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소리 없이 울기만 하는 정우진을 이대로 둘 수가 없어서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야, 아이스크림 하나 새로 사 줄 테니까 그만 울어.”
물론 그거 때문에 울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내 말에 다 녹아 사라지고 있는 아이스크림만 보고 있던 정우진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
“…….”
무슨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정우진이 이번에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시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울어?”
잠시 마주 보다가 묻자, 정우진이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면서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건지, 정우진이 다시 입을 꾹 다물었지만 그 뒤로도 끅끅거리는 소리가 몇 번 났다.
“…….”
나는 지금 심각한 정우진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웃으면 안 되는데, 그냥 저렇게 온 힘을 다해 울음을 참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우습다는 게 아니라 이 상황 자체가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입 안쪽 살을 꽉 깨물면서 웃음을 참는 사이, 정우진도 조금 진정을 했는지 크게 숨을 내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표정이…….”
하지만 들려오는 건 이해할 수가 없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표정은 무슨 표정? 혹시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너무 티가 났나.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정우진의 입꼬리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또 소리가 나오려는 건지, 저러다가 찢어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정우진이 아까보다 훨씬 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이, 거절할 것 같은 표정이라서…….”
“…….”
“……흑…….”
“…….”
힘겹게 말을 끝낸 정우진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기어이 우는 소리를 냈다.
아래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게 내 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나는 떨리고 있는 정우진의 정수리를 보며 머릿속이 하얘지고 말았다.
사실 질문을 하기 전부터 나는 정우진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렸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더 이상 전처럼 지낼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척했을 뿐이지…….
그래서 나는 정우진이 어떤 대답을 할 줄도 대충 예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수능 보는 날 늦잠을 잔 애처럼 울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도 내 표정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물론 당연히 나는 거절을 할 것이다. 단 한 번도 이 결정에 대해 의문을 품어 본 적도 없고, 고민을 한 적도 없었다. 왜냐면 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우는 걸 보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흑, 흐윽……. 흡, 끅. 히끅.”
“…….”
이제는 딸꾹질까지 하고 있었다.
정우진이 딸꾹질을 할 때마다 푹 숙이고 있는 머리가 살짝 위로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왔다. 그에 맞춰 검은 머리카락도 파들파들 떨렸다.
사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고, 나도 심란해야만 하는데…….
“음…….”
그냥,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상황이 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정우진이 저렇게 어린애처럼 울어서 그런 걸까? 예상치 못한 말을 들어서 그런 건가?
내가 작게 침음하자 정우진이 슬쩍 고개를 들어 날 쳐다봤다. 안 그래도 새하얀 얼굴은 귀신처럼 창백해져 있었고, 눈가는 화장을 한 것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물로 범벅이 돼서 우는 소리를 내고, 가끔 딸꾹질을 하느라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은 굉장히 서러워 보이기도 했고,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 일단……. 울지 말고…….”
내 말에 정우진이 고개가 떨어질 것처럼 정신 사납게 위아래로 흔들면서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그냥 손등으로만 닦는 것도 아니고, 팔까지 동원해서 요란스럽게도 움직였다.
그 잠깐 사이에 얼마나 운 건지, 얼굴 한 번 쓸었다고 소매 색깔이 짙게 변해 버렸다.
“좋아해 줘서 너무 고맙고…….”
“…….”
도대체 어떻게 거절을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을 수 있게 거절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봤지만 그런 방법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좋아해 줘서 고마워. 내가 좀 더 일찍 알아차렸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헷갈려서…….”
“아니에요, 제가 먼, 흑! 말했어야 했는데, 끅, 꾸 무서워서……. 말도 못 하고, 혹시 잘못…….”
더듬더듬 말하던 정우진이 나를 보며 잔뜩 울상을 짓고 입을 꾹 다물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고 있는 건지, 가슴과 어깨가 계속 들썩거렸다.
나도 저렇게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숨을 먹어 가면서 울음 참았던 적이 꽤 많아서 저게 얼마나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힘든지 알고 있었다. 호흡이 제대로 안 되니 숨이 차서 나중에는 가슴뼈까지 아팠다.
이젠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쏟아지고 있는 눈물이라도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닦을 것도 마땅히 없었다.
“그……. 난 편의점 가서 마실 거랑 휴지라도 좀 사 올 테니까…….”
그사이에 좀 진정하라고 말하려는데, 정우진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나 세게 흔든 건지, 눈물 한 방울이 내 뺨에 튀었다. 순간 놀라서 눈을 감자 정우진이 손을 뻗어 내 손목을 잡았다.
“저, 저도 데리고 가세요.”
겁에 질린 검은 눈을 보며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이렇게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정우진을 데리고 편의점에 갔다가는 당장 기사가 오백 개쯤은 날 걸 알기 때문이었다. 상상만 해도 눈앞이 아득해져서 나는 내 손목을 잡고 있는 정우진의 손을 잡아 살살 떼며 말했다.
“그냥 여기에 있어. 금방 갔다가…….”
“싫어요!”
“…….”
정우진이 갑자기 버럭 고함을 질렀다. 표정으로 보나 목소리로 보나 화를 내고 있는 건 절대 아니었지만, 갑자기 커진 언성에 내가 화들짝 놀라자 정우진이 사색이 됐다.
“저 화낸 거 아니에요.”
“알아……. 일단 진정 좀 해 봐.”
“잘못했어요……. 그냥, 제가……. 이, 이제 안 울 거라…….”
목소리도 심하게 떨리고 말도 꼬여서 조금만 문장이 길어져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냥 대충 눈치로 알아들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정우진이 갑자기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그러더니 그걸로 얼굴을 벅벅 닦기 시작했다.
“야, 너 왜 그래.”
놀라서 손목을 잡았지만, 어찌나 세게 닦고 있는 건지 내 몸까지 흔들릴 정도였다.
“저 목 안 말라요.”
“아, 알았어. 그만 좀 해.”
내 말에 겨우 멈춘 정우진이 옷에 푹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옷과 세게 마찰이 된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안 아파?”
“아, 아파요.”
“아니, 그러게 왜 그렇게 세게…….”
“가슴이 아파요…….”
“…….”
“흑…….”
정우진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지면서 시뻘건 눈가로 눈물이 고이더니 밑으로 폭포처럼 쏟아졌다.
순간 당황해서 주춤하는 사이 정우진이 울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만나 보면 안 돼요?”
“…….”
“제가 자랄, 끅!”
다시 딸꾹질이 시작됐다. 정우진도 답답한 건지, 딸꾹질이 나오든 말든 계속 말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내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이 손을 들어 정우진의 등을 팡팡 때렸다.
“흑, 흐윽…….”
“울지 좀 마.”
“흐으, 윽, 흑!”
“에휴…….”
또 숨을 참는 정우진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네가 잘하고 못하고 이런 게 문제가 아니라……. 네 행동이나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냥 내가 여자를 좋아하고, 남자는 연애 상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 거야.”
“그럼 지금부터 봐보면 안 돼요?”
정우진이 울면서 웅얼웅얼하는 말에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그게……. 막, 그렇게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성향이라는 게…….”
“저도 남자 안 좋아하는데, 근데 선배님 좋아하는 거고…….”
필사적으로 내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기는 한데, 당최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기도 뭐해서, 그냥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만 주억거리고 있는데 정우진이 크게 숨을 마셨다가 다시 뱉었다.
이제 좀 진정이 되는 걸까? 계속 울면 어쩌나 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자꾸 울어서 죄송해요.”
여전히 목소리는 잠겨 있고 살짝 떨리긴 했지만, 아까처럼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정우진의 등을 두드리고 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저도 남자 안 좋아해요. 그냥 선배님을 좋아하는 거예요.”
“…….”
“제가 남자를 좋아해서 선배님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저는 선배님이 좋은 건데……. 선배님은, 남자 안 좋아한다고 저를 안 만나 주는 거라면 너무…….”
“…….”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우진이 말을 하다 말고 점점 울먹거리더니 또 시동을 걸었다.
“제가…….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흑, 태어난 것도 아닌데……. 흑, 흐윽……. 그냥 태어나니까, 남자인 건데……. 이걸 어떻, 게……. 바꾸지도 못하는데, 그런 걸로…….”
나는 내렸던 손을 들어 다시 정우진의 등을 토닥거렸다.
“저 너무 억울해요.”
“그래…….”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치…….”
“태어나니까, 남자였는데……. 어, 끅해요?”
“그렇긴 해…….”
“억울해…….”
서럽게 울면서 대성통곡하는 정우진의 등을 두드리며 나는 마치 내가 죄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