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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107/190)

102화

밤새도록 가마솥에서 끓인 곰국으로 모두 함께 아침을 먹었다. 파를 잔뜩 넣어 시원하고, 아삭아삭한 김치와 함께 먹으니 속이 든든했다.

마지막으로 각자 인터뷰도 따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가지고 온 캐리어를 정리하다가 내게 다가와 작게 소곤거렸다.

“저 이것도 가지고 왔는데.”

어떤 은밀한 거래를 하는 사람처럼 품속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것은 시계였다. 정우진이 내게 선물이라고 줬던 그 엄청나게 비싼 시계와 똑같은 것이었다.

“이거 네가 나한테 줬던 거 아니야?”

“선배님이 시계 가지고 올 줄 알고 저도 가져온 건데, 안 가지고 오셔서 한 번도 못 했네요.”

“……?”

똑같은 걸 왜 가지고 있지? 순간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다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설마 너 이거 새로 산 거야?”

“네.”

“……왜?”

“제 건 선배님 드렸으니까요.”

그거야 그렇겠지만……. 보통 똑같은 걸 새로 사나? 어딘지 모르게 좀 찝찝했지만 자기 시계 자기가 돈 주고 샀다는데 내가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었다.

“저 이제 바로 다른 스케줄 가야 해서 돌아갈 때는 선배님 혼자 가셔야 해요. 바로 숙소로 가세요? 못 데려다줘서 죄송해요.”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뭔가 이상해서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게 왜 네가 죄송할 일이야?”

“혼자 차 타고 가면 심심하잖아요. 스케줄 끝나고 연락드릴게요. 아니면 중간이라도.”

혼자 가는 게 아니라 박준오랑 같이 가는데……. 스케줄 끝나고 연락은 또 왜 준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따로 할 말이 있나 싶기도 하다가 얜 원래 이렇게 평소에도 스몰 토크 같은 걸 잘해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영상 통화 걸어도 돼요?”

하지만 그다음 질문에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영상 통화는 왜?”

“그냥 얼굴 보면서 말하면 더 좋잖아요.”

“아니, 애초에 전화를 왜 하는데? 뭐 할 말 있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우진이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선배님은 꼭 할 말이 있어야 통화를 해요?”

“할 말도 없는데 통화를 왜 해?”

“그럼 선배님은 다른 사람이랑도 용건 없으면 연락을 안 하세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우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아니, 그건 천만다행이긴 한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에 인상을 찌푸리는데, 송철 피디가 들어왔다.

“뭐 잊은 거 없이 다 챙기셨어요?”

“네, 다 챙겼어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송철 피디가 정우진의 캐리어를 보더니 웃었다.

“어우, 다시 봐도 엄청 크네.”

그 말에 나도 덩달아 정우진의 캐리어 쪽으로 눈이 갔다. 처음에는 뭐 저렇게 많이 챙겨 왔냐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요긴하게 쓸 게 많았다. 선글라스나 모자 같은 것도 가지고 와서 사진을 찍을 때도 잘 사용했고.

“그러면 챙겨서 나오세요. 마지막으로 클로징 멘트하고 촬영 종료할게요.”

송철 피디가 다시 나가자 우리도 얼른 짐을 챙겨 나가려는데, 정우진이 말했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번 찍고 갈까요?”

“어디서?”

“음……. 일단 침대 쪽이랑 사우나 쪽이랑 저기 창문 쪽에서도…….”

한 번만 찍자고 하지 않았나? 도대체 몇 장을 찍자는 거야?

나는 정우진에게 끌려가 집 안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한두 장 정도 찍으니 더 이상 취할 포즈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서서 카메라만 쳐다봤다. 그런데 자꾸 정우진이 내 머리카락을 잡아 위로 들거나 목깃 쪽을 당기면서 사진을 찍어서 요상한 표정으로 사진이 찍혔다.

마지막에는 나도 정우진의 머리카락 끄트머리를 잡아 위로 들어 올리는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이제 그만 찍고 나가자. 다들 기다리시겠다.”

“너무 아쉽다. 사진 더 많이 찍을걸.”

“방송 나오면 그거 캡처해.”

“선배님은 왜 그렇게 낭만이 없어요?”

낭만은 뭔 낭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그 와중에도 계속 카메라 촬영음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정우진이 한 손으로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반대쪽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계속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쪽으로 와 주세요.”

송철 피디의 말에 우리는 마당 정중앙에 섰다. 아직도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정우진을 보다가 결국 빼앗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정우진은 잠깐 앗, 하는 소리를 냈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그냥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촬영을 끝내고 송철 피디, 스태프들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 밥도 많이 먹어서 그런지 헤어지려니 좀 아쉽기도 했다.

“선배님,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그래, 빨리 가. 피곤하면 차 안에서도 좀 자고.”

“마지막으로 차 안에서 사진 한 번만 더 찍을까요?”

“가, 빨리. 가, 가, 가.”

나는 정우진을 억지로 밴 안에 욱여넣고 문까지 쾅 닫아 줬다. 그러자 금방 창문이 밑으로 내려오면서 울상을 짓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조심히 가세요. 혹시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시고요.”

“그래, 너도 조심조심히 가.”

“선배님! 핸드폰 배터리 별로 없던데, 꼭 충전시켜 두세요!”

그 말에 핸드폰을 확인하니 정말 배터리가 14퍼센트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도 몰랐는데 이건 또 언제 봤는지 모르겠다. 나는 계속 조잘조잘 걱정의 말을 쏟아 내고 있는 정우진에게 대충 손을 흔들어 준 뒤 박준오와 함께 차에 탔다.

“촬영은 잘 하셨어요?”

“어, 잘했지. 밥은 먹었어?”

“네, 오기 전에 간단하게 먹고 왔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멤버들이 있는 단체 메시지 방에 들어가서 문자를 확인하니 그동안 별일은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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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촬영 끝나고 이제 집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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