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장난인 줄 알았는데, 같이하는 게 아니면 진짜 혼자 설거지를 할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자니, 눈치가 보여서 옆에서 기웃거리다가 물었다.
“집 구경 좀 해 봐도 돼?”
저번에 왔을 땐 밥만 먹고 가서 집을 자세히 보지 않았었다. 그냥 할 것도 없고 심심해서 한 말이었는데, 예상치도 못하게 정우진이 좀 곤란해하는 기색이었다. 싫어하는 거 같아서 얼른 덧붙였다.
“안방에서 방송 보자며? 안방이 어딘데? 거기만 볼게.”
“저기 안쪽으로 쭉 가서 제일 끝 방이요. 맞은편은…….”
“다른 방은 안 볼게.”
내 말에 정우진이 도리질을 쳤다.
“아니에요, 다 보셔도 돼요. 정리를 안 해서 짐이 엄청 쌓여 있는 방이 있는데, 거기만 좀…….”
어딜 봐도 티끌 하나 없는 집인데 정리 좀 안 해서 짐이 쌓여 있어 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짐이 좀 쌓여 있으면 어떤가 싶었지만 어쨌든 싫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정우진은 뭔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듯했지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정우진을 보다가 안방으로 갔다.
살짝 열려 있어서 손으로 천천히 문을 밀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푹신해 보이는 어두운 회색 이불과 같은 색의 베개 두 개였다. 커다란 침대 앞에는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구도상 누워서 보면 각도가 딱 맞았다.
앉아서 봐도 고개를 너무 들어야 하고 진짜 딱 누워야 될 거 같은데, 나중에 그럼 저기에 누워서 방송을 봐야 하나?
나는 가만히 텔레비전을 보다가 안으로 들어가, 가구점에 침대를 사러 온 사람처럼 이불 위를 꾹꾹 눌렀다. 주름이 생기는 걸 보면서 몇 번 더 눌러 보며 되게 푹신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설거지를 끝낸 건지 정우진이 보였다.
“누, 누워 보셔도 돼요.”
아직 날이 저물지는 않았지만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방 안은 꽤 어두운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둠 속에서 정우진이 말을 더듬으며 저런 말을 하니 또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아, 나중에…….”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숨을 삼키는 정우진을 보고 있자니 점점 표정 관리를 하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방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맞다, 너 사우나 샀다며? 그건 어디에 있어?”
“아, 여기에……. 이쪽이요.”
나는 후다닥 안으로 들어온 정우진의 뒤를 따라 파우더 룸으로 들어갔다. 조금 더 들어가자 목욕탕처럼 거대한 욕실이 나왔다. 그리고 가장 구석에 무채색 욕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두세 명 정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원목형 사우나가 있었다.
“와, 비슷하네. 이것도 보일러처럼 설정만 하면 온도 바로 올라가?”
“네, 안에 조절하는 거 있어요.”
그 말에 문을 열어 안을 보니 촬영할 때 봤던 것과 제법 비슷했다.
“써 봤어?”
“네, 한 번 써 봤는데 좋았어요. 그리고 저 이것도 샀어요.”
사우나 안쪽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돌리자 어쩐지 어디서 많이 봤던 것 같은 색깔의 옷이 보였다.
“사우나 옷이야?”
설마설마하고 묻자 정우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이렇게까지 본격적이라고?
웃음을 참으며 꽃분홍색 옷을 펼쳐 보니 진짜 사우나에서 입을 것 같은 커다란 반팔과 반바지가 두 개씩 있었다.
“지, 지금 하실래요?”
그때 정우진이 또 말을 더듬었다. 옷을 만지작거리면서 웃음을 참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정색을 하며 상체를 뒤로 빼 버렸다. 눈을 크게 뜨고 정우진을 보다 멋쩍은 표정으로 옷에서 손을 뗀 뒤, 몇 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말했다.
“나중에…….”
“네…….”
“…….”
“…….”
아, 씨발.
도대체 분위기가 왜 이래…….
아까부터 찝찝했던 게 그냥 기분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계속 이러다 보니까 마냥 그런 것만은 또 아닌 것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수줍은 듯한 정우진을 계속 보고 있자니 내 눈을 찔러 버릴 것 같아서 등을 돌리자 정우진이 내 뒤를 따라왔다.
“아, 맞다. 선배님, 과일 드실래요?”
“어, 어. 먹자.”
차라리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뭐라도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과일 먹으면서 라이브 할까요?”
“어, 그러자.”
뭘 하든 지금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거실로 나오는데 옷깃이 당겨졌다.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손가락 끝으로 내 옷의 허릿단을 잡고 있었다.
“안에서 기다리시면 제가 준비해서 갈게요.”
뭘 준비해서 간다는 거지?
순간 헷갈려서 멀뚱멀뚱 정우진을 보다가 물었다.
“과일?”
“네.”
“안에서 먹자고? 라이브 하자며?”
“네, 안에서…….”
설마 침대에서 하자는 건가?
그래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냥 왠지 그러고 싶지가 않아서 턱짓으로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저기서 하자. 침대 위에서 뭐 먹다가 흘릴 수도 있잖아.”
“그럼 이불 빨면 되죠.”
“과일은 수분이 많아서 이불에 스며들면 매트리스에 묻을 수도 있고……. 매트리스는 못 빨잖아.”
“방수 커버 씌워 놔서 괜찮아요.”
뭔 침대 매트리스에 방수 커버까지 씌워……. 정말 철저하다고 생각하다가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우겼다.
“아, 됐어. 거실에서 해.”
“소파도 천인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정우진이 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소파를 보니, 확실히 만약 뭘 흘리면 침대보다는 소파 쪽이 더 곤란할 것처럼 생기긴 했다.
나는 그런 걸 모른 척하며 소파로 가 철퍼덕 앉았다. 숙소에 있는 소파와는 달리 엄청 푹신푹신해서 몸이 밑으로 쑥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좋아서 등받이에 푹 기대기도 하고 옆으로 아예 누워 보기도 하는 사이, 정우진이 과일을 가지고 왔다.
방울토마토와 딸기, 그리고 청포도가 접시에 가득 담겨 있었다.
“모자라면 말씀하세요. 더 있어요.”
“어, 어. 맛있다.”
딸기를 하나 집으며 말하자 정우진이 웃었다.
“아직 먹지도 않았잖아요.”
그 말에 나는 딸기를 입 안에 넣으며 말했다.
“그냥 딱 봐도 맛있어 보이잖아.”
“그걸 보면 알아요?”
“그렇지 않나? 너도 먹어.”
정우진이 가만히 나를 보다가 똑같이 딸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몇 번 오물거리던 정우진이 입 안의 것을 다 삼키고 말했다.
“맛있네요.”
“맛있다니까.”
“아, 라이브 지금 할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우진이 내 옆으로 와 앉았다.
핸드폰으로 라이브를 할 준비를 하면서 과일을 계속 집어 먹다 보니, 그 많던 게 반도 넘게 사라졌다. 결국 라이브를 켜기 전에 다시 과일을 더 가지고 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켰어?”
“네.”
“켰다고?”
“네.”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다가 허리를 세우고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정우진도 바로 내 옆으로 와 똑같이 화면을 바라봤다. 거의 머리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멀뚱멀뚱 화면을 보고 있자 댓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살짝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자 정우진도 날 따라서 인사했다.
가온사랑나라사랑 가온아!!!!! |
BSegaonB 오남자 잘보고있어요ㅠㅠ!! |
우진겅듀 안녕하세요!! |
babyice 헐헐 오빠ㅠㅠ |
벼락식혜 헉 둘이 같이 라방이라니 |
BS 사랑해사랑해 |
시켜줘니호박잎 지금 어디에서 하는거예요? |
반타블랙 오남자 넘 잼있어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