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6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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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마치 대답이라도 한 것 같아서 나는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정우진이 내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마를 가리고 있던 검은색 머리카락이 사르륵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얼굴이 드러났다.

“…….”

“…….”

미친……. 우네.

진짜 울고 있네…….

새하얀 얼굴은 이미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실시간으로 눈에서 물이 터진 수도꼭지처럼 계속 줄줄 흐르고 있었다.

“왜……. 왜, 울어?”

놀란 표정으로 묻자 정우진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입을 열었다.

“전화 온 거 매니저 아니에요?”

“…….”

코맹맹이 소리…….

“맞죠?”

“어? 어……. 맞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정우진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어?”

“매니저가 선배님한테 말을 왜 그렇게 하는 거예요?”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지금 너무 당황해서 그런 건지, 정우진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뭐 어떻게 했다는 건데? 아까 뭐 말하지 말라고 했던 그걸 얘기하는 건가? 그게 왜?

내 표정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건지 정우진이 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왜 그렇게 말을 못되게 하냐고요.”

“…….”

다시 친절하게 풀어서 말을 해 줬지만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당황하고 있었다. 못되게 말을 한다니……. 못되게 말을 한 건가?

“어……. 원래 매니저 형 말투가 좀 그래.”

딱히 매니저 형을 감쌀 의도는 없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한 건데도 정우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눈으로 나를 한참이나 바라봐서 결국 내가 먼저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화병 날 거 같아요.”

정우진이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지금 용암도 토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고 붉게 물든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계속 떨어졌다.

“용암은 토하면 안 되지…….”

“선배님은 화도 안 나세요? 왜 그런…….”

정우진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면서 울상을 짓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선배님한테 화낸 거 아니에요.”

“알아, 화낸 것처럼 안 보였어.”

“진짜 미안해요. 선배님이 제일 속상하실 텐데.”

“괜찮다니까. 근데 넌 도대체 왜 자꾸 우는 거야? 좀 그쳐 봐. 너 지금 얼굴 다 젖었어.”

어디 닦을 거라도 없나 싶어 차 안을 둘러봤지만 딱히 그런 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자꾸만 우는 소리가 커지는 것 같아서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소매의 옷자락 끝으로 정우진의 눈가를 꾹꾹 눌러 버렸다.

“그만 좀 울어.”

“잘못했어요.”

“아니, 네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네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고 그냥 이건 나랑 회사 문제야. 너는 중간에 낀……. 그래, 새우 같은 그런 거고.”

눈가도 닦고 젖은 뺨도 닦고 턱 끝에 매달려 있는 눈물방울도 닦고 있는데 정우진은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얼마나 운 건지 얼굴만 닦은 건데도 옷소매가 금세 축축해졌다.

“매니저가 자주 그래요?”

그 말에 나는 멈칫했다. 뭔가 생각이 많아지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걱정해 주는 게 고맙기도 하면서 BB 매니저는 이렇지 않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근데 생각해 보면 그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걸 지금 와서 깨닫는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바뀌는 것도 없을 거고…….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해 봤자 결국 나뿐만 아니라 멤버 전원에게 페널티만 될 확률이 컸다.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자기 일처럼 울기도 하면서 걱정을 해 주는 정우진에게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일이 이렇게 된 게 안타깝기는 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좋은 사람을 알게 된 것만 해도 나한테는 이득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웃자 정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왜 웃어요? 지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

“아니……. 그냥 웃기잖아.”

내가 다시 웃자 정우진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너 나만 만나면 운다고 그러고, 저번에 떡볶이 먹을 땐 사진까지 찍혔는데 지금 이거 또 누가 보면 난리 나겠다. 내가 너 또 울렸다고.”

웃으라고 한 얘기였는데 내 말에 정우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거 제가 계속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가만히 보니까 제가 무슨 말만 하면 할수록 더 상황이 이상해지는 거 같고 그래서 그 뒤로는 아무 말도 안 한 건데……. 만약 선배님이 해명을 원하시면 당장 오늘이라도 제가 방송 켜서 말할게요. 아니면 인별에 입장문이라도…….”

창백해진 얼굴하며 진지한 말투를 보면 장난이 아닌 것 같은데 진심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과한 행동이었다. 웃어야 할지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결국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으로 정우진을 보다가 말했다.

“됐어……. 그냥 내버려 둬.”

“네, 그래도 혹시 마음이 바뀌면 꼭 말해 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는 정우진을 보며 대충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을 돌렸다.

“근데 너 말도 없이 나온 것 같은데 들어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까 매니저 형 하는 말 들어 보니까 너 찾는 거 같던데.”

“아, 괜찮아요.”

“……안 괜찮은 거 같은데. 어쨌든 지금은 운 티가 너무 나니까 물티슈랑 시원한 거라도 사 올게. 넌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정우진이 내 옷깃을 잡았다.

“선배님, 저도 같이 가요.”

“내가 갔다 올 테니까 넌 그냥 여기에 있어.”

“아니에요, 같이 가요. 저 마스크도 있어요.”

그러면서 사이드포켓을 열어 마스크를 꺼내는 게 아닌가. 그래 봤자 어차피 정우진이 나가면 또 사람들이 다 알아볼 게 뻔했다. 고작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다고 가려질 얼굴과 덩치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자세를 똑바로 하고 앉아 정우진을 보며 말했다.

“너 지금 진짜 눈 완전 빨갛고 백 리 밖에서 봐도 펑펑 운 사람처럼 보여.”

“그럼 눈 감고 걸을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있어. 바로 옆에 편의점 있으니까 거기에서 살 것만 사고 바로 올 거야.”

“…….”

단호한 내 말에 정우진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계속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냥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정우진은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수긍하는 눈치였다.

“바로 오실 거예요?”

“어, 마실 거랑 물티슈만 사서 바로 올게. 혹시 더 필요한 거 있어?”

“아니요, 없어요. 저 한 5분 정도 기다리다가 만약 그때까지 안 오면 제가 편의점으로 데리러 가도 될까요?”

이것도 진실일까? 아니면 그냥 장난일까? 구분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정우진을 멀뚱멀뚱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제야 조금은 안심하는 것 같은 정우진을 보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계속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다시 정우진을 보며 말했다.

“근데 너 내가 안 올 것 같아서 지금 이러는 거야? 아니면 도망가거나 그럴까 봐?”

정말 궁금해서 물었는데 정우진은 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질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침묵이 긍정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아까부터 왜 이런 건지 알고 나니까 더 황당했다.

누가 보면 내가 정우진한테 밥값이라도 떼먹은 줄…….

“…….”

일그러진 얼굴로 정우진을 보다가 갑자기 벼락처럼 떠오르는 기억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음.”

있었네, 진짜…….

밥값을 떼먹은 건 아니지만 강수민한테 연락이 와서 정우진을 두고 간 적이……. 아니, 그래도 그땐 강수민이라는 특수한 이유가 생겨서 그런 거고,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닌데…….

만약 지금 당장 강수민에게 연락이 와도 나 때문에 운 정우진을 두고 갈 리도 없었다. 하지만 정우진은 이런 걸 알 리가 없으니 불안할 것 같기도 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헛기침을 하다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뭐, 여기에 너 두고 어디 도망이라도 가겠냐? 너한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 말에 정우진이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무슨 할 말이 있기는 한 거 같은데 꽤 긴 시간이 흘러도 정우진의 입은 열리지가 않았다. 갑자기 시작된 침묵에 그냥 빨리 나가서 편의점이나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우진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 왔다.

“잘못한 게 있으면요?”

“어?”

“만약 잘못한 게 있으면, 그러면 그땐 도망갈 거예요?”

붉게 물든 눈이 다시 촉촉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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