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24/190)

119화

이제 오두막집 남자들도 마지막 방송만 남겨 두고 있었다.

다행히도 반응이 좋아서 스케줄도 이것저것 생기고, 계속 미뤄지던 앨범도 진행하자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겸사겸사 숙소를 옮기자는 의견들도 있었는데, 이건 아직 급한 일은 아니었다.

“준오, 정 들었는데 아쉽기는 하다.”

유노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정우진이 떠올랐다. 왜 매니저는 이름으로 부르고 자기는 야, 라고 하냐던 그 표정과 목소리가…….

“처음부터 임시라고 하긴 했으니까……. 새로 오시는 분은 누군지 알아?”

“아직 몰라.”

이진혁이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매니저가 바뀌면 정우진이 난리를 치는 일도 없을 테니, 어찌 보면 이것도 잘된 일이 아닐까?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아메리카노 사진) 선배님 생각나서 사 봤어요.]

“…….”

막 산 것처럼 보이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찍힌 사진이었다. 어차피 써서 먹지도 못하는 걸 그냥 생각이 나서 샀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편한 눈으로 문자를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갑자기 길게 한숨을 내쉬자 애들이 나를 쳐다봤지만, 내 눈에는 그런 것도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정우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알아듣게 거절한 거 같은데, 내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 막무가내로 나오니 곤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게 싫으면 더 강하게 말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려니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우진이라 더 그런 걸까?

알고 지낸 지 오래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친하게 지내던 동생이었고, 데뷔할 때부터 팬이라고 했으니까…….

연락해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도, 차라리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게 훨씬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에 박준오랑 애들도 있는데, 자꾸 울어서 나도 좀 마음이 누그러진 게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됐던 것 같아서 후회가 밀려왔다.

[너무 써요ㅠㅠ 시럽 넣어서 마시면 좀 괜찮을까요?]

답장도 보내지 않았는데 다시 문자가 왔다.

“하아…….”

나는 핸드폰을 보다가 머리를 짚고 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소파에 드러누워 몸을 웅크리고 등받이 쪽에 얼굴을 묻었다.

“왜 저래?”

“몰라……. 형, 무슨 일 있어?”

“배고픈 거 아니야?”

걱정스러운 어조로 묻는 말에 별거 아니라는 듯 손만 흔들었지만, 마치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일단 정우진이랑 다시 만나기는 해야 했다. 만나서, 다시는 그렇게 새벽에 울면서 집에 찾아오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울지 말라는 말도 꼭 해야 했다.

뒤늦게 깨달은 건데,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정우진이 울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설마 정우진이 이걸 노렸던 건가? 하는 의심도 들었지만, 일단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다.

연락도 그냥……. 하지 말라고 하는 게 낫겠지?

그래, 차라리 그냥 아예 하지 말라고 하자. 영영 보지 못해도 괜찮은 거냐고 다시 물어보면, 그냥 그렇다고 하자. 그래야 정우진도 마음 정리하기가 쉬울 테고…….

“…….”

어쩔 수 없지, 뭐.

“아, 한다.”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 텔레비전에서 오두막집 남자들이 시작하고 있었다. 이제 이 방송도 마지막이었다. 우리도 앨범 준비하려면 바빠질 거고, 정우진이야 뭐 원래 바빴으니 지금처럼 만날 시간도 없을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멀어지지 않을까?

[선배님, 방송 시작했는데 혹시 보고 계세요?]

그때 다시 정우진에게 문자가 왔지만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텔레비전 속에서는 내가 정우진이 만든 비빔국수를 카메라를 향해 보여 주고 있었다.

‘우진이가 고기와 오이로 만든 국수 마법진입니다.’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만들었어요.’

“마법진이래.”

같이 방송을 보고 있던 유노을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걸 보는 나는 심란하기만 했다.

최근에 정우진이 찍힌 모든 사진들은 논란이 되고 있었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눈은 누가 봐도 울었다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발갛게 부어 있었고, 안색은 창백하고 힘도 없어 보여서 건강 이상설까지 나왔다.

과도한 스케줄이 문제라는 말도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어서 결국 회사에서 건강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공식 발표까지 한 상황이었다.

텔레비전 속의 정우진과 기사로 뜨는 정우진의 얼굴은 딴사람 같았다. 정말 과도한 스케줄 때문이기도 했지만, 왠지 내 탓도 있을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정우진의 기사는 찾아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대한민국에 사는 이상 세가온의 소식은 내가 알고 싶지 않아도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옆에서 애들이 한마디씩 하는 것도 있었고…….

‘이렇게요?’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비 오는 날, 저수지에 간 정우진과 내가 나오고 있었다.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와 빗물이 떨어지는 저수지로 물수제비를 뜨는데, 정우진이 돌멩이 든 손을 어깨 뒤로 높이 들었다가 그대로 물속으로 메다꽂아 버렸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저수지 속으로 자취를 감추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네, 진짜.”

다시 봐도 어처구니없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누가 물수제비를 저렇게 뜬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속의 나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저수지를 보다가 정우진에게 뭐라고 하는 장면이 나왔다.

‘야, 돌멩이를 그렇게 물에다가 갖다 박으면 어떡해?’

‘그럼 어떻게 해요?’

‘옆으로 비스듬히 던져야지.’

‘어떻게요?’

‘일단 자세를 이렇게 잡고…….’

주춤거리고 있는 정우진의 옆으로 가 직접 자세를 잡아 주는 내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돌멩이는 너무 꽉 잡지 말고 살짝만 잡아. 손목만 움직이지 말고 팔 전체를 움직이면 좀 편하거든? 이렇게, 아니! 다리는 이쪽에 두고.’

하지만 열성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내 모습과 달리, 정우진은 웃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입술을 꽉 깨문 채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가르쳐 줄 때는 몰랐는데 내 말도 잘 안 듣는 것 같고, 설렁설렁 하고 있는 게 다 티가 났다.

‘이러고 한 번 던져 봐.’

내가 고개를 들며 말하자 정우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길 잃은 강아지처럼 변했다. 그러니까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난관에 봉착한 사람처럼 말이다.

“…….”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애들이 슬쩍 나를 쳐다보며 내 눈치를 봤다.

그리고 당시에 나도 놀랐던 그 장면이 나왔다.

‘이 자세로 한 번 던져 봐.’

‘네.’

정우진이 내가 알려 준 자세 그대로 돌멩이를 던졌다.

푱, 푱, 푱, 푱, 푱, 푱…….

작은 돌멩이는 수면 위를 열 번도 넘게 튕기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와, 미쳤다. 몇 번이나 한 거야?”

“열네 번? 열다섯 번?”

“대박이다.”

“…….”

애들이 감탄하는 것처럼 텔레비전 속의 나도 놀라 자빠질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야, 너……. 무슨……. 무슨,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선배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런가 봐요.’

‘너 대회 나가야 되는 거 아니야?’

‘같이 나가 볼래요?’

웃으며 말하는 정우진의 표정을 보니 또 심란해졌다.

그 전에는 몰랐는데 정우진이 날 좋아한다는 걸 알고 보니까 모든 행동 하나하나, 나를 쳐다보는 눈빛까지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저렇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동안 왜 몰랐을까?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편한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면서 나도 모르게 애들의 표정을 살폈다. 저 정도면 보는 사람들도 다 눈치채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애들은 정우진의 눈빛에는 관심이 없고, 열네 번이나 물을 튕긴 물수제비 얘기만 하고 있었다.

“와, 저 정도면 진짜 완전 쌉고수네.”

“나 예전에 딱 한 번 열 번 넘게 해 본 적 있었는데, 와……. 진짜 저걸 어떻게 했냐?”

“계속 못하는 척하다가 자랑한 거 아니야? 우리 형은 다섯 번밖에 못했는데, 일부러 저런 거 아님?”

“야, 다섯 번도 잘한 거야. 그치, 형?”

“맞아, 비도 오고 있는데 완전 잘한 거지.”

어휴, 유치한 놈들……. 물수제비 다섯 번을 뜨든 열네 번을 뜨든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아예 토론을 하고 있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장면은 계속 바뀌었지만, 정우진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한결같았다. 말투도 그렇고, 눈빛도 그렇고 별것도 아닌 말에 웃어 주는 거라든가……. 아무튼 모든 행동들이 의심스럽고 노골적이라 계속 방송을 보는 게 불편할 정도였다.

“헐…….”

“설마 우는 거야?”

밤하늘의 별을 보며 정우진이 우는 장면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우진이 갑자기 울어서 카메라는 꺼지고, 검은 화면에 우리 목소리만 나오고 있었다.

‘야, 카메라 껐으니까 그냥 이렇게 된 거 크게 소리 내서 울어. 원래 술 마시면 감정이 그렇게 격해질 때가 있는 거야.’

‘싫어요. 그리고 저 안 취했어요.’

‘그래, 그래. 너 안 취했어.’

‘취해서 운 거 아니에요.’

코맹맹이 소리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얘는 진짜 취하면 우는 게 술버릇인가 보다. 이때도 맥주 마시고 취해서 울었던 거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김강이 중얼거렸다.

“와, 둘이 진짜 주량이 약하긴 한가 보다.”

“내가 뭘?”

“형도 술 잘 못 마시잖아. 둘이 진짜 같이 마시지 마. 둘 다 취하면 큰일 날 거 같아.”

“맞아. 둘이 마시지 말고 다른 사람 한 명 더 데리고서 꼭 셋이 마셔.”

신신당부하는 말에 순간 발끈해서 뭐라고 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렇지, 취해서 운 거 아니지. 그냥 대자연이 너무 경이로워서 벅차오른 거잖아.’

‘아니라고…….’

‘알았어, 안 울었어. 너 안 울었어.’

‘…….’

‘안 울었다, 정우진 안 울었다. 하나도 안 울었다. 하나도 안 취했다. 완전 멀쩡하다.’

정우진이 다시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내가 당황해서 달래는 목소리가 들렸다.

[ㅠㅠ이거 편집 안됐네요ㅠㅠ]

그리고 정우진에게 또 문자가 왔다. 나도 카메라가 꺼져서 편집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목소리만 나올 줄은 몰랐다.

[선배님도 지금 방송 보고 계세요?]

“…….”

곧바로 다시 문자가 오는 걸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방송을 보면서 깨달은 건데, 만약 이대로 안이하게 대처한다면 조만간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정우진이 저렇게, 저런 식으로……. 저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냥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알고 보니까 너무 심각한 수준이었다.

혹시 누군가가 눈치를 챌 수도 있으니, 앞으로 최대한 같은 방송도 안 하고 그냥 일적으로는 아예 엮이질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텔레비전에서 내 목소리가 들렸다.

‘야.’

고개를 들자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정우진과 내 모습이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고정 카메라로 찍고 있었고, 불이 꺼진 상태라 표정까지는 확인이 되지도 않고 멀리서 형태만 보이는 정도였다.

‘자냐?’

불이 꺼진 조용한 방 안에서 조금 간격을 두고 내가 물었다.

저걸 보니, 그 전의 상황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분명 정우진이 자기는 잠이 없다고 했는데,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에 잠들어서 내가 황당해하는 상황이었던 거 같은데……. 그거 컨셉이냐는 질문도 했던 거 같고.

‘유진아.’

곰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귀에 때려 박듯 선명하게 들려오는 이름에 심장이 밑으로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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