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190)

60화

“아무튼 내가 정우진한테 받았는데……. 근데 너희는 어떻게 알았어?”

갑자기 궁금해져서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이진혁이 내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남자 기사 찾아보다가……. 그냥 이것저것 봤는데 거기에 나오더라.”

그 말에 나는 이진혁이 그 정리 글을 봤다고 확신했다. 하긴, 그렇게 난리가 났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노을이 날 보며 물었다.

“형도 봤어, 그거?”

“봤지.”

짧게 대답하자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 얘기를 꺼낼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아무튼 시계 얘기나 다시 하려고 하는데 유노을이 갑자기 식탁을 쾅 치더니 노발대발했다.

“아니, 근데 그거 다 헛소리밖에 없었어! 무슨 형이 정우진 시계를 갈취해? 우리 형은 아이돌인 주제에 꾸미는 거에 관심도 없어서 내가 맨날 옷도 입혀 주는데, 시계는 무슨 시계!”

점점 갈수록 커지는 목소리에 놀라 거북이처럼 어깨를 움츠리는데 김강도 식탁을 쾅 쳤다. 조금 전 유노을이 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소리였다.

애들 앞에서는 물도 함부로 마시지 말라는 게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았다. 혹시 식탁이 부서졌을까 봐 더듬더듬 위쪽과 아래쪽을 만져 보고 있는데, 김강이 유노을과 똑같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내 말이! 형은 액세서리에 관심도 없는데 먹지도 못하는 시계를 왜 갈취하겠냐고! 차라리 시계가 아니라 저번에 같이 먹었다던 그 토스트를 갈취했다고 하는 게 더 신빙성 있지!”

김강까지 버럭 소리치자 얌전히 김밥을 먹고 있던 이진혁도 혼자 가만히 있기가 뭐했던 건지 눈치를 보다가 살살 식탁을 콩 치면서 말했다.

“그치, 형은 열 받으면 그냥 면전에 대고 욕을 하지 왕따 같은 걸 시킬 사람이 아닌데 왕따는 무슨 왕따야? 그거 진짜 다 헛소리밖에 없어서 화도 안 나더라. 소설을 써 놨더구만, 아주.”

“…….”

자기들 딴에는 나를 옹호하기 위해 한 말이겠지만 하나같이 말하는 내용들이 좀 이상했다. 고마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 고민이 됐지만 어쨌든 위로를 해 준답시고 한 말일 테니 감사하기로 했다.

“그래……. 얘들아, 고맙다. 아무튼 내가 시계를 받았는데…….”

빨리 말을 돌리려고 황급히 식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식탁을 세게 내려쳐서 그런지 수건 위에 있던 시계의 위치가 아주 살짝 바뀌어 있는 게 보였다.

그걸 보고 놀라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자 애들이 동시에 양손을 식탁 밑으로 넣었다. 그 재빠른 동작에 입술을 달싹이다가 나도 그냥 식탁 밑으로 양손을 넣었다.

그러자 이진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형, 근데 정우진이 시계 선물은 왜 해 준 거야?”

“아, 내가 먼저 샴푸 줬거든.”

“샴푸? 샴푸는 왜 줬는데?”

나는 며칠 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시작했다.

“저번에 같이 차 타고 가는데 정우진이 자꾸 향수 뿌렸냐고 물어보고 샴푸 뭐 쓰냐, 바디 워시 뭐 쓰냐, 냄새 좋다, 자꾸 이래서 좋아하는 냄새인가 싶어서 그냥 줬어. 집에 마침 사 놨던 거 있기도 했고.”

“…….”

“…….”

“…….”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기는 했지만 일단 나는 말을 끝까지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샴푸를 줬더니 정우진이 고맙다고 자기도 선물을 주겠다고 하길래 그냥 그러라고 한 거야. 근데 얼마 전에 시계 알이 깨지는 일이 있어서 정우진이 그거 보더니 시계를 준 거고……. 난 처음에 이렇게 비싼 건지도 몰랐어. 가격을 떠나서 처음에는 안 받으려고 했는데 자꾸 헛소리하고 걱정도 너무 많이 하는 거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받았던 거야. 가격은 나도 진짜 이번에 알아서 다시 돌려주려고 했는데…….”

길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목이 막혀 큼큼 소리를 내고 있는데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유노을이 뭔 동물원 원숭이 보듯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 혹시……, 모쏠이야?”

그 말에 한숨을 내쉬며 말하려는데 별안간 김강이 상처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모쏠이 나쁜 건 아니잖아…….”

“…….”

“…….”

“…….”

의도치 않게 막내의 사생활에 대한 TMI를 알아 버린 우리들은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 나는 유노을을 보며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겠는데 걘 남자잖아. 여자였으면 나도 당연히……, 좀 그런 쪽으로 의심을 하긴 했겠지.”

“형, 세상에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도 있어.”

수학 공식을 알려 주는 선생님처럼 말하는 이진혁을 보며 나는 속이 답답해졌다.

“나도……. 솔직하게 말해서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닌데 걔가 좀…… 성격이 특이한 것도 있긴 해. 이건 너희가 정우진이랑 같이 안 다녀 봐서 모를 수도 있는데 걔가 어나더 팬이었대. 데뷔하기 전에 갑멘에 가서 원 정식 기억나지? 그것도 시켜 먹고 내 사인 앞에서 사진도 찍고 그랬었다고, 갑돌이도 기억하고 있더라.”

이것 말고도 정우진의 섬세하고 다정한 성격이라든지, 소심하기 때문에 타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눈치가 빨라서 말하지 않아도 배려를 잘 해 주는 점이라든지, 말할 건 많았다.

“진짜?”

아니나 다를까, 내 말에 유노을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나도 놀랐어. 처음에 뭐 존경하는 선배님 어쩌고 할 때는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팬이었대.”

“근데 그렇다고 해도……. 아니, 나는 뭐 형이 데이트하러 간다 이런 건 그냥 장난으로 그런 거였는데, 이제 하면 안 되겠네…….”

머쓱한 표정으로 말하는 김강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당연히 그건 장난이었지.”

“근데 형은 진짜 좋아하는 표정이었어.”

“그럼 친구랑 나가서 노는데 기분이 더럽겠니?”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묻자 김강이 놀란 표정으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또 그러네…….”

“그리고 걔가 남자를 좋아해서 나한테 이렇게 비싼 시계를 줬다는 것도 뭔가 말이 좀 안 되잖아.”

내 말에 이번에는 이진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말이 안 돼? 돈으로 꼬시는 걸 수도 있지.”

“걔는 그런 성격이 아니야. 진짜 엄청 소심하고 감수성도 풍부하다니까? 거의 무슨 문학 소년이나 다름없어.”

“……그게 돈으로 꼬시는 거랑 뭔 상관이지?”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도 절대 그런 건 아니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해가 안 되는 행동들과 말들이 제법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애들이 이렇게 말하는데 거기에 동조하자니, 그것도 모양이 이상해서 나는 거의 반박하는 기계처럼 모든 의견을 쳐 냈다.

“근데 나는 아무래도 샴푸가 마음에 걸려.”

그때 김강이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계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는데, 냄새 좋다고 막 어쩌고저쩌고 하는 그건 그냥 플러팅 아니야? 중학생이 봐도 플러팅이라고 할걸?”

플러팅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머리가 띵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심각한 얼굴로 머리를 짚은 채 물었다.

“진짜 냄새가 좋아서 물어봤을 수도 있잖아.”

내 말에 김강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긴 하지…….”

씨부럴…….

머리가 지끈거려서 눈을 꽉 감았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한테 도끼병이 있었나?

안전벨트도 해 주고 자꾸 뭐 먹여 달라고 입 벌리고 그러는 것도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걸 말해 버리면 진짜 좆 될 것 같아서 결국 그런 거까지는 애들한테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형은 애초에 뭘 물어보고 싶었던 거야?”

그때 이진혁이 예리한 질문을 했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나는 시계를 조심스럽게 수건에 감싸 들고 말했다.

“그냥 시계 자랑한 건데?”

그리고 그걸 들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

방에 들어오자마자 시계를 가장 높은 곳에 조심히 내려놓고 침대 위로 엎어졌다.

사실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정우진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긴가민가한데 이런 의심만으로 그런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만약 아니라면 엄청난 실수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오랜 팬이기도 하고 친해지고 싶어서 노력했던 동생을 모함해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것도 조만간 촬영도 같이해야 하는데, 괜히 이상한 일이 생겨서 서로 어색해지면 큰일이었다.

그래,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까 일단 이 문제는 그냥 덮어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정말 진짜 내가 도끼병에 걸렸을 수도 있는 거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

그래도……. 일단 촬영이 중요하니까…….

나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의심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2