자 유노을도 슬쩍 끼어들었다.
“나도 강이 때문에 양 많아진 거 같아.”
“넌 아니야.”
“어, 아니야.”
“형은 아니야.”
나와 이진혁, 김강이 거의 동시에 말하자 유노을이 빠르게 수긍했다.
“그래, 난 사실 원래 처음부터 이랬어.”
“나두.”
도시락 칸에 담긴 불고기를 두 젓가락 만에 다 먹어 치운 김강이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그걸 보니 문득 아기일 때가 궁금해져서 물었다.
“너 갓난아기 때 분유는 얼마나 먹었어? 왠지 사발로 들이켰을 거 같은데.”
“나 저체중으로 태어났대.”
“진짜?”
“헐…….”
우리뿐만 아니라 대기실 여기저기에서 밥을 먹고 있던 스태프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도 들렸다.
“와, 진짜 다들 놀라셨어.”
유노을이 웃으며 말하자 김강이 마치 놀란 사람들을 진정시키듯 덧붙였다.
“근데 그때 말고는 저체중이었던 역사가 없으니, 다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저체중이면 몇 킬로?”
“2kg이었나?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아마 그럴걸?”
“상상이 안 간다.”
2kg이면 얼마나 작은 걸까? 양손에 물을 받는 것처럼 동그랗게 손을 구부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정우진은 얼마나 작게 태어났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도 작았던 걸 보면, 걔도 분명 저체중으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갓 태어난 정우진은 어땠을까? 혹시 사진 같은 거 있으려나? 왠지 어릴 때 환경을 생각해 보면 없을 것 같지만,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떠올린 김에 정우진에게 밥 거르지 말고 먹으라고 문자도 보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촬영이 시작됐다. 새벽 늦게까지 이어진 촬영에 다들 녹초가 됐지만, 내일 또 일정이 있어서 얼른 조금이라도 자야만 했다. 김강도 이번에는 피곤했는지 운동도 하지 않고 씻고 나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나도 얼른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그러고 보니까 정우진에게 집에 왔다는 얘기도 못 했다. 어쩐지 정우진일 것 같아서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전화를 받았다.
“어, 나 방금 왔어. 이제 자려고…….”
말을 하고 있는데 문득 핸드폰 너머가 너무 조용했다. 순간 등 뒤로 소름이 끼쳐 잠이 확 달아났다. 눈을 번쩍 떠 액정을 확인하니 ‘발신 번호 표시 제한’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은 나는 멀뚱멀뚱 그걸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여전히 핸드폰 너머는 조용했다.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들어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혹시 다시 걸려 올까 봐 한동안 핸드폰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그냥 잘못 걸린 전화였을까? 그러면 좋을 텐데, 이상하게 불안한 생각이 들어 잠까지 달아나 버렸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해서 얼른 자야 하는데, 도저히 잠이 들지 않아서 정우진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으면 끊으려고 했는데, 통화 연결음이 채 한 번이 끝나기도 전에 정우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너 아직 안 잤냐?”
-자려고 누워 있었어요. 촬영은 잘 끝났어요?
“잘 끝났지…….”
불안했던 마음이 잠잠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더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상태였다. 정우진의 목소리를 들어서 좋기는 한데, 조금의 실수로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게 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앞으로는 꼬박꼬박 누군지 확인하고 전화를 받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잠깐 말이 없던 정우진이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왜?”
-목소리가 평소랑 다른 거 같아서요. 지금 방이에요?
“응.”
-이거 수락 좀 해 주세요.
뭘 수락하라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귀에서 떼 액정을 보자 영상 통화 신청이 와 있었다. 수락을 누르자 화면 가득 정우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옆으로 누워 있는 건지 한쪽 볼이 베개에 조금 눌려 있었다.
그걸 보고 나도 베개에 누우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게 자?”
-선배님한테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걸 왜 기다려? 내가 깜빡하고 연락 못 했으면 어쩌려고?”
-그러니까 잊지 말고 매일 연락해 주세요.
방금도 아까 그 이상한 전화가 아니었다면 난 그대로 잠들었을 게 분명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인상만 찌푸리고 있자 정우진이 웃었다.
-표정 귀엽다.
“…….”
불을 끄고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귀엽기는 뭐가 귀여워? 인상 찌푸리는 거밖에 안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말문이 막혀서 숨만 두어 번 삼키다가 물었다.
“어두운데, 보여?”
-네, 핸드폰 불빛 때문에 살짝 보여요.
“불 켤까?”
어두워서 이상하게 보이는 건가 싶어 일어서려고 하자 정우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요. 아, 맞다. 선배님, 좀 있으면 생일이잖아요. 뭐 갖고 싶은 거 있으세요?
그러고 보니까 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앨범 준비 때문에 챙기기도 애매하고……. 그냥 간단하게 생일 축하만 하고 지나갈 것 같았다. 쇼케이스 일정이 곧 나올 거 같은데, 어쩌면 겹칠 수도 있고.
-프라이팬 이런 거 말고요.
“음…….”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가지고 싶은 게 떠올랐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당장 떠오른 게 정우진의 갓난아기 시절 사진이었는데, 없을 게 거의 확실하기도 하고 괜히 안 좋은 기억만 떠오르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게.”
-천천히 생각해 보시고 말해 주세요. 꼭 돈 주고 사야 하는 게 아니어도 괜찮아요.
돈 주고 사야 하는 게 아니면 뭘 말하는 거지? 안마권 같은 걸 말하는 건가?
정우진은 이렇게 가끔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었다. 선멍 어쩌고저쩌고 하거나 박치기처럼 이상한 말을 할 때도 그렇고.
내가 피식 웃자 정우진이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뭘 중얼중얼했다.
-처음이라든가……. 키읔으로 시작하는……. 아니면 더한 것도…….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몰라서 눈만 깜빡거리다 퍼뜩 떠올라 물었다.
“아, 맞다. 야, 넌 생일 언제야?”
-저 12월 12일이요.
“뭐? 진짜?”
-네, 혹시 기억나세요? 어릴 때 우리 같이 생일 파티 했잖아요. 저는 생일을 몰라서 선배님이 그럼 나랑 비슷한 날에 같이하자고 했는데, 진짜로 비슷한 날이라 엄청 신기했어요.
나는 우리가 처음, 함께 생일을 보냈던 날을 떠올렸다. 아주 오래된 기억이었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때 네가 내 생일이라고 식빵 준 거 기억나?”
-그게 제가 가진 전부였어요.
선물이라고 식빵 한 장을 줬던 게 너무 귀여워서 웃으며 한 이야기였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 갑자기 훅 들어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
정우진의 표정은 달라진 게 없는데, 내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어두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저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요.
정우진인 줄 알았던 전화가 발신 번호 표시 제한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 더 끔찍한 소름이 온몸에 끼쳤다. 손끝에 닿는 이불을 꽉 쥐고 나도 모르게 물었다.
“……무슨 준비?”
-제 전부를 다 드릴 준비요.
“…….”
망설임 없이 나온 대답에 손에 힘이 빠져서 하마터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