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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131/190)

126화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언제부턴가 있었고, 언제부턴가 엄마가 없어져서, 언제부턴가 늘 혼자였다.

“밖에 나쁜 사람들 있을 수도 있으니까 누가 와도 절대 문 열어 주지 말고.”

고개를 끄덕이자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문 두드리면 어떻게 하라고?”

“소리 내지 말고, 가만히…….”

“숨도 크게 쉬지 말고.”

“으응.”

작게 대답하자 할아버지는 잠시 나를 보다가 커다란 문밖으로 나갔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걸 숨죽이고 듣다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면 냉장고를 열어 안을 확인했다.

비닐 안에서 식빵을 꺼내 조금씩 먹다가 의자에 앉았다. 다리를 흔들면서 창밖을 보면 가끔 사람들이 지나가는 발이 보였다. 이런저런 이야기 소리도 들리고, 가끔은 노래가 들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늘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다리나 발밖에 보지 못했는데, 얼굴이 보인 것이다. 너무 놀라서 주춤거리다가 얼른 다가가 창문을 닫아 버렸다. 급하게 의자 위로 올라가느라 무릎을 찧었는데, 아픈 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놀란 가슴에 손을 대며 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벌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계속 눈이 마주쳤다. 창문을 닫아 두면 마치 안을 확인하듯 불투명한 형체가 계속 비쳐서, 할아버지가 말하는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눈이 마주쳐도 가만히 날 쳐다보기만 해서 딱히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계속 오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심심해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다음 날에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더 가까이, 계속 그렇게 거리를 좁히다가 쇠창살을 손에 쥐고 이젠 더 이상 다가갈 수도 없을 때쯤에 내게 물었다.

“야, 너 이름이 뭐야?”

멀리서 볼 때는 할아버지만큼 큰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별로 크지도 않았다. 비슷한 나이대라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그 사실만으로도 처음보다는 무섭지 않았다.

“너 말할 줄 몰라?”

사실 할아버지만큼 컸다고 해도, 나는 아마 내 이름을 말했을 것이다.

“……우진…….”

“뭐라고?”

“우진이…….”

눈을 마주치고, 물어보고, 대답을 하는 게 재미있었으니까.

***

자기 이름이 오빠라던 사람은 그다음 날부터 매일 찾아왔다.

세상이 밝아지고, 조금 더 기다리다 보면 이쪽으로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금 숨이 차기 시작했다.

“오늘은 빨리 일어나서 좀 일찍 왔어. 너 근데 안 더워?”

“오늘은 지각해서 금방 가야 돼. 나중에 또 올게.”

“좀 있다가 비 온다고 하니까 창문 열어 놓지 말고 닫아 놔. 오면 이렇게 탁탁탁 세 번 두드릴게. 그럼 나니까 문 열어 줘. 알았지?”

다급히 말하면서 숨을 몰아쉴 때마다 나도 덩달아 숨이 찼다. 바닥에 엎드려 나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고는 했는데, 가끔은 맛있는 것도 가지고 와 주었다.

“너 요구르트 좋아해?”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주는 건 먹지 말라고 했지만, 너무 궁금해서 먹어 봤다가 신세계를 맛봤다. 나는 세상에 이런 게 있는 줄은 몰랐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걸 요구르트라고 정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초코 우유라는 걸 먹자마자 생각이 바뀌었다.

“오빠, 이거 너무 맛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초코 우유였다.

“이것도 먹어.”

하지만 바나나 우유라는 걸 먹은 뒤로는 또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바뀌었다.

맛있는 것도 주고, 이야기도 해 주고, 종이랑 연필도 주고, 그림책도 주고, 숫자도 가르쳐 줘서 나는 매일 오빠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밤은 길어지고, 오빠가 오는 시간도 점점 늦어졌다. 분명 자고 일어나면 금방 밝아졌는데, 이제는 오빠가 주고 간 덧셈과 뺄셈 책을 한참이나 풀어도 계속 어둡기만 했다.

왜 자꾸 밤이 길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결국 기다리다 보면 해가 뜨는 걸 알기에 참고 기다릴 수 있었다.

“너 바다 가 봤어?”

의자에 올라가 까치발을 들고 서서 엎드려 숙제를 하는 걸 구경하고 있는데, 문득 오빠가 물었다. 내가 고개를 흔들자 다시 물었다.

“그럼 산은?”

또다시 고개를 흔들자 오빠가 종이 끄트머리에 연필로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게 산이야. 나무가 엄청 많고 되게 높고……. 산에는 호랑이도 살고 토끼도 살거든? 풀도 많고 꽃도 많고……. 벌도 있어서 잘못 쏘이면 진짜 죽어.”

“죽어?”

“응, 독침 때문에……. 너 근데 벌이 뭔지 몰라?”

벌이 뭔지는 나도 알았다. 혹시 그 기다란 걸 독침이라고 하는 걸까?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고개를 흔들자 오빠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알아?”

“응, 알아. 그거, 아픈 거.”

“너 혹시 쏘여 봤어?”

그걸 쏘인다고 하는 걸까? 모르는 게 많아서 매번 물어보면 오빠가 대답해 주고는 했지만, 이건 나도 아는 거라 물어보지 않고 잘 대답을 하고 싶어, 알아들은 척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언제?”

“저번에…….”

“안 아팠어?”

“아팠어.”

“어쩌다가 쏘인 건데?”

“잘못해서…….”

생각만 해도 아프고 무서워서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이젠 안 아프지?”

“응.”

“다음부터는 조심해. 아무튼 바다는……. 그리기가 좀 까다로운데.”

고민하던 오빠가 결국 포기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로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바다는 엄청 크거든? 산보다 더 커. 파란색인데 밤에는 검은색처럼 보이기도 해. 그리고 햇빛을 받으면 파도칠 때 반짝반짝해. 파도는 바람이 많이 불면 치는 건데……. 하얀색이고……. 아무튼 반짝거려.”

“얼마나 커?”

“진짜 엄청나게 커. 만보다 더 클걸? 여기서 우리 집이나 학교보다 훨씬 더 커. 완전 비교도 안 돼. 우리나라보다 더 클 거야, 아마.”

흥분해서 빠르게 말하는 걸 보니 정말 엄청 큰 것 같았다. 나도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으니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근데 그것보다 일단 모르는 게 있어서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근데 오빠, 만이 뭐야?”

“일, 십, 백, 천, 만 이렇게 커지는 거야.”

“…….”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해 보여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자 오빠가 종이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렸다.

“이게 하나잖아. 그치?”

“응.”

“하나가 열 개 있으면 그게 십이야.”

“응.”

이건 저번에 들어서 나도 알고 있었다. 오빠는 동그라미 열 개를 그리더니 나를 보며 연필로 그걸 탁탁 쳤다.

“이게 뭐라고?”

“십.”

“그럼 십이 열 개면?”

“백.”

“그럼 백이 열 개면?”

“…….”

그건 아직 안 배워서 모르는데……. 오빠가 알려 준 것도 백까지밖에 없었다. 내가 대답을 못 하자 오빠가 웃었다.

“네 나이에는 백까지만 알고 있어도 돼.”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고개를 갸웃하다가 물었다.

“너 근데 몇 살이냐?”

“…….”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질 않고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자, 오빠가 한숨을 내쉬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나 먹어라.”

껍질을 까서 주는 걸 입에 넣자 달콤한 맛이 났다.

“새콤달콤인데, 너 줄게.”

“…….”

너무 맛있어서 대답도 하지 않고 열심히 입 안의 것을 굴리며 먹자 조금 전보다 말랑해졌다.

“바나나 우유가 좋아, 새콤달콤이 좋아?”

내가 먹는 걸 가만히 보던 오빠가 물었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가 없어서 대답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다른 거 또 가지고 올게.”

입 안에 있는 걸 열심히 굴리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어느새 오빠가 가방 안에 연필과 책을 다 넣어 버렸다. 저러면 이제 가겠다는 뜻이라 나는 다급히 말했다.

“오빠, 나 백 다음도 궁금해.”

“그건 아직 몰라도 돼.”

“언제 알려 줄 거야?”

“음……. 나중에. 내일 또 올게.”

“나 새콤달콤 더 먹고 싶어.”

내가 창살 사이로 손을 뻗자, 오빠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밖에 없어.”

“그럼 다른 거…….”

“다른 거? 혹시 찾으면 또 가지고 올게.”

“지금은?”

“지금은 이제 없어.”

안 되는데……. 어떡하지? 뭘 더 물어봐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는데, 오빠가 등을 돌려 그대로 뛰어가 버렸다.

“내일 또 올게!”

“…….”

안 가면 안 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결국 오늘도 하지 못했다. 다시 날이 밝을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또 엄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또 내일이 오니까…….

하지만 오빠는 날이 밝기도 전에 찾아왔다.

“집에 아무도 없어?”

“…….”

이런 적은 처음이라 놀라서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질 않자 오빠가 바닥에 앉아 나와 가까운 거리에서 물었다.

“할아버지 안 들어왔어? 이렇게 늦었는데?”

“…….”

할아버지는 가끔 몇 밤을 자도 안 올 때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데,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혀 버렸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보인 얼굴의 오른쪽 부분이 빨갛게 변하고 부어 있는 걸 보니 금세 목소리가 나왔다.

“독침에 쏘였어?”

“뭐? 갑자기 무슨 독침?”

“얼굴…….”

“아, 이거……. 야, 근데 이게 무슨 독침이야. 웃기네, 진짜. 아무튼 너 아까 새콤달콤 먹고 싶다고 했잖아. 새콤달콤은 없고, 이거 가지고 왔어.”

독침에 쏘였는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을까? 안 아픈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 걸까? 나도 조금 더 크면 쏘여도 안 아플까? 

그거 엄청 아픈데……. 진짜 아픈데…….

“이게 뭐냐면, 햄버거……. 야, 너 울어?”

“…….”

“갑자기 왜 울어?”

“…….”

“아니, 왜…….”

“…….”

그때가 떠올라서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자, 오빠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당황해서 한껏 몸을 숙여 창살 사이로 손을 뻗다가, 내게 닿기도 전에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웃고 있던 얼굴이 금세 이상하게 변하더니 오빠가 입술을 꽉 깨무는 순간, 아래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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