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내 말에 정우진의 표정이 허물어지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어린애가 대성통곡을 하듯 일그러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더니 엉엉 울면서 웅얼거렸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아니, 방금 알았어.”
“그럼 왜 유진이라고 했어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울고 있는데도 궁금한 게 많은 건지, 정우진이 계속 물었다. 하지만 그때 왜 그 이름을 부른 건지는 나도 모르기 때문에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양 뺨을 잡고 있느라 삐죽 튀어나온 입술에 점점 피가 몰려서 그런지 피가 날 것처럼 시뻘게졌다. 눈물로 젖은 손을 거두자 정우진이 번쩍 눈을 뜨더니 내 손을 부여잡았다.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몰라. 그냥 어쩌다 보니까 알게 됐어. 넌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언제부터 알고 있었냐고요?”
내 질문에 정우진이 갑자기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봤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쏘아봐도 별로 무서운 건 아니었지만, 뭔가 내가 잘못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주춤했다.
“어떻게 몰라요?”
“아니, 너는…….”
“나는 보자마자 알았는데, 오빠는 기억도 못 하고…….”
“…….”
오빠라는 단어가 귀에 꽂히자마자 등줄기에서부터 소름이 쫙 끼쳤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부르르 몸을 떨다가 말했다.
“야, 알아보는 게 이상하지. 요만한 여자애였는데…….”
양손을 뻗어 크기를 재듯 대충 팔을 벌리고 있는데, 정우진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제가 무슨 강아지예요? 그만한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너 근데 여자애 아니었냐?”
“아니거든요?”
“근데 왜 나한테 오빠라 그랬어?”
“…….”
정우진이 유진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한 건 비단 내 탓만이 아니었다. 이런 덩치 산만 한 남자를 보고 어떻게 그 작고 연약했던 여자애를 떠올린단 말인가? 하지만 내 말에 정우진의 눈빛은 이제 화가 난 걸 넘어서 싸늘해져 버렸다.
그걸 보니,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에 내가 먼저 앞으로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뒷목을 만지다가 소매를 쭉 당겨 젖은 정우진의 얼굴을 박박 닦아 주며 말했다.
“아무튼 그만 좀 울어. 넌 도대체 왜 그렇게 맨날 우냐?”
“제 눈에서 눈물이 나게 만들잖아요.”
“누가? 내가?”
내가 양파니?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왠지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도로 삼켰다.
“아무튼 앞으로 오빠라고 하지 마. 진짜 방금 소름 끼치고 온몸에 전기 통했어.”
대충 얼굴을 다 닦아 주고 손을 내리자 정우진이 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충격 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소름 끼쳐요?”
“뭔 소리야? 네가 소름 끼친다는 게 아니라, 네가 나한테 오빠라고 하는 게 소름 끼친다는 거지.”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정우진을 보며 놀라서 변명했지만, 표정이 풀리질 않았다. 그걸 보며 고민하다가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예시를 들었다.
“너 김강이 너한테 우진이 오빠, 이러면 기분이 어떨 거 같아?”
“…….”
내 말에 파랗게 질린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던 정우진의 표정이 순간 굳어 버렸다. 찔러도 바늘 하나 들어갈 것 같지 않은 표정에 황당해서 웃으며 다시 물었다.
“오빠 고기 사 주세요, 이러면 소름 안 끼치겠니? 네가 김강을 싫어해서 소름이 끼치는 게 아니라, 형이라고 안 하고 오빠라고 하는 게 그냥 싫은 거잖아.”
“형도 싫어요. 그냥 정우진 씨라고 하든가 야, 라고 하라고 하세요.”
“……야, 너 말을 또 왜 그렇게 하냐? 그리고 강이가 너보다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야, 라고 해?”
정우진이 뭐라고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
“…….”
정우진이 유진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저렇게 쳐다봐도 기분이 별로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유진이라는 걸 알고 보니, 얼굴 곳곳에 어릴 때의 흔적들이 제법 많이 남아 있었다.
특히 눈이 어릴 때와 똑같았다.
말없이 나를 보던 정우진은 내가 계속 아무런 말도 하질 않자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먼저 시선을 피하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동그랗고 까만 뒤통수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이라도 헤집으면서 잘 지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시절의 유진이는 빈말로도 잘 지낸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많았으니까.
어린애를 돌봐 주는 어른도 없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나와 나이 차이가 두 살밖에 나지 않았는데도 지나치게 작았었다. 좁은 방 안에서 제대로 된 활동도 하지 못해서 그랬던 걸까? 잘 걷지도 못해서 넘어지기 일쑤였던 걸 떠올리니 가슴이 울렁거렸다.
우리가 마지막에……. 그러니까, 어떤 일 때문에 내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말도 하지 못하고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고, 그 뒤로 우리는 만나지도 못했고, 서로 소식을 알 수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정우진을 두고 가 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무 말도 없이…….
여전히 푹 숙이고 있는 머리의 떨림이 조금씩 커지다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 집에서는 언제까지 있었던 건지, 너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온 게 누구였는지……. 묻고 싶은 것도 많았고, 변명을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 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으로 섞여 쉽사리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흑, 흐윽…….”
“……야, 자꾸 울지 말고…….”
“보, 보고……. 흑, 윽. 보고 싶…….”
“…….”
훌쩍거리면서 울던 정우진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힘겹게 하는 말에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나는 계속 허리를 숙이고 있는 정우진의 어깨를 붙잡아 억지로 고개를 들게 한 뒤, 그대로 꽉 안았다.
닿아 있어서 그런지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졌지만, 이내 정우진의 손이 내 등을 미약한 힘으로 껴안았다.
“허엉…….”
그러더니 긴장이 풀린 사람처럼 크게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정우진의 등을 토닥거렸다. 마치 누가 하품을 하면 전염되듯 옆 사람도 하품하는 것처럼, 정우진이 계속 울어서 그런지 나까지 눈가가 젖어 들었다.
어릴 적의 기억들이 휘몰아치는 폭풍처럼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물이 뺨을 따라 흐르기도 전에, 나는 현실로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우진의 등을 토닥거리다가, 천천히 손을 올려 목덜미의 맨살을 만져 봤다.
그러자 울던 정우진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내게 안겨 있는 정우진의 어깨를 잡아떼어 내며 물었다.
“너 몸이 왜 이렇게 뜨거워?”
“네?”
계속 울어서 그런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정우진이 어눌하게 대답했다. 나는 다시 손을 뻗어 이번에는 정우진의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 대어 봤다.
“…….”
“…….”
내 손이 차가워서 더 뜨겁게 느껴지는 건가? 아닌데? 내 손 안 뜨거운데? 그럼 지금 정우진이 이렇게 뜨겁다는 소린가?
당황한 얼굴로 눈만 깜빡이다가 다시 물었다.
“너 열나?”
“열이요?”
“너 열 엄청 나고 있는 거 같은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정우진은 고개만 갸웃했다. 자기 몸 상태를 모르는 건가? 아니면 너무 울어서 가늠이 안 되는 상태인가? 뭐가 어찌 됐든 정우진이 아파서 귀국한 건 사실이었다.
“너 손가락만 다친 거야?”
혹시 다른 곳을 더 다쳤나 싶어 묻자, 정우진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골절이라 염증이 생겨서 열이 나는 건가? 의사가 아니라 자세히는 몰랐지만, 어쨌든 해열제라도 빨리 먹는 게 좋을 듯싶었다.
“일단 병원부터 가 보자.”
“병원 싫어요.”
“뭐? 아니, 네가 무슨 애도 아니고 아픈데 병원을 왜 안 가?”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정우진이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까 갔다 왔어요. 그냥 쉬면 좀 괜찮아져요.”
“해열제 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아까 약도 먹었어요.”
“밥은?”
“밥은 안 먹었어요.”
아니, 아픈 애가 왜 밥을 안 먹지? 그리고 손가락을 다쳤으면서 자기가 운전을 하고 여기까지 온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한숨만 내쉬며 말했다.
“일단 집에 가자, 그럼.”
“……저희 집이요?”
“그럼 너희 집에 가야지. 쉰다며?”
“아, 네…….”
정우진은 어딘지 모르게 얼떨떨해 보이는 표정으로 조금 우왕좌왕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니 불안감이 엄습했다.
“너 운전은 제대로 할 수 있지?”
“네, 손가락 다친 거랑은 상관없어요. 새끼손가락이고…….”
“아니, 도대체 손가락은 왜 다친 건데?”
안전벨트를 하며 묻다가 문득 내 허벅지 위에 떨어져 있는 종이학이 보였다. 작은 종이학을 집어 가만히 보고 있는데, 정우진이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그냥……. 그럴 일이 좀 있었어요. 근데 저 배고픈데, 혹시 집에서 같이 밥 먹으면 안 돼요?”
“…….”
“집에 재료 없는데 마트 들렀다 갈까요?”
뭐 이런 걸 접어서 주는 거지? 선물 주지 말라고 했더니 시위하는 건가?
아까는 깁스한 손가락을 보느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황당했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종이학만 보고 있자 내 눈치를 보던 정우진이 이때다 싶었는지 다급히 말했다.
“제가 종이학 천 마리 접어 드릴까요?”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걸 보니 갑자기 착잡해지기 시작했다.
“너는…….”
“네?”
“……아니다.”
“왜요?”
내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울상을 짓고 되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