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9화 (154/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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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소파보다 크기가 크긴 했지만 다 큰 남자 둘이 눕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정우진은 소파 구석에 박혀서 한쪽 팔로는 나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눈 밑이 붉고 혈색도 없는 게 꼭 어디 아픈 사람 같았다.

눈두덩이도 조금 부어 있는 거 같고……. 혹시 울었나?

“…….”

당황한 얼굴로 정우진을 보다가 순간 머리가 욱신거려서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를 짚고 최대한 숨을 죽인 채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가 정우진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발을 디디고 서자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댔다. 나 혹시 밤사이에 교통사고라도 났던 건가? 왜 이렇게 몸이 아프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우선 목이 말라서 주방으로 가 물을 마시려는데 식탁 위가 엉망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탑처럼 쌓여 있는 토스트와 햄버거였다. 정체불명의 국물 요리 같은 것도 있었고, 라면이랑 바나나우유, 커피도 보이고…….

“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이걸 언제 다 치우냐?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지? 기억을 더듬으며 반사적으로 식탁 위를 치우려고 하는 순간, 빈 술병이 보였다.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알코올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면서 속이 뒤집어졌다.

“으, 씨발…….”

내가 다시 술 마시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허리를 굽히고 배를 부여잡은 채 신음하고 있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 앉아 있는 게 보였다.

“…….”

“…….”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아니면 눈을 뜨고 자고 있는 건지 정우진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뒷머리가 납작하게 눌려서 뻗친 건지 머리카락이 위로 솟구쳐 있었다.

평소라면 그걸 보고 웃기라도 했을 텐데, 취했던 게 민망해서 그럴 수도 없었다. 속이 울렁거렸지만 최대한 멀쩡한 사람인 척하면서 컵에 물을 따르며 물었다.

“속은 괜찮아? 근데 우리 왜 거실에서 자고 있었냐? 차라리 그냥 바닥에서 자면 될 걸, 저 좁은 소파에 둘이 끼여서…….”

왜 소파에서 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혹시 내가 자고 있는데 정우진이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걸까? 차가운 물을 마시자 입 안에서부터 식도를 타고 위까지 물이 내려가는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속이 좀 안 좋기는 했지만 그래도 타는 듯한 갈증이 사라지니 좀 살 만했다. 물을 한 잔 더 따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데, 문득 정우진이 너무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

“푸웁!”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자연스럽게 정우진에게 시선을 돌린 나는 마시고 있던 물을 뿜을 수밖에 없었다. 정우진이 소파에 앉은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너 왜 울어?”

놀라서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정우진에게 다가갔다.

“…….”

정우진은 간간이 어깨를 들썩거리며 울고 있었는데, 이미 양 뺨이 전부 젖어 있을 정도로 소리만 내지 않았다 뿐이지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왜 울어? 속 아파? 아직 술이 덜 깼어?”

술을 너무 먹였나? 근데 난 술 먹인 기억이 없는데? 취해서 억지로 먹인 건가? 정우진이 싫다고 했는데 막 먹으라고 했나?

기억이 나지 않으니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걱정이 돼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럼 왜 우는데?”

“선배님이…….”

내가 뭐?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머릿속으로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좀 제대로 업혀. 딱 붙으라니까?’

‘저 그냥 이렇게 갈래요.’

‘아, 너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좀……. 그냥 빨리 가 주세요. 집에 얼른 가요. 네?’

‘지금 가고 있잖아.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허리에 딱딱한 거 눌려서 배기니까 좀 옆으로 치워. 핸드폰이야?’

‘짜증 나, 진짜……’

나는 싫다는 정우진을 억지로 들쳐 업고 어두운 밤길을 투덜거리며 걷고 있었다.

‘크게 좀 벌리라니까?’

‘그냥 제가 할게요.’

‘너 지금 나이 들었다고 이제 내 말 안 듣는 거지? 머리 좀 컸다고? 어?’

‘제발요…….’

‘쓰읍.’

정우진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훌쩍거리며 입을 크게 벌렸다.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정우진의 입 안으로 칫솔을 넣어 양치를 해 주고 있었다.

“…….”

중간중간 떠오르는 기억에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잇몸 아파요.’

‘어디? 여기?’

아프다는 정우진의 말에 입 안으로 손을 넣어 잇몸을 만져 버린 내 행동이 떠오르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진저리를 치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내가 갑자기 크게 소리치자 정우진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꼭 나쁜 일이라도 당한 순진한 어린애 같은 모습이었다. 그걸 보니 발밑으로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러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글프게 울고 있던 정우진이 코맹맹이 소리로 나를 걱정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정우진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내가 진짜 그랬다고? 혹시 꿈을 꾼 게 아닐까? 진짜 그랬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선이라는 게 있는데, 내가? 절대, 절대로 아니야. 내가 그딴 짓거리를 했을 리가…….

‘너 누가 바나나우유 사 준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필요 없다고 해야지.’

‘그러고요?’

‘혹시라도 절대 따라가면 안 되고……. 바나나우유 말고 다른 거 사 준다고 해도 안 돼. 알았지? 누가 잠깐 도와 달라고 해도 싫다고 해야 돼.’

‘그건 왜요? 잠깐 도와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정상적인 어른은 어린애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그런 사람들은 다 유괴범 새끼들이야. 아주 쓰레기 버러지 새끼들이라고. 씨발……. 나쁜 새끼들,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차라리 기억이 나지 않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나둘씩 떠오르는 만행에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비틀거리며 뒤돌아섰다.

“나……. 잠깐만, 나 급한 일이 생겨서 가 봐야겠어.”

“네? 갑자기요?”

“어, 나 집……. 헉, 미친! 지금 몇 시야!”

말도 없이 외박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라 펄쩍 뛰었다. 핸드폰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식탁 위, 욕실, 겉옷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뒤지고 있는데, 정우진이 부스스 일어나더니 주방 찬장을 열어 그곳에서 내 핸드폰을 꺼냈다.

“그게 왜 거기에 있어?”

“누가 연락하면 자다가 깰 수도 있다고 숨겨 두셨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

낯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문자가 잔뜩 와 있어서 단체 메시지 방에 안 들어가 볼 수가 없었다.

그룹채팅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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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진짜 레전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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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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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얼마나 마신거야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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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캡쳐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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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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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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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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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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