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4화 (149/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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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우진은 내가 학교 폭력을 저질렀든, 저지르지 않았든 그런 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인 걸까? 내가 상종도 못 할 인간쓰레기라도 상관없다는 말을 듣고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렸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어쩔 수 없다기보다는 정말 그런 건 고려할 사항이 아니라는 투로 말해서 그게 좀 이상했다.

지금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지만 갑자기 걱정이 돼서 입을 열었다.

“주변에 누가 남들한테 떳떳하게 말 못 할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이랑 멀어지거나, 말리거나……. 그렇게 해야 돼. 물론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나랑 친한 누가 여러 명이 우르르 모여 한 사람을 때리거나 괴롭히거나 그러는 거 싫어.”

도덕심이 좀 낮은 편인가? 어렸을 땐 딱히 그런 줄 몰랐는데……. 어쩌면 연예계 생활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변한 걸지도 몰랐다. 연예인이라는 게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여기저기 함정처럼 빠지기 쉬운 것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나쁜 줄 알지만 하다 보면 무덤덤해지고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만 보이다 보니까 결국에는 익숙해져서 종내에는 가면 안 되는 길로 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었다.

정우진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연예인 생활을 하기 전부터 일반인들과는 다른 걸 보고 자라면서 도덕심의 평균치가 낮아진 걸지도 몰랐다.

“…….”

내 말이 의외였는지, 아니면 이해를 못 한 건지, 정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이상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시험을 치는데 모르는 문제가 나와 고개를 갸웃하는 학생 같기도 했다.

그걸 보니 내가 너무 오지랖을 부린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우리가 남도 아닌데 이런 말은 해도 될 것 같아서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만약 네가 누구를 괴롭히고 있으면 말릴 거야. 그러니까 너도 내가 이상한 짓 할 거 같으면 말려.”

우리끼리라도 서로가 서로의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되어 주면 어떨까? 평소에도 늘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말을 하다 보니까 정말 걱정이 되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연예인들의 마약, 음주 운전, 학교 폭력 고발, 성추행 등등의 기사를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만약 정우진이 나 몰래 그런 짓을 하다가 내가 기사를 보고 알게 되는 날이 온다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당연히 말려야죠.”

그때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있던 정우진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안심이 되려던 찰나, 정우진이 혼잣말하듯 작게 덧붙였다.

“괴롭히는 것도 관심인데…….”

“뭐?”

“아무튼 제가 상관없다고 한 건, 선배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저는.”

정우진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다시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덩달아 진중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침묵이 좀 길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쯤, 정우진이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선배님 편이라는 뜻이었어요.”

“…….”

“언제 어디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 실수로 사람을 죽였거나 그냥 화가 나서 죽였거나, 심심해서 죽였거나 그랬다고 하더라도 저는 선배님 편이에요. 그러니까 혹시 실수하더라도 저한테는 꼭 말해 주세요. 그러면 둘이 같이 대책을 강구할 수 있잖아요. 그게 혼자 하는 것보다 낫고.”

갑자기 사람을 죽인다는 얘기가 왜 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우진이 대충 내게 전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렇게나 극단적인 예시에도 황당하기는커녕, 감동 비스무리한 감정이 느껴졌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맹목적인 믿음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왜 죽이냐?”

민망하고 머쓱해서 뒷목을 긁적거리며 괜히 투덜거리자 정우진이 웃었다.

“꼭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더라도요. 마약을 해 보고 싶거나 음주 운전하다가 사람을 쳤거나 그래도 꼭 말씀해 주세요. 알겠죠?”

“…….”

하지만 그 극단적인 예시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나오니까 점점 불안해졌다. 상황이 너무 구체적인 게 이상하기도 하고, 아무리 그래도 마약이나 음주 운전 같은 건 좀…….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대마초 같은 거 한 번 빨아 보고 싶다고 하면 네가 구해다 주게?”

“아니요. 그건 몸에 안 좋은 거니까 제가 대신 그런 건 생각도 안 나게 해 드릴게요.”

혹시 그러겠다고 하면 등짝이라도 한 대 때리려고 했는데, 정우진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나 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궁금해져서 다시 물었다.

“어떻게 생각도 안 나게 해 줄 건데?”

정우진이 나를 보며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행복하게 해서?”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너무 어린애 같은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사는 게 행복하고 재미있으면 마약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서 웃자 정우진도 덩달아 웃었다.

“그럼 음주 운전은? 내가 사람 쳤다고 너한테 전화하면 그건 또 어쩔 건데?”

또 어떤 말을 할까 싶어서 기대하며 묻자 정우진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시체 처리는 제가 책임지고 할게요.”

“…….”

동화 속의 세상처럼 반짝거리던 삶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뒤덮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상상도 못 했던 대답에 놀라서 입을 벌리자 정우진이 변명하듯 말했다.

“교도소에 갈 수는 없잖아요. 가면 오랫동안 만나지도 못하고……. 아무튼 그러니까 음주 운전은 하지 마세요. 알겠죠? 혼자 절대 술 같은 거 마시지도 말고요. 괜히 누가 시비 걸면 어떡해요?”

“…….”

시비를 걸면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시체를 처리해야 한다는 소리로만 들렸다. 표정을 보면 진심인 것 같기도 했지만, 내용이 너무 기상천외해서 당연히 장난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야, 너는……. 아까 마약은 뭐 행복하게 해 줘서 생각도 안 나게 해 준다더니, 무슨…….”

대답 두 개의 차이가 너무 커서 당황스럽다는 듯 중얼거리자 정우진이 차근차근 말했다.

“마약은 건강에 안 좋은 거잖아요. 그쵸? 그러니까 당연히 선배님이 하고 싶다고 해도 그걸 제가 구해 줄 수는 없어요.”

“당연하지. 나도 그냥 해 본 소리였어. 난 마약 해 본 적도 없고,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아니, 이거 네가 먼저 꺼낸 말 아니었냐?”

황당해서 묻자 정우진이 논리적인 척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음주 운전 같은 건 제가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뜻이었어요. 물론 차 안에 있었다고 해도 선배님한테 충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되도록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니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꼭 저한테 먼저 연락 주시고요. 알겠죠?”

“…….”

딱히 할 말도 없고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잠깐 정우진 너머의 허공을 바라보다가 못 들은 척하며 말을 돌렸다.

“아무튼 요즘 기사 보니까 막 가수들이 대마초 피우거나 그런다는 말이 많더라.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는 않은가 봐. 우리는 그런 거 절대 하지 말자. 알았지?”

“네, 당연하죠. 저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선배님이랑 같이 살 거예요.”

“그래…….”

정우진이 커다란 몸을 구겨 내 품에 안기려고 해서 멈칫했다가 그냥 팔을 뻗어 등을 토닥토닥해 줬다. 갑자기 급격하게 피곤해져서 잠깐 멍을 때리고 있다가 여기에 왜 온 건지 떠올리며 정우진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래서 학교 폭력 그건 어떻게 됐는데?”

“아, 잘 해결됐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우진이 하는 말을 종합해 보면 아마 날 고발하겠다는 사람은……. 이름이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무튼 고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이었던 애가 있었는데 재수 없게 굴어서 싸웠던 적이 있긴 했었다.

좀 오래된 일이라 자세히는 생각이 나지 않아서 잠깐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정우진이 물었다.

“그때 선배님 6 대 1로 붙었다면서요? 진짜예요?”

그 말에 실은 6 대 1이 아니라 16 대 1이었다고 허세를 좀 부려 볼까 하다가 왠지 어렸을 때가 떠올라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여섯 명이랑 싸우긴 했는데……. 싸운 게 아니라 그냥 얻어터진 거지…….”

“네? 선배님이요?”

“난 다섯 명한테 계속 맞으면서 한 명만 집중적으로 때렸으니까 결과적으로 내가 더 많이 맞긴 했어. 아무튼 어렸을 때 그런 거고, 그 뒤로는 다른 사람이랑 치고받으며 싸운 적은 없으니까…….”

혹시라도 정우진이 날 동네 양아치 같은 걸로 생각할까 봐 황급히 덧붙였다. 하지만 정우진은 그런 거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맞았는데요? 많이 다쳤어요?”

그 말에 나는 허리를 비틀어 어깨 쪽의 옷을 밑으로 내렸다.

“여기 찢어져서 흉터 남았었는데, 그때 누가 우유를 던졌거든. 종이 갑에 든 우유였는데 뾰족한 모서리에 잘못 맞았는지, 피가 엄청 나더라고. 옷 위로 맞은 거면 안 다쳤을 텐데, 그때 미친놈들이 자꾸 잡고 늘어져서 맨살에 맞았었나 봐.”

나는 아무리 고개를 옆으로 돌려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대충 어깨와 날개 뼈가 있는 곳의 중간쯤 지점에 찢어졌던 상처의 흉터가 남아 있을 것이다.

“안 보여?”

정우진이 아무런 말이 없어서 다시 묻자 옷이 좀 더 아래로 내려가는 느낌이 났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보여요.”

목소리가 별로 좋게 들리지는 않아서 나는 정우진이 걱정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흉이 좀 남긴 했지만 이젠 꾹꾹 누르거나 등으로 바닥을 쓸고 다녀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종종 그곳을 다쳤다는 걸 잊을 정도였다.

옷이 지나치게 등 뒤로 당겨지고 있어서 목이 살짝 조이는 느낌이 나긴 했지만, 나는 걱정하고 있는 정우진을 안심시키기 위해 계속 나불나불 떠들었다.

“나는 그거 말고 크게 다친 곳도 없어. 멍이 좀 들긴 했는데 그건 시간 지나면 낫는 거잖아. 근데 나한테 맞았던 놈은 어금니 나가서 임플란트도 했어. 걘 영구적인 상처가 남은 거고, 나는 그냥 살만 살짝 찢어졌으니까 결과적으로는 내가 이긴 거나 다름없지. 그리고 그 새끼는 친구들까지 데리고 와서 여러 명이서 덤빈 거잖아. 난 혼자였는데 그놈은 나보다 더 많이 다쳤으니까 이것도 내가 더 이득이야.”

“…….”

“다음에는 한 열 명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그렇게 처맞고 난 뒤로는 말도 안 걸 던데. 물론 다른 애들도 나한테 말을 안 걸게 되긴 했는데, 어쨌든 덕분에 학교도 편하게 다니고 우리 반도 조용해지고 다 좋아졌어.”

“…….”

계속 말을 했지만 정우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는 밑으로 늘어져 있는 옷을 다시 위로 올려 옷매무새를 정리한 다음 돌아앉아 정우진을 보며 덧붙였다.

“열 명이랑 싸워도 내가 이겼을 걸?”

“…….”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허세를 살짝 떨어 봤지만 정우진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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