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너무 어두워서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정우진은 울고 있는 게 확실했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나는 또다시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분명히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어디서 봤지?
이거랑 비슷한 장면을 틀림없이 봤는데…….
“…….”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건가?
불현듯 떠오른 근거 없는 생각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데, 옆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 우진 씨 울고 계신 것 같은데…….”
카메라맨이 카메라 화면과 정우진을 번갈아 보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정우진이 울고 있는데,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아서 초조한 모양이었다.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손을 뻗어 정우진의 옷깃을 잡았다
“너 울어?
“…….”
내 물음에도 정우진은 고개를 쳐든 채 하늘만 보고 있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우진아.”
어쩐지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정우진이 나를 쳐다봤다. 혼란스러운 듯한 눈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소리를 내어 울기 일보 직전인 것 같은 상황이었다.
“왜 울어?”
“바다…….”
“뭐?”
“…….”
뭐라고 말을 하려던 정우진이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제 입을 가렸다. 크게 놀란 기색이라 더욱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바다는 무슨 바다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상황을 수습하는 게 먼저라서 나는 정우진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너 취했지?”
“…….”
“아까 맥주를 그렇게 벌컥벌컥 마실 때부터 알아봤다. 어휴, 얼굴은 멀쩡해 보이길래 괜찮은가 했더니…….”
“…….”
혼자 열심히 떠들면서 수습을 하고 있는데, 정우진은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질 않았다. 그렇다고 대답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입을 열 생각은 없어 보여서 나는 정우진을 데리고 조심스럽게 길을 내려가며 계속 혼자 떠들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얘가 감수성이 진짜 엄청나다니까요. 근데 솔직히 나도 아까 처음 하늘 봤을 때는 너무 예뻐서 살짝 울컥하기는 했어. 별이 그렇게 많은 건 나도 오랜만에 봤거든요. 난 가끔 등산할 때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밑에 풍경만 봐도 좀 울컥하던데.”
“…….”
“술 마셨더니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나 봐요. 진짜 섬세하…….”
그때였다. 갑자기 작게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 건.
“…….”
나는 놀라서 가던 걸음도 멈추고 정우진을 쳐다봤다. 자기보다 키가 작은 내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잔뜩 몸을 웅크리고 구부정하게 있는 정우진은 평소보다 훨씬 더 불쌍해 보였다.
근데 이제 본격적으로 훌쩍훌쩍 거리기까지 하니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쭈뼛거리면서 하고 있던 어깨동무를 풀고 반사적으로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어, 어떡해…….”
괜히 별 보여 준다고 데리고 나와서…….
꼭 내가 울린 것 같은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저렇게 다 큰 놈한테 어린애를 달래듯이 우루루 까꿍 이딴 걸 할 수도 없고, 사탕 사 준다고 할 수도 없고…….
그사이 정우진은 들고 왔던 수건에 얼굴을 묻고 어깨만 들썩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해도 눈물이 멈추질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힐끗 카메라를 보며 작게 말했다.
“카메라는 끄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 그럴까요?”
“네,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나 봐요.”
“네, 그럼 카메라는 끌게요.”
카메라가 내려가는 걸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고 정우진의 등을 팍팍 때렸다.
“야, 카메라 껐으니까 그냥 이렇게 된 거 크게 소리 내서 울어.”
“…….”
“원래 술 마시면 감정이 그렇게 격해질 때가 있는 거야.”
내 말에 수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정우진이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밤이라 어두웠음에도 정우진의 얼굴이 젖어 있는 게 훤히 보였다. 그 정도로 정우진은 소리만 내질 않았지,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싫어요.”
아깐 말도 안 하고 계속 울기만 하더니, 울라고 하니까 이젠 싫단다.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짓자 정우진이 코맹맹이 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저 안 취했어요.”
“…….”
내가 취할 때마다 안 취했다고 깽판을 쳐서 짜증이 난다는 얘길 들었는데, 과연 어떤 기분인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가만히 정우진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래, 그래. 너 안 취했어.”
“취해서 운 거 아니에요.”
“그렇지, 취해서 운 거 아니지. 그냥 대자연이 너무 경이로워서 벅차오른 거잖아.”
“아니라고…….”
정우진이 억울하다는 목소리로 다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해서 화들짝 놀라 정우진의 등을 세게 쓸어내렸다.
“알았어, 안 울었어. 너 안 울었어.”
“…….”
“안 울었다, 정우진 안 울었다. 하나도 안 울었다. 하나도 안 취했다. 완전 멀쩡하다.”
“…….”
여전히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정우진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질 않았다. 그냥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내 뒤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와 밝은 곳에서 정우진의 얼굴을 본 나는 다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세수 좀 할래?”
“네.”
“그래…….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
한 4년 정도는 투병 생활을 한 환자처럼 창백한 얼굴과 너무 울어서 지쳐 보이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정우진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별로 길게 운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떻게 울었으면 저렇게 얼굴이 수척해진 거지…….
그보다 도대체 왜 울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갑자기 그냥 별이 잔뜩 뜬 하늘을 보니까 벅차올라서 울었나? 술도 마셨으니 그럴 수 있었다.
왜 울었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촬영 중이고……. 뭔가 말하지 못할 속사정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먼저 말해 주기 전에는 묻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우진이 세수를 하고 나온 뒤, 나도 씻고 잘 준비를 했다.
“…….”
“…….”
침대에 누워 불을 끈 채 천장을 보고 있으니 조금 전 들었던 위화감이 떠올랐다.
정우진이 넋을 잃고 하늘을 보면서 울고 있던 옆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분명히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지?
내 착각인 건가 싶어도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니 그냥 넘기기엔 찝찝했다. 아깐 당황해서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 넘어갔는데 분명…….
“아 씨, 깜짝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정우진을 보려다가 놀라서 간 떨어질 뻔했다. 정우진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 안 잤어?”
“네, 저 원래 잠이 별로 없어요.”
“…….”
어둠 속에서도 정우진의 눈빛이 또랑또랑한 게 보였다. 그럼에도 정우진의 말에 딱히 신뢰가 가진 않았다. 그것도 그럴 게, 나는 쟤가 침대 위를 굴러다니면서 자는 걸 봤으니까…….
“방금 제 말 안 믿으셨죠?”
내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걸 발견한 정우진이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정우진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근데 너 그거 혹시 컨셉이야?”
“네?”
“뭐, 불면증 그런 컨셉?”
그래도 연예계에 있으면서 사차원이라든지, 상남자라든지, 뭐 그런 건 많이 봤는데 살다 살다 저런 컨셉은 난생처음 봤다. 진짜 쟤도 정글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알게 모르게 노력을 많이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컨셉도 아닌데 그럼 자꾸 왜 이러는 거지? 자는 것만 봐도 한번 잠들면 엄청 깊게 자는 것 같던데.
내가 아무 말도 하질 않자 정우진도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아직도 날 쳐다보고 있는 건지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 예감이 맞다면……. 난 분명코 정우진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예전부터 내 팬이라고 했으니까 팬 사인회라든지, 뭐 그런 곳에 왔었나? 그래서 낯이 익은 건가? 근데 나는 정우진의 얼굴을 어디서 본 것 같은 게 아니라 뭔가……. 행동이라든가…….
“…….”
심각한 표정으로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 봤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왜냐면 나도 도대체 정우진의 어디가 그렇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오랜만에 촬영해서 그런 건가? 내가 괜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건가?
도대체 이 위화감은 어디서 오는 건지…….
‘바다!’
‘바다 아니라고!’
‘바다! 바다!’
벼락이 치듯 떠오른 단편적인 장면에 나도 모르게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정우진을 바라봤다.
“…….”
“…….”
하지만 정우진을 보는 순간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던 무언가가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져 버렸다.
“……어처구니가 없네.”
정우진이 내 쪽으로 몸을 돌린 채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눈만 감고 있는 건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입도 살짝 벌어져 있고 숨소리도 너무 일정한 게 누가 봐도 숙면을 취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말이나 하지 말든가…….”
“…….”
“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잠이 없기는 뭐가 없어.
나는 실실 웃으면서 허탈한 표정으로 도로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멀뚱멀뚱 천장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잠들어 있는 정우진의 얼굴은 딱히 표정이랄 것이 없어 평소보다 많이 딱딱하고 차가워 보였다.
“야.”
나지막하게 불러 봤지만 정우진은 미동도 하질 않았다.
“자냐?”
다시 물어도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갑자기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상한 충동에 휩싸여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 버렸다.
“유진아.”
혹시라도 누가 들을까, 작은 숨소리처럼 뱉은 이름은 공기 중에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