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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를 보면 강수민이 평소에 친구랍시고 만나고 다니는 양아치들인 것 같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건 아닌 듯했다. 정확한 근거를 댈 수는 없었지만 그냥 내 감이 그랬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살벌한 욕이 잠시 멈출 때까지 기다리다가 겨우 조용해졌을 때, 나는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강수민 지인인데요. 이쪽으로 연락하면 빌려 준 돈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전화했습니다.”
괜히 말다툼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전화번호도 없애고 이사까지 가 버린 강수민을 잡기 위한 유일한 실마리였기 때문이다.
-아……. 미리 말을 하시지. 난 또……. 돈은 얼마나 빌려 줬는데요?
금세 말투가 변하는 걸 보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이 새끼는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걸까? 어디서 돈 많은 사람의 환심이라도 사게 됐나? 강수민의 평소 성격이나 자기가 손해 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옹졸한 심성을 생각해 보면 별로 설득력 있는 가설은 아니었다.
“음, 이백만 원 정도요.”
얼마 정도의 금액을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나는 그리 적지도 많지도 않은 애매한 숫자를 말했다.
-이름이랑 나이, 신분증 사진 찍어서 문자로 보내세요. 그럼 확인하고 돈 보낼 테니까. 언제 어디서 돈을 빌려 줬는지 최대한 상세하게 쓰고, 계좌 번호도 같이 보내고, 신분증은 주민 등록 번호 같은 건 지우고 보내도 되고. 사진만 제대로 나오면 되니까. 혹시 장난이거나 우리가 확인했을 때 금액이 다르면 고작 이백만 원 때문에 앞으로 인생 존나 고단해질 거라는 것만 알면 됩니다. 이해했어요?
“…….”
이런 게 처음이 아니라는 듯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말에 나는 잠시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멀뚱멀뚱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쳐다보다가 당황한 기색을 숨긴 채 말했다.
“직접 만나서 받고 싶은데……. 할 말도 있고.”
-그건 안 되니까 돈 받고 싶으면 문자로 말한 거나 보내세요.
“왜 안 되는데요?”
-그거까지 내가 말해 줄 이유는 없고. 아무튼 문자를 보내든 말든 알아서 하시고, 바빠서 이만.
이대로 끊으면 앞으로 강수민을 영영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전화가 끊기기 전에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뭘 믿고 이름이랑 나이도 모자라서 얼굴 사진 찍힌 신분증까지 보냅니까? 그쪽은 누구신데요? 차용증 써 둔 것도 있고 못 믿겠으니까 그냥 경찰에 신고해서 강수민한테 직접 받을게요.”
그러자 핸드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니면 그쪽 이름이랑 나이, 신분증 사진을 먼저 보내시든가. 그럼 나도 보낼 테니까.”
-야.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인이면 그 애새끼랑 또래 같은데 갑자기 반말을 하네? 너 죽고 싶냐?
강수민과 나는 또래라고 하기에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났다. 그래도 강수민이 삼십 대인데 애새끼라고 하는 걸 보니 통화하는 사람은 그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 것이다. 어쨌든 나보다 연장자에게 반말을 한 건 잘못이니 나는 다시 공손하게 말했다.
“마음이 좀 급해서 그랬어요. 반말을 한 건 죄송합니다.”
-…….
내가 별안간 사과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지 어르신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최대한 부탁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강수민을 꼭 만나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정말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돈도 돈인데 해결해야 할 일도 있고…….
-해결해야 할 일? 무슨 일?
내가 사과를 해서 그런 것일까? 조금 전처럼 무겁게 목소리를 깔지 않고 궁금하다는 듯한 목소리로만 물었다.
“그냥 좀…….”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 중이라 쉽게 말이 나오질 않았다. 최대한 머리를 굴려 어떻게 거짓말해야 그럴듯하게 들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반사적으로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떼 액정을 보자 정우진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선배님, 이사는 잘 끝났어요?]
“…….”
그걸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째서인지, 정우진이 내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아버지가 건설 회사를 운영하시는데, 예전에 같이 일했던 후배가 강만덕 대표님이래요.’
강만덕은 조폭이었다. 딱히 자기가 깡패라는 걸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진성 건달 그 자체였다. 지금도 조폭인 건지, 아닌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정우진의 아버지가 선배였다면 비슷한 직업을 가졌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까 강만덕이 엔터 사업을 하는 조폭이라면 정우진의 아버지도 건설 사업을 하는 조폭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비약일 수도 있었지만, 정우진은 어린 시절에도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비슷한 일을 저지른 적이 있어서 한 번 의심이 시작되니 나도 걷잡을 수가 없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어나더는 소위 말하는 망돌이라 딱히 돈을 벌 만한 구석이 없었는데도, 회사에는 그리 큰 타격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땡전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오히려 적자가 나던 시기였는데도, 배틀 브라더스가 데뷔한 것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사업에 관심이 없어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이돌이 데뷔하기까지 얼마나 큰돈이 들어가는지는 알고 있었다. 아마 내가 상상하기도 힘든 액수일 것이다.
한 번 의심이 가기 시작하니,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던 강만덕 대표가 정우진이 하는 말에는 별로 토를 달지 않았던 것까지 떠올랐다. 정우진은 존댓말을 하고 있었고, 강만덕은 반말을 쓰고 있었지만 딱히 정우진이 아랫사람처럼 느껴지지도 않았었다. 선배도 아니고 선배의 아들이고, 자기 소속사 가수인데도 말이다.
나는 이런 모든 것들이 그저 정우진이 잘나가는 아이돌이라서 그런 줄만 알았다.
-해결해야 할 일이 뭐냐고.
정우진을 의심하느라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조폭(?) 어르신이 다시 물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조폭이세요?”
-뭐?
“아……. 말씀하시는 게 범상치가 않으셔서……. 막 죽고 싶으냐고 그러는 것도 그렇고.”
너무 직설적으로 물어봤나 싶어서 뒤늦게 궁색한 변명을 덧붙였다. 그러자 황당함을 느끼는 중인지 핸드폰 너머는 조용했다. 그러다가 곧 비웃음 같은 게 들렸다.
-어이가 없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어서……. 강수민이 사채를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무튼 죄송합니다.”
강수민이 사채를 써서 집에 건달 같은 인간들이 돈 받으러 찾아온 적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돈 빌리고 다닌 꼬라지를 보니까 그럴 거 같더라.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리면서도 조폭이냐는 내 질문에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냥 이 사람이 조폭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더 이상 할 말도 없고, 그저 빨리 정우진을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급히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데, 다시 욕설이 들려왔다.
-알긴 뭘 알아, 이 새끼야. 괜히 일 복잡하게 만들지 말고 돈 받고 싶으면 문자로 계좌나 보내라.
“네, 보낼게요.”
-번호만 알면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일부러 겁먹은 것처럼 말하자 조폭 어르신의 마음도 좀 풀린 것인지 갑자기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돈을 쳐 빌리고 다녔는지 끝이 없어, 끝이. 그런 놈한테 빌려 준 인간들도 내가 봤을 땐 제정신이 아니야. 당연히 못 받을 거라는 걸 딱 보면 모르나? 대가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나? 돈 쓸 데가 그렇게 없으면 사회에 기부나 하든가, 빡대가리 새끼들도 아니고…….
“…….”
-끊어, 빡대가리 새끼야!
“넵, 들어가세요.”
말을 하다가 열이 받은 건지 미친놈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때마침 정우진에게 문자 한 통이 더 왔다.
[많이 바쁘세요? 목소리 듣고 싶은데 전화해도 돼요?]
“…….”
정우진이 보낸 문자를 보니 다시 착잡해졌다.
이 모든 것들이 그냥 내 가정일 뿐인데도 그랬다. 이게 내 망상이기만 하면 좋겠지만, 왠지 그게 아닐 것 같아서 문제였다.
솔직히 강수민이 뭐 어떻게 살든, 어떻게 되든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사촌이고 가족이기는 했지만, 어릴 때부터 우리에게는 서로 그런 정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나는 사실 강수민이 싫지도 밉지도 않았다. 변함없이 그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가족이니 어디서 객사하면 장례는 치러 줘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서 생사 여부만 좀 확인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마음이 이렇게 착잡한 이유는 강수민 때문이 아니라, 정우진 때문인 게 맞았다.
‘누군데?’
‘아, 있어. 내 시다바리의 시다바리.’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기억이 단편적으로 떠오르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을 감자 초라하고 작은 어린아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비웃는 소리가 귀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나는 잠시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숨을 크게 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하다가 무언가에 쫓기듯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