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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98/190)

93화

이게 뭐지?

나는 당황한 얼굴로 커다란 자물쇠를 가만히 보다가 그걸 잡고 아래쪽으로 살짝 당겨 봤다.

덜컹, 덜컹.

“어……. 이게 왜…….”

집에서는 보통 안에서 문을 잠그지 않나? 이게 왜 밖에 달려 있지? 이러면 못 나오지 않나?

“오빠.”

차갑고 묵직한 자물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안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속에 있는 의문을 그대로 내뱉어 버렸다.

“너 혹시 갇혀 있는 거야?”

“응?”

“너 여기에 갇혀 있는 거냐고?”

워낙 후미진 골목이라 그런지 햇볕도 들어오지 않아 한여름의 대낮인데도 공기가 차갑고 축축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그런지 말을 할 때마다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심각한데, 그런 내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유진이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나 여기에서 못 나가.”

“그거야 당연히 문이…….”

아까부터 자꾸 했던 말만 반복하는 게 답답하긴 했지만, 유진이는 아직 어려서 그럴 만도 했다. 숫자도 모르고, 시계도 못 보는데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나가지 말라고 했어.”

“할아버지? 어떤 할아버지? 엄마랑 아빠는?”

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묻자 유진이가 말했다.

“엄마랑 아빠는 없어.”

없다고? 엄마랑 아빠가?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굳게 잠긴 문을 또다시 보다가 다시 물었다.

“왜 없어? 어디 갔어?”

“죽었대.”

“……어?”

“할아버지가 엄마랑 아빠랑 같이 죽었대.”

그 말에 듣는 순간, 내 마음속 어느 한구석이 밝은 햇볕 아래 늘어진 그림자처럼 짙어졌다.

***

“…….”

마치 전원이 켜진 로봇처럼, 나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

낯선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며 굳어 있는 관절을 조금씩 움직이자, 몸이 목각 인형처럼 뚝뚝 끊어지듯 움직였다. 저린 팔다리에 조금씩 힘을 주며 눈을 깜빡거리자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는 건지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식은땀을 흘린 건지 목 뒤가 좀 젖어 있어서 대충 손으로 닦고 상체를 일으키려는데 옆에 뭐가 있는 듯했다. 고개를 돌리자 핸드폰을 들고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는 정우진이 보였다.

“전화가 와서…….”

정우진이 당황한 얼굴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조용히 보니 진동이 계속 울리고 있는 건 내 핸드폰이었다.

“누구야?”

잔뜩 잠긴 목소리로 묻자 정우진이 다시 머뭇거렸다. 나는 아직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상태라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를 썼다.

“강수민이라고…….”

“…….”

하지만 정우진이 말하는 이름을 듣는 순간 찬물이라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빠른 동작으로 핸드폰을 가지고 와 액정을 보니 진짜 강수민이었다. 정우진이 실수로 전화를 받기라도 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곧 전화가 끊어지는 걸 보며 나는 핸드폰의 전원을 아예 꺼 버리곤 중얼거렸다.

“아, 끊어졌네.”

“…….”

“지금 몇 시야?”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묻자 정우진이 말했다.

“여섯 시쯤이요.”

“벌써?”

놀라서 창문을 보자 밖은 어두컴컴했다. 아니, 지금 촬영 중인데 이렇게까지 숙면을 취했다고? 잠시 당황하는 사이, 타이밍 좋게 송철 피디가 들어왔다.

너무 오래 잔 건 아닌가 싶어서 괜히 찔려 벌떡 일어나자 송철 피디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게 닿았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송철 피디는 잠시 흠칫하더니 한 박자 늦게 물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네, 완전 곯아떨어져서…….”

나는 말끝을 흐리며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더듬더듬 얼굴을 만졌다. 내 얼굴에 뭐 묻었나? 혹시 자다가 침이라도 흘렸나? 머리가 뻗쳤나? 표정이 왜 저러지?

“아, 맞다. 사우나 할까요? 해도 되죠?”

그때 정우진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듯 손뼉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그 말에 송철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되죠. 안 그래도 이제 슬슬 뭐 하실지 여쭤보러 들어온 거거든요. 저녁도 드셔야 하지 않아요?”

“저녁은 그럼 사우나 하고 간단하게 먹을까요? 오늘 아침이랑 점심에 이것저것 많이 먹었으니까.”

여러 가지를 먹긴 했지만 딱히 양으로 뭘 많이 먹은 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원래 정우진이 먹는 양이 별로 많지 않다는 걸 알아서 그냥 끄덕거렸다.

송철 피디도 알겠다고 하며 나가려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우리를 보며 말했다.

“냉장고에 맥주도 있던데, 혹시 드시고 싶으시면 드세요.”

“맥주요? 술을 마셔도 돼요?”

“한두 캔 정도는 뭐……. 혹시 주량이 많이 약하세요?”

그 물음에 나는 고개를 돌려 정우진을 바라봤다. 정우진이 멀뚱멀뚱 나를 보다가 말했다.

“저요? 저는 그렇게 많이 마셔 본 게 아니라서, 주량을 정확하게 잘 몰라요.”

“한 번도 취해 본 적 없어?”

“네, 선배님은요?”

“나도 그냥……. 보통 정도?”

당연히 취한 적은 있었지만 주량이 엄청 약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촬영 중이니 만약 마시게 되더라도 정말 조금, 입만 축일 수 있을 정도로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일단 준비하고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송철 피디가 나가자 집 안에는 우리만 남게 되었다.

“무슨 준비를 해야 하지?”

“옷 갈아입어야 하지 않아요? 반팔이랑 반바지 같은 걸로…….”

“아, 맞네.”

그 말에 일단 옷부터 벗으려다가 멈칫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고 하니까 잊고 있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

분명히 좀 전까지만 해도 완전 까먹고 있었는데…….

처음 옷을 갈아입을 때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자 절로 손이 머리 쪽으로 향했다. 내가 머리를 짚고 잠자코 있자 정우진이 걱정스런 어조로 물었다.

“머리 아프세요?”

그 물음에 뭐라고 대답을 하려는데 스태프가 옷을 가지고 들어왔다.

“옷은 이걸로 입어 주시면 돼요.”

“사우나 들어갈 때요?”

“네네.”

세트처럼 보이는 꽃분홍색 반팔 두 개와 반바지 두 개를 받았다. 나는 그걸 하나씩 정우진에게 주고 아무런 말도 없이 내 옷을 들고 욕실로 갔다. 그리고 문까지 잠그고 카메라의 위치를 확인한 뒤 사각지대에서 빠르게 옷을 훌렁훌렁 벗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다 갈아입은 나는 벗은 옷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좀 전에 내가 옷을 줬던 그 자세 그대로, 그 자리에 있던 정우진이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벌써 갈아입었어요?”

“어어, 너도 빨리 갈아입어.”

“…….”

나는 옷을 대충 정리한 뒤 그냥 밖으로 나가 버렸다.

신발을 신으면서 스치듯 본 정우진의 양 뺨이 복어처럼 빵빵해져 있는 것 같아서 고개를 갸웃했다. 잘못 봤나? 다시 들어가서 보기도 이상해서 그냥 터덜터덜 나오자 나를 본 스태프가 놀랐다.

“어머.”

한 손으로 입까지 가리는 걸 보며 나도 덩달아 잠시 놀라다가 내 옷차림을 보고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 이거 사우나 옷이라서…….”

“안 추우세요?”

“좀 쌀쌀한데 괜찮아요. 자다가 방금 깨서 정신도 번쩍 들고.”

그렇게 말하며 웃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스태프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게 그렇게 이상한가?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옷을 내려다봤다. 색깔이 좀 튀긴 하지만 보통 사우나 가면 이런 거 많이 입지 않나? 아니, 근데 이걸 내가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입으라고 줘서 입은 건데 이렇게까지 놀란다고?

“사우나 미리 온도 올려놔야 하지 않나?”

그때 송철 피디가 스태프에게 말했다. 그걸 듣다가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사우나는 근데 어떻게 작동하는 거예요? 뭐 나무나 돌 같은 거 태워서 열을 내는 건가?”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봤던 간이 사우나는 옆에서 뭘 태웠나? 그러기도 하고, 뜨거운 돌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서 묻자 송철 피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안에서 온도 올리면 돼요.”

“안에서요? 보일러처럼?”

“네, 온도 조절하는 것도 있어서 버튼만 누르면 된대요.”

“와, 진짜 신기하다. 완전 현대식이네.”

내가 놀라자 송철 피디가 웃었다.

“저도 집 안에 저렇게 있는 건 실제로 처음 봤는데, 하나 있으면 진짜 좋을 것 같아요. 특히 겨울철 아침에 일어나서 찜질하면…….”

추운 겨울날 아침에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을 때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나와 샤워를 하는 상상을 하니 절로 입이 벌어졌다.

“진짜 너무 좋겠다…….”

완전 극락 아닌가? 송철 피디와 둘이서 입을 벌린 채 감탄하고 있는데, 어느새 옷을 다 갈아입은 정우진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뭐가 좋아요?”

“그냥 집에 저런 거 하나씩 있으면 좋을 거 같아서. 겨울엔 진짜 좋지 않겠냐? 아, 지금 온도 올리러 가시는 거예요? 우리도 가서 같이 보자.”

나는 정우진을 끌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사우나는 사람이 두세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나무 박스 같은 공간이었다. 안에는 정말 보일러처럼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게 벽 한쪽에 붙어 있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정우진도 날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온도를 올리진 않아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의자에 앉자 안이 꽉 찼다.

“여기 그거 같다.”

“그거요?”

“코인 노래방.”

뜨거워서 땀이 나는 게 아니라 너무 붙어 있어서 땀이 나는 건 아닐까……. 밖에서 볼 때보다 앉으니까 생각보다 더 좁았다. 어깨와 무릎이 바짝 닿아서 문까지 닫으면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았다.

“선배님, 우리 그것도 해요. 양머리.”

걱정을 하고 있는 나와 달리 정우진은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만들 줄 알아?”

“인터넷 찾아볼까요?”

정우진이 벌떡 일어서더니 밖으로 나가 핸드폰을 찾았다. 사우나 안에 혼자 앉아 있으니까 넉넉한 게 크기가 딱 맞았다. 그냥 따로 하면 안 되나? 나중에 사우나 하고 나와서 씻을 때도 불편하니까 그냥 한 명씩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선배님, 이거 하나 들어 보세요.”

그때 정우진이 하얀 수건 두 개를 들고 와서 내게 건넸다.

“저 따라 해 보세요. 일단 이걸 쫙 펼쳐서 3분의 1을 접고, 반대쪽도 똑같이 접어서, 이렇게 끝을 돌돌돌…….”

“…….”

따로 하자고 말해 보려고 했는데 신이 나서 양머리 만들기 강의를 하고 있는 정우진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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