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32/190)

127화

너무 놀라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히끅!”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딸꾹질을 하기 시작하자, 입술을 꽉 깨물고 울던 오빠가 나를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양손으로 얼굴을 벅벅 비빈 오빠가 창살 안으로 손을 넣어 내 얼굴도 똑같이 박박 문질렀다.

“야, 너 왜 자꾸 우냐? 하여튼 진짜…….”

“…….”

닦이고 있는 얼굴이 너무 아파서 눈을 질끈 감고 얼른 끝나기만 기다렸다. 그리고 곧 손이 떨어지자 오빠가 부스럭거리면서 가지고 온 것을 만지작댔다. 뒤늦게 알았는데 좋은 냄새가 풀풀 나고 있었다.

“오빠, 그거 뭐야?”

“너 햄버거 먹어 봤어?”

“햄버거?”

그게 뭔지 몰라서 고개를 흔들자 종이 포장을 벗기더니 빵이랑 비슷하게 생긴 걸 한 입 먹고는 입 안에 있는 걸 씹으며 내게 말했다.

“이렇게 빵이랑 안에 있는 거 다 같이 먹는 거야. 알았지? 너도 여기 베어 물어 봐.”

“응.”

대답하며 고개를 창살 쪽으로 최대한 내밀자 오빠가 내 쪽으로 빵을 내밀었다. 하지만 창살 때문에 도저히 거기까지 입이 닿질 않았다.

“아, 이거 불편하네. 안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거 좀……. 옆으로 안 벌어지나? 조금만 벌리면 될 거 같은데.”

오빠가 빵을 바닥에 잠시 놓더니 창살을 양손으로 잡고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이 씨……. 익, 이익!”

안간힘을 써 봤지만 창살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하다가 도중에 화가 나기라도 했는지 옆으로 밀기도 하고 앞뒤로 당기면서 철컹철컹하고 큰 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턱 하는 소리와 함께 창살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

“…….”

오빠는 넘어질 듯 말 듯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휘청거리다가 똑바로 섰다. 그리고 자기 손에 들려 있는 창살을 보며 당황하다가 그걸 다시 창문 쪽에 갖다 대며 더듬거렸다.

“이, 이게 왜 떨어졌지? 어…….”

“…….”

“…….”

“…….”

내가 계속 멀뚱멀뚱 쳐다보자 오빠는 들고 있던 창살을 옆에 조용히 내려놓더니 햄버거라는 빵을 들어 내게 내밀며 말했다.

“일단 먹고 생각해 보자.”

“으응.”

“여기 보이지? 여기 입 크게 벌려서 먹어 봐.”

시키는 대로 입을 살짝 벌려서 빵을 먹으려고 했는데, 오빠가 손을 뒤로 뺐다. 허공을 깨문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오빠를 바라봤다.

“아니, 더 크게 벌리라고. 빵이랑 고기랑 야채랑 같이 먹어야 맛있다니까?”

“더 크게?”

“그래, 최대한 크게 벌려 봐.”

그 말에 나는 있는 힘껏 입을 벌렸다. 그러자 오빠가 내 입 쪽으로 빵을 퍽 박아 넣었다. 입 주변으로 뭐가 다 묻었지만 씹지도 않았는데,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눈을 크게 뜨자 나를 보고 있던 오빠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맛있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최대한 열심히 입 안의 것을 씹었다. 그래야 빨리 더 먹을 수 있으니까…….

대충 씹어 삼키고 다시 입을 벌리자 햄버거가 입 안 가득 들어왔다.

“천천히 먹어.”

“…….”

“꼭꼭 씹으라고.”

“…….”

오빠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천천히 씹어 보기도 하고, 꼭꼭 씹는 흉내도 내 봤지만 점점 속다가 빨라졌다.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씹고, 입을 벌려 다시 받아먹다 보니 금방 햄버거를 다 먹어 버렸다.

“너 햄버거 처음 먹어 봐?”

배가 너무 불러서 아플 정도였지만 더 먹고 싶어서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이자 오빠가 먹고 남은 종이 포장지를 구기며 말했다.

“다음에 혹시 또 구하면 가지고 올게.”

“어디 가면 구할 수 있어?”

“이건 누가 사 줘야 돼.”

“누가?”

“어른이.”

아쉬워하고 있는데 잠시 잊고 있던 뜯어진 창살이 떠올랐는지 오빠가 다시 곤란한 표정으로 그걸 건드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그걸 옆으로 치우고 주위를 살피다가 내게 말했다.

“너 신발 있지?”

“신발? 응.”

“가지고 와 봐.”

그 말에 신발장 쪽으로 가 예전에 신었던 신발을 가지고 다시 의자 위로 올라가 그걸 건넸다.

“이거야?”

“응.”

“……너무 작은데? 언제 신던 건데? 지금 신는 걸 가지고 와야지.”

“그거밖에 없어.”

“이건 완전……. 애기들이 신는 거 아닌가?”

신발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보던 오빠가 할 수 없다는 듯 그걸 다시 내게 건네며 말했다.

“잠깐 나올래?”

“밖에?”

“어차피 이거 뜯어져서 나올 수 있을 거 같은데.”

“…….”

할아버지가 절대 나가지 말고, 누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말라고 해서 망설여졌다. 하지만 나는 이미 절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을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두 번째는 더욱 쉬웠다.

“내 손 잡고, 천천히 올라와 봐. 힘주고.”

내가 창틀에 매달리자 오빠가 내 팔뚝을 잡고 당겨 주었다. 배가 쓸려서 조금 아프긴 했지만, 곧 창문을 지나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힘겹게 일어나 고개를 들자, 하늘이 보였다.

“…….”

높은 건물과 담벼락, 여러 색깔의 벽, 창문, 건물 꼭대기에서 휘날리고 있는 천과 고개를 높이 들지 않아도 닿는 시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구경하고 있는데, 오빠가 자기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일단 이거라도 신어.”

“오빠는?”

“난 양말 신어서 괜찮아.”

그 말에 천천히 신발 안으로 발을 넣었다. 하얀 건 처음 신어 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다리가 무거웠다. 신발이 커서 그런 걸까? 뒤뚱거리면서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는데 오빠가 나를 불렀다.

“내가 예쁜 거 보여 줄게. 따라와 봐.”

그리고 앞장서서 걷기에 얼른 쫓아가려고 다리를 움직였다가 발이 걸려 철퍼덕 넘어져 버렸다. 집에서 넘어졌을 때보다 무릎과 손바닥이 더 아팠지만, 일단 빨리 따라가야 해서 벌떡 일어났다.

“괜찮아?”

“응.”

“너 근데 넘어져도 안 우네?”

넘어지는데 왜 울지? 고개를 갸웃하며 몇 걸음 옮기다가 그만 또 넘어져 버렸다. 이번에는 꽤 세게 넘어져서 손바닥이 쓰라렸다. 손바닥을 보니 자그마한 돌조각 같은 게 잔뜩 묻어 있었다.

오빠가 다가와 나를 일으켜 세우더니 손바닥과 무릎을 털어 주며 말했다.

“안 되겠다, 신발 다시 벗어 봐.”

“어?”

“벗어 봐, 신발.”

“…….”

혹시 계속 넘어져서 그런 걸까? 싫어서 머뭇거리자 오빠가 신발 쪽으로 손을 뻗어 쑥 벗겨 갔다. 아쉬운 마음에 입꼬리를 축 내리고 있는데, 신발을 다시 신은 오빠가 등을 보인 채 한쪽 무릎을 꿇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업혀.”

“…….”

“빨리. 이렇게 가는 게 훨씬 빠르겠다.”

이건 내가 아주 어릴 때 엄마가 가끔 해 주던 것이었다. 엄마가 없어진 후로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망설이다가, 또 신발을 다시 가져간 것처럼 이것도 안 해 주겠다고 할까 봐 얼른 등 위로 엎어졌다.

“목 꽉 잡아.”

“응.”

목에 팔을 두르자 이불 안에 들어가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가만히 얼굴을 기대자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느낌도 좋았다. 분명 너무 기쁜데 왜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은지는 알 수 없었다.

“오빠, 근데 독침에 쏘였지?”

“독침?”

“독침에 쏘였지?”

“아니, 안 쏘였는데?”

그 말에 살짝 고개를 들어 조금 전 붉게 부어 있던 오른쪽 뺨을 보며 말했다.

“여기, 쏘인 거 아니야?”

“아……. 그거 때문은 아니고……. 아, 다 왔다.”

내리라는 듯 다시 살짝 무릎을 굽혀 주기에 목을 감고 있는 팔에 꽉 힘을 줬다. 그러자 오빠가 작게 기침을 했다.

“내려.”

“…….”

“빨리.”

“…….”

하는 수 없이 또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바닥에 발을 디디자 오빠가 나와 눈앞의 낮은 벽을 가만히 보더니 그 앞에 엎드리며 말했다.

“내 등 밟고 위로 올라가 봐.”

“밟고?”

“응,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시끄럽게 하면 사람 나와.”

“다른 사람?”

“들키면 우리 둘 다 혼날지도 몰라.”

조용히 하는 건 자신이 있어서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시키는 대로 등을 밟고 서서 버둥거리며 벽을 넘어가려 안간힘을 썼다. 내가 계속 넘질 못하자 결국 오빠가 다시 일어나 밑에서 나를 밀었다.

그렇게 겨우 벽 위로 올라오자, 오빠도 위로 손쉽게 올라왔다.

“이제 다시 저기 밑으로 내려가야 되는데, 내가 먼저 내려가서 받아 줄 테니까 일단 움직이지 말고 거기에 가만히 있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벽을 잡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 오빠가 나를 올려다보며 손을 뻗었다.

“일단 거기서 돌아서서 발부터 밑으로 내려. 어, 그렇게. 그리고 벽 잡고 매달리듯이…….”

하지만 하라는 대로 해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아서 결국 매달려 있는데, 오빠가 아래쪽에서 나를 받았다. 덕분에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착지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우리는 높은 계단을 몇 개나 오르고, 또다시 담을 넘었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계속 하다 보니까 재미있기도 하고, 이젠 좀 익숙해져서 낮은 담은 혼자서도 넘을 수 있었다.

예전에 엄마가 읽어 줬던 동화책 속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왕자는 가시밭길과 용암 지대를 지나 자신을 방해하는 괴물을 물리치고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도 담을 넘고 계단을 지나, 갑자기 누구냐며 고함을 지르는 사람을 피해 숨기도 하면서 가장 높은 곳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재밌다.”

내가 웃으며 말하자 오빠도 웃었다.

“그치?”

“응.”

“너도 할아버지가 밖에 나갈 수 있게 해 주면 더 자주 올 수 있을 텐데.”

“…….”

할아버지한테 혹시 나가서 놀아도 되냐고 한 번 물어볼까? 그럼 밤이 아니라 낮에도 오빠랑 같이 놀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괜히 그런 말을 했다가는 또…….

“고개 들어 봐.”

그 말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 안으로 들어오는 커다란 것에 놀라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예쁘지?”

“…….”

“너 별 이렇게 많은 거 본 적 있어?”

“…….”

“진짜 신기하지? 집에서 보면 이렇게 많이 안 보이거든? 근데 이상하게 여기에 오면 엄청 잘 보여. 여기가 하늘나라랑 가까워서 그런가 봐. 하늘나라는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인데, 거기에 지금 우리 엄마랑 아빠도 있거든. 어쩌면 별이…….

‘바다는 엄청 크거든? 산보다 더 커. 파란색인데 밤에는 검은색처럼 보이기도 해. 그리고 햇빛을 받으면 파도 칠 때 반짝반짝해. 파도는 바람 많이 불면 치는 건데……. 하얀색이고……. 아무튼 반짝거려.’

분명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내 귀에는 바다에 대해 설명해 주었던 말이 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본 바다는 오빠가 말해 주었던 그대로였다.

바람도 불지 않는 검은 바다에서 하얗게 빛나는 파도가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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